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입은 옷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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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인 6월 30일날 도서관에 들렀다가 우연히 줌파 라히리의 책 <책이 입은 옷>을 빌렸다. 그리고 3주 동안 읽지 않고 있다가 오늘 새벽 12시까 땡!~하고서야 비로서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왜냐고? 오늘까지 도서관에 책을 반납해서. 그리고 보니 빌려서도 조금 읽었던 것 같다. 완독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심심한 마음에. 그리고 분량도 아주 적어 보여서. 그런데 다른 책에 정신이 팔려 있다가 오늘 반납하기 전에 부랴부랴 읽었다. 어젯밤은 이번 여름 들어서 가장 더워서 잠 드는데 고생했다.

 

퓰리처상에 빛나는 작가 줌파 라히리의 삶은 영원한 이방인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 싶다. 영국 런던의 벵골인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가서 그곳에서 영미권 작가로 성장하고 성공한 그녀는 지금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어로 글쓰기에 도전하고 있다. 이 책은 이탈리아 말로 나온 두 번째 책이라고 한다. 속으로 그냥 잘하는 영어 글쓰기에 매진할 것이지 하는 시기심 어린 생각도 잠시 들었다. 그렇게 한가하게 이탈리아에서 지내면서 글쓰기를 할 수 있는 것도, 미국에서 작가로 성공해서 충분한 인세 수입 덕분이 아닐까 하는 지극히 현실적 생각도 잠깐 해봤다.

 

미국의 여느 청소년처럼 자라고 싶었던 작가가 지녔던 꿈의 바리케이드는 작가의 어머니였다. 미국에서도 그리고 어머니의 고향 콜카타에서도 줌파 라히리는 이방인이었다고 고백한다. 자신만의 고융한 정체성을 가지고 싶어하면서도 또 안락한 주류사회에 편입되고 싶어하는 청소년 시절에 대한 향수는 차라리 콜카타에서처럼 교복을 입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에까지 도달한다. 그리고 작가가 되어 책을 부지런히 내고 있는 지금 시점의 책의 표지 이야기라는 현실을 소환한다.

 

작가가 생산해낸 텍스트는 비로소 표지가 덧씌워져야 시장에 나와 고객을 맞이하게 된다. 작가는 책의 표지가 아닌 텍스트로 승부를 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표지 선택의 권한이 어느 정도 레벨의 작가가 아닌 이상 출판사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전문가들의 추천을 마다할 순 없겠지 아마. 그런데 과연 그렇게 만들어진 표지는 작가가 구상한 텍스트의 본질을 충실하게 구현하는 걸까? 줌파 라히리는 그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피력한다. 과연 책의 표지를 맡은 그래픽 디자이너는 과연 텍스트를 읽어 보기는 했을까? 그리고 번역되서 세계 각국에서 나오는 표지의 경우는 또 다르다. 자신의 벵골 출신(?) 작가라는 점에서 인도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코끼리 혹은 헤나 문신 같은 진부한 이미지도 싫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 국기로 대변되는 미국 작가라는 설정 또한 매한가지가 아니던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책이 하나의 상품이기 때문에 독자들의 선택, 다시 말해 팔리기 위해 출판사는 다양한 방식의 마케팅 전략을 책에 투영하는데 전력을 다한다. 작가의 몇 번째 책이라던가, 퓰리처상 수상에 빛나는이라는 멋진 수식어 혹은 미디어 서평 등등을 동원해서 책이 잘 팔리게 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작가는 과연 그런 것들이 텍스트의 본질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라는 점을 예리하게 짚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오래전 자신이 발가벗겨진 상태의 책을 만났던 도서관 책들을 읽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 시절 도서관 책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기 때문에 무조건 책을 읽어야만 그 책이 지닌 텍스트의 가치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백번 옳은 말씀이다. 나의 경우를 보더라도, 표지가 책 구매에 어떤 영향을 미치던가? 나는 단언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고르는 책들은 작가, 그 작가가 생산한 텍스트의 본질을 가르키고 있다. 뭐 그래도 표지 때문에 책을 산다는 이들의 심정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의 표지에 대해 이런 고민을 하는 줄 미처 몰랐다. 그리고 이런 소재를 가지고 글을 쓸 수도 있구나. 어쩌면 진지한 소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제 막 익힌 이탈리아어로 쓸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작가가 텍스트 생산이라는 자신의 고유 임무에 충실한다면, 독자 역시 그 작가가 생산한 텍스트의 소비 다시 말해 읽고 사유하기라는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면 그만이 아닐까. 뭐 그렇게 읽고 나서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삶에 적용시킬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줌파 라히리의 글을 읽으면서 되돌아 보니, 그녀의 책들은 몇 권 갖고 있지만 정작 열심히 읽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퓰리처상 수상작인 소설집 <축복받은 집>이 유일하구나. 이제 슬슬 집에 쟁여둔 줌파 라히리의 책을 좀 읽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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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엄마 2017-07-21 1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꽤 의미심장한 책이네요.
책 내용과 점수 차이는 무엇에서 생기는지 궁금해요.
줌파 라히리는 저랑 생각 결이 비슷해 항상 놀라워요.

레삭매냐 2017-07-21 13:43   좋아요 1 | URL
- 포인트 1. 왜 굳이 영어로도 충분히 좋은
글을 쓸 수 있는데 이탈리아 말로 글을 쓰
겠다고 하는 걸까.

- 포인트 2. 표지과 텍스트에 관한 에세이로
과연 책 한 권의 값을 하는가에 대한 저의
주관적인 평가입니다.

- 포인트3. 글에서 자신은 텍스트로 승부를
걸고 싶다며 발가 벗은 책을 옹호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퓰리처 수상작가라는 타이틀
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점 정도.

책한엄마 2017-07-21 13:50   좋아요 0 | URL
오!!@.@b
진짜 그렇네요.

2017-07-21 17: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21 1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