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 2 - 개정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황보석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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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볼리비아 출신의 천재 작가 페드로 카마초가 써내는 엄청난 분량의 라디오 방송대본에 열광하는 페루 사람들의 반응과 무려 14살이나 차이가 나는 마리토 바르기타스와 훌리아 아주머니의 사랑의 결말이 과연 어떻게 결말이 날지 2권에서 나머지 이야기들이 소개된다.

마리토의 가족들이 전도가 창창한 소년과 30대 초반 이혼녀의 사랑에 대해 모두 알고 있으면서, 모른척했노라는 사실이 내부첩자인 난시의 밀고를 통해 밝혀진다. 현실의 이야기와 희대의 천재 페드로 카마초가 제조해내는 이야기들의 범벅 속에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1950년대 군부독재 치하 페루를 바탕으로 청년에서 남자로 성장해 가는 작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선보여준다. 어쩌면 또래의 아가씨 뒤꽁무니를 쫓아 다녔어야 할 청년이 거의 자신의 어머니뻘에 해당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의 만남을 통해 삶의 무게를 알게 되었노라는 마리토 바르기타스의 고백을 통해 잔잔하게 들려온다.

시나브로 사랑에 빠진 두 남녀의 사랑에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마리토의 부모님, 특히 그중에서 아버지다. 그는 미성년자를 꼬드겨 불장난을 저지른 훌리아 아주머니에게 책임을 돌리며,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자신의 아들에게 가차없이 총알세례를 주기 위해 권총을 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가톨릭 국가인 페루에서 이혼한 여인과의 결합에 대한 사회가 보내는 부정적 시선, 다시 말해서 가부장적 시스템에 대한 작가의 신랄한 비판이 숨어 있다.

한편, 위태롭게 페드로 카마초가 써내는 극본들은 드디어 엄청난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분열하고 만다. 발자크의 전례를 핑계로 대서라도 서로 다른 작품들의 주인공들이 크로스오버 하는 현상에 대해 변명을 하지만, 카마초가 쓰는 이야기들은 이미 그 도를 넘어서 버렸다. 극 중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둘쭉날쭉하는 것은 물론이고, 화재나 지진 같은 대참사로 죽은 이들이 다시 등장하지를 않나!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다. 페드로 카마초의 정신분열은 마리토와 훌리아 아주머니의 결혼과정과 그 맥을 같이한다.

우선 결혼을 하게 되면, 자신의 부모님들도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을 인정할 것이라는 잔꾀를 낸 마리토는 닥치는 대로 급전을 마련해서 법적으로 결혼할 수 없는 자신들의 결혼을 성사시켜줄 은인들을 찾아 나선다. 아무런 이유도 묻지 않고 그들을 결혼시켜 주리라고 믿은 읍장은 곤드레만드레 되어 버려서 일을 그르치고, 나중에 그들의 불법결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은 읍장과 이장들은 갖은 핑계를 대서 그들의 청을 거절하고 또 심지어는 뇌물까지도 요구한다. 이 어처구니없고 너무나 힘든 결혼의 과정에서, 바르가스 요사는 청년 마리토가 결혼이라는 사회적 시스템을 통해(물론, 이혼한 연상녀와의 결합이라는 사회적 편견은 차치하고서라도) 한 명의 성인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익살스럽게 그리고 있다.

과연 18살 난 철부지 마리토 바르기타스와 32살 이혼녀 훌리아 아주머니의 좌충우돌 결혼기(結婚記)는 어떻게 결말이 날 것인가?

모두 20개의 이루어진 장[chapter] 중에서 마지막 장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이십 대에 대한 에필로그 식으로 소개가 되고 있다. 앞뒤 가릴 것 없이 오로지 사랑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고 생각하고 매진하던 질풍노도의 시기가 지나고 나자, 그제야 비로소 현실세계로 돌아온 작가의 변명처럼 들렸다.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던 달뜬 목소리가 차가워지고 냉정하게 바뀌면서 지나간 사랑에 대한 회고처럼 다가왔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하지만, 장장 700쪽에 걸친 무모한 사랑의 파노라마가 끝났을 때의 그 허무감이란.

이 소설은 1990년에 존 아미엘 감독의 연출로 미국에서 <튠 인 투모로우>(Tune in Tomorrow)란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 바바라 허쉬, 키애누 리브스 그리고 피터 포크 주연으로 페루 리마는 미국의 루이지애나 뉴올리언스를 배경으로 해서 촬영되었다. 아울러 훌리아 우르키디 아주머니가 자신의 기준에서 바르가스 요사와의 결혼생활에 대해서 저술한 <꼬마 바르가스가 말하지 않은 것>이라는 책도 있다고 하는데 역시 궁금하다.

1권을 읽을 때부터 아주 마음을 곤란하게 만든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번역을 맡은 황보석씨라는 이름이었다. 이 분은 불문교육을 전공하고, 그동안 영문으로 된 책을 주로 번역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요즘에는 스페인문학도 번역을 하시는지 바르가스 요사 작가의 글을 번역했다. 아무래도 영문판 책을 중역(重譯)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는 것이 1권 99쪽에 보면 “오래된 계급”과 “상류계급이 많은”이라는 부분을 보면 스페인어가 아닌 영어로 소개하고 있다. 물론, 스페인어보다는 영어에 대한 이해가 더 쉬울 거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송병선 교수처럼 전문 스페인문학 번역가가 아니라는 점이 눈에 밟혔다.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에 등장하는 바르가스 요사의 또 다른 페르소나 혹은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페드로 카마초의 그 무서운 집념이 빚어내는 예술혼의 정수였던(정신이 분열되기 전까지!) 그의 이야기들은 정말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즐거움을 한 아름 안겨 주었다. 어쩌면 바르가스 요사가 동경하던 파리의 다락방에서의 궁핍한 시절의 애환이 담겨 있을지도 모를 그 이야기들이 슬프지만 재밌었던 것도 사실이다. 오래도록 지속되지 못했던 두 남녀의 러브 스토리가 깊어가는 겨울 녘에 애잔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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