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기행 1
후지와라 신야 지음,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402일 간 유럽대륙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시작을 해서 자신의 고국 일본에 달하는 엄청난 여정을 일본 출신의 포토 에세이스트 후지와라 신야가 종이와 사진으로 표현해낸 책이다. 우리나라에 지난 1993년과 1994년에 각각 <인도방랑>과 <티베트방랑>이 소개가 되긴 했지만 절판이 되어서 이제 더 이상 접할 수가 없게 된 마당에 그의 이름을 알리게 된 <동양기행>의 출간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의 분류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아시아 대륙은 인도를 기점으로 해서 서쪽의 광물적 세계, 다시 말해서 이슬람권과 동쪽의 식물적 세계로 나뉜다고 한다. 그 이슬람권에서도 터키는 이웃의 다른 이슬람 국가들과는 그 성격을 달리 한다. 예전에 메메드 2세가 기존의 콘스탄티노플(비잔티움)을 정복하면서 오스만 제국에 편입된 이스탄불을 유럽 대륙에 걸치고 있으면서도 자기네들이 유럽국가라고 생각하고 있는 터키. 그런 동서양의 교차로라고 할 수 있는 이스탄불의 겨울날 작가는 긴 여정을 시작한다.

중동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막대한 석유자원을 가지고 있지만, 유독 터키만은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이 책이 씌여지던 80년대 초반, 오일쇼크의 여파로 인한 불경기에 심각한 인플레이션, 테러 그리고 파업이 후지와라 신야가 터키에서 받은 인상들이었다. 그리고 시베리아 한랭기단의 영향으로 인한 나그네들에게 치명적인 추위 또한 사진들을 장식한다.

대도시 이스탄불 속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작가의 모습과 교차되는 사람들의 이미지는 여행의 빙점 속에서, 사람들의 온기를 찾아 나선 작가의 그것이 투영되고 있었다. 그는 길 위에서 만난 그 어느 누구와도 소통을 원하고 있었다. 터키의 수도 앙카라의 어느 음식점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들을 거리낌 없이 먹어치우는 여성과의 만남에서도 말이다. 그 옛날 전 유럽을 무슬림화의 공포에 몰아넣었던 오스만 터키의 영광은 이름도 알 수 없는 식당의 진수성찬으로 오늘날 다시 구현되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음식들은 양머리를 정확하게 반으로 쪼갠 코윤 바쉬유(양머리 구이)와 양의 배설물이 들어가 있는 이쉬켐베 초르바스(양내장 수프)였다.

그만의 진기한 여정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살을 에우는 추위를 피해 지중해 연안의 안탈리아의 뒷골목에서 본 사진 속의 젤린이라는 여자를 카메라에 담고 싶다는 생각으로 다시 앙카라 행 버스에 몸을 싣는 후지와라 신야. 결국 그녀가 아니 그가 성전환여자 수술을 했다는 남자 핫산 타슈테미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흑해의 바다 색깔이 검은 색인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흑해 연안의 시노프라는 어항을 찾는다.

개인적으로 많이 기대했던 터키 외의 본격적인 이슬람권 나라들인 시리아-이란 그리고 파키스탄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실리지 않아 못내 아쉬웠다. 하긴 그 400일간의 일정을 두 권의 책으로 낸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동양기행 1권은 지상에서 가장 더러운 도시라는 인도의 캘커타에서 마무리 지어진다.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고 긴 여행길에 나선 후지와라 신야는 이 ‘동양기행’을 통해 기존의 사물들을 찍던 모습에서 점차 사람들에 대한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아니 사랑할 수밖에 없었단다. 그의 빛바랜 오래된 사진들을 보며, 어느 문화권에 있든 간에 사람들의 삶은 영위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그가 찍은 사진들은 그가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의 생생한 현장을 담아내고 있었다. 그 장소는 시장이 되었건 식당 혹은 유곽이 되었건 간에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가 그 순간에 그들과 함께 했었다는 점이다. 2,000년에 시저가 한 표현을 빌리자면, “왔노라, 보았노라, 찍었노라”라고 할 수가 있겠다.

책을 보면서 아쉬웠던 점은 글을 읽고 있는데 가운데 사진이 삽입이 되어 있어서, 사진을 보다 보면 앞에 읽던 내용들을 잊게 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터키 리라 같은 현지 화폐를 왜 일본 돈인 엔화로 굳이 표시했나 싶었다.

1권에서 후지와라 신야는 광물적 세계의 탐험을 마치고, 비로소 식물적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