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 을유세계문학전집 80
가브리엘레 단눈치오 지음, 이현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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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어디선가 가브리엘레 단눈치오란 이탈리아 출신 풍운아의 이야기를 어렴풋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단순하게 돈키호테 스타일의 파시스트 정치가였다고 생각해 왔는데, 알고 보니 단눈치오가 희대의 바람둥이이자 장미소설삼부작을 발표하기도 한 프랑스 자연주의와 니체의 영향을 받은 탐미주의 소설가였다고 하지 않는가. 놀랍다. 극단은 서로 통한다고 했던가. 베니토 무솔리니의 지지자이자 경쟁자이기도 했던 단눈치오는 52세의 나이에 1차 세계대전 때 직접 비행기를 몰고 적국이었던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 상공에 돌입했던 전쟁 영웅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승전국임에도 이탈리아의 어떤 영토적 성취도 얻지 못하자 1919년 자신을 추종하는 삼백여명의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아드리아 해에 위치한 피우메 시를 1년 반 동안 점령하기도 했다고 한다. 게다가 대머리에 추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귀부인들과 숱한 로맨스로도 유명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한 시대를 풍미한 인간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단눈치오가 26세이던 1889년에 발표된 장미소설의 첫 번째 작품에 해당하는 <쾌락>의 주인공은 자신의 문학적 페르소나라고 볼 수 있는 안드레아 스페렐리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사회적 도덕규범이나 윤리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쾌락만을 신봉하는 철저한 에피쿠로스 추종자인 안드레아는 유부녀이자 로마 사교계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엘레나 무티를 만나면서 치명적 사랑에 빠지게 된다. 부르주아 가정 출신으로 조상 대대로 이어져온 귀족문화를 칭송하는 작가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대세가 된 공화주의나 민주주의에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 문학 작품이 작가 자신의 본성을 반영하는 거라면 <쾌락>의 곳곳에 배어있는 작가의 다분히 극우 민족주의적 성향을 엿볼 수 있다.

 

소설 초반 단눈치오는 지극히 탐미주의적 시선으로 청년 안드레아가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엘레나에게 빠져 드는 과정을 집요하게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안드레아가 엘레나를 처음 만난 순간 운명적으로 그녀에게 빠져 드는 순간을 그리고 이어지는 사교 파티와 경매에서 그녀가 던져주는 힌트를 물고 사랑의 감정을 극대화해 가는 과정에 대한 단눈치오는 농밀하게 그려낸다. 하루를 벌어먹고 살기 힘든 프롤레타리아들의 이야기보다 어쩔 수 없이, 먹고사니즘의 걱정 없이 오늘 하루는 또 무슨 재밌는 일이 없을까라는 고민으로 가득한 부르주아 귀족계급의 이야기가 소재로 쓰일 수밖에 없는 당시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아 기분이 찝찝하기만 하다.

  

빼어난 시인이자 동판화가이기도 한 안드레아는 엘레나 무티의 사랑은 얻는데 성공하지만 결국 변심하여 자신의 곁을 떠난 연인 때문에 실의에 빠져 만나는 여인마다 염문을 뿌리는 연쇄사랑꾼으로 변신하기에 이른다. 바닥에 떨어진 그의 윤리 의식은 유부녀건 처녀건 가리지 않고 원하는 상대의 사랑을 얻는데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결국 구애의 과정에서 벌어진 사소한 다툼 때문에 19세기식 귀족문화의 잔재인 결투 과정에서 상대의 치졸한 반칙으로 치명상을 입고 사촌의 집에서 치료를 위한 칩거에 들어가게 된다. 그 와중에 만나게 된 마리아 페레스에게 빠지게 된 사랑꾼 안드레아. 이 통제되지 않는 야생마 같은 사나이의 엽색에 그저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제임스 조이스를 비롯한 다수의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 단눈치오는 <쾌락>으로 시인에서 소설가로 변신을 선언했다. 후속작들에서 단눈치오는 계속해서 변신의 과정을 겪게 되는데, 유럽 제국주의 세력이 전 세계를 호령하던 19세기 말 데카당스한 그런 분위기들을 소설의 곳곳에서 감지할 수 있었다. 단눈치오의 문학적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안드레아에게 관심사는 오로지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다. 진귀한 예술작품, 귀를 즐겁게 만드는 소네트, 아름다운 여인들과의 끝없는 로맨스 그리고 경마와 결투 같은 경쟁을 통한 원초적 승리의 기쁨에 이르기까지 탐미적 이야기들이 끊이지 않는다. 불행한 결혼생활의 포로가 된 여성들은 안드레아의 추구하는 그럼 탐미에 도취될 수밖에. 그런 관계의 연쇄반응을 작가가 실제적으로 즐겼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인간에게 사랑이 어떤 의미에서 필요조건이겠지만, 사랑 이야기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무언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생산을 담당하지 않았던 귀족 클래스의 사랑놀음에 대한 작가의 자전적 진술이 사실 조금 불편하게 다가왔다. 생존을 위해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자신들의 노동을 팔아야 하는 순간에도 그들은 항상적인 행복에 만족하지 못하고 극한의 쾌락에 진력하고 있었다. 문학적으로는 아름다울 수 있는 단눈치오의 극한의 탐미적인 문장과 서사구조가 사바세계와 동떨어진 느낌이라고나 할까.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사랑과 그에 종속된 요소인 쾌락을 전면에 내세운 이 소설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것은 문학소비자인 내가 너무 현실적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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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21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언제나 쾌와 불쾌사이에서 서성이는 한 마리의 이성을 가진 야수와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