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 샬리마르
살만 루슈디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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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 서가파먹기 프로젝트 #007> 

 

드디어 살만 루슈디와의 첫 번째 만남을 끝냈다. 다시 카슈미르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낙원이라 불리는 카슈미르는 과연 어떤 곳일지 궁금해졌다. 지난 주말 인천집에 갔다가 방구석에 처박혀 있던 살만 루슈디의 <광대 샬리마르>란 책을 집어 들었다. 어떻게 해서 내가 이 책을 갖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읽지 않았다. 읽기 시작했는데 카슈미르가 등장하더라. 이런 놀라운 인연이 다 있나 그래.

 

600쪽이 넘는 <광대 샬리마르>를 읽으면서 제각각 다른 세 개의 소설을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인공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장소부터 모두 다르지 않은가. 천사들의 도시가 위치한 미국 캘리포니아, 지상의 낙원이라는 카슈미르 그리고 독일과 프랑스의 분쟁지역이었던 스트라스부르가 그곳들이다.

 

시작은 천사들의 도시다. 시간적 배경은 1991년, 24세 인디아 오퓔스가 첫 번째 주자다. 사실 첫 번째 챕터는 잘 소화가 되지 않았다. 저명한 그녀의 아버지 막스 오퓔스가 어새신(암살자)에게 처참한 모습으로 암살당했다. 도대체 누가 베스트셀러 작가에, 항동 레지스탕스, 하늘을 나는 유대인 그리고 주인도 미국 대사였던 미남자 막시밀리언 오퓔스를 죽였단 말인가. 아니 이 정도로만으로도 시작이 충분했던가.

 

살만 루슈디는 다시 시절을 되돌려 이번에는 지상의 낙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카슈미르로 계곡으로 이동한다. 카슈미르 파치감이라는 마을에 무슬림 청년 샬리마르 노만과 힌두소녀 부니(부미) 카울이 살았다. 자, 그들은 운명적 사랑에 빠지게 되고 종교 때문에 격심한 갈등을 겪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운명은 지금까지도 갈등이 지속되는 카슈미르의 숙명 같은 게 아니었을까? 마라하자가 지배하는 다수 무슬림들은 정치적으로 인도나 파키스탄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카슈미르인들을 위한 카슈미르라는 동화에나 나올 법한 세상을 원했다. 어쩌면 그런 이상이 수십 년간 계속되는 불화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파치감은 전통 예술공연과 60여 가지에 달하는 그야말로 상다리가 부러질 법한 연회 요리로 유명한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파치감에서 샬리마르는 줄타기의 달인이었고, 십대 소녀 부니는 아나르칼리를 연기하는 절세의 무희였다. 이질적 종교의 결합 사이에 자라나기 시작한 미세한 삶의 균열은 훗날 등장해서 부니를 앗아간 사악한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출신 유대인 미국 대사 막스 오퓔스로 촉발된다. 문제는 부니의 선택이었을까. 지루한 시골 마을을 탈출하기 위해 부니는 막스와 자신의 육체로 거래에 나선다. 사랑 없는 육체관계가 과연 오래갈 수 있었을까?

 

당연히 오쟁이진 젊은 남편 샬리마르는 분노와 증오에 젖어 복수를 다짐한다. 부니와 막스 그리고 그 둘 사이에 태어난 재앙의 씨앗인 카슈미라까지 모두 없애 버리겠다는. 한편 잠무 카슈미르를 장악한 힌두 인도군은 카슈미르에 사는 무슬림들을 핍박하기 시작한다. 자치를 원하는 카슈미르 무슬림들에게 지울 수 없는 폭력을 행사한다. 당연히 이에 분노한 카슈미르 청년들은 해방전선에 가입해서 무자비한 폭력으로 인도군의 진압에 대항한다. 자살폭탄 테러를 비롯한 갖가지 방법이 동원된다. 한 때 지상의 낙원이었던 카슈미르는 이제 지상의 지옥이 되어 버렸다.

 

다음 무대는 소설 <광대 샬리마르>의 또 다른 주인공 막스 오퓔스가 사는 유럽의 복판 스트라스부르다. 프랑스의 영토이기도 했다가 보불전쟁의 패배로 독일제국의 땅이 되었다가 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는 등 그야말로 카슈미르 버금가는 복잡한 역사를 가진 스트라스부르에 막스 오퓔스를 배치한 점도 살만 루슈디의 혜안이 번뜩이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레지스탕스 영웅 막스 오퓔스가 과연 조국에 대한 뜨거운 열 정 만으로 목숨을 건 저항운동에 나선 것이었을까라는 의문에 작가는 냉철하게 분석을 제시한다. 억울하게 강제수용소에서 의학실험의 대상으로 죽어간 부모의 죽음에 대한 복수, 그리고 어쩌면 불의에 대한 투쟁이라는 낭만적 요소가 더 강렬한 유인책이 아니었을까. 막스 자신이 한 때, 테러리스트로 활동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막사의 테러와 샬리마르의 테러가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 무엇이란 말인가. 세상에 모든 테러는 나쁜 것인가? 아니면 누구의 테러는 옳고, 또 다른 누구의 테러는 옳지 않다는 건가? 분노와 증오의 파도가 다시 한 번 넘실거리는 시절에 테러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개인적으로 살만 루슈디의 <광대 샬리마르>를 통해 미지의 세계인 카슈미르의 비극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소설적 장치로서 분열과 갈등보다 더 좋은 소재가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거기에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으로부터 파생된 “사랑과 전쟁” 그리고 복수라는 양념까지 추가되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

 

이후의 서사 전개는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막스의 아이를 낳은 부니는 고향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한 때 자매 같았던 친구들의 농간으로 그녀의 아버지 요리사이자 철학자 판디트 피아렐랄 카울마저 그녀의 죽음을 공인한다. 막스의 뚜쟁이 에드거 우드는 부니를 씹는 담배와 마약 그리고 폭식으로 길들였다. 부니가 호색한에게 제공한 쾌락의 여운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고, 부니와의 관계가 스캔들로 비화되면서 미국 대사는 문자 그대로 추락했다. 부니의 귀향 소식을 들은 샬리마르를 바로 행동에 나서려고 하지만, 반드 파테르의 수장 아버지 압둘라 노만과 판디트 피아렐랄의 만류로 부니의 운명은 유보된다. 어쩌면 바로 그 순간, 겉껍데기만 남은 샬리마르의 미래도 결정난 게 아니었을까. 산으로 들어가 해방전선의 사령관으로 활동하던 형 아니스 노만과 합류한 샬리마르는 자신의 분노와 증오를 테러활동에 온전하게 투입하고, 뛰어난 암살자로 거듭난다.

 

지상 낙원이었던 카슈미르가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보여준 작가는 마지막으로 막스 오퓔스 대사가 암살된 미국으로 다시 무대를 이동시킨다. 미국대사 막스 오퓔스로 대변되는 미국의 어중간한 태도도 세계의 화약고로 변한 카슈미르 파괴에 책임이 있다는 게 아닐까. 더 나아가서는 세계화에 발맞춰 상품과 재화의 자유로운 이동만큼이나 분노와 증오가 실린 폭력의 세계화에도 미국의 책임을 묻고 있다. 그래서인지 막스를 암살한 샬리마르가 미국 사법당국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미국출신 변호사가 구사한 ‘주술사 전법’이 허무맹랑하게만 다가오지 않는다. 자신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 탈옥에 성공한 샬리마르가 인디아 아니 이제는 카슈미라 오퓔스가 된 자신의 의붓딸과 마주하게 되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처음 만난 살만 루슈디는 <광대 샬리마르>로 나에게 묵직한 한 방을 날렸다. 지난 주말에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한동안 멍한 느낌이었다. 뭐랄까 서로 다른 세 권의 연작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지난주에 그의 대표작 <한 밤의 아이들> 상권을 사들였다. 집에 있지만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어서라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그리고 어제부터 9개의 단편 소설이 실린 <이스트, 웨스트>를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훨씬 더 가벼운 느낌이다. <무어의 한 숨>도 재출간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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