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여전히 맨부커상 수상에 빛나는 폴 비티의 작품 <The Sellout>이 국내에서 <배반>으로 번역된 이유를 알지 못한다. 아마도 무지한 독자의 짧은 영어 탓을 해야겠지.

 

오늘 이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질러 버렸다. 그렇다, 폴 비티의 신간은 알라딘 배송트럭을 타고 열심히 내게로 달려오고 있는 중이다.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어 혹시 이웃 반디서점에 깔렸나 싶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지만 천만에. 10월 26일에나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최소한 알라딘이 신간 서적의 수급에 있어 다른 서점을 압도한다는 방증이 아니겠는가.

 

방심하지 마시라. 여기에 또 맹점이 있나니. 그렇지만 MD의 게으름 탓인지 미리보기 싸비스는 제공되지 않는다. 그러니 독자 제현들은 책을 기다리라는 말인가. 난 그럴 수 없다고 선언하고 분연하게 키보드 자판을 박차고 미리보기를 제공하는 다른 온라인 서점 사이트를 찾았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자백하자면 난 지난 3월에 전세계 무료 배송을 한다는 북디파지토리를 통해 폴 비티의 <셀아웃> 원서를 수중에 넣었다. 묵직한 하드커버로. 다만 288쪽에 달하는 그의 책을 원서로 읽을 능력이 되지 않아 첫 페이지들을 읽다가 묵혀 두었다. 우리말도 아닌 영어로 읽느라 용을 쓸 필요가 없었다고 했던가. 그리고 번역이 되어 나오길 기다렸다. 뭐 맨부커상도 받은 작가라고 하니 언젠가 번역이 되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서 말이다. 그리고 이제야 내 바람이 완성되었다.

 

주인공 Me가 미국 대법원 상고심에 소환되었다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소설 <배반>은 출판사 책소개에 등장하듯이 한때 인종의 도가니라 불렸던 미국에서 여전히 없어지지 않고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인종차별을 역설적으로 패러디한 그런 작품이다. 궁금한 것이 과연 백인 작가들이 이렇게 신랄한 소설을 써낼 수 있을까하는 점이다. 지난 번 독서모임에서 마침 막 읽었던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를 읽고 있다는 미국 친구에게 물었듯이, 어떤 내용을 써도 모두에게 욕을 먹을 수 밖에 없다고 했던가. 인종차별을 반대해도, 그리고 찬성해도 어차피 욕 먹긴 마찬가지라는 게 아닌가.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런 걸 각오해서인지 폴 비티는 욕받이 무녀가 될 각오를 단디 하고 <배반>에 도전한 게 아닐까. 첫 18페이지를 읽으면서 이거 물건이구나 싶었다. 비슷한 인종차별이라는 소재로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를 발표한 콜슨 화이트헤드가 전통에 입각한 내러티브 전개를 구사한다면, 폴 비티는 그 대척점에 서서 인종차별 문제를 저격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악명 높은 투 라이브 크루가 등장하는 장면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주석에 충실하게 그들이 불러서 법정 소송까지 갔다는 <프리티 우먼>을 유투브를 통해 듣기도 했다. 아, 이런 노래도 있었구나.

 


어쨌든 어젯밤에 존 맥그리거의 책을 다 읽고 나서 허탈해 하던 차에, 이렇게 따끈따끈한 책을 바로 만나게 되다니 역시 책과 만나게 되는 운명은 정해져 있는 모양이다. 진격의 독서에 오늘밤부터 돌입할 예정이다. 기다리시게나 폴 비티 양반!

 

[뱀다리] 그의 첫 번째 작품 <화이트 보이 셔플>도 대단히 궁금하다. 아마 역시나 특유의 패러디 조롱조의 구조 때문에 점잖은 독자들이 다수 포진한 국내 반응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배반>이 맨부커상의 위상을 뒤엎고 부디 선전해서 폴 비티 씨의 다른 책들도 번역으로 만나보게 될 수 있으면 참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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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0-18 18: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 좋아하는 사람들 빼고는 올해 맨부커상에 대한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줄어든 것 같아요. 작년에 한강 효과가 컸습니다. ^^;;

레삭매냐 2017-10-18 18:13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그리고 사실 한강 씨가 받은 상은
맨부커 본상이 아니라 인터내셔널이라 상대
적으로 위상이 좀 약한 것도 사실이죠.

결정적으로 제가 지금까지 봐온 맨부커상 수
상작들은 대개 재미가 없었습니다 !!!

게다가 작가들도 생소하니 더더욱 그랬었죠.

그래서 우리나라 대중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올해는 또 어떤 작가가 수상을 하게
될지 자못 궁금하네요.

앗, 지금 확인해 보니 바로 발표가 났네요.
바로 작가들의 작가라는 조지 손더스 ~

장편소설 단 한 편으로 맨부커상을 먹었네요.
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