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 문화재의 세계사 2 - 빼앗긴 세계문화유산 약탈 문화재의 세계사 2
김경임 지음 / 홍익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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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 문화재로 돌아본 세계사 시리즈의 두 번째 권은 <빼앗긴 세계 문화유산>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문화유산은 단순히 문화재로서의 가치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물론 사회의 모든 것들이 금전적 가치로 환산되는 자본주의 시대에 이상적인 이야기처럼 들릴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두 번째 권에서 가장 관심을 가지고 읽은 파르테논 마블이나 우리나라의 <몽유도원도>의 경우라면 또 어떨까.

 

세상에 너무 잘 알려진, 파르테논 마블은 한 때 엘긴 마블이라고도 불렸다. 하지만,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에서 멀쩡한 부조들을 대영박물관으로 불법 반출한 인물의 이름을 따서 부르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부르는 대신, 파르테논 마블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오스만 투르크가 그리스를 지배하던 시절, 터키 대사로 임명된 영국의 토마스 브루스 엘긴 백작은 터키 정부의 파르테논 마블 반출 허가장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신전이 건립된 기원전 5세기 이래 가장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부조와 조각품들을 뜯어서 영국으로 실어갔다. 파산 위기에 몰린 엘긴 백작은 영국 정부에게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파르테논 마블을 일괄 판매했고, 고대 그리스의 소중한 유물들은 그후 정부가 관리하는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었다.

 

훗날 오스만 투르크로부터 서방의 지원을 받아 독립을 쟁취한 그리스는 자기 민족의 핵심문화 유산인 파르테논 마블의 반환을 줄기차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파르테논 마블의 반환 이슈는 단순한 문화재의 반환에 그칠 문제가 아니었다. 원래 문화유적은 원적지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비등하는 여론과 대의명분에 힘입어 그 어느 때보다 힘을 얻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마블을 소장하고 있는 영국 측은 마블이 그리스 민족의 문화 유산이라기 보다 세계유산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하면서, 소장과 관리에 있어 자신들이 훨씬 유능하다는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배우 조지 클루니의 배우자이자 국제법 변호사로도 저명한 아말 알라무딘 클루니는 외교적 방법으로는 도저히 파르테논 마블의 반환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국제법에 호소하는 방식을 제안했지만 그리스 정부는 종래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중이다. 만약 파르테논 마블이 그리스의 주장 대로 모국으로 반환되게 된다면, 국제 약탈 문화재 반환역사의 한 축을 기록할 만한 일이 될 것이다.

 

조선 최고 명군 세종의 아들로 자신 역시 문인이자 예술가였던 안평대군의 꿈을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는 우리나라에 없다. 우리 회화 역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지만, 수양대군이 일으킨 쿠데타로 역적으로 몰린 안평대군이 죽으면서 <몽유도원도> 역시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러다 1929년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나게 되었는데, 이미 일본 정부는 해당 걸작에 대한 존재를 알고 있었으며 가고시마 사쓰마 번 시마즈 가문에 비장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1893년 일본 정부가 발행한 감사증으로 미루어 볼 때, <몽유도원도>는 일제강점기가 아니라 그 전에 일본으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할 수가 있다. 그보다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출병했던 시마즈 가문의 내력을 살펴 볼 때, 전시 약탈했을 가능성이 더 커보인다. 물론 이에 대한 어떤 기록도 없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유입이 되었을 가능성도 부인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몽유도원도>의 소재가 알려진 뒤인 20년 뒤, 한국전쟁에 즈음해서 우리나라는 다시 한 번 국보급의 문화재를 회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소유자가 어마어마한 거금을 불러 매입에 실패했다는 설이 있었다. 1950년 일본에서 새로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국보에 해당하는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상황과 현재 시가 10억 달러를 상회하는 가격 때문에라도 <몽유도원도>의 환수는 어려워 보인다. <몽유도원도>를 근거 없이 약탈 문화재로 간주하고, 반환 운동을 벌이는 방법은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저자는 냉정하게 지적한다. 일본에 강탈당한 문화재가 자그마치 7만 여점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적극적인 반환 운동만으로 복잡하게 꼬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프랑스 파리와 로마에 있는 이집트에서 약탈해온 오벨리스크의 경우는 또 어떤가. 본국에서 신성시되던 기념물이었지만 동시에 피정복국가 로마에게는 정복을 상징하는 기념물로서 그만한 전리품도 없었을 것이다. 자그마치 2,000년 전에 약탈한 문화재를 본국으로 돌려주어야 하는 걸까? 이천년이라는 시간은 고향을 떠난 오벨리스크가 새로운 곳의 문화재가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을까라는 복잡한 질문이 떠오른다. 파시스트 무솔리니가 지난 세기에 에티오피아를 무력으로 정복하고 새로 들여온 악숨의 오벨리스크는 또다른 문제였던 모양이다. 에티오피아 문화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오벨리스크의 반환을 위해 에피오피아 국민들은 일치단결해서 자그마치 반세기에 가까운 투쟁을 벌였고, 마침내 에피오피아에서 약탈되었던 오벨리스크는 이탈리아가 지불한 770만 달러의 비용으로 원적지 악숨에 안치되었다. 시간이나 비용 모두 이 정도면 역대급이 아닐까.

 

고대 유대인이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했던 모세의 십계명이 담긴 언약궤 혹은 메노라(촛대) 역시 이슈 거리가 아닐 수 없다. 수차례 건축과 재건 그리고 파괴를 거치는 와중에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는 언약궤의 향방은 영화 <레이더스>에서 해리슨 포드가 열연했던 인디애너 존스 박사의 활약으로 이미 확인한 바가 있지 않은가. 언약궤가 일본에까지 흘러 들어갔다는 낭설은 도저히 믿을 수 없지만 그 정도로 파괴력이 강한 유물이라는 방증이 아닐까. 지금이라도 유대인들의 신성한 유물이 발견되게 된다면 그 귀속여부가 어떻게 진행될지 너무나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가 50년만에 어렵게 되찾아온 그리스 고대청동투구가 서구 유물로는 유일하게 우리나라의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그리스가 투구의 반환을 요구한다면 우리나라는 그리스의 반환 요구를 과연 흔쾌히 들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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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7-23 1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의 마지막 문장은 ‘손기정 투구 딜레마‘네요. 저는 그동안 외국에 나간 국내 문화재 반환만 생각하고 있었지 국내에 있는 외국 문화재가 반환 대상이 될 거라 생각하지 못했어요.

레삭매냐 2017-07-24 00:06   좋아요 0 | URL
우리 문화재의 반환 요구에 앞서 우리가
가진 타국의 문화재 부터 반환하는 것이
가진 상징성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수 있다면 신의 한수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