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단장 죽이기 1 - 현현하는 이데아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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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수의 스포를 포함하고 있으니 유의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한다. 나는 춘수 씨의 팬이 아니다. 그런데 춘수 씨의 책이 출간되면 어김없이, 꾸역꾸역 그렇게 읽게 된다. 어쩌면 21세기 한국에서 춘수 씨의 책은 단순하게 베스트셀러 문학 이상의 규정할 수 없는 이데아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장 최근작이었던 다자키 쓰쿠루는 무슨 내용이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나에게는 아주 늦게 도착한 <노르웨이의 숲>이 좀 더 와 닿았다고나 할까. 질풍노도의 전공투 세대였던 춘수 씨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세상일에 무심하게 되었나는 여전히 나의 관심사다. 어쩌면 그런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변증법적 과정을 거쳐 오늘의 춘수 씨가 있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히 열풍이라고 부를 수 있는 <기사단장 죽이기>가 도착했고, 열독에 빠졌다 나는.

 

출판사 광고를 보면 춘수 씨 문학의 집대성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오는데 책을 읽을수록 그 점에 동의하게 된다. 춘수 씨 문학에는 하나의 패턴이 있다. 주인공은 남자이고, 뭍 여성들에게 어필하는 규정할 수 없는 그런 매력을 가지고 있다. <노르웨이의 숲>의 젊은 와타나베처럼. 춘수 씨는 자기 소설의 메인 캐릭터 설정에 엄청난 공을 들이고 있음을 이번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도 볼 수 있다. 소설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 나는 미대에서 추상화를 전공했지만 생계를 위해 “사회의 기둥”들을 위해 초상화를 전문으로 그리는 스스로 고급 창부라고 생각하는 임무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며 고생하는 대신 현실에 수긍하라는 물신주의가 팽배한 현대 자본주의 3.0 시대의 주술처럼 다가온다. 굳이 이 지점에서 ‘주술’이라는 코드를 선택한 이유는 60센티미터 정도 사이즈의 이데아 기사단장이 등장하는 소설의 전개에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 이제는 충격 타임이다. 반듯한 은행원 집안의 아내 유즈와의 6년간의 결혼생활이 아내의 외도로 일순간에 파경이라는 종착역에 도달한다. 결혼이라는 인연도 언제나 필요하면 사서 쓸 수 있는 그런 관계라고 생각하는 듯, 주인공은 쿨하게 도쿄 아파트 거처를 떠나 고물 푸조를 타고 불안정한 자아를 달래기 위해 정처 없는 방랑길에 나선다. 어때 이 정도면 춘수 씨는 예전 작품들의 변주라는 지적도 달게 받아야 하지 않을까.

 

춘수 씨 문학에서 하나의 코드가 되어 버린 음악에 대한 열정도 빠지지 않는다. 책에 몰입하다 보니 어디서 읽었는가 모르겠지만 1950년대 재즈 씬을 연상시키는 MJQ(Modern Jazz Quartet)의 비브라포니스트 밀트 잭슨이 연주하는 영롱한 음색의 <피라미드>도 유투브를 통해 감상해 보기도 했다. 소설의 곳곳에 배치한 슈베르트 현악4중주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내가 아는 건 고작 <죽음과 소녀> 정도가 아니던가. 나중에 소설에서 주인공 버금갈 정도의 역량을 발휘하게 되는 멘시키 와타루 씨의 초대를 받아 방문한 집에서 생전 처음 들어보는 발랄라이카 칵테일 제조법까지 디테일하게 알려 주는 장면에서는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춘수 씨의 이런 고급 취향이란. 쿠앵트로가 들어가지 않으면 발랄라이카로 인정할 수 없다고.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트리플 섹을 대체재로 사용하는 것 같더만. 어느 블로거의 글에서 춘수 씨의 이런 고급진 취향을 일본어로 제이타쿠(ぜいたく[贅沢])란 표현이 제격이라는 글을 읽었다.

 

춘수 씨 소설의 주인공들은 누구나 일종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자신이 열다섯살 때, 심장판막 이상으로 결국 세상을 떠난 누이동생에 대한 트라우마로 폐쇄공포증이 생겼다고 했던가. 다른 여성과 교제 중에 만난 유즈 역시 자신의 누이와 비슷한 눈매에 빠져 결혼에까지 도달했다는 고백도 주목할 만하다. 이 정도의 기이한 인연들은 소설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질 내용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원래 자신이 살던 도쿄의 아파트를 유즈에게 내준 “나”는 저명한 일본화가 아마다 도모히코의 아들인 마사히코(미대 동창생)의 제안으로 도쿄 인근 가나가와 현 서쪽의 오다와라 교외 그의 부친이 살던 집에 잠시 살게 된다.

 

이야기 전개를 위한 몇 가지 장치들이 준비됐다. 우선 트라우마와 최근의 파경을 겪은 주인공에 대한 소개가 이루어졌고, 앞으로 벌어질 사건들을 위한 무대가 가설됐다. 그렇게 평안하게 질박한 삶이 전개되었다면 좋겠지만 이 모든 것은 워밍업에 불과하다. 명백하게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의 한 장면에서 모티프를 딴 아마다 도모히코의 <기사단장 죽이기> 그림을 발견하는 장면(아테네 여신 혹은 지혜를 상징하는 수리부엉이의 도움으로 아마다 컬렉션에도 등재되지 않은 비밀의 작품을 상징적으로 발견한다), 새벽만 되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방울 소리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서게 되는 장면 그리고 거액을 들여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 달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 멘시키 와타루의 등장에 이르기까지 춘수 씨 특유의 거침없는 스토리텔링이 이어진다.

 

이제까지 피상적인 요소들이 등장했다면, 이제는 그 내면의 세계로 진입할 시간이다. 그 와중에도 나는 미술교실에서 만난 두 명의 유부녀들과 쾌락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다. 교외에서 보내는 시간이 이렇게 스펙터클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이 찾은 거장의 알려지지 않는 작품에 대한 미스터리, 밤마다 들려오는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호기심, 주기적으로 갖는 섹스, 게다가 아마다 도모히코가 남긴 독일 오스트리아 오페라 컬렉션을 탄노이 스피커로 즐기며 간단한 요리를 만들어 먹는 남자. 그야말로 춘수 씨 스타일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주인공이 열어젖힌 비밀의 문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의외의 인물인 기사단장이 튀어나온다. ‘색을 면하다’라는 뜻의 기이한 이름을 가진 멘시키[免色]의 이력도 만만치 않다. 어쩌면 주인공보다 ‘제이타쿠’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남자가 멘시키일 지도 모르겠다. 다가온 이혼이라는 절망의 늪에서 탈출하는 계기를 제공한 주인공이 바로 멘시키였다. 어느 누가 자신의 실력을 알아보고 거액의 의뢰금을 제공하면서 어떤 제약도 붙이지 않고 초상화 화가가 원하는 방식으로 작업하는 주문을 거절할 수 있을까. 그런데 소설 속 사건의 진행을 보면, 모든 것은 멘시키 씨가 설정하고 준비한 대로 진행된다. 멘시키 씨 또한 비밀을 한가득 안은 사람이고, 주인공과의 초상화 작업을 통해 베일을 한 꺼풀씩 벗겨낸다.

 

석실에서 느닷없이 등장한 초자연적 존재인 기사단장 같은 배역이 기존의 춘수 씨 작품에 있었던가 싶다. 괴이담에나 등장할 법한 이야기이지 않은가. 목식화된 승려 미라에 대한 일본 고래의 괴담은 한 때 즐겨 읽던 교고쿠 나쓰히코가 저술한 <항설백물어>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순간 반세기 가까이 서구에 편향된 글쓰기에 전념했던 춘수 씨가 드디어 본국이 가진 아름다움이라는 이름의 이데아에 눈을 뜨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의 스타일이 단박에 바뀌진 않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춘수 씨가 또 준비한 것이 바로 아마다 도모히코의 <기사단장 죽이기> 그림이다. 원래 아마다 씨는 서양화 전공으로 1930년대 오스트리아 유학에 나섰다고 한다. 하지만, 그 시절이 어떤 시절이던가. 독일에서 발호한 나치즘이 안슐루스(오스트리아 합병)로 오스트리아를 집어 삼키고 이웃 체코까지 노리고 있던 시절이 아니었던가. 여기서 다시 한 번 재력과 그 영향력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 시절 유럽 유학길에 나설 정도라면 상당한 재산이 필요했을 것이다. 빈에서 만난 오스트리아 연인이 연루된 나치 고관 암살 사건으로 연루된 이들은 모두 처형 투옥되고, 아마다 씨는 그나마 추축국의 일환이었던 일본인이었다는 이유로 무사히 귀국해서 전쟁 기간 동안 쥐 죽은 듯이 지내다가 환골탈태해서 전통 일본화를 그리는 작가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변주에 변주의 거듭이 아닐 수 없다.

 

아, 한 가지 누락된 부분이 있었던가. 추상화인지 초상화인지 모를 멘시키 씨의 초상화를 완성한 나는 예술혼이 폭발했는지, 내친 김에 방랑길에 만나 뜨거운 하룻밤을 지낸 여인과의 추억에서 파생된 스바루 타는 남자에 대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것은 마치 “나는 내가 지난 여름에 한 것을 알고 있다”라는 틴에이저 호러 필름을 연상시키는 그런 설정 같다고나 할까. 블랙잭 게임을 능숙하게 시연하는 딜러처럼 춘수 씨는 자신의 소설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기산단장 1편이라는 카드 테이블에 주욱 늘어놨다. 이제 2편에서는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매듭지을 것인가.

 

다른 건 몰라도 가독성 하나만큼은 가히 최고다. 이래서 춘수 씨, 춘수 씨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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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7-07-18 1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는 책 읽고 나서 볼게요! 스포 안당하려고 애쓰는중입니다. ^^

레삭매냐 2017-07-18 13:29   좋아요 0 | URL
제 경험에 미루어 볼 적에 스포가 다수
포함되어 있는 리뷰를 봐도 추리소설이
아닌 이상 그닥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 같더라구요 :>

그래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cyrus 2017-07-18 14: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기 알라딘에서 하루키의 신작 소설을 제대로 읽고, 진지하게 리뷰로 기록한 분이 레삭매냐님이 처음입니다. 하루키를 좋아하는 알라디너라면 레삭매냐님의 글을 읽어봐야 합니다. ^^

레삭매냐 2017-07-18 14:52   좋아요 0 | URL
좀 더 진지하게 춘수 씨를 까고 싶은데
실력이 부족하야 두서 없는 글이 되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춘수 씨는 그냥 그런 일본
작가 중의 하나라는 기사가 눈에 띄더군요.

지금까지도 춘수 씨의 글을 열심히 소비하는
하루키스트들의 나이도 상승하고 있다는 지적
도 주목할 만하더군요.

단도직입적으로 90년대 한국 청년들에게 먹혔
을 지는 몰라도 요즘에는 먹히지 않는다는 방증
일까요.

포스트잇 2017-07-18 16: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권 1/3쯤 읽고 있는데 ... 1권이 ‘이야기가 폭발한다‘라는 광고문구에 어느정도 수긍할 수 있을 정도라면, 2권은 아, 좀 걸리네요.
춘수 씨(ㅋㅋ)의 ‘단편적 사고에 저항‘하기 위한 지금의 소설이란 장르의 역할에도, 이야기의 힘을 생생하고 정확한 문장으로 옮기는 일‘에 ‘오랜 세월 나름대로 노력을 거듭해왔‘음을 인정한다 해도 롤리타증후나 꿈을 빙자한 강간을 이제는 아예 나의 예술세계로 받아들이라는 식의 능청은 좀 질리네요...


물론, 기사단장죽이기, 감탄해가면서 읽는 중이고 재밌고 끝까지 읽긴 할겁니다. ㅎㅎ

레삭매냐 2017-07-18 16:46   좋아요 0 | URL
그래서 춘수 씨가 선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
을 해봤습니다.

2권도 내쳐 읽기 시작했는데 말씀 대로라면
좀 걱정이 앞서네요.

이제 막 재밌어지기 시작하는데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