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로마사 2 - 왕의 몰락과 민중의 승리 만화 로마사 2
이익선 지음, 임웅 감수 / 알프레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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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비전문가가 쓰고 그린 로마사를 읽는 느낌은 어떨까라는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2~3년 정도 걸릴 것을 예상하고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지만, 이미 시간이 훌쩍 지나 10년이나 되는 시간이 필요했고 드디어 올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그리고 로마사에 대한 컨텐츠는 기대 이상이었다. 이미 마키아벨리의 <로마사논고>, 예전과는 열광했지만 지금은 정치적 성향 때문에 더 이상 관심을 끊게 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그리고 최근 연달아 출간되고 있는 콜린 매컬로의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를 통해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오래 전에 읽었기에 잊어버려 생소한 이야기들을 다시 만나게 됐다. 특히 로마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넘어가는 시기는 역사적으로도 오래되었기도 하거니와 사료들의 절대부족으로 인해 저자가 표현한 대로 전승에 상당 부분 의존해야 하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만화 로마사> 두 번째 이야기는 기원전 509년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가 이끄는 반왕정 세력이 거만한 타르퀴니우스를 몰아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건국 이래 250년 동안 지속된 왕정은 라틴계와 사비니계 토착 귀족과 에트루리아 왕들의 연합체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저자는 유부녀 폭행 사건으로 공화정 혁명이 시작되었다는 전승에 의문을 표하며, 대신 귀족 계급과 전쟁을 통해 획득한 토지분배라는 당근정책으로 민중을 포섭해 숫적 우위를 지키려는 왕정 세력 간의 계급투쟁적 성격도 가지고 있었다고 분석한다. 어찌 되었던 더 이상 왕의 독재를 원하지 않았던 로마 민중과 귀족들은 로마 부근에서 호시탐탐 왕정복고를 노리는 타르퀴니우스의 위협은 물론이고, 인근 부족의 침입에도 대비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특히 클루시움의 강력한 에트루리아 연맹의 수장이었던 포르센나의 원조를 받아 거의 신생 공화정 로마를 포위하고 탈환직전까지 가지만,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기록될 정도의 기개와 의기를 가진 가이우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같은 영웅들의 분전에 힘입어 가까스로 포르센타를 설득해 그전에 점령한 베이이를 반환하는 굴욕적인 조건으로 포르센나군을 철수시키는데 성공한다.

 

로마 공화정 체제의 수호를 위해 이런 외부로부터의 충격과 싸우는 와중에, 로마 내부에는 당장 해결해야 하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원로원으로 대표되는 로마의 실질적 지배계급인 귀족과 상대적으로 권한과 사유재산이 적었던 평민 간의 대립이었다. 로마가 궁극적으로 미래에 ‘팍스 로마나’라는 세계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그런 내부의 모순을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공화정 로마의 끊임없는 팽창은 제국주의적 수탈의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귀족에 비해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평민을 달랠 수 있는 전리품과 토지를 분배하기 위해서는 전쟁이 꼭 필요했다. 그런 실제적인 이유 때문이었는지 하루가 다르게 팽창하는 로마의 위협을 느낀 이탈리아 반도 내의 유력한 부족은 시시때때로 로마를 침공해 왔다.

 

문제는 그런 상시적 전쟁국가 로마의 현실이 평민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평민들의 의무 중에 하나인 병력소집에 응하게 되면, 그들의 농경지는 누가 경작한단 말인가. 그리고 증가하는 채무 때문에 채무 노예로 전락하게 되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로마 평민들의 의무였던 군복무는 그들에게 짐이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회적 평등권 주장이 점증해 가던 로마 사회에서 그들이 가진 강력한 항의의 수단이기도 했다. 기원전 494년 볼스키 족과 아이퀴 족의 침공 와중에 로마군의 중무장 보병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평민들이 침공에 대비하는 대신, 성산으로 알려진 몬스사케르 산에서 자신들의 권리신장을 주장하며 시위에 돌입했다. 로마 원로원은 하는 수 없이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평민들의 권리를 보호할 2인의 호민관 제도와 평민회 도입을 승인하기에 이른다. 공화정 도입 이래 반세기만에 로마 평민들은 비로서 의미 있는 승리를 거둔 것이다.

 

계속되는 외적의 침입에 대항해서 오늘날 미국 신시내티 시의 유래가 된 킨킨나투스를 독재관으로 선출해 군사대권을 맡기기도 했다. 훗날 술라나 카이사르가 원래 독재관 취지를 변형시켜 자신의 독재에 이용하기도 했지만, 첫 독재관이었던 킨킨나투스는 보름만에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대권을 원로원에 반납하는 그야말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원형을 보여주기도 했다. 어쩌면 공화정 로마가 숱한 위기를 모면하고 국가를 유지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그런 엘리트 계급의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진행 중인 국가원수 탄핵의 과정에서 들어나는 지배 엘리트 계급의 파렴치한 국정농단 행위를 보며, 왜 우리나라에는 고대 로마 사회에서 숱하게 목격할 수 있는 그런 끝없는 사회지도층의 자기희생 대신 부정부패와 기회가 되었을 때 사리사욕을 챙기겠다는 추한 욕망만이 존재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 현대인들의 사고가 기원전 5세기를 살던 사람들보다 못하다는 비애감에 서글퍼졌다.

 

다시 고대 로마로 돌아가 로마 평민들은 호민관 제도와 평민회 도입에 이은 최초의 성문법이라고 할 수 있는 <12표법>(BC 451), 귀족과 평민간의 결혼을 허용하는 카놀레이우스법(BC 445), 2명의 최고지도자인 집정관 중 한 명은 평민 중에 선출되어야 한다는 리키니우스법(BC 367)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평민회 의결 사항은 원로원의 승인 없이도 법적 효력을 지니게 된다는 호르텐시우스법(BC 287) 등이 차례로 통과하면서 귀족과 평민 간의 갈등이 진정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외부적으로도 가공할 갈리아 족의 침공으로 수도 로마가 거의 점령될 뻔하기도 하고, 50년에 걸친 삼니움 전쟁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5번이나 독재관의 자리에 오른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의 지도 아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발전의 전기를 마련했다. 특히 마그누스 그라이키아의 거점이었던 타렌툼 전쟁으로 도시국가 타렌툼을 정복하면서 지중해 패권 장악을 위한 거점 확보에 성공한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타렌툼 전쟁에서 상대했던 피로스 대왕의 코끼리 부대와의 전투는 공화정 로마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 넣었던 카르타고 한니발 부대의 맛보기였던가.

 

물론 일단의 평민들을 위한 개혁 조치들과 법안들이 마련되었다고 해서, 파트리키(혈통 귀족)와 플레브스(평민) 간의 갈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두 계급 간의 차별은 존재했고, 이 두 계급 간의 계급투쟁은 어쩌면 공화정 로마 기간 동안 내내 지속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브루투스가 100명을 추가해서 300명 정원이 된 원로원은 태생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었고, 새로운 인원의 충원에 인색했다. 부유한 평민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정치적 성공을 의미하는 원로원 진출을 도모했지만, 건국 이래 수백 년을 이어오면서 특권층을 형성하게 된 파트리키들은 자신들의 기득권 시스템을 흔들 지도 모를 신입 회원의 증가를 원하지 않았다. 어쨌든 원로원이 중심이 된 과두정 형태의 로마 공화정은 왕정을 붕괴시켰고, 대외적 갈등들을 봉합시키면서 이탈리아 반도 통일에 성공했으며 세계 제국으로 가는 도약을 준비하기에 이르렀다. 곧 출간될 3권 <지중해 쟁탈전>에서는 훗날 로마의 곡창이 되는 시칠리아 섬의 원주인이었던 해양세력 카르타고와의 일대결전이 기다리고 있다.

 

오래전 역사 시간에 막무가내로 외웠던 12표법, 리키니우스법 그리고 호르텐시우스 법이 생기게 된 과정을 다시 돌아보는 건 역시 거시 만화사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모름지기 역사 공부를 위해선 과정이 중요한 법인데, 무조건 암기식으로 외우니 그게 오래 갈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만화 혹은 독서로 만나게 되니 그야말로 이해가 쏙쏙 됐다. 역사 교육의 현장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면 정말 좋겠다는 공상을 해봤다. 시대가 퇴행한 것 같은 국정교과서가 부활된 시절에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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