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드디어 알렉산더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를 입수했다. 알라딘에서 책 좀 읽는다 하는 선수들이라면 아마 안사고 못 배길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들었다. 게다가 1,500부 한정판이라고 하니 이번에 사지 않는다면 또 수십년을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라는 조바심이 무수한 고민 끝에 구매 클릭질을 하게 만들었다.

 

 

우선 넉넉하게 쌓인 적립금에 지난달엔가 전화설문으로 받은 갤럽에서 준 모바일문화상품권 그리고 네이버페이를 이용해서 내 돈을 하나도 쓰지 않고 마련했다는 데 큰 의의를 두고 싶다. 예전에 볼라뇨의 <2666> 때도 그랬지만, 따끈따끈할 때 사자고 해서 사들였지만 메타픽션 <2666>은 여전히 완독하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 권을 끝내고 세 권까지 들어갔지만 아직도 먼 볼라뇨. 게다가 그 때도 그랬지만 박스 세트 포장을 왜 이렇게 빡빡하게 하셨는지 무턱대고 꺼내고 그러다간 상할까봐 얼매나 조심했는지 모르겠다.

 

 

위키피디아에서 솔제니친의 걸작 <수용소군도>를 검색해 보니, 수용소군도라는 제목은 구소련 특히 스탈린이 러시아 인민들을 통치하던 자신에게 반대하는 인민들을 강압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소련 곳곳에 만든 수용소들이 군도처럼 퍼져 있는 상황을 지칭한다고 한다. 예전 홀로코스트를 기록한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처럼 솔제니친도 수용소군도의 실제 수용자로서 소련 수용소의 실상, 유래와 연원을 육성으로 기록했다. 물론 공산당 독재시절에는 엄격하게 금서로 지목되어 소련 내에서 출간이 불가능했지만 소련방이 무너지고 난 뒤에는 러시아 고등학교에서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가 되었다고 한다. 시절이 바뀌면, 문학에 대한 평가도 바뀌게 되는 모양이다.

 

 

사실 내가 이 세트를 사기 전에 망설인 것은 과연 내가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 것인가. 또 사두기만 하고 장식용으로 전락하는 건 아닌가에 대한 고민이 문제였다. 작심하고 읽지 않는다면 자그마치 2,700여쪽에 달하는 기록문학을 다 읽을 수 있을까. 혹시라도 무모한 도전에 나섰다가 심각한 독서 슬럼프에 빠지기라도 한다면 하는 걱정과 우려가 그야말로 폭풍처럼 밀려들었다. 하지만 알라딘 이웃분들의 구매후기가 속속 올라 오면서 이러다가 품절이라도 되면, 살 기회조차 없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에 속이 닿기 시작했다. 이 속물 같은 인간아.

 


아니 그런데 많은 분들이 지적해 주신 대로 양장본이 아니지. 원래 열린책들은 양장본으로 유명한 회사가 아니었던가. 그 점이 좀 아쉽다. 그러니까 정가 기준으로 보면, 권당 만원꼴인 셈이다. 아마 6만원이 넘어가게 되면 사람들의 심리적 저항감이 불길처럼 솟아오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권당 만원 정도면 적당할 거라고 생각했던게 아닐까. 어쨌거나 원래 모양대로 출간이 돼서 반갑긴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박스는 읽다가 바로 책을 집어넣어 두지 않으면 바로 쭈그러 들거나 그러는 게 아닌가 걱정이다. 볼라뇨의 <2666>은 나중에 한참 책을 빼두었다가 박스에 넣으려니 들어가지 않아서 거의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좀 걱정이다.

 

 

어쨌든 1권을 박스에서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솔제니친의 서문과 수용소 군도로 가게 되는 첫 단계인 체포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를 끌었다. 올해 읽은 줄리언 반스의 <시대의 소음>에서 소련의 위대한 붉은 베토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도 그런 불시의 체포에 대해 항상 불안해 하지 않았던가. 언제나 우리에게 던져지는 공포가 그렇듯, 인간 영혼을 잠식하는 상시된 불안이 음습하게 그림자를 드러낸다. 나치 시절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이 무력하게 친위대원들에게 끌려갔던 것처럼 대다수의 수용소 희생자들은 특별한 반항 없이 기관에게 체포되어 사회에서 격리되어졌다. 체포에 대한 과학적 연구까지 시도된 것으로 보아 스탈린 시절 어마무시한 공포통치가 이루어졌는지 잠시나마 추체험할 수가 있었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는데, 일단 시작은 했지만 과연 완독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 지는 모르겠다. 다른 책들은 아예 읽지 않고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에 매달리는 게 최고의 선택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봤다. 차라리 조금씩이라도 꾸준하게 매일 읽는 게 질리지 않고 완독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읽기 시작했으면서도 여전히 완독에 실패할 거라는 불안감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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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12-14 1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매를 축하합니다.
저도 적립금이 두둑했더라면 질렀을 겁니다.
그런데 적립금이 없다는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습니다.
기념비적인 기록문학이란 점에서 갖고 싶긴한데
저도 같은 이유에서 망설여지기도 하네요.
잔인한 거 보면 우울해져서 읽다 중단할지도 모르고.
인연이 되면 읽게 되겠죠.

낱권으로 팔거나 다른 서점도 팔면 좋을 텐데...ㅠ

레삭매냐 2017-12-14 20:19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두둑한 적립금이 지름신을 유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온전하게 돈을 들여서 사라 그랬다면 고민
이 더 깊어지지 않았을까요...

그나저나 많은 분들이 지적해 주신 대로
박스와 양장이 좀 아쉽네요. 박스는 책을
우겨 넣다시피 해야 하거든요.

겨울은 나고 읽어야 하지 않을까요?
좀 재밌는 책이 읽고 싶은데 이렇게 추운
한겨울에는 좀 어울리지 않는 그런 느낌.

cyrus 2017-12-15 2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양장본이 아니라서 아쉽군요. 이러면 도서관 소장용으로는 빵점이에요. 저 책들, 몇 개월 지나면 표지가 구겨지고 찢어져 있을 거예요. 도서관 이용자들이 《수용소 군도》를 얼마나 읽을지 예상하기 어렵지만, 어차피 도서관 책은 더려워지게 되어 있어요.. ^^;;

레삭매냐 2017-12-15 23:13   좋아요 0 | URL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도 내책처럼 깨끗
하게 봤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봐서 닳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낙서 등등 너무 하는 것 같더라
구요.

양장본이 아니더라도 도서관에서 도서
용 테이핑을 해서 보존에 신경을 쓰긴
하더군요.

2017-12-16 0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6 1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