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
커트 보네거트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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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출간된 <마더 나이트>를 읽으면서 故 커트 보네거트 선생의 미출간 작들이 나온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근 1년이나 지나서야 비로소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와 만날 수가 있었다. 또 다른 보네거트 선생의 책을 만나려면 새로운 1년을 기다려야 하는 건 아니길 바랄 뿐이다.

독일계 미국인으로 1922년에 미국 인디애나 주 인니애나폴리스에서 태어난 커트 보네거트는 시인, 소설가, 반전운동가 등으로 알려졌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로는 풍자와 해학으로 가득한 블랙 유머 그리고 ‘트랄파마도어’로 대변되는 조금은 황당한 SF적인 요소들로 가득하다.

1965년에 그의 다섯 번째 소설로 발표된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는 남북전쟁으로 거부를 축적한 로즈워터라는 가상의(혹은 실재하는지도 모르겠지만) 가문의 엘리엇 로즈워터를 그 주인공으로 한다. 조상이 남긴 어마어마한 재산이 있음에도, 엘리엇은 고향 인디애나 주의 로즈워터 군에서 의용소방대를 후원하며,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이들을 돕는 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런 엘리엇이 아버지 로즈워터 상원의원에게는 도통 이해할 수 있는 꼴통 아들인 셈이다.

로즈워터 의원은 8,700만 달러라는 거금을 들여 만든 로즈워터 재단을 통해 조상의 재산을 성공적으로 아들에게 상속했다. 미국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는 아는 동생을 통해 어떻게 해서 미국의 부자들이 자신의 대 뿐만 아니라 자자손손 부를 상속할 수 있게 만들었는가에 대해 듣고 난 후에, 그들의 부에 대한 탐욕에 그만 혀를 내둘렀었다. 물론 가능한 한 세금을 적게 내면서 말이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에서 보네거트는 타인이 어느 한 개인을 판단하는 기준이 그 사람의 인간성이 아니라 그가 가진 재산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지적하면서 자본주의 천국 미국의 천박함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다 좋다, 우리의 엘리엇이 그냥 그렇게 인디애나의 시골에서 비록 “사마리안실조증”에 걸리긴 했어도 그런대로 평화롭게 살 수만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의 막대한 재산을 노린 로즈워터 재산의 법률 대리인 중의 하나인 노먼 무샤리란  파렴치한 변호사가 로즈워터 가문의 먼 친척인 로드아일랜드 로즈워터 가의 프레드를 선동질해서 재산 상속을 위한 법정 소송을 벌인다. 로즈워터 의원은 이 가증스러운 시도에 맞서,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인 자신의 아들 엘리엇의 정신이 말짱하고 로즈워터 가문의 상속자로서 손색이 없다는 점을 만천하에 알려야 하는 중대한 임무를 개시한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는 보네거트 선생의 후기 작품에 등장하게 되는 SF적인 요소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초기 작품이다. 물론 훗날 지속적으로 보네거트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삼류 소설 작가인 킬고어 트라우트도 빠지지 않고 등장을 하기는 하지만, 가끔 황당하고 난감한 외계 행성 이야기보다 좀 더 리얼리즘에 가까운 풍자와 촌철살인의 블랙 유머의 아우라는 일품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부자 엘리엇이 인디애나 시골의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정신이상’으로 간주되는 사실에 보네거트는 주목을 한다. 전쟁이라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엄청난 부를 쌓은 이들이, 자자손손 그 부를 상속하기 위해 은행과 법률가들과 결탁을 해서 부의 영속화를 획책하면서도 빈부의 격차나 직업은 신이 정해준 것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요설로 보통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이 모든 것을 주무르는 세상에서는, 타인을 돕겠다는 유토피아적 사고가 일탈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이 백만장자 출신의 주정뱅이 자선사업가가 타인을 돕는다는 지고의 목적과 소방대에 대한 집착의 원인을 작가는 전쟁 중에 바이에른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설명한다. 그것은 마치 보네거트가 직접 체험한 드레스덴 대폭격의 체험으로 평생을 반전주의자로서의 삶을 산 것과 유사하다. 엘리엇은 모두 다 사랑하고 싶은데, 그가 속해 있는 계급은 물론 그의 도움을 받는 이들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소설의 결말에서 그의 마지막 발언에 모두가 경악했던 걸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로즈워터의 유토피아적 사고와 로즈워터 가문을 둘러싼 이야기의 전개가 후반부로 갈수록 로드아일랜드 로즈워터와 노먼 무샤리의 도전 구도로 가면서, 글맛의 뒷심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어찌하다 보니 커트 보네거트의 전작에 도전하게 되었는데, 아직 출간되지 않은 그의 다른 책들도 이른 시일 안에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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