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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 - 상처에서 치유까지, 트라우마에 관한 24가지 이야기
김준기 지음 / 시그마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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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트라우마(trauma)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에 대해 확실한 개념을 잡게 되었다. 솔직히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트라우마가 과거의 발생했던 사건 후에 나타나는 증상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그 사건 자체였다. 내가 트라우마라고 생각했던 건 바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였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트라우마 연구의 전문가라는 김준기 박사는 이 트라우마와 PTSD를 24편의 영화를 통해 풀어나간다. 영화와 심리학 에세이와의 만남이라 상상만 해도 재밌지 않나? 예전에 영화 리뷰와 분석을 하는데 있어서 몇 가지 방법론에 대해 배운 적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심리학적 분석이었다. 당시 드라마로는 <앨리 맥빌>을 그리고 영화로는 <샤인>을 분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24편의 영화중에 <샤인>을 보고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일단 이 책은 잘 읽히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나의 관점으로 볼 때, 바로 그 “좋은 책”의 범주에 들어가는 책이다. 그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영화들을 저자가 분석적으로 다룰 때는 그 기시감으로 인해, 그렇지 않고 아직 만나지 못한 영화들을 소개할 적에는 있는 그대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이 책을 보고 나서, 꼭 봐야지 하는 영화들의 목록이 늘어났다. 과연 책에서 읽은 내용들이 접하지 못한 영화들에서는 어떻게 연출이 되었는지 너무 궁금했다.

우선 영화중에서 역시 리뷰를 썼던 <샤인>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책의 뒷부분에서 작가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어린 시절의 애착관계와 애착관계에 있는 사람의 지지와 공감적 반응을 꼽는다. 대개 경우에 있어, 그 애착관계에 있는 사람은 바로 부모와 형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영화 <샤인>에서는 주인공 데이비드 헬프갓의 아버지가 트라우마 그 자체로 작용하고 있다.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을 완벽한 피아니스트로 키워 내기 위해, 칭찬과 격려 보다는 모욕과 폭력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다. 그 결과 어린 데이비드는 자신의 천재성이 비로소 꽃피우게 되는 순간, 그동안 억눌려 왔던 자아가 파열을 맞이하게 된다. 도대체 이럴 경우에 해결책은 시간 뿐이라는걸까?

다음으로 인상적이었던 분석은 베트남전에서 돌아온 영웅을 다룬 <람보>였다. 우리에게는 1편보다 2편이 더 유명하지만, 1편 역시 단순한 스탤론표 액션 영화가 아닌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반전영화적인 성격이 농후하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전쟁이라는 엄청난 트라우마를 겪고, 본국으로 돌아온 수많은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처럼 람보 역시 현실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명분 없는 전쟁에서 베트남 국민들을 상대로 한 추악한 전쟁을 치렀다는 미국인들의 냉소적인 시선은 부담스럽기만 하다. 전쟁을 치르면서, 급격한 인격의 파괴를 경험한 이들이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하기가 참으로 난망하다는 사실을 영화 <람보>는 그의 절규를 통해 조용히 보여준다.

긍정의 힘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극복을 말하는 <포레스트 검프>의 경우에는 지나친 개연성과 미국예찬 탓에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가 않았다. 맷 데이먼이 자신의 지기 벤 어플렉과  직접 각본을 맡았다는 <굿 윌 헌팅>은 여전히 내게는 탐구의 대상인 채로 남아 있었다. 개인적으로 의심과 경계의 벽을 허물고, 소통의 중요성을 잘 톺아낸 수작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조금은 낯선 제목의 <미스 리틀 선샤인>은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영화였다. 김준기 작가는 트라우마가 우리네 삶에 영향을 미치건 어찌 되었던 간에, 우리들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미스 리틀 선샤인>은 이 책을 통해 내가 가장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개개인의 차이에 따라 그것이 나에게는 트라우마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사실이 생소하게 다가왔다. 그 중심에는 바로 소통과 통섭이라는 조금은 거창해 보이는 주제가 가로 놓여 있었다.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이들과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야말로 치유의 가장 첩경이라는 저자의 주장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상호간의 소통을 통해 타인이 가지고 있는 PTSD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면 그들을 돕는데 훨씬 용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본인이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우선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무엇도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에 기반을 두는 “변연적 공명”(limbic resonance)을 트라우마에 의해 상처받은 신경 회로, 좀 더 거창하게는 상처받은 영혼에 대한 처방전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책 읽기는 쉽고 즐거웠지만,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참으로 심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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