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 리브로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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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세기적 전환기에 한 기회주의자가 살았다. 중국 역사에 풍도가 있었다면, 프랑스 대혁명 시절에는 그에 비견할 만한 인물인 조제프 푸셰가 있었다. 선원집안 혹은 슈테판 츠바이크에 따르면 잡상인 집안 출신의 푸셰는 십여 년간 오라토리오회 소속의 사제교사였다. 비열한 기회주의자는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면서 격변의 시절을 뛰어넘은 변절과 배신의 귀재였다. 모름지기 역사는 영웅들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츠바이크가 쓴 푸셰의 평전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다. 프랑스 대혁명 같은 난세야말로 푸셰 같이 파렴치한 철면피 같은 인물들에겐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의 순간들이 아니었겠는가. 그런 그에게 츠바이크는 고도의 심리전이라는 방식으로 접근을 시도한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는 법이다. 부르봉 왕가를 정점으로 하는 프랑스 사회는 철저한 신분제 사회로 계급간의 원활한 통로가 원천 봉쇄되어 있었다. 당연히 사회적 사다리에 오르지 못한 유능한 다수 평민들의 분노가 치솟았고, 둑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역시 평민 출신이었던 조제프 푸셰는 유일하게 평민들에게 열려 있던 성공의 기회였던 교회 조직, 오라토리오회 소속의 교사로 수학과 물리학 그리고 라틴어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며 평생 그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근면과 엄격한 자제력을 습득하게 된다. 그는 진정한 절제의 화신이었다. 바로 이런 덕목이야말로 세기적 전환기에 꼭 필요한 것들이 아니었을까.

 

본능적 직감으로 다음 직업으로 정치인을 선택한 푸셰는 고향 낭트를 대표하는 국민의회 의원으로 프랑스 역사에 첫발을 내딛는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공화주의 신념이 아니었다. 오로지 승자 혹은 다수의 편에 서서 자기생존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정치활동 초반에는 자신의 지역구인 낭트 사람들의 성향을 대변하는 온건 지롱드파의 일원이었지만, 루이 16세의 처형 표결에서 찬성으로 돌아서면서 ‘국왕 시해자’라는 오명과 함께 기회주의적 일신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푸셰의 이런 성향은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아라스 출신 변호사 막시밀리앵 드 로베스피에르의 엄격한 도덕주의 그리고 청렴거사로서의 면모와 전혀 맞지가 않았다. 로베스피에르와 한 때 의형제 사이기도 했고, 누이동생 샤를로트와 약혼을 했다는 설도 있지만 그 둘은 태생적으로 화합할 수 없는 캐릭터였다. 푸셰의 악명을 프랑스 혁명 전국에 널리 알리게 된 계기는 이전 교회 약탈자로서의 면모와 더불어, 혁명 초기 가장 위급했던 리옹 반란을 진압한 뒤 보복임무를 띠고 파견의원의 신분으로 리옹에서 그가 했던 일이었다. 산탄 난사라는 기발한 방식으로 자그마치 2,000명에 달하는 반혁명분자들을 처형하면서 “리옹의 대량학살자”라는 원치 않는 별명을 얻게 되었지만, 반혁명 기도를 성공적으로 분쇄한 점은 당시 공포정치를 선도하던 공안위원회에게 인정을 받았다.

 

자 이제 푸셰가 세계사의 무대에 본격적으로 오를 워밍업이 끝난 셈이다. 당대 최고 권력자 로베스피에르와의 대결에 앞서 무신론자이자 공산주의자로 변신한 그가 발표한 급진적인 공산주의 훈령(1793년)은 혁명의 반동세력과 유산계급을 공포에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훗날 프랑스에서 막대한 재산을 이룬 자본가이자 수많은 밀정을 부리는 경무대신으로 변신하게 될 푸셰가 과연 아무리 목숨을 구하기 위해 못할 짓이 없었다는 혁명 시기에 이런 공산주의적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면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공화국 혁명수호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로베스피스에르, 당통 그리고 마라 같은 혁명가들과는 달리 푸셰는 언제나 자신의 안위만을 염려했기에 이번에는 급진적 자코뱅당원으로 변신하는데 성공한다. 모사꾼다운 특유의 권모술수를 동원해서 로베스피에르에게 밀려나게 되지만, 자코뱅 클럽 총재로 선출되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푸셰의 다음 타깃은 바로 혁명의 아이콘 같은 존재였던 로베스피에르였다. 오만불손한 독재자이자 청렴거사였던 로베스피에르의 언행은 많은 이들을 그의 적으로 만들었다. 혁명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로베스피에르나 당통 혹은 마라 같은 혁명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무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공화국의 대의를 위해 자신처럼 살라는 로베스피에르와 그의 제자 생쥐스트와 쿠통 같은 이들이 얼마나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다만 공포의 단두대 칼날이 번뜩이는 동안, 반대파들은 숨을 죽이고 있었을 뿐이다. 바로 이런 공간 속에 음모의 괴수 푸셰의 감언이설이 침투해 들어왔고, 푸셰는 한껏 자신의 실력을 발휘해서 훗날 테르미도르의 반동으로 불리게 되는 탈리앵, 바라스 그리고 부르동의 탄핵의 무대감독으로 맹활약을 펼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츠바이크의 상상력이 빛을 발한다. 사실 역사에는 총무대감독 푸셰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지만, 역사에 드러나지 않는 푸셰가 연출한 반역의 연대기를 논리적 추론으로 재구성한다. 어이없게 진행된 로베스피에르에 대한 탄핵과 그의 죽음으로 영웅적 혁명의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폭군의 죽음에 파리 시민들은 예전에 피렌체에서 사보나롤라의 경우처럼 환호했고, 반동 세력이 전면에 등장해서 수많은 피를 흘리고 진행된 혁명의 과실은 간상배와 모리배들에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혁명이었단 말인가?

 

한편, 푸셰는 자신의 정치적 변신을 거듭할 때마다 항상 희생양을 만들어냈다. 쇼메트와 콜로 데르부아, 바뵈프 그리고 훗날에는 탈레랑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정치적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는 신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테르미도르의 반동 이후, 수년 간 정치에서 배제되어 원하지 않던 유배생활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시절은 푸셰에게 혹독한 가난과 빈곤으로 점철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그러던 중, 5인집정관 대표선수였던 바라스에게 픽업되어 이번에는 그의 밀정/사설탐정으로 활동을 개시하게 되는데 이게 바로 푸셰에는 정치적 재기를 위한 신의 한수였다.

 

음모의 괴수이자 변절의 달인, 철면피 같은 기회주의자였던 푸셰는 정보가 권력의 원천이라는 점을 바로 깨닫게 되었다. 아울러 권력이 돈을 창출하고, 다시 돈이 권력을 만들 수 있다는 마키아벨리의 수제자답게 비로소 권력의 속성을 깨달았다. 그의 배신이 어디 한두 번으로 끝났던가? 바라스의 밀정으로 최고 권력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 코르시카 출신 포병중위 보나파르트에게 이번에는 줄을 대기 시작했다. 혁명기의 혼란을 일축할 수 있는 무력을 보유한 강력한 군대 그리고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에 대한 대중의 갈망을 푸셰의 정치적 오성이 감지해냈다. 보나파르트의 쿠데타 기도를 모를 리가 없었던 경무대신 푸셰가 오히려 미래의 황제의 음모를 묵인하고 조장했다. 푸셰의 우군 중에는 미래의 황후 조세핀이라는 거물도 있었다.

 

푸셰의 보이지 않는 조력으로 프랑스 최고 권력을 얻는데 성공한 나폴레옹은 자신에게 절대 충성을 맹세하지 않는 푸셰를 신뢰하지 않았다. 과연 천재는 인물을 알아본 모양이다. 그리고 아니 천하의 푸셰가 코르시카 촌뜨기에게 무슨 이유로 충성한단 말인가? 아무리 나폴레옹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푸셰를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독재자는 푸셰에게 막대한 자금을 주는 것으로 그를 현직에서 조용히 은퇴시킨다. 막대한 자금과 봉토를 하사받은 푸셰는 자신의 영지에 조용하게 은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당시 정계에 복귀하는 건 단지 시간문제일 따름이었다. 결국 제위에 오르고 싶어 하던 나폴레옹에게 꼭 필요했던 인재인 푸셰는 경무대신으로 복귀하는데 성공한다.

 

자 항상 대세에 편승해왔던 기회주의자가 이번에는 전 유럽을 호령하는 황제에게 진정한 충성을 맹세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이 기묘한 주군과 신하 사이에는 전혀 신뢰가 존재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상호간의 필요에 의한 관계였기 때문이다. 다만 전쟁 천재 황제는 장기판의 또 다른 말인 귀족출신 외무대신 탈레랑을 이용해서, 개와 원숭이 사이 같은 두 대신으로 하여금 서로를 견제하도록 하면서 정국을 이끌어 나갔다. 다만 견원지간의 두 대신이 자신을 적으로 삼는다는 가정은 없이 말이다. 자신이 스스로 별이 되고 싶어 하는, 아니 전설이 되고자 했던 나폴레옹은 이미 혁명의 계승자였던 시절을 끝장내 버렸다. 자신만의 끝없는 전쟁에 수많은 프랑스 청년들을 동원하면서 그에게 환호하던 대중들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일족에게 왕관을 주기 시작한 가장 의미 없었던 1808년 스페인전쟁의 책임을 탈레랑에게 돌리는 나폴레옹의 모습에서 몰락의 전조가 보였다. 그리고 예리한 촉의 보유자 푸셰가 이것을 몰랐을 리가 없겠지. 다시 한 번 배신의 계절이 예고된다.

 

나폴레옹이 제위에 올라 있는 동안에는 그에게 충성하는 척하면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영국과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 천재황제에게 보고도 없이 단독강화를 했다가 다시 직위에서 해임되는 불운을 맞기도 한다. 독재자 나폴레옹 역시 러시아 원정에서 전 유럽을 호령했던 60만 대군 가운데 정예병사를 날카로운 얼음의 칼날 앞에 잃어버리고 마침내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푸셰가 가만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자신의 정보망을 동원해서 나폴레옹의 몰락을 예견하고 루이 18세에게 권력을 넘기려는 공작을 시도한다. 도대체 이 남자의 변신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다. 오로지 권력만을 향하는 해바라기 같은 스타일이 바로 푸셰의 종착점이 아니었을까.

 

제정과 부르봉 왕가의 복귀라는 도박판에서 타고난 도박꾼 푸셰는 루이 18세에 줄을 서면서 다시 한 번 자신의 능력을 만천하에 알린다. 엘바 섬에서 600명의 수하를 데리고 본토에 상륙하면서 다시 한 번 재기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천재황제의 운명이 3개월 안에 결판날 거라는 것을 귀납적 방식으로 예언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이번에는 동맹군 편에 서서 카르노를 배신하고 대권을 루이 18세에게 넘기고, 경무대신 자리를 보전하는 신기에 가까운 변절 실력을 다시 한 번 만방에 과시하는 푸셰. 과연 역사의 시간은 평생 변신을 거듭한 모략가의 편이었단 말인가.

 

모든 악당들의 말로가 그렇듯, 푸셰의 그것도 비운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번에는 ‘국왕 시해자’라는 오명을 안은 푸셰의 과거를 절대 잊을 수 없는 한 사람의 격렬한 반대가 부르봉 왕가와 루이 18세의 결정에 주효했던 모양이다. 그 인물은 바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딸이었던 앙굴렘 공작부인이었다. 결국 정적이었던 탈레랑에 의해 고상한 방식으로 권좌에서 끌어져 내린 푸셰는 가족들과 함께 드레스덴과 프라하, 린츠 그리고 트리에스테로 이어지는 실각한 대머리의 초라한 모습의 망명자로 전락하게 된다.

 

사제교사에서 급진적 공화주의자, 무신론자, 리옹 훈령이라는 공산주의 선언을 했던 공산주의자, 밀정의 우두머리, 경무대신 그리고 오트란토 공작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변신을 거듭했던 조제프 푸셰는 모두의 무관심 가운데 망명지 트리에스테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냉정한 목소리로 저술한 푸셰의 평전을 통해 나는 그 어떤 역사도 영웅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과연 승자의 편에 서지 않고, 초기 자코뱅 당원으로서 가졌던 혁명의 신념대로 살았다면 정당한 역사의 평가를 받았을 지 궁금해졌다. 아마 그러지 않았으리라. 로베스피에르와 나폴레옹처럼 한 시대를 주름 잡은 걸출한 영웅들과 맞장뜬 기회주의자 조제프 푸셰의 파란만장한 스토리는 확실히 흥미진진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나는 이제 에릭 홉스봄의 삼부작 시리즈에 다시 도전할 때가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전에 읽다만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전기부터 읽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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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4-11 2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은 없지만, 츠바이크가 쓴 마리앙투아네트를 가지고 있어요.
나중에 그 책을 다시 읽어야겠어요.
레삭매냐님, 오늘도 좋은하루 보내셨나요. 날씨는 점점 따뜻해지고 있습니다.
편안한 하루 되세요.^^

레삭매냐 2019-04-12 09:52   좋아요 1 | URL
전 <마리 앙투아네트> 가지고 있는 지도 모르고
헌책방에서 다시 샀지 뭡니까... 아유 참 -

그래서 읽다가 다른 책들이 우수수 쏟아지는 바람
에 잠시 멈춰 있답니다. 주변 정리가 되는 대로
다시 도전해 보려구요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