목화밭 엽기전
백민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절필선언을 했던 작가가 돌아왔다. 그런데 그가 왜 절필을 했었더라? 그리고 복귀의 변은 또 뭐였더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떠도는 풍문에 의해 어렴풋이 짐작할 뿐. 어쨌든 글밥으로 먹고 사는 글쟁이는 어쩔 수 없이 글을 써야 하는구나 싶었다.

 

<목화밭 엽기전>의 시공간적 배경은 무척이나 구체적이어서 반가웠다.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가 막 출발하기 직전의 11월이었던가. 하루에 103원이 올랐다는 IMF 시절의 악몽이 다시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공간적 배경은 서울랜드와 동물원이 맞닿아 있는 과천. 주인공인 한창림과 박태자는 교육 서비스업계에 종사하는 평범한 사람들로 보인다. 적어도 외면적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특히 한창림은 ‘슈퍼 수컷’의 냄새를 풍기는 엽기적인 살인 행각을 벌이는 부부들이다. 그들은 인간 사회에서 금하는 거의 모든 강력 범죄들에 연루되어 있다. 유괴, 납치, 감금, 약취, 폭행 그리고 살인에 이르기까지 악의 전 부분을 고루 망라한다. <목화밭 엽기전>을 읽으면서 책장을 넘기는 것이 마치 납덩이를 매단 종잇장을 넘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박태자가 한 때 수학 과외를 맡았던 청담동에 살고, 참치 회를 즐겨 먹는 사내애를 잡아 가두면서 서사의 수레바퀴는 맹렬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얼결에 양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대치동 사는 어느 회계사를 두들겨 패고, 이 일로 인해 과천서의 오장근이라는 형사가 개입된다. 판돈이 점점 커지는 이야기 패가 돌려진다.

 

게다가 펫숍이라는 해괴한 곳을 운영하는 삼촌과 ‘뷰티풀 피플’의 (박태자의 약을 공급하는) 언니가 등장하면서, 텔레비전의 삼류 드라마는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복잡한 이야기 구성도 빠지지 않는다. 이들의 기묘한 관계를 통해, 백민석 작가가 그리려고 했던 권력에 대한 복종과 추구에 대한 희열들이 나열된다.

 

특히 작가가 공을 들여 리서치를 했을 것으로 보이는 동물원 묘사 부분은 마치 현장을 둘러보는 것과 같은 정도의 리얼리티를 재현해냈다. 동물원에 사는 여러 동물 중에서 특히나 수컷의 냄새를 진하게 풍기는 ‘만드릴 육식 원숭이’의 에피소드는 <목화밭 엽기전>의 남자 주인공 한창림의 이미지와 중첩되고 있었다. 그는 자신보다 엇비슷하거나 열등한 수컷들에 대해서는 폭력적인 성향을 들어내지만, 펫숍의 삼촌과 같이 도저히 그 권위에 도전할 수 없을 것 같은 캐릭터에 대해서는 꼬리를 말아 버린다. “치사하다”라는 말로 자신의 부족한 권력을 에둘러 표현하기도 한다.

 

한창림 부부가 벌이는 일상의 패악들은 펫숍의 프로들이 진행하는 방식에 비하면 아마추어의 그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 역시 삼촌이 부리는 장기판의 말들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지만,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패악일 뿐이다. 아니 그들이 진정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알았을까.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서울랜드와 동물원은 주인공 한창림의 본질에 대한 상징처럼 다가온다. 여러 개의 테마로 나누어진 서울랜드 테마공원 중에서 “모험의 세계”는 사회의 테두리 밖에서 태연하게 금지된 범죄를 저지르는 한창림의 욕망이 놀이기구에 올라탄 사람들이 내지르는 비명과 기묘한 동조를 이룬다. 각양각색의 동물이 우리에 갇혀 있는 동물원은 말할 것도 없이, 아이들을 지하 감옥에 가두고 길들이려는 그의 어두운 욕망으로 대치된다.

 

백민석 작가는 공포와 분노 그리고 긴장감 같은 분노의 감정들을 후각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그리고 보니 비슷한 시기에 읽은 편혜영 작가의 <아오이 가든>에서도 느꼈었는데, 공포는 이제 시각과 청각뿐만 후각의 영역까지 아우르고 있었다. 이 점이 참 특이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아주 재밌게 봤던 미국 폭스 텔레비전의 <덱스터> 시리즈가 생각났다. 연쇄살인법인 주인공 덱스터는 법의 테두리 밖에서 교묘하게 악을 저지르는 악당들을 수술(!!!)해 버린다. 하지만 <목화밭 엽기전>의 주인공들인 한창림과 박태자의 목적과 동기는 모호하다. 단지 상상 속의 목화밭에 거름을 주기 위해? 그것도 아니라면 펫숍 삼촌의 도착적인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서였을까?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정리되지 않은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unsun09 2017-12-30 1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도 복 많이 받으시고, 올 한 해 다양한 책 많이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년도 부탁드려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