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박한 공기 속으로
존 크라카우어 지음, 김훈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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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간들은 그렇게 무모한 행위에 돈과 열정 그리고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일까?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할 때도 있다. 매일매일의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어제 헌책방에서 사서 읽기 시작한 존 크라카우어의 <희박한 공기 속으로>에는 에버레스트, 이하부터는 ‘하늘의 여신’이라는 뜻의 네팔 어인 사가르마타라고 부르겠다(티베트 어로는 초모룽마), 도전한 이들의 고난에 찬 역정을 그리고 있다. 사실 위대한 승리라고 부르기에는 정상정복에 나섰던 이들의 참혹한 죽음 때문에 비극 혹은 재난에 가까운 사건이었지만 말이다.

 

역설적으로 미국 출신으로 탐험 전문잡지인 <아웃사이드>의 의뢰를 받고 사가르마타 등반에 나선 상업적 등반대 취재를 해야 했던 작가 존 크라카우어는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젊은 시절 무모한 등반을 하던 열정이 되살아나 자신도 로브 홀이 이끄는 어드벤처 컨설턴츠 등반대(8명으로 '고객'으로 구성되었다)의 일원으로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사가르마타(8,848m) 등반에 나서게 된다. 넌픽션 <희박한 공기 속으로>는 재난이 시작된 1996년 5월 10일 사가르마타 등반에 성공한 시점에서 시작된다. 가장 영광된 바로 그 순간에 참혹한 비극이 발생한 것이다.

 

도대체 사가르마타에 도전하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전에 앞서 작가는 사가르마타에 도전한 조리 리 맬로이나 힐러리 경 혹은 라인홀트 메스너 같이 이제는 신화가 된 영웅적인 인물들에 대한 역사에서부터 시작한다. 사가르마타가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이래로 거의 한 세기에 걸친 도전 끝에 사가르마타는 인간의 발자국을 정상에 허락했다. 소위 전문적으로 산악 등반에 숙련된 엘리트 산악인들만이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해 왔던 사가르마타 등반이 1985년 데이비드 브리셔즈라는 전문산악인의 도움으로 산악 경험이라고는 일천한 텍사스 출신 부자 딕 배스가 정상 정복에 성공하면서 상업화로 치닫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돈으로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다는 천박한 자본주의 시스템에 그동안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라고 알려졌던 영국인들이 개발한 등반이라는 스포츠에까지 침투한 것이다. 배금주의가 만연한 시대에 색다를 것도 없는 일이 되어 버렸지만, 신성한 사가르마타가 그런 상업주의에 물드는 것에 저자는 상당히 비판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저자 역시 1996년 당시 65,000달러라는 거금을 내고 로브 홀의 등반대의 일원이 되긴 했지만 말이다.

 

넌픽션에는 참으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서 앞으로 벌어진 비극의 전주곡에 가담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캘리포니아 출신 거부인 샌디 힐 피트먼의 기행은 정말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그녀는 미국인 여성으로 7대륙에서 가장 높은 곳에 등반한 세븐 서미트 클럽에 가입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사가르마타 등반에 도전했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산악인들과 달리 뉴욕 사교계의 여왕 피트먼은 그녀가 속한 마운틴 매드니스 등반대의 대장 스콧 피셔가 반드시 등반에 성공시켜야 하는 그런 인물이었다. 그녀가 언제나 몰고 다니는 화제성과 홍보효과는 피셔의 사업에 꼭 필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에서 피셔는 저자 존 크라카우어를 자신의 등반대에 참여시키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로브 홀이 제시했던 것 같은 유력한 조건은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라이벌 팀에게 세기의 기록이 될 기회를 빼앗기고 말았다. 다시 한 번 극한에 도전하는 등반이 상업화되면서 발생한 부작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어드벤처 컨설턴츠의 대표 로브 홀의 치밀한 계획에도 불구하고 사가르마타는 자신의 영지에 발을 들여 놓은 외지인들에게 정상을 쉽사리 내어 주지 않을 계획이었던 모양이다. 로브 홀이 그렇게 피하고자 했던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서 발생한 치명적 병목현상 때문에 수시간이 지체되면서, 등반대원들은 불필요하게 추위와 강풍에 노출되고 말았다. 게다가 그 좋았던 날씨에 갑작스럽게 발생한 강풍으로 비극은 시작되었다. 그전에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하산한 이들은 비교적 안전했지만, 일분일초를 다투는 험난한 하산 과정에서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평소 같았다면, 냉철한 판단력으로 고객들의 안전을 생각했을 로브 홀이 어째서 무리하게 정상 등반을 강행했는지 의문이다. 마운틴 매드니스의 스콧 피셔와의 경쟁도 한몫하지 않았을까라고 저자는 추정한다.

 

정상정복이 반환점이었다면, 하산은 그보다 더 어려운 과정이었다. 갑자기 불어 닥친 강풍으로 정상적인 하산은 극도로 어려웠으며 시계마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엄청난 강추위 속에서 밤을 보낼 판이었다. 결국 크라카우어 팀은 등반대장인 로브 홀, 가이드 앤디 해리스, 일본 출신 남바 야스코를 잃었다. 그 시즌에만 모두 12명이 희생되었는데, 가히 재난이라고 할 만한 사태였다. 저자는 특히 앤디 해리스를 잃은 점에 대해 좌절했는데, 유능한 가이드라고 하더라도 이상 징후가 보였을 때 자신이 나서서 챙겼어야 했노라고 후언하고 있다. 그 외에도 고산등정에 반드시 필요한 산소통 확보 문제를 비롯해서, 정상정복을 위한 고정밧줄 설치를 위한 셰르파들의 협력문제, 통신장비 등의 문제가 겹치면서 다수의 희생자들이 발생했다. 특히 남아프리카 원정대의 거의 사기꾼에 가까운 리더 이안 우달의 이기적인 모습은 최악이었다. 비극의 전조였던 타이완 원정대의 마칼루 고의 행동도 이해할 수 없긴 마찬가지였고.

 

존 크라카우어가 남긴 기록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왜 그렇게 사람들이 다른 곳도 아닌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사가르마타에 집착하는지 생각해 보게 됐다. 그들은 단순히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에 도전하고 싶은 수많은 월터 미티들의 분신이었을까? 정상에 오르는 것도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었지만, 자신의 한계를 파악하고 그 앞에서 회군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용기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순간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상에 올라야 한다는 욕망은 어쩌면 죽음에 상응하는 악마의 유혹이 아니었을까. 또 다른 문제는 상업팀들에 소속된 동료들은 말로만 동료였지,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신의 안위가 가장 우선이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무조건 도와야 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언제라도 등반을 자발적으로 포기할 수 있었으며 타인의 불행보다 나의 등반이, 정상공격이 우선이었다. 죽어가는 라다크 사람들을 보면서도 해발 8,000m에서는 해수면의 도덕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표현으로 조난자들을 보고서 그대로 지나쳐간 일본 원정대의 경우가 그랬다. 과연 그런 상황에서 나라면 어땠을까? 그들을 비난할 수 있었을까 싶다.

 

어쨌든 그들은 사가르마타에서 죽었고, 존 크라카우어와 다른 이들은 살아남았다. 위키피디아를 검색해 보니 엉터리 등반가 마칼루 고는 치명적인 동상으로 폐인이 되었다. 어떤 산악인들은 기록을 남긴 크라카우어가 먼저 하산해서 다른 이들을 돕지 않고, 텐트에서 잠을 잤다고 비난했다. 유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떤 이들은 비극을 털어 일어섰지만, 저자는 미국으로 돌아 와서도 상당 기간 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했다. 우리네 삶에 정답이 없듯이, 1996년의 사가르마타 재난에 대한 평가도 정답이 없는 것 같다. 크라카우어가 세심하게 공을 들여 작성한 재난 보고서는 한 편의 드라마다. 샌디 피트먼이나 이안 우달 같은 악당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자신의 안위 따위는 내팽긴 채 타인을 돕겠다고 나선 영웅들, 자기도 숨 쉬기가 어려운 마당에 자신의 소중한 산소통을 타인에게 양보하는 미담이 등장하기도 한다. 또 한 편으로는 스스로 그런 재난을 자처하지 않는 보통 사람의 안도감도 섞여 있다. 2년 전에 나온 <에버레스트>는 1996년 사가르마타의 비극을 영상화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런 시도를 한 제작자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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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1 10: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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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1 10: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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