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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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작가가 2005년 <카스테라> 이후 5년 만에 내놓았다는 두 번째 소설집 <더블> 비사이드를 읽었다. 모두 9개의 소설로 이루어진 <더블>의 두 번째 권부터 먼저 읽었다. 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그러고 싶었다. 연작소설이 아닌 바에야, 무엇부터 먼저 읽으면 어떠리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다시 한 번 박민규 작가는 글 쓸 줄 아는 양반이라는 생각이 소설을 읽으면서 들었다.

내가 읽은 그의 작품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유일했다. 어려서 삼미 슈퍼스타의 팬이어서 그런지 그의 소설에서 묘사되는 곰돌이 베어스에게 처절하게 연패당하는 슈퍼스타답지 않은 삼미 팬의 심정이 마치 나의 고백처럼 다가오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데뷔작으로 꼽는 천명관 작가의 <고래>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뛰어난 데뷔작이라고 생각한다.

늘 그렇듯이 서설이 길었다. 단편 소설의 핵심은 초반 독자의 몰입이다. 장편 소설과는 달리 서사의 캐릭터와 구조로 단기간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 단편에서는 독자의 흥미를 잃지 않게 하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박민규 작가는 <더블>에서 단박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1번 타자로 등장하는 <낮잠>에서는 상처를 하고 재산도 정리해서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요양원에 자발적으로 들어가서 여생을 보내는 주인공의 삶을 조명한다. 그리고 만난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서사의 중심에 둥지를 튼다. 별이 인간 나부랭이를 헤아릴 수 없으니, 인간이 별을 헤아려야 한다는 노년의 고백은 애잔함 그 자체로 다가선다. 첫사랑은 그저 마음에 담아 두고 있어야 했던가? 요실금으로 기저귀를 차고, 떨리는 옛사랑과 모교를 찾은 나는 그만 실수를 하고 만다. 비루한 일상은 말년의 로맨스마저 허용하지 않는다.

소설집 <더블>에서 가장 재밌게 읽었던 소설을 고르라고 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龍龍龍龍>을 선택하고 싶다. 이제는 잊힌 장르가 된 무협지를 현대에 맞춰 패러디한 이 소설은 금강불괴 영원불사의 몸으로 역사의 격랑을 헤치고 살아온 네 명의 무림 대협을 전면에 내세운다. 일제강점과 독립, 전쟁 그리고 군부독재 같은 파란만장한 한국현대사가 절대 무공을 가진 무림 고수의 회상을 통해 펼쳐진다. 신의와 의리를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던 강호세계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대협의 제자들은 오로지 돈이 최고라며, 무예가 아닌 기예가로 비루한 일상을 가까스로 버티고 있다. 상상에 바탕을 둔 판타지는 현실세계에서마저 힘을 못 쓰고 스러져 버릴 뿐이다.

그 사이에 등장하는 <루디>는 색다른 느낌의 소설이다. 빙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미국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인질극의 주인공이 된 나는 ‘기적의 아기’에게 포로가 되어 갖은 수모를 당하고, 라이플과 권총으로 무장한 냉혈한이 아무런 이유 없이 살인를 하는 장면을 목격해야 한다. 폭력의 극한에서 비로소 구원의 길을 보았다고 해야 할까? 뉴스에서나 볼법한 일상의 폭력을 경험하게 된 어느 방관자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다.

<아스피린>은 정말 한 번 상상해 봤을 법한 판타지의 구현이다. 서울 상공에 거대한 비행물체가 등장한다. 그렇다고 해서 비루한 일상의 삶이 중단되지는 않는다. 먹고 살기 위해 경쟁 피티를 해야 하는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인 주인공은, 수없이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끼니를 때우고 야근해야 한다. 회의와 일의 반복이라는 일상에 이 기이한 비행물체의 등장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급기야 재난지구로 선포되기까지 하지만 주인공의 일상은 바뀌지 않는다. 비루한 일상의 포로가 된 현실에 작가는 예리한 시선을 투척한다.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에서는 무능력한 가장으로 한때는 잘 나가던 차팔이였으나 이제는 영락해서 계약직으로 밀려난 세일즈맨의 비루한 일상이 등장한다. 몇 개월째 차를 팔지 못했으니 당연히 수입이 없을 테고, 카드마저 정지되어 서민에서 빈민으로 사회적 자체강등에 반항해 보지만 수중에 돈 한 푼 없는 암울한 현실은 도대체 어쩔 거냔 말이다. 게다가 거시기마저 서지 않아, 아내가 딜도를 장만했다는 사실에 주인공은 벼랑 끝에서 추락을 경험한다. 한바탕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찜질방으로 도피한 나는 예전에 동료로부터 화성으로 판로를 넓혀 보라는 충고를 듣는다. 경기도 화성? 아니다, 달나라 화성 말이다. 기발하다 기발해.

신자유주의 경쟁이야말로 우리네 삶을 파라다이스로 이끌어 줄 것이라는 프로파간다와는 달리, 주변의 일상은 왜 이렇게 비루하기만 한 것일까. 애인이라고 생각했던 여자의 빨대짓으로 거덜 난 남자는 콩밥을 먹고 나서 살기 위해 대리운전을 뛰고, 산재로 다친 남자는 직장에서 잘려 한강다리 아치에 오르고, 잘 나가던 가장은 영락해서 죽고 싶다고 하니 말이다. 이러한 비루한 일상은 고작 판타지의 세계에서나 기를 펼 수 있다는 묵시일까?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이 잘못된 걸까. 그것은 아마 우리네 삶만큼 복잡하고 해석이 불가할 따름이다.

표지를 보면서 회사 동료가 <복면달호>냐고 물었다. 난 송강호의 <반칙왕>을 떠올렸는데 말이다. 확실히 세대 차다. 비루한 현실에 이런 복면을 씌우면 판타지로 변하게 되는 걸까? 그야말로 엉뚱한 상상이다. 작가의 말대로 깊어가는 가는 가을에 독자를 찾아온 멋진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이제부터는 A Side...

B Side와 마찬가지로 A Side에도 모두 9개의 단편이 실려 있다. 단편을 접하면서 드는 생각인데, 긴 호흡으로 가는 장편보다 단편에 작가의 내공이 더 드러나지 않을까 싶다. 비교적 넉넉하게 캐릭터와 시공간의 배경을 다룰 수 있는 장편에 비해, 단편에서는 짧은 시간에 독자의 관심을 사로잡아야 하는 강박관념이 작가에게 있지 않을까? 물론, 소설을 써보지 않은 어느 독자의 생각이겠지만.

A Side에서도 일상의 비루함은 이어진다. 현직에서 은퇴한 가장은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고, 자식들의 뒤를 돌봐준다. 사업하겠다고 나섰다가 망한 아들의 빚을 갚아주고,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는 딸내미의 임용을 위해 아낌없이 남아 있는 집을 처분한다. 건강검진을 받고, 앞으로 30년 이상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사실에 주인공은 좌절한다. 예전에는 삶의 미덕 중의 하나로 칭송받던 장수를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다는 변한 세태를 반영하는 송가라고나 할까. 부세를 조기라고 우기면서, 시부모님을 대접하는 며느리를 보면서 그저 열심히만 살아 달라는 부탁을 속으로 되뇐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와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남자의 모습이 애잔하기만 하다.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살던 주인공은 병원에서 간암 말기 선고를 받고 낙향한다. 태평양 바다를 유영하던 연어가 고향을 찾듯, 주인공 역시 삶의 마지막을 보내기 위해 고향을 찾는다. 고향이란 그런 것일까? 이렇다 할 고향의 추억을 갖지 못한 이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컨셉일지도 모르겠다. 이십 년 전 친구들과 함께 묻은 타임캡슐을 파내 추억을 곱씹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죽음은 마치 물에서 막 걷어올린 붕어의 마지막 몸부림처럼 시나브로 주인공을 찾아온다. 얼떨결에 살을 섞게 된 옛 여자 동창으로부터 돈을 빌려달란 말은, 죽음이 진행되는 가운데도 살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끈질긴 생명력의 선언처럼 들릴 뿐이다.

행사장 도우미를 하는 여친과 몰래 동거하는 동민 역시 비루한 삶의 주인공이다. 이 이야기를 읽다가 요즘 즐겨봤던 케이블 텔레비전의 <루저전>이 떠올랐다. 주류사회로부터 소외된 주인공들이 지하셋방에서 살면서, 취업과 신분상승을 사다리를 밟고 언젠가는 폼나게 한 번 살아보겠다는 좌충우돌 모험기가 동민의 그것과 묘한 동조를 이루고 있다. 시골 마을에까지 대형마트가 진출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동민의 보스는 기구를 띄워서 홍보하겠다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하지만, 기구 제플린을 하늘로 올려보내는 와중에 기구는 날아가 버리고 동민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기구를 되찾아 오라는 명령 아닌 명령에 비호감 제이슨 형과 함께 출동한다. 은근히 이 모든 문제가 제이슨 형 탓이라고 생각하지만, 동행 길에 제이슨 형에 대한 재발견으로 갈등은 저절로 해결된다. 결말 부분의 요양원 할머니의 등장은 쌩뚱 맞았지만.

지구 멸망을 하루 앞두고 이웃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며 폭음을 하기도 하고, 최근에 개봉한 영화 <프레데터스>의 전주곡처럼 어디선가 끌려와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놈들을 마치 팝콘을 튀기듯이 학살하기도 하고, 극한의 해저에 도전하는 신인류에 대한 묘사 그리고 자신이 전생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육체파 여배우였다는 자전소설에 이르기까지 도대체 박민규 작가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에 그저 감탄할 수밖에. 물론, 너무 낯설어서 소설의 진행을 따라가기에도 급급한 적도 있긴 했지만, 역시 대단한 구라꾼이라는 생각에 잘 정제된 두 권의 소설을 다 읽고 나서는 그저 흐뭇하기만 했다.

개인적으로 야구를 무척 좋아하는데, 책을 읽다가 옥에 티를 하나 발견했다. 자전소설을 표방하는 <축구도 잘해요>에서 마릴린 먼로의 남편이자 메이저리그의 전설로 등장한 조 디마지오가 양키 스타디움에서 유리창을 깰 수 있다는 장담하던 팀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아니라 뉴욕 자이언츠였다. 자이언츠가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로 이사 간 것은, 디마지오가 은퇴하고 나서 7년 뒤의 일이었다.

이 멋진 작가가 다음번에는 또 어떤 소설적 경이로 찾아올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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