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
폴 비티 지음, 이나경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지난 달 가즈오 이시구로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소장하고 있는 그의 책들을 모두 읽었다. 없는 책들은 도서관에 가서 빌려다 읽었다. 이시구로 선생의 모든 책들이 기존에 국내에 출간되어 있는 덕분에 놀라울 정도의 매출신장에 출판사는 기쁨에 찬 비명을 질렀을리라. 그리고 얼마 뒤, 맨부커상이 발표되었는데 우리에게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그리고 많은 책들이 발표되지 않은 작가들의 작가 조지 손더스가 수상했다. 게다가 그 수상작은 아직 번역 중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반응이 시큰둥할 수밖에. 아마 그리고 <바르도의 링컨>은 진입장벽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작년 맨부커 수상작인 폴 비티의 <배반> 역시 마찬가지다. 다 읽는데 한 보름 정도가 걸린 것 같다. 물론 그 동안 다른 책들에 외도를 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미국 흑인 민권운동의 역사를 관통하면서 남부 캘리포니아의 정서를 한가득 담은 니거 위스퍼러(흑인을 잘 다루는 조련사) 미(Mee)의 인종차별에 대한 역발상으로 범죄의 온상인 자신의 고향 디킨스 시를 구하겠다는 신념에 대한 이야기는 낯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 읽고 나니 성취감 하나는 끝내준다. 아, 나도 드디어 맨부커상 수상작을 읽었어라는. 그동안 수많은 맨부커 수상작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경험을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 다음으로 이언 매큐언의 <속죄>을 마저 읽으려고 가방에 넣어 두었다.

 

소설 <배반>은 주인공 미가 도널드 트럼프의 위대한 나라 미국 대법원에서 철폐된 노예 소유와 연방범죄에 해당하는 인종차별로 수정헌법 몇 개 조항(아무래도 우리나라도 아닌 미국법이다 보니 못 외우겠다)을 위반한 혐의로 항소심에 처해졌다. 형사범죄에 있어 능수능란한 변호사 햄프턴 피스크를 기용해서 자신의 변호에 나섰지만 미의 운명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촛불(candle in the wind by Elton John) 같은 신세다. 그런데 디킨스 출신 농부 니거라고 자처하는 미는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추상 같은 대법원 판사들 앞에 서게 된 것일까.

 

미국 흑인 민권운동의 역사를 꿰뚫고 있는 폴 비티는 어떤 방식으로도 해결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인종차별과 흑백통합이라는 미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해묵은 주제에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역발상으로 도전장을 날린다. 아무리 흑인 대통령이 출현했지만, 그것은 그 때 뿐이라는 것이다. 다음 주자가 반동적 트럼프라는 점이 시사하는 바는 익히 우리가 알고 있지 않은가. 이럴 바에야 차라리 적극적인 인종분리가 답이 아닐까라고 생각한 니거 위스퍼러 미는 인근 학교에서 실시한 진로의 날 행사를 통해 깨닫게 된다. 그러니까 거의 인구의 전부를 차지하는 지금은 지도상에서 사라져 버린 디킨스 시에서 백인들과의 일상을 배제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버스에서도, 그리고 학교에서도. 인종문제가 그 어느 문제보다 민감한 현안이 된 미국 사회에서 과연 이런 시도가 가능할까. 그래서일진 모르겠지만, 대머리 니거 위스퍼러 부근에 있는 이들은 그를 가차없이 셀아웃(sellout, 배신자)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발칙한 니거 미의 존재만으로도 소설은 버거워 해야 마땅할 텐데, 특이한 캐릭터 두 명을 더 추가한다. 예전에 한자락하던 <꼬마 악당들>에 출연하던 호미니 젠킨스라는 늙은 흑인이 자살하려던 장면을 목격한 미는 그를 죽음에서 구해낸다. 그랬더니만 이 노인네 흑인이 대뜸 미의 노예가 되겠다고 자청하지 않는가. 그가 기소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다. 수박과 닭튀김을 즐기는 흑인들에게 홈스쿨링 출신의 미는 또 하나의 쾌락을 선사하는데 그것은 바로 마리화나다. 직접 수경재배한 마리화나를 거룩한 대법원 법정에서 마구 피워대는 장면에서는 정말 할 말을 잃어 버렸다. 잠시 이야기가 세어 버렸는데, 다음 주자는 포이 체셔다. 이 파렴치한 남자는 미의 아버지 F.K. 미의 아이디어를 도용하고, 기존 명작들을 자신만의 패러디 기법으로 창작해서 거액을 벌어들이는 부자가 되었다. 그것도 잠시 뿐이었지만, 그는 주인공 미에게 총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소설 <배반>은 그야말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무공 같은 탄력을 자랑한다. 아무래도 미국 흑인사회 전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소설의 컨텐츠는 무지한 독자에게 부유하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십대 릭 루빈이 런디엠씨와 비스티 보이즈로 대표되는 랩 장르를 메이저 씬에 등극시켰다는 유용한 정보는 반가웠다. 폴 비티는 그리고 교육이야말로 인종 간의 장벽을 허물고, 계급 이슈를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응, 누가 그걸 모르냐고?)이라고 주구장창 썰을 풀어대고 있다. 어쨌든 내가 소설 <배반>을 읽으면서 결정적으로 느낀 핵심 주제는 미국 사회에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인종통합은 흑인들의 잿빛 피부를 탈색시켜서 흰색으로 만들지 않는 이제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이었다. 안되는 것을 억지로 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인종 어젠더를 다시 만들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지금 그 시대가 트럼프가 통치하는 시대라는 점이겠지만.

 

폴 비티가 구사하는 언어 유희와 현실과 가상의 교차된 직조 방식이 개인적으로 좀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말 그대로 작가는 ‘블랙 유머’의 원조처럼 보인다. 어찌나 그렇게 냉소적이던지. 곳곳에서 빵빵 터지는 빛나는 유머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작년에 사둔 원서를 대조해 보고 싶은 유혹을 강렬하게 느꼈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는 다른 책들 때문에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소설에서 가장 재밌었던 부분은 인근 채프 중학교에서 치른 진로의 날 행사에서 실라 클라크와 더불어 치른 송아지 거세 장면이었다.

 

지난 1996년부터 소설을 발표해온 폴 비티는 20년 동안 네 편의 장편소설을 썼다. 그 중에 맨 끝에 있는 <배반>이 맨부커상의 위업을 바탕으로 이번에 출간된 것이다. 그런데 진입장벽이 생각보다 높았다. 미국 사회에 노골적이고 만연한 인종차별을 직접 체험하지 못해본 독자의 피상적 인식, 남부 캘리포니아 흑인 서브컬처에 대한 낯설음(수많은 지명이 주는 내면의 디테일을 알 도리가 없다) 그리고 복잡하기 짝이 없는 미국 사법제도에 대한 이해부족을 그 이유로 꼽고 싶다. 다른 책들은 또 어떨까? 개인적으로 데뷔작인 <화이트 보이 셔플>에 관심이 간다. 악전고투 끝에 다 읽고 나니, 성취감에 그저 황홀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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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 2017-11-02 1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 읽지 않은 책이지만 일고 싶은 충동을 자극한다

레삭매냐 2017-11-02 13:43   좋아요 0 | URL
극단적 냉소주의라는 양념이 아주 일품이랍니다.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sprenown 2017-11-02 1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언제 악전고투 끝에 다 읽고, 성취감에 황홀할 지경에 이를수 있을려나?^^

레삭매냐 2017-11-02 13:44   좋아요 0 | URL
한동안 맨부커상 수상작에 도전해 보겠다고
컬렉션과 독서를 병행했었는데 저랑 잘 맞지
않는 것 같더라구요.

그런데 이번 책은 나름 재밌게 읽어서 다시
한 번 도전의지를 불태워 보려구요 :>

얄라알라 2017-12-18 2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이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레삭매냐 2017-12-19 09:0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인데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