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거리에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새벽 거리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딱 1년 만에 다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과 만났다. 작년 이맘때 읽은 <탐정클럽> 이후 1년 만에 신간 <새벽 거리에서>로 다시 다작으로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르 세계에 뛰어 들었다. 한 가지 패착은 어젯밤에 잠들기 전에 아무 생각 없이 이 책을 집어 들었다는 점이다. 순식간에 200쪽을 넘어가는 책읽기 속도에 깜짝 놀랐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느라 아주 고생했다.

올해 원작을 바탕으로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는 <새벽 거리에서>는 불륜에 대한 어느 사내의 단상으로 시작된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이제는 단골 소재로 빠지지 않는 정해진 짝이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불륜은 타이밍의 문제인 것 같다. 나중에 오는 사랑을 막을 수 없다는, 지극히 통속적이다.

멀쩡하게 아내와 딸까지 있는 가장이 훨씬 나이 어린 직장 임시직 직원에 사랑에 빠지게 되는 설정, 정상적이지 않다. 아니 어쩌면 정상 궤도에서 그렇게 일탈해 있기 때문에 자극적이고 재미를 주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그 ‘관계’에 살인이라는 소재가 더해지면서 <새벽 거리에서>는 막장으로 치닫는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출중한 외모로 주변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는 그런 미녀를 등장시키지 않는다. 주인공 와타나베가 사랑하는 나카시니 아키하는 지극히 평범하다. 하지만, 평범하지 않는 매너리즘에 빠진 와타나베의 일상이 궤도에서 이탈한 로맨스의 단초를 제공한다. 친구들과 어울려 술 마시던 어느 날, 야구연습장에서 아키하를 만나고 만취한 그녀를 집에 바래다주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아니 그건 사건 축에도 끼지 못한다. 진짜 사건은 15년 전에 일어났다. 그리고 아키하가 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와타나베. 이제는 더 이상 남자라고 생각하지도 않던 중년 남자에게 다가온 사랑은 그래서 더더욱 치명적이다. 생판 모르는 타인 같이 되어 버린 아내와의 결혼생활, 그렇다고 아내와의 결혼을 끝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면서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이중생활을 하는 가장의 위선을 히가시노 게이고는 충실하게 벗겨낸다. 아주 천천히.

아키하와의 불륜과 어우러지는 그녀의 과거는 책을 읽는 독자를 한 순간에 중독시켜 버린다. 파멸적 사랑과 결합된 ‘메멘토 모리’는 도대체 책을 덮을 수 없게 만든다. 작가가 소설의 곳곳에 배치한 단서로 결말을 예상해 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추리는 하나는 맞았고, 다른 하나는 보기 좋게 틀렸다. 와타나베의 위험천만한 외도만큼이나 결말을 예상하는 스릴은 최고였다.

빈틈을 보이지 않는 구성을 뒷받침하는 건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대화 전개방식이다. 원죄 때문에 아키하에게 한 순간도 당당할 수 없었던 와타나베의 속마음이 속도감 넘치게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남녀간의 ‘사랑과 전쟁’에서 보다 적극적인 감정의 전개를 보여주는 여자 역의 아키하 역시 놀라울 정도로 스스로의 감정을 절제해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15년 공소시효가 끝난 뒤에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결말로 갈수록 아드레날린 때문에 책을 읽는 독자의 심장 박동은 최고조에 달한다. 결승점을 앞둔 경주마처럼 <새벽 거리에서>의 모든 글자들이 공소시효 만료인 3월 31일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한다.

누구나 그렇듯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둘 다 고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 다를 취하고자 할 때 항상 말썽이 생긴다. 사랑이 빚어낸 전쟁을 마다하지 않는 와타나베를 멋지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배신자로 규정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뒤늦은 사랑과 안정을 모두 가지려고 위험한 줄타기를 한 남자에게 돌아가는 건 인과응보라는 사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