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독서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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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 작가의 5번째 소설집인 <위험한 독서>에 대한 북글을 쓰기에 앞서, 나에게 독서란 무엇인가 하고 물어봤다. 내가 생각하는 독서란? 나에게 독서란 삶의 순간순간들이다. 퇴근 길 전철에서도, 건널목에서 빨간불이 파란불로 바뀌는 그 순간마저도, 막 잠이 오기 전 눈꺼풀이 수마(睡魔)와 사투를 벌이는 순간들에도 나는 항상 책과 함께 하고 있었다. <위험한 독서>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서영채 씨는, 김경욱 작가를 소설기계라고 했는데 그에 비한다면 아마 난 독서기계쯤이 되지 않을까.
 
이 책을 읽기에 앞서 참 색다른 경험을 할 수가 있었다. 그건 바로 김경욱 작가와의 만나게 된 것이었다. 사실 <위험한 독서>에 나오는 8개의 단편 중에서 달랑 두 개만을 읽은 상태에서 급만남을 가지게 돼서,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반면 마치 하얀 도화지에 나만의 독서의 가능성을 그리듯 사전에 <위험한 독서>에 대한 많은 정보를 입수해서 매우 독특한 독서를 경험할 수가 있었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그렇게 작가와의 만남 촬영을 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위험한 독서> 첫 번째 단편으로 나오는 동명의 제목으로 설정 극도 해봤다. 그땐, 이게 뭐지 했었는데 나중에 시간을 내서 나머지 부분들을 읽으면서 아하 그게 그런 거였구나가 절로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역시 개인적 경험만큼 책을 읽는 삶 가운데서 중요한 것도 없는 것 같다.
 
서설이 너무 길었다. 본격적인 북글을 펼쳐 보도록 하자. 개인적으로 단편소설집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일반 장편소설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해서 읽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나의 시선을 단박에 잡은 것은 바로 <맥도널드 사수 대작전>이었다. 현재 우리 사회에 장기적으로 던져진 화두인 고용불안과 비정규직 문제라는 이슈에서 시작되어, 미국식 신자유주의 다국적 기업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맥도널드에서 알바를 뛰는 여자주인공의 이야기다. 맥드널드화 돼서 일하는 가운데 어느 날, 암호 같은 ‘불온’문서가 등장하면서 그녀가 일하는 맥도널드 매장은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에 빠져들게 된다.
 
김경욱 작가의 블랙 유머가 돋보이는 말맞추기 게임의 향연이 한바탕 지나가고 난 다음, 그 격문의 주인공은 바로 제3세계해방전선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어지는 후속테러에 대비한 초긴장 상태에서의 살인적 업무는 개개인 고유의 아우라 대신에 맥드널드화라는 이름으로 대체된 세계화의 잔상으로 투영되고 있었다. 대량소비 대량생산의 시대에, 우리 먹거리 역시 붕어빵 틀에서 찍혀져 나오는 붕어빵들처럼 규격화된 제품의 형태로 제한된 시간 내에 우리의 입에서 씹히고, 위장에서 소화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삶의 모든 면면이 재단되고 있다는 현실에 입맛이 씁쓰름해졌다.
 
독서치료사라는 이색 직업을 가진 화자와 그에게 치료를 받고자 하는 여성의 이야기가 모노톤으로 펼쳐지는 <위험한 독서>에서는 무언가 가슴과 머리를 공명시키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가 분류하는 인간 군은 다음과 같다. 책을 읽는 사람과 책을 읽지 않는 사람. 참 세상을 간단하게 보는구나 싶었다. 아, 그의 직업이 뭐라고 했던가, 독서치료사? 독서치료사는 ‘책으로 마음의 병을 어루만지고 치유하는 사람’(12쪽)이란다. 참 좋은 직업인 것 같다. 우선 환자(?)와 소통하기 위해 그는 독서카드를 작성한다. 그 독서카드라는 몇 개의 문자들의 나열을 통해 얻은 정보로, 그는 환자의 경계심을 무장해제시키고, 환자를 읽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화자인 독서치료사에게, 그를 찾아오는 환자들은 텍스트인 셈이다. 그는 그들을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녀를 읽기 시작한다. 서른두 살의 상담여성은 칠 년 동안 남자친구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다이어트로 자신감을 재확인한 다음, 디지털 카메라로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개인 홈페이지에 담아내면서 ‘밥벌레’에서 멋진 나비로 변해서 정해진 절차대로 독서치료사의 곁을 훌쩍 떠나 버린다. 반면, 독서치료사는 자신이 읽고 있던 텍스트에 감정이입을 시키게 되고, 그녀의 떠난 자리에서 어리둥절해한다. 관계의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그 빈자리를 공허함이 대신한다.
 
한 때 대한민국을 온통 떠들썩하게 했던 황우석 사태를 연상시키는 <달팽이를 삼킨 사나이>에서는, 자궁을 대여해서 대리모로 불임 부부들에게 아기를 대신 낳아주겠다는 어느 사나이와 그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조건상, 그들은 가난하다. 그리고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기 위한 전세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궁 대여에 나서는 아내. 사나이의 사회경제적 무능력은 아내를 제어할 수가 없다. 습한 지하에 사는 그들의 곁에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달팽이,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민달팽이의 존재가 사나이의 눈에는 거슬리기만 하다.
 
결국, 아이를 원하는 불임부부들과 계약서를 쓰고, 아내는 작업에 들어간다. 아무 일 없이 그들의 프로젝트가 수행되어 가던 어느 날, 사나이는 아내로부터 임신하긴 했지만, 쌍둥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 와중에 사나이는 우연히 달팽이를 집어삼키고, 그들의 삶이 아내의 대리모 계획으로 엉망진창이 된 것을 애꿎은 달팽이 탓으로 돌린다. 그리고 아내는 날이 갈수록 인간 인큐베이터에서 어머니로 진화되어 간다. 화장실에서 서로 뒤엉겨 있는 두 마리의 달팽이들을 발견한 사나이는 이것들을 어떻게 처리 하나 하는 생각에 잠긴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김경욱 작가는 대학교 때 우연하게 글을 쓰게 되면서 전업 작가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역시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분이어서 그런지 글을 쓸 적에 가장 즐겁고 평안하다고도 했다. 억지로 글을 쓰면, 독자들이 바로 안다고 했는데 아마도 이는 많은 독서경험을 통해 체험한 것이리라. 그렇기 때문에라도 소설가는 자신의 촉수를 예민하게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던가.
 
<위험한 독서>에서는 책을 읽는 이들이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가를 염두에 두고 집필을 했다고 한다. 수긍이 가는 말이었다. 책을 읽다 보면, 나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했을 텐데 하는 상상을 해보곤 한다. 마치 속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다고나 할까? 작가의 예리함이 폐부를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앞으로 새로운 장편소설 구상 중이라는 김경욱 작가의 다음 작품은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우리를 찾아오게 될지 벌써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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