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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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팟캐스트 황금시대 책다방을 통해 프리모 레비라는 유대계 이탈리아 작가를 알게 됐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황정은 작가의 열렬한 레비 사랑 덕분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프리모 레비의 첫 작품인 <이것이 인간인가>를 샀지만 미처 읽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에 출간된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먼저 읽게 됐다. 작가 작품세계의 시원을 밝히는 차원에서라면 전작부터 읽었어야 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마지막 작품부터 거슬러 올라가게 됐다.

 

레비의 책 제목에서 최근 발생한 세월호 사건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상황도 그렇지만, 구조된 자 역시 가라앉은 자의 비극과 고뇌를 짊어지고 살아야 할 운명이라는 것이 홀로코스트 이후 드러난 여러 사례를 통해 드러났다. 어쨌든 이탈리아어를 모르니 그저 시기적절한 타이밍에 제목 한 번 그럴싸하게 뽑았구나 싶었지만, 영어제목을 보니 똑 같기에 이런 우연이 있나 싶었다. 이탈리아 출신 화학자인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 생존자로 인류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대학살의 기록, 홀로코스트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증언한다.

 

그가 들려주는 라거(강제수용소)의 모습은 다시 들어도 비현실적이다.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스트들이 유대인 절멸계획에 따라 게르만 민족 특유의 효율성을 발휘해서 그렇게 끔찍한 범죄를 조직적으로 저질러졌다는 것이 인류사의 비극이다. 모두 8개의 이루어진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는 레비의 초기작 <이것이 인간인가>의 현재진행형의 모습이다. 아우슈비츠로부터 4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과거사에 대해 반성할 줄 모르는 독일인들의 모습이 마지막 장의 편지를 통해 고스란히 들어난다. 하긴 우리 이웃나라는 자신의 태평양전쟁 기간 동안 저질러진 각종 전쟁범죄 자체를 아예 부인하고 있지 않은가.

 

레비가 자신의 작품에서 줄기차게 강조하고 있는 점 중의 하나는 홀로코스트의 본질이 세대를 거치면서 희석화되고, 잊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역사의 평가를 시간에 맡기자는 말이야말로 당대의 가장 무책임한 말이 아닌가 싶다. 시간의 경과가 역사적 사건에 대한 객관성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의적 왜곡과 망각으로 사건 자체를 희석시키려는 그런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하는 의심이 들었다. 이 생각은 역시 우리나라 현대사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화학자에서 문필가 혹은 작가로 전업에 성공한 프리모 레비의 글에는 라거에서의 체험에 대한 분노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 끔찍한 기억을 가지고 죽기 전까지 버텨낼 수 있었던 용기가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홀로코스트가 끝나고, 후대에 제기된 왜 유대인들은 다가오는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고 해외로 도망가지 않았는가, 또 라거에서 탈출하지 못했나 하는 이견에 대해 자신이 대답할 수 있는 범주 내에서 최대한 성실한 답변을 시도한다. 비록 산업혁명을 통해 산업화가 많이 촉진되긴 했지만, 여전히 유럽사회는 농촌사회의 전형이었고, 다른 나라에 가서 산다는 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겠지만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SS무장친위대가 지키는 라거에서 조직적인 탈출이나 저항을 도모하는 것은 거의 자살행위였고, 실패했을 경우 뒤따르는 보복조치는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홀로코스트 시절 대다수 독일인들에 대해 묻고 싶었던 것은 과연 그들은 당시 진행 중이던 홀로코스트에 대해 전혀 몰랐을까? 그리고 대학살에 침묵한 것이 궁극적으로 나치스트의 행위에 찬동하는 결과를 초래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잉태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설사 당시에는 몰랐다고 하더라도, 훗날 통절한 반성이 있었는지 알고 싶었다. 어쩌면 보통의 평범한 독일인들은 대부분 자신들은 홀로코스트에 직접 수행하지 않았다는 핑계로 양심의 면죄부를 받지 않았나 하는 추정을 해본다.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다룬 많은 영화와 다큐멘터리, 소설 등의 미디어를 접하면서 어려서 받은 충격은 이제 어느 정도 완화됐지만 직접 홀로코스트를 체험한 당사자가 남긴 증언은 여전히 파괴력을 가진다. 새로 라거에 도착한 신참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면서 길들이는 야만적 행위로부터 시작해서, 독일식 엄격함의 상징인 침대의 모서리 각잡기와 끝도 이어지는 점호, 배고픔보다 더 참을 수 없었던 갈증 그리고 마침내 물을 발견했지만 모든 동료와 나눌 수 없었던 그런 상황에 대한 작가의 변론 등이 인상적이었다.

 

라거의 가혹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하고 비겁해지는 모습에 대한 상황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무엇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라거의 공식 언어인 독일어를 통한 소통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프리모 레비는 자신의 소중한 양식을 제공하면서 독일어를 배우기도 했다. 물론 라거에서 사용되는 독일어가 괴테나 횔덜린 같은 대문호가 남긴 그것과 많은 괴리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도 놓치지 않는 과학도로서의 예리함도 빠지지 않는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무척이나 더딘 속도로 읽었다. 죽음이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죽음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노라는 프리모 레비의 증언처럼 인류의 비극을 읽는 것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프리모 레비의 냉정하면서도 객관성을 유지한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술 방식은 탁월하다. 그렇게 때문에 희생자로서 당연한 분노조차도 절제하면서 남긴 그의 증언이 여전히 시대를 초월해서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마침 그전에 제바스티안 하프너의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을 읽어서 가해자의 목표였던 유대인 절멸계획의 밑그림을 파악해서 그런지, 피해자의 입장에서 서술한 홀로코스트의 기록을 이해하는데 한결 도움이 됐다. 자, 이제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을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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