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세계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살림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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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아들 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표어에 익숙한 세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가 되었고 그 뒤에는 사실 잘 모르겠다. 이제 젊은 세대들은 애도 낳지 않게 된 모양이다. 그래서 정부는 인구절벽이 가까워져 온다며 호들갑을 떨며 엄청난 규모의 예산을 저출산 대책을 세운답시고 쏟아 부었지만, 출생인구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는 중이다. 언제는 인구폭발 때문에 철저하게 산아제한을 해야 한다며 난리를 칠 적은 언제고 지금은 ‘다둥이 출산이 애국이다’라며 출산을 장려하는 쪽으로 전환됐다. 그런다고 해서 저출산 문제가 해결될 리가 없는데, 정부는 근본적인 문제에 관심이 전혀 없어 보인다.

 

그보다 먼저 아이를 낳기 위한 최적의 환경이 마련되어 있는지 묻고 싶다. 살인적인 주거비, 점점 인간의 노동력이 필요 없어지는 세상, 천문학적 사교육비 그리고 어린이집과 유치원 보내기 같은 보육문제 등등. 살기 좋은 사회라면 애를 낳지 말라고 뜯어 말려도 애를 낳으려고 하지 않을까. 저출산 이슈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언제나처럼 사설이 길었다. <편의점 인간>(아직 읽지 못했다)으로 이름을 알린 일본 출신 작가 무라야 사야카의 <소멸세계>를 읽으면서 우리 사회에 대해 사유할 수가 있었다. 소설의 주인공 사카구치 아마네는 부모가 ‘교미’해서 태어난 별종인간이다. 미래 가상의 공간 일본에서는 전통적 가족 개념이 붕괴된지 오래다. 결혼해서 섹스하고,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거쳐 아이가 태어난다는 전통은 이제 부부관계를 근친상간이라며 비하하는 그런 시대가 되었다. 아이들은 죄다 인공수정을 통해 ‘생산’된다. 사랑과 성욕은 가족 바깥에서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남편과 아내는 모두 각각의 애인들을 가지고 있다. 어때 상상이 가는가?

 

이미 태생부터 인공수정이 아닌 교미를 통해 태어난 아마네는 첫 번째 결혼에서 실패하고 단체 미팅을 통해 두 번째 남편과 만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물리적 관계라고 수 있는 섹스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신인류와 달리 아마네는 만나는 애인들과 반드시 관계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예전 가족제도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아마네의 엄마는 그것을 아마네에 대한 저주라고 명명한다.

 

연인의 자살시도에 충격을 받은 남편 아마미야 사쿠와 역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인연으로 만나게 되어 육체관계까지 맺게 연인 미즈토와의 관계가 붕괴되면서 아마네와 사쿠 부부는 신인류에 대한 실험이 시행되고 있는 지바로 이주를 결심한다. 인공수정으로 ‘생산’된 아가들이 보편 인류의 모습이라는 실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남편 사쿠의 생각과는 달리, 아마네는 그렇게 태어난 아가들이 인공사육되는 애완동물들과 무엇이 다르냐며 경악한다. 자궁이 없는 남자도 아이를 낳을 수 있게 인공자궁을 매달고 무사히 출산에 성공한 사쿠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하며 작가는 과연 우리 인류는 어떤 식으로 앞으로 진화하게 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 일부일처제의 가족 시스템은 현대 자본주의의 부산물이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현재 노동을 제공하는 역할을 가장에게 맡기고, 미래의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한 일꾼인 아이들의 육아부담과 가사노동을 여성에게 지우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 바로 지금의 결혼제도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 자본이 자본을 낳는 무한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가장은 쉼 없이 돈벌이에 매진해야 하며,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 다시 말해 재생산은 모두 개인에게 떠넘기는 작금의 결혼제도야말로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주장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런 구태의연한 결혼제도에 무라야 사야카 작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남녀 간의 사적 결합인 결혼제도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기존 가족제도의 해체를 통해 도대체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이냐는 가치판단 기준을 허문다. 모든 이들이 비슷한 시기에 고통 없이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가지고, 비슷한 시기에 출산해서 공동육아에 나서는 모습은 마치 붕어빵틀에서 붕어빵을 찍어내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물론 모든 아이들을 자신의 아이 나아가 인류의 아이라고 생각하며 공동육아하는 장면은 조금 이해가 됐지만, 그런 반방식으로 몰개성한 아이들을 생산해내는 것은 두렵기까지 했다. 하긴 우리의 오랜 선조가 우리가 시행하고 있는 현재의 결혼제도를 보면 또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니 소설 <소멸세계>에서 무라야 사야카 작가가 그리는 대로 우리 인류가 앞으로 진화하지 않는다는 그리고 남자가 애를 낳는 시대가 오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은가.

 

문득 소설의 어디선가 읽은 과연 ‘사랑이 고통이라는 발작의 공유’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아마네는 ‘바깥 세상’에 존재하는 라피스 같은 인간이 아닌 존재와도 사랑에 빠지곤 한다. 아마네는 인간을 포함한 40여명에 달하는 무생물 애인들을 파우치에 넣어 다니며 상호간에 이루어지는 사랑이 아닌 일방통행식 사랑 그리고 신도시 지바로 이사해서는 ‘클린 룸’에서 욕망을 해소하곤 했다. 사랑이라는 감정마저 일회용이 되어 버리는 마당에 그 다음 단계에 이루어지는 결혼과 출산 같은 가치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지 않을까. 난 여전히 다가올 미래가 디스토피아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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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7-08-21 2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덕분에 <편의점 인간>까지 섭렵하며, 도대체 작가는 어떻게 이런 비타협적인 전복을 상상해낼까 신기했어요

레삭매냐 2017-08-22 08:56   좋아요 0 | URL
전 아직 <편의점인간> 읽어 보지 않았는데
이번 가을에 한 번 도전해 봐야겠습니다 :>

어떤 전복이 또 담겨 있을지 궁금하네요.

2017-08-21 2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22 0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