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노블 파리 코뮌 - 민중의 함성
자크 타르디 지음, 홍세화 옮김, 장 보트랭 / 서해문집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 자크 타르디의 <그래픽노블 파리 코뮌>을 읽으면서 훗날 레닌이 말한 것처럼 “세계 역사상 최초로 벌어진 노동계급의 사회주의 혁명의 예행연습”으로서 파리 코뮌에 대한 전반적인 개관을 기대했다. 하지만 내가 그래픽노블로 만난 파리 코뮌은 예상과는 다르게 다가왔다.

 

루이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조카이자 나폴레옹 3세라는 이름으로 제2제정을 열었던 권모술수에 능했던 얼치기 황제는 삼촌이 제시했던 영광스러운 프랑스 대신 조국을 치욕으로 몰아넣는데 성공한다. 아무런 준비 없이 시작한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처절하게 패배하고 그야말로 나라를 말아 먹어 버렸다. 헤겔의 말처럼 역사는 희비극으로 반복된다고 했던가. 프로이센과의 전쟁이 희극이었다면, 뒤이어 벌어진 파리 코뮌은 비극이었다.

 

프랑스 최고의 영예를 자랑하는 레종도뇌르상 수상을 거부한 무정부주의자 자크 타르디는 장 보트랭이 1999년에 발표한 소설 <민중의 함성>을 각색해서 새로운 스타일의 <그래픽노블 파리 코뮌>을 창조해냈다.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제2제정은 힘없이 무너지고 임시정부는 루이 아돌프 티에르를 행정장관으로 임명해서 알자스로렌 영토를 할양하고 50억 프랑에 달하는 전쟁배상금을 요구하는 치욕적인 강화조약을 추진했다. 도저히 이런 강화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프랑스 민중들은 조직적인 반항을 시작한다. 그래픽노블에 나오는 알마 다리에서 신원미상의 시신을 발견된 1971년 3월 18일을 시작으로 장장 72일에 걸친 코뮌의 역사가 불타 오른다.

자크 타르디는 여성혁명가 루이즈 미셸이나 저널리스트 쥘 발레스 혹은 귀스타브 쿠르베 같은 실존 인물들도 등장시키지만, 코뮌을 폭도로 규정하고 무자비한 진압을 시도한 정부군의 총칼 앞에 수없이 스러져간 무명의 코뮌 전사들에 보다 초점을 맞춘다. 원래 프로이센군에 대항하기 위해 프랑스 민중의 세금으로 구입한 대포가 시민군의 수중에 두려워한 베르사유에 근거한 티에르를 중심으로 한 기득권 왕당파들은 정부군을 파견해서 대포를 회수하려는 시도를 감행했다. 이런 역사적 사실에 극을 이끌어 가는 주역을 오라스 그롱댕이라는 이름의 비밀경찰 그리고 자신의 딸을 잔혹하게 죽인 범인으로 그가 믿는 앙투안 조제프 타르파냥이라는 정부군 출신이었지만, 시민군에 총을 겨눌 수가 없어 시민군에 투신한 장교가 차례로 등장해서 첨예한 갈등에 선봉에서 이야기를 힘차게 이끌어 간다.

 

모든 혁명이 그렇듯,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 같은 거창한 명분이 아니라 다양한 이유에서 혁명에 동참한 구성원들의 이야기가 그야말로 파노라마처럼 벌어진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정치적인 면면을 기대했지만 소설을 바탕으로 한 그래픽노블에서 다루기엔 너무 거대한 담론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아마 저자 자크 타르디는 당시 시대상을 참조하고 고증하는데 지대한 공을 들였을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프랑스 문화에 대해 문외한인 이방인의 눈에는 버거울 따름이었다.

민중에 의해 선출된 정부를 지향하던 코뮈나르들도 정부군 못지않은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그동안 민중을 억압해온 사제 계급에 대한 증오로 마구잡이식 보복을 저지른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억울하게 죽었다고 생각한 사제 중의 한 명이 그롱댕이 그렇게 복수하고 싶었던 진범이라는 사실은 허탈하기만 하다. 물론 코뮌이 끝난 뒤, 사실을 알게 된 경찰총수가 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다는 이유로 사실을 덮는 장면은 세월호 사건을 처리한 어떤 정부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어서 깜짝 놀랄 정도였다. 한편, 티에르 휘하 마크마옹 원수는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무능한 군인었지만 시민군을 상대로 한 내전에서는 유능한 실력을 발휘해서 잔혹한 방식으로 코뮌을 무력화하는데 마침내 성공한다. 어떤 경우에라도 의기만으로 잘 조직되고 훈련받은 정부군을 상대로 코뮌을 유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다. 티에르와 마크마옹의 정부군이 사방에서 코뮌을 포위하고 진격해 오는 가운데 마지막 “피의 일주일” 동안 수많은 코뮈나르들이 학살당하고, 투옥되는 것으로 사회주의자들과 무정부주의자들이 꿈꾸었던 대동세상은 스러지고 말았다.

 

코뮌 기간 동안 숨죽이고 있던 우파들이 정부군이 진압에 나서자 본색을 드러내고 코뮈나르들에게 총질을 하는 장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정부군에 대항했다는 흔적으로 간주된 어깨에 집총 흔적이 있다는 이유로 집단공개 처형을 당하는 기록사진을 보고서 그렇게 질서와 안녕을 외치던 이들의 위선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사회에서 소외된 가난하고 힘없는 거리의 여인들, 젖먹이 아이들까지 껴안고 코뮌을 위해 싸우던 코뮈나르들의 최후는 결연하고 장엄하게 다가왔다.

 

프랑스 신미년의 혁명이 실패한 혁명이었다면, 정유년 우리가 지금 목격하고 있는 촛불혁명은 권좌에서 헌법을 농간하며 노욕을 부리던 지도자를 마침내 끌어내리는데 성공했다. 영화 <레미제라블>의 시대였던 1832년 6월항쟁을 상징하는 <민중의 노래>가 다시 광장에 울려 퍼지는 이유를 다시 되새겨 보게 된다. 아무리 시간이 많이 걸리고, 지난한 과정이 있다 하더라도 절대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우리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PARK OUT! 다음 과제는 새로운 공화국을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7-03-10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극기와 촛불 간의 대립이 생각보다 오래갈 것 같아요. 차기 정권은 국민 통합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서로 다른 진영 간의 갈등 폭을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지역 갈등‘보다 더 위험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 ‘이념 갈등‘입니다.

레삭매냐 2017-03-10 17:35   좋아요 0 | URL
지금 시절이 어느 시절인데 이데올로기 타령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유신의 잔재를 청산하고 미래로 나가야 하는데
앙시앵 레짐이 구축한 분열의 간극이 너무 크다는 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