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박연선 지음 / 놀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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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방면에서 다양한 장르의 글을 잘 쓴다는 박연선 작가의 한국형 코지 미스터리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를 읽었다. 여름에 자고 나니, 아침에 가을이 되었더라는 날씨치럼 그렇게 푹푹 찌던 폭염이 드디어 물러가고 가을이 도래했다. 그렇게 계절의 전환기로 접어드는 늦여름에 딱 맞는 재밌는 미스터리 소설로 폭염을 몰아낸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네 소녀 실종사건이라는 15년 전, 운산면 두왕리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파헤치는 수사관 역할을 방년 21세 처녀이자 삼수생 강무순 씨가 캐스팅됐다. 그녀를 서포트하는 조연 역에는 종갓집 소년 꽃돌이(유창희)와 무슨의 할매이자 폭력노파 홍간난 여사를 배치했다. 장르물이라고 해서 굳이 심각할 필요가 없다고 박연선 작가는 선언한다. 얼마든지 유쾌할 수 있다는 가능성애 도전했다는 느낌일까.

 

드라마와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일가를 일군 작가답게 마치 드라마 대사를 치는 듯 호흡이 빠르고 경쾌하다. 누군가에게는 비극으로 기억될 네 소녀 실종사건을 다임개술(타입캡슐)이라는 지난 시절에 유행했던 소재를 이용해서 외부에서 투입된 강무순이가 느슨해 보이지만 무언가 알 수 없는 비밀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를 구성지게 파헤친다. 무순 역시 15년 전에, 비극의 현장에 가찹게 존재할 수 있었던 그런 상황이었지만 위기를 모면하고 할아버지의 상을 당해 홀로 계신 홍간난 여사를 위무하고 보필하라는 특명을 받고 두왕리에 잔류하게 되었다.

 

무순과 꽃돌이는 팀을 이루어 보물상자이길 바랐던 다임개술 안에 들어있던 몇 가지 단서들을 빌미로 네 소녀 실종사건에 연루된 당사자들의 운명을 한 꺼풀씩 차례로 벗겨낸다. 첫 번째 주자는 종갓집 아기씨로 만인의 연인이었던 유선희, 마을의 소문난 말썽꾼이었던 유미숙, 목사관의 둘째딸이자 무순을 잘 챙겨 주던 조예은 마지막으로 효녀로 유명했던 황부영의 과거와 현재에 박연선 작가는 소설의 포커스를 정조준한다. 문득 누군가의 생과 사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희비가 교차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매 챕터의 끝에 주마등이라는 코너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의 독백도 등장한다. 아무래도 네 소녀 실종사건의 키를 쥔 것으로 보이는 신원불명의 캐릭터의 이야기는 코지 미스터리 소설의 긴장감을 한껏 고조시키는 역할을 무난하게 수행한다. 꽃돌이 소년이 진중하게 무게를 잡는 역할을 해냈다면, 폭력노파 홍간난 여사는 그 반대편에 서서 가볍지만 두왕리 대소사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는 오지라퍼로 종횡무진 활약한다. 다수의 작품활동을 통해 캐릭터의 밸런스에 대한 감각을 익힌 덕분이라고나 할까.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경계선을 잘 유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코지 미스터리답게 어쩌면 그런 균형감각이 중요했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눈여겨 본 점 중의 하나는 다른 건 몰라도 드라마 시작하는 시간 하나는 칸트 뺨치는 정확도를 자랑하는 드라마교의 열혈신자인 홍간난 여사를 앞세운 드라마 비판이다. 천편일률적인 내용의 드라마 전개를 예상하는 홍간난 여사의 숭악한 손녀 무순도 예외는 아니다. 빤한 소재를 반복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제작진의 시청률 타령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다시 네 소녀 실종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났을 때, 두왕리를 습격한 언론에 작태에 대해서도 작가의 비판은 냉정하고 준엄하다. 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알 권리를 두왕리 사람들이 아니라 정말 큰 비리를 저지른 정치인과 기업인들에게 추상같이 적용시키기만 해도 우리의 국격이 상승하지 않을까?

 

후반으로 갈수록 작가는 소설 곳곳에 깔아둔 밑밥에 걸린 이야기들을 주낙 낚듯이 수확한다.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원인과 결과 그리고 범인 설정이야말로 모든 미스터리가 갖추어야할 기본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꼭 꼬집어 이야기할 수 있는 결핍도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참을 만한 소설의 가벼움 때문이라고 한다면 과언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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