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뽑기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셜리 잭슨 지음, 김시현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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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다. 셜리 잭슨의 단편소설집 표제작인 <제비뽑기> 말이다. 이번 주말 달궁 독서 모임책인 셜리 잭슨의 <제비뽑기>를 부랴부랴 읽었다. 원래 지난달에 빌렸었는데 결국 읽지 못하고 반납했다가 지난 주말에 다시 빌려서 읽기 시작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재밌었다. 오래 전에 산 장편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도 있는데 토요일 전에 다 읽을 수 있을까.

 

다시 표제작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어느 마을에서 77년 이상 이루어져 온 제비뽑기가 이루어지는 날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300명 남짓 사는 마을에서 제비를 뽑은 사람을 돌로 쳐서 죽인다는 거다. 초반에 아이들이 돌무더기를 쌓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 돌이 바로 처형의 수단이라는 거다. 아마 아이들도 예외는 없는 모양이다. 다른 마을에서는 이런 야만적인 처형 방식이 사라졌다고 하는데 왜 이곳에서는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는 걸까? 제비를 뽑은 테시 허친슨 부인이 돌을 맞게 된다. 더 잔인한 것은 그녀의 아이들에게 자갈을 쥐어 준다는 것이다. 셜리 잭슨은 왜 이런 풍습이 생겼는지, 이런 잔혹한 행동으로 공동체에 발생하는 유익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소설적 사실, 어쩌면 사실이었을 지도 모를 사건에 대한 기술을 이어간다.

 

아니 어쩌면 인류 사회에 잠재된 폭력성을 분출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아니었을까? 살인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폭력이 12시간 동안 무제한 허용된다는 영화 <퍼지>가 떠오르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가 현재 국가에 위탁해서 시행하고 있는 사회의 질서 유지와 안녕을 우한 폭력과 사법제도에 대한 비판으로 읽힐 수도 있지 않을까.

 

셜리 잭슨의 단편들은 어떤 건 그냥 뭔 말이지 하고 쉽게 넘어갈 법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또 어떤 것들은 자꾸만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이야기들도 있다. 하긴 그거야말로 단편의 특성이 아니었던가.

 

결혼식 당일날 예비 신랑의 부재를 깨닫게 된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유령 신랑>은 어떤가. 결혼식장에서 예비 신부를 데리고 도망가는 유명한 영화 <졸업>의 이미지가 원체 강렬해서 그럴 지도 모르겠지만, 결혼이라는 인생의 중대한 행사가 주는 압박 때문에 결혼 자체를 거부하고 도망간다는 설정에 대해 아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긴 <런어웨이 브라이드>라는 영화도 있었지 아마. 하지만 제이미 해리스는 그야말로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존재가 증발되어 버렸다. 이에 예비 신부는 제이미 해리스는 찾아 나선다.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그녀가 그를 찾아 나설수록 그의 행방은 찾을 수가 없고, 추적은 미궁에 빠진다. 아니 처음부터 그런 제이미 해리스란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어쩌면 이런 삶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낯섬이야말로 셜리 잭슨 작가가 소설에서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내가 뉴욕에 몇 번 가봤더라. 한 여섯 번 정도 가봤던가? 나에게 뉴욕은 파리와 더불어 뮤지엄의 도시로 기억될 것이다. 메트와 모마, 자연사박물관, 아메리칸포크뮤지엄 그리고 무엇보다도 구겐하임 뮤지엄. 세계의 경제 수도로 불리는 뉴욕은 대도시의 아우라를 뿜어내며 수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 들이는 마력을 자랑하는 모양이다. 뉴잉글랜드를 떠나 친구가 여행을 떠나 빈 집에서 이주간 살게 된 마거릿과 브래드 부부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소금기둥>에서 바로 그 뉴욕이 주는 환상과 실망이 교차하는 지점을 적확하게 타격한다.

 

환상이 실망으로 태세전화를 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마거릿은 파티를 즐기던 불이 났다는 말을 듣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만, 그들은 마거릿의 말에 개의치 않고 파티를 즐긴다. 시골에서 올라온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점이 거슬렸을까? 아니면 즐거운 뉴욕 생활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낭만적이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된걸까? 사람들이 떠난 롱아일랜드 별장에 가서는 시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뮤지엄과 뮤지컬 그리고 다양한 재즈바라는 이미지로 치장된 뉴욕의 실체를 알게 된 순간, 마거릿은 횡단보도 하나 건너지 못할 정도로 심신미약 증세를 겪게 된다. 즐거움이 주는 쾌락에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못할 정도로 추락하는 것도 부지불식간이라는 점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걸까. 성경에 등장하는 룻의 아내가 “소금기둥”으로 변한 이야기가 당연히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전자가 미련 때문이라면, 마거릿은 왜 소금기둥이 되어 버린 걸까.

 

<꽃으로 꾸며진 정원>에서는 미국의 해묵은 갈등인 인종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우정도 같은 인종끼리만 가능하다는 걸까? 위닝 집안의 실권자인 시어머니 위닝 부인에게 매여 사는 젊은 위닝 부인은 근처 집에 새로 이사온 매클레인 부인과 데이비에 대해 처음에는 호의를 가지고 대하지만, 매클레인 부인이 유색인 존스 씨에게 정원일을 맡기자 멀리하기 시작한다. 1940년대 어쩔 수 없었던 인종주의의 틀에 갇혀 있던 백인들의 의식과 위선적 행태를 그대로 드러낸 르포라고 해야 할까. 하나님을 믿는다는 백인들에게 신이 창조한 다른 유색인들은 어울릴 수 없는 그런 존재였다. 은연 중에 드러나는 자신들보다 못하다는 의식이 정말 무서웠다. 개인적으로 단편집 <제비뽑기>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치아>는 한밤중에 아픈 이 때문에 뉴욕으로 가는 클래라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1940년대 엑스레이로 아픈 이를 촬영하고, 정확한 진단을 바탕으로 발치 전문가가 이를 뽑는다는 설정에 사실 좀 놀랐다. 우리가 그들의 진단과 기술을 따라하는데 근 반세기가 걸리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소설에서 재밌게 느낀 점은 클래라가 자신을 아픈 이를 배달하는 하나의 존재 혹은 사물로 의식하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셜리 잭슨이 구사하는 하나의 유머로 받아 들여야 하나.

 

대충 오늘 아침 출근길에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충동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다. 나머지는 돌아오는 토요일날 우리 달궁 동지들을 만나 신나게 떠들어 보도록 하자. 의식의 흐름에 모든 걸 맡기고 말이다. 고 달궁 가이즈!

 


드디어 봄이 온 모양이다. 어제 점심 먹고 사무실에 들어오는 길에 핀 민들레 한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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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3-27 12: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생각보다 국내에 인지도가 낮은 호러 작가죠. 스티븐 킹이 ‘호러 킹’이라면 ‘호러 퀸’은 셜리 잭슨입니다. ^^

레삭매냐 2019-03-27 13:10   좋아요 0 | URL
오호 그렇군요 !!!
미처 몰랐습니다.

예전에 산 책은 왜 샀는지 모르겠네요 핫하

뒷북소녀 2019-03-27 1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은 도서관에서 빌릴 책, 서점에서 살 책을 어떤 기준으로 구분 지으시는지.ㅋ

레삭매냐 2019-03-27 13:15   좋아요 0 | URL
뭐 기준은...
일단 애정하는 작가의 책은 무조건 삽니다.
로베르토 볼라뇨, 루이스 세풀베다, 시배스천 폭스
등등...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거나 혹은 희망도서로 신청
하는 책의 경우에는 대부분 소장각이 아니거나
혹은 두 번 읽을 것 같지 않은 책들이죠. 지금도
가지고 있는 책들 정리해야 하는데 말이죠...

뭐 결론은 기준이 지극히 주관적이다~라는 거죠

페크pek0501 2019-03-30 16: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저는 창비에서 나오는 단편 소설집을 애용하고 있습니다. 여러 작가들의 작품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였는데 국가별로 나뉘어 있습니다. 영국편, 미국편. 이런 식입니다. 여러 반찬을 골고루 먹는 뷔페 같이 맛있습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