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니걸스
최은미 지음 / 디오네 / 2009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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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나중에 북글을 쓸 적에, 제목에 들어간 “horny"가 주는 노골적이면서도 도발적인 의미를 미국출신의 랩밴드 2 Live Crew의 유명한 곡에 대한 소개를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결말을 다 알게 된 지금의 감정은 전혀 그럴 마음이 사라져 버렸다.

책의 표지에 나온 대로 “호니걸스”를 발정난 처자들 정도에 비유하는 출판사의 문구가 현대판 어느 자유처자의 엽색행각을 유머러스하게 다룬 책이 거려니 하는 생각을 했다. 너무나 예상을 벗어나는 충격적인 결말 때문에 북글의 전개가 도무지 자연스럽지가 않다.

9번째이자 마지막 에피소드를 읽기 전까지 참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모두 공중으로 휘발되어 날아가 버린 느낌이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치밀한 구성과 캐릭터들의 배치가 아주 마음에 들었었는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나친 한 마디가 나중에 이렇게 어마어마한 반전을 불러올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어쨌든 다시 정신을 차리고 북글을 써 보자.

<호니걸스> 클럽 멤버이자 주인공/화자인 지정인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커플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올해 33살의 독신녀이다. 그녀의 친구이자 호니걸스 클럽 멤버로 라니와 재순이 등장한다. 각자 커리어 우먼과 페미니스트의 삶을 사는 그녀들의 소소한 일상이 자그마치 다섯 명이나 되는 남자들을 그야말로 요일팬티 돌려 입듯 둘러메치는 정인의 일상과 오버랩 된다.

그리고 남녀 간의 밀고 당기는 관계를 라니가 다니는 성당의 마인마 신부가 걸쭉한 입담으로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어디 그것뿐인가, 특이한 캐릭터들은 차고 넘친다. 뉴욕의 할렘에서 원조 춤을 배운 세계적인 댄스 테라피스트 닥터 크림빵도 등장을 한다. 출중한 미모와 뛰어난 머리를 자랑하는 정인의 고모 지라경도 한 수 거든다.

정인의 남성편력을 읽으면서 입버릇처럼 등장하는 5명의 남자들이 모두 소개될 줄 알았다. 작가의 친절함을 너무 기대했던 걸까? 미스터 그레이와 미스터 블랙으로 정인의 낚시소개는 끝이 난다. 여성작가답게 역시 세심한 여성들의 심리묘사를 하는데 있어서, 뛰어난 발군의 실력을 보여 준다. 집요하게 우리 사회의 NO 1 규범으로 결혼제도를 지목하면서, 집요한 공격을 감행한다. 그에 비하면 모노가미에 대한 그녀의 냉소는 차라리 귀엽기까지 하다. 물론 이것조차 결말의 반전을 위한 예비겠지만 말이다.

작가가 책의 곳곳에 심어 놓은 암시와 복선들을 잘못 해석한 내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책을 보면서 미드 <섹스 앤 더 시티>에 나오는 요란 법석한 4총사가 벌이는 파티와 멋진 남자들이 끊이지 않는 판타지 세계가 떠오른다고도 생각했지만, 그것조차 결말 앞에선 부질없는 한낱 신기루에 불과했다.

어느 노래 한 곡으로 정인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도발시킨 공기사는 그녀의 내담자가 되는 순간, 급작스럽게 소설의 궤도에서 이탈한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말이다.

가벼운 칙릿 소설 같은 분위기를 기대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결말로 트라우마에 빠져 버린 느낌이 들었다. 더 할 말이 없다. 작가가 책의 어디에선가 표현한 대로, 사랑은 영원한 불협화음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고통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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