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톈 중국사 10 : 삼국시대 이중톈 중국사 10
이중텐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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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티드 드럼>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 한 권만 달랑 빌리는 게 좀 아쉬워서 서가를 거닐다가 이중톈 선생의 <삼국시대>를 발견했다. 내가 또 삼국지라면 또 사족을 못 쓰지. 자그마치 36권 중에 1/3 지점 정도를 달린 모양이다. 분량도 적고 해서 하루 만에 다 읽었다.

 

저자는 우리가 삼국시대에 대한 상당 부분이 나관중이 저술한 삼국연의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처음부터 주지시킨다. 삼국연의에서 다루는 가장 핵심 코드는 바로 충의다. 중국 민중은 예로부터 성군과 청관을 꿈꾸어왔다. 그런데 그 두 가지는 정말 이루어지기 힘들었다. 그래서 협객의 이미지가 더해지면서 대중의 판타지에 편승했다. 현실이 괴롭다면, 그런 환상이라도 품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중국사를 대변하는 삼국연의가 동아시아 세계 더 나아가서는 전 세계에서 아직까지도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다는 비결을 엿볼 수 있었다.

 

이중톈 작가는 계급주의적 시선에서 시대의 흐름을 조망한다. 진한시대의 귀족지주의 시대가 저물고, 바야흐로 사족지주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주장이다. 평민계급 중에서 전문 관료 집단으로 상징되는 사족지주 계급은 동한 말, 외척과 환관의 발호로 시작된 천하대란 시절을 맞이한다. 사세삼공 명문가문 출신의 본초 원소는 환관과 외척 세력을 주살했지만, 서량의 동탁이라는 늑대를 도성으로 불러들이는 치명적 실수를 범했다. 어린 황제 유변을 폐위시키고, 진류왕 협을 헌제로 옹립한 동탁은 자신에게 비판적이긴 했지만, 사족계급을 경계하면서 전횡을 휘둘렀다. 이런 동탁과 달리 처음부터 사족계급을 경멸한 난세의 간웅 조조는 처음부터 부상하는 새로운 사족계급과 같은 배를 탈 수가 없는 운명이었던 모양이다.

 

조조는 위공 그리고 위왕을 거치면서 한나라 황제를 능가하는 권력을 추구했지만, 끝까지 찬탈자의 오명은 쓰지 않았다. 다만 후계자 조비가 선양이라는 방식으로 헌제를 폐위시키고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 동탁에 반대하는 관동 기의의 선봉으로 역사의 무대에 나선 조조는 둔전제라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방식으로 군사와 농사를 병행하는 제도로 경쟁자들을 압도했다. 전란의 시대, 병사들을 먹이는 문제는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였다. 조조보다 앞서 북방을 제압한 조조와 원소의 경쟁은 관도대전으로 결판이 났다.

 

조조는 한황실을 대신하는 새로운 제국의 건설 대신 법가적 서족정권이라는 웅대한 이상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시대정신에 비해 너무 이른 시도가 문제였을 따름이었다. 서족정권의 시대는 수당 시대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원소는 조조 같은 이상 대신 시류에 따른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었다. 이런 집단이 압도적인 무력에도 불구하고, 조조에게 패하는 건 시간문제였을 따름이다.

 

중원에서 조조와 원소가 그렇게 자웅을 겨루었다면, 남방에는 강동의 손권이 있었다. 그리고 나이 오십줄이 되도록 근거지 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떠돌아 다니던 유비가 형주자사 유표의 그늘에서 버티고 있었다. 훗날 중원의 위나라, 강동의 오나라 그리고 서촉의 촉나라로 구성되는 삼국시대 정권은 모두 비사족정권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위나라와 촉나라와 달리 오나라는 외래정권임에도 불구하고, 기존 강동의 사족집단을 포용하면서 역설적으로 삼국 중에 가장 오래 정권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 이와는 달리 촉나라는 끝까지 세 개의 집단으로 이루어진 지배계급을 공평하게 대우하지 않으면서 결국 망국의 길을 걷게 된다. 위나라의 침공보다 내부의 기존 익주집단의 분탕질이 망국의 가장 주된 요인이라는 점을 저자는 냉철하게 꼬집는다. 위나라의 침공 앞에서 후주 유선에게 오나라에 나라를 바칠 게 아니라, 대국 위나라에 나라를 넘겨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초주의 경우를 보라. 나라 따위야 상관없고 오로지 자신들의 계급 유지에 연연한 모습에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닌가 말이다.

 

촉한 선주 유비와 제갈량의 관계도 삼국연의에서 다루는 것과 상당 부분이 다르다는 점도 이중톈 저자의 주장이다. 적벽대전으로 조조의 남하를 막아내고, 공명이 유비에게 설파한 융중대를 실현한 유비 집단은 형주의 수비를 관우에게 맡기고 파촉정벌에 나선다. 이후 유비의 왼팔과 오른팔은 방통과 법정이었다. 유비가 관우의 무모했던 양번전쟁으로 형주를 상실하고, 복수전인 이릉대전에 나설 때가지 공명의 모습은 역사에서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후계 문제와 나라까지 통째로 공명에게 맡긴 유비의 선택이야말로 무수한 실책이 난무했던 선주 유비의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노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조자룡의 유비에 대한 충절과 신기에 가까운 전장에서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관우-장비-마초-황충과 같은 일등급 예우를 해우지 않았다는 점도 의문이다. 연의에 나오는 오호장군 중에 조운의 자리는 없었다. 촉한은 처음부터 위기의 정권이었기 때문에 내환을 다스리기 위해 공명은 이릉대전 패전 이후, 오나라와 동맹을 맺고 위나라만을 상대로 북벌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저자는 기술한다. 중원에 비해 절대적으로 떨어지는 국력을 가지고, 다섯 차례나 되는 북벌을 시도한 것이 불필요하게 국력을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단합을 위한 어쩔 수 없는 도전이었다는 것이다.

 

망국의 군주 후주 아두 유선이 우리의 생각과 달리 멍청한 군주가 아니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공명의 사후, 장완과 비위를 중용해서 국가경영을 한 점을 보라. 비록 나라는 망했어도, 항복해서 낙양으로 간 뒤 위나라의 뒤를 이은 진나라 시절까지 살해당하지 않고 천수를 누린 점만으로도 한 때 천자였던 후주의 처세술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이중톈 작가는 삼국시대의 전반부는 노선 투쟁이었다면, 후반부는 삼국간의 치열한 권력투쟁이었다는 주장을 전개한다. 사실 시대적으로 보면 별 볼 일 없는 시대일 수도 있었지만, 나관중의 연의라는 문학적 첨가제가 듬뿍 뿌려지면서 실제 이상으로 대중에게 읽히게 되었다는 점을 예리하게 짚어냈다. 흥미로운 접근 방식이 아닐 수 없다.

 

도서관에 다음 순서인 11권 위진풍도가 없던데,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읽어야 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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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04-15 14: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가끔 케이블에서 이중텐작가의 삼국지 강의를 듣는데 새로운 시각으로 삼국지를 조명해서 무척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나는데 책이 나왔는지는 몰랐네요.한번 읽어봐야 되겠네요^^

레삭매냐 2019-04-15 17:34   좋아요 0 | URL
이중톈의 <삼국지 강의>가 진짜 강의로도
있는 모양입니다.

한 번 보고 싶군요. 지금 막 유튜브로 찾아
보니 있네요 :> 책하고는 또 다른 느낌이
겠죠.

카스피 2019-04-16 08:01   좋아요 1 | URL
아무래도 TV강의 형식이다보니 책으로 읽는 것보다는 눈과 귀로 보고 듣다보니 머리에 쏙쏙 강의가 들어오는것 같아요^^

겨울호랑이 2019-04-15 1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반적으로 알려진 삼국지연의의 관점이 아닌 삼국지의 경제적, 정치적 해석이 새롭게 느껴집니다^^:)

레삭매냐 2019-04-15 17:36   좋아요 1 | URL
오함 선생의 <주원장전>처럼 마르크스
주의에 입각해서 원명 교체기를 민족
해방전쟁의 시각으로 보는 그런 느낌
일까요?

말씀해 주신 대로, 색다른 시선에서
접근 방식이 마음에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