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리의 이야기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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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술에 잔뜩 취해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만난 노숙인 양반의 다리를 주물러 드린 적이 있다. 밤이 늦도록 무언가 오래 대화를 나눴던 것 같은데 그놈의 블랙아웃 덕분에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경황이 없는 가운데 무슨 이유 때문인진 몰라도 서로 유쾌해 했던 잔상만 남아 있다. 그게 내 인생의 유일한 노숙인과의 접점이었다 지금까지는.

 

지난 설날 연휴 기간에 존 버저의 <킹>을 읽었다. 존 버저는 평생 모두 8편의 소설을 남겼는데 그 중에 7번째 작품으로, 노숙인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나는 다시 소설로 그렇게 노숙인을 만났다. 소설을 이끌어 가는 화자는 공항의 경비견 출신의 이름도 멋진 “킹”이다. 소설리스트 추천으로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리긴 했지만 미처 다 읽지 못하고 반납했고, 새해 들어 존 버저의 부고를 듣고 나서야 비로소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역시 책읽기에는 강력한 동인이 필요한 모양이다.

 

유럽의 모처에 생 발레리란 이름을 가진 곳에 킹과 그의 주인인 비코와 비카가 살고 있다. M.1000 도로가 지나가고 도처에 쓰레기가 널려 있으며 공해와 소음으로 범벅이 된 곳이 바로 그네들 삶의 안식처다. 우리의 얼굴이 모두 다르듯, 생 발레리 쓰레기산에 사는 이들도 제각각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세상이 바뀌지 않으리란 걸 알면서도, 아무 일도 안하는 거에는 반대하는 유일한 규칙이 있었노라고 거리의 철학자 킹은 조용한 목소리로 되뇐다. 아무 것도 안할 수 있는 자유는 그네들에게도 허용되지 않는구나. 뤼크와 함께 한 에피소드에게 킹은 파트너로 정육점에서 큼지막한 스테이크 고기를 훔친다. 누군가의 물질적 손해가 다른 이들에겐 저녁 한때의 무용담과 유쾌함 그리고 포식으로 전환된다. 물론 노숙인들의 삶이 모두 그렇게 유쾌한 에피소드로 가득한 건 아니다. 앙팡테리블을 능가하는 꼬마 악당들은 거리의 노숙인에게 불을 붙이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끔찍하다.

 

킹의 주인 잔니 비코는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으로 한때 발명가이기도 했고, 공장을 소유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쓰레기산에 오두막을 짓고 잭에게 자릿세를 내며 살아간다. 가수 출신으로 보이는 파트너 비카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출신으로 한 때 화려한 미모를 자랑했지만 역시 형편은 비슷하다. 그들은 아무도 사고 싶어 하지 않는 밤을 구워 팔고, 남의 집 정원의 수선화를 캐다가 거리에서 판다. 노숙인들에게 겨울 추위야말로 가장 무서운 존재다. 판지로 만든 지붕을 이고 사는 비카와 비코 그리고 킹은 잠이 최고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상시적인 식수난은 문젯거리도 아니라고 한다.

 

소심해서 거리에서 팔려고 내놓은 무나 밤을 사라고 제대로 외치지 못하는 비코 아저씨에게 쾌활한 성향의 비카 아줌마는 즉석에서 벨리니 공연을 하겠다고 협박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제발 그러지 말라고 애걸하는 비코 아저씨. 그녀의 목소리를 파는 게 싫다며, 거리의 생활을 접고 암스테르담의 오빠에게 돌아가라는 비코의 간절한 부탁에는 어쩌면 곧 일어날 파국에 대한 예지가 숨어 있었던 걸까.

 

열댓명 남짓한 노숙인들이 거주하는 잭의 코트에 확성기와 탐조등으로 무장한 전경들이 들이 닥친다. 어디서 많이 목격한 장면이 아니던가. 개발과 이윤추구 그리고 재산권행사라는 자본의 무지막지한 논리 앞에 이들의 생존이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한궤도 차량과 립헬 기중기로 깨끗하게 코트를 밀어버리고, 집행에 방해가 되는 거추장스러운 노숙인들을 시설로 보내기 위해 야만적인 폭력도 마다하지 않는 결말은 묘한 기시감을 자아낸다.

 

존 버저의 글들은 상대적으로 짧아서 술술 익히는 편이다. 어쩔 땐 마치 산문이라기 보다 하나의 운문을 대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가 다루는 주제들은 가볍지 않고 묵직하게 다가온다. 실제로 저자는 스페인 알리칸테 지역의 노숙인들의 삶을 바탕으로 해서 이 소설을 썼다고 하는데, 피상적 관찰이 아니라 그들의 내면에까지 도달한 마르크스주의자의 깊은 성찰이 곳곳에서 돋보이는 작품이다. 단지 그들의 삶을 문학적으로 다룰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시각에서 보이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들이 호소력 있게 다가온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일까? 자본의 소유 유무, 불안정한 거주 문제 그리고 가난이 불러온 인간 존엄성 상실 같은 문제들은 최근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통해 간접 체험하지 않았던가. 소설 <킹>의 흥미로운 점 중의 하나는 이 모든 이야기들이 경비견 킹의 시선으로 치환돼 기록되었다는 점이다. 같은 인간도 아닌 개의 시선에서 바라본 인간들의 이야기라니. 어쩌면 그러한 존재의 가치는 동물이 인간보다 나을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작가는 던지고 싶었던 걸까? 어떤 존재의 우월성에 대해 따지기보다 상대적 시선을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다고 믿고 싶다.

 

소설 <킹>을 통해 나와 다른 존재를 내가 사유하는 바운더리에 넣는 게 얼마나 난망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그들은 내 삶의 바운더리에 아무런 편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실천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아무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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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2-03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겉모습에 대한 편견 때문에 타인을 나 자신보다 못한 존재로 대합니다. 사실 레삭매냐님이 들려준 경험담을 보면서도 ‘술 취한 상태에서 노숙인을 만나면 위험하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이 생각 속에 ‘노숙인은 위험한 존재‘라는 선입견이 있었어요.

레삭매냐 2017-02-03 16:52   좋아요 0 | URL
아주 오래 전의 일이라 기억이 다 가물가물하네요 -
지난 달에 열심으로 존 버저의 책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중고서점에 잘 나오지 않는 책이라 하는 수 없이
사서 읽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