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빌라 로망 컬렉션 Roman Collection 12
김의 지음 / 나무옆의자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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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아무 생각 없이 도착한 책을 집어 들었다. 몰입도가 대단했다. 다 읽지 않고서는 다른 책을 집어들 수가 없을 정도로. 그리고 김의 작가가 그려낸 솔희와 해아저씨, 티티 그리고 말랭이의 삶들은 처연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에게 동화에나 나올 법한 비상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랬다.

 

분명 이 작가는 남자일 텐데 어떻게 솔희라는 32세 여성의 고단한 삶을 적확하게 꿰뚫었는지 궁금해졌다. 4년 간의 결혼생활을 마치고 시냇가빌라 2층에 보금자리를 튼 솔희에 대한 이야기는 시신의 핸드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시신이라면 내가 아는 그 시신인가? 아니면 누구의 이름인가. 왠지 모를 폭력의 전조가 얼핏 엿보이는 느낌이다.

 

남편도 일자리도 없는 솔희는 고양이 티티의 집사로 난방도 들어오지 않는 시냇가빌라에서 하루를 보낸다. 돈이 없다는 경제적 고통은 그녀를 옥죈다. 겨울인데 당장 춥지 않은가. 게다가 아래층 여자와 같은 층에 사는 공방여자는 그녀를 못살게 괴롭힌다. 아니 왜 허드렛일은 모두 솔희의 몫이지. 어쩌면 그런 주눅 들은 삶의 단면은 그녀의 실패한 결혼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살갑던 남편은 결혼 즈음해서 변신 로보트처럼 해괴한 변신을 일삼는다. 뒤따르는 가정폭력은 기본이다. 청첩장이고 임신이고 뭐고 그 때 솔희는 결혼을 뒤엎었어야 했다. 게다가 결혼한 지 7개월 만에 백수가 되어, 자신이 힘들게 가장으로 일하는 동안 한 시절 절친이었던 윤주와 다시 만나 바람을 피운 건 어떤 식으로도 용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관계가 다 끊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나타나 자신을 괴롭히다니... 믿을 수가 없다. 불행의 연속은 어쩌면 정해진 운명의 수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위험에서 구해준 해아저씨와의 썸은 이해가 갔다. 다만 주변인들의 따가운 시선을 솔희로서도 어찌할 수가 없다. 오고 가는 마음 속에 싹트는 온기라고 해야 할까. 나는 그녀가 일하는 인생국수집이 그리고 그 가게를 운영하는 주인장의 경영철학이 마음에 들었다. 알바를 뛰는 솔희가 아파서 쉬어도 8,500원 시급을 챙겨 주고, 퇴근할 때는 가게에서 직접 빚은 오색만두 봉지를 쥐어주는 그런 따뜻한 마음씨라니. 게다가 술도 팔지 않고, 오히려 장사가 잘되는 겨울철에는 주력 상품인 오색국수와 오색만두의 가격을 내린다. 멋지지 않은가.

 

책쟁이인 나의 시선을 사로 잡은 장면 중의 하나는 솔희를 폐지 줍는 여자로 착각한 해아저씨가 그녀에개 갖다 주었다는 <내 이름은 빨강> 2편이다. 지난 달에서 사서 오르한 파묵 읽기를 하겠다고 기세 좋게 나서긴 했는데 아직 100쪽만 달랑 읽고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이런저런 다른 책을 읽어야 한다는 핑계로 말이다. 봄이 오면, 진짜 봄이 오면 <내 이름을 빨강>을 읽을 것이다.

 

<시냇가빌라>를 읽다가 그만 너무 솔희에 감정을 이입한 모양이다. 외롭고 슬프고, 처연하다는 느낌이 막 들었으니 말이다. 해피엔딩을 기대했건만 그렇지 않은 결말은 어쩌면 예상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BTS, 아미, <Fake Love> 그렇지 소설은 디테일이다.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지만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었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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