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비얀 빌딩 을유세계문학전집 43
알라 알아스와니 지음, 김능우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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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블로거님이 이 책을 읽었다는 글을 읽고서 부리나케 서가에서 알라 알아스와니의 <야쿠비얀 빌딩>을 찾았다. 4년 전에 5,200원 주고 산 책이었다. 그런데 알아스와니의 <시카고>가 집에 있는지 없는지 도대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지 않았다면 당장 도서관에 가서 빌려 오거나 사던가 해야겠다. 그 정도로 재밌게 읽었다는 말씀이다.

 

이집트 카이로 출신의 알라 알아스와니는 미국 유학파 출신 치과의사로 변호사집 아들이다. 이 작가는 이집트가 처해 있는 모든 만악의 근원을 군부독재에 있다고 진단한 모양이다. 1934년 부유한 아르메니아 사람이 파리의 어느 건물을 복사하다시피 해서 직은 야쿠비얀 빌딩에는 이집트의 복잡다단한 현실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프랑스 유학파 출신 자키 베 알두수키는 1952년 가말 압델 나세르의 혁명 이전 시기를 기억하는 서구식 사고방식을 가진 신사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여자뿐이다. 어떻게 보면 호색한이라고 볼 정도로. 그렇다고 해서 무지막지한 방식으로 여자들을 취하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신사다운 방식으로 그녀들에게 접근한다.

 

야쿠비얀 빌딩을 지키는 수위의 아들로 등장하는 타하 알샤들리의 경우는 이집트의 구조적 시스템 때문에 인생을 망친 경우다. 경찰 대학 진학을 꿈꾸던 청년은 자신이 문지기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면접에서 탈락하는 고배를 마신다. 그러니까 이집트 역시 기득권층의 나라였던 것이다. 경영 대학에 진학했지만, 더 이상 인생설계 따위는 그에게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다. 신앙심 깊은 청년은 자연스레 이슬람주의로 경도되고, 때마침 시작된 걸프전에서 이라크의 동료 무슬림들을 핍박하는 데 동원된 이집트 정부를 비판하다가 보안대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한 뒤, 이제는 아예 지하드 전사가 되어 자신에게 모욕을 가한 이들에게 처절한 복수만을 꿈꾼다. 주인공 중에서 가장 극적으로 변신하게 되는 캐릭터다.

 

타하의 여자친구로 등장하는 부사이나 알사이드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알아 버린 신여성이다. 상업학교를 졸업한 부사이나는 순수한 청년 타하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타하가 그녀의 경제적 곤란을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녀가 취업하는 거의 모든 직장의 상사들을 그녀의 육체를 탐한다. 처음에 그녀는 자신의 순결을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어머니의 공모에 가까운 협박으로 치욕적인 돈벌이에 나서게 된다. 그러다가 만난 자키 베와 진정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자키 베의 충실한 비서로 가장한 아바스카룬과 말라크 형제는 또 어떤가. 한 꺼풀만 벗겨 놓고 보면 거의 악당에 가까운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상대방의 호의를 이용해서 자신의 사익을 추구하는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성공한 기업가 행세를 하다가 국회의원직을 돈 주고 사는 하즈 무함마드 앗잠도 마찬가지다. 이 파렴치한 노인네는 늘그막에 바람에 들어 넘치는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두 번째 장가를 들게 된다. 그렇게 계약결혼한 매력적인 과부 수아드와 혼전 계약서를 작성하는데, 그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것이다. 그의 실체는 마약 암거래상이었는데, 계속되는 성공에 자신의 본분을 잊고 카이로의 진짜 실력자 어르신에게 도전했다가 봉변을 당한다.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다는 사실을 잊은 풋내기 같은 실수였다.

 

마지막 퍼즐로 무슬림에서 엄격하게 금지된 동성애를 즐기는 하팀 라쉬드가 있다. 역시 부유하고 유력한 집안 출신의 중년 남자는 어린 시절 자신을 돌보지 않은 부모 덕분에, 자기 주변에 있던 동성애자 하인의 유혹으로 동성애자가 되었노라고 고백하고 한탄한다. 중앙 보안군 소속 청년 압두 랍부흐의 야성적인 매력에 반해 그를 애인으로 삼고, 경제적 지원을 미끼로 지속적인 쾌락을 추구한다. 멈출 수 없던 하팀의 욕망은 종말에 가서 파국으로 끝이 나게 되는데, 먹물의 속물근성을 알라 알아스와니는 정확하게 짚어낸다.

 

저자는 아랍의 봄시위로 30년 권좌에서 물러난 호스니 무바라크 시절을 관통하는 야만의 시대를 있는 그대로 비판한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민주주의가 그들의 종교와 상극이라고 선전한다. 현실에 대한 젊은이들의 분노를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 소수 지배계급의 엘리트가 좌지우지하는 이집트 국가의 모습은 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헬조선이라는 말 속에는 열심히 일해도 정당한 보상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절망이 내재되어 있지 않은가. 부사이나와 타하로 대변되는 이집트 청년들 역시 마찬가지다. 정치가 그들의 욕망을 해결해 주어야 하는데, 반대로 그들을 억압하고 옥죄는 장치로 작동한다. 도무지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이들은 자산가의 후취로 들어가거나 정부가 되고, 동성애자의 애인이 되어 삶을 영위한다. 이것은 비극의 연대기인가 아니면 너무나 리얼한 현실의 기술인가.

 

하팀과 자키 베로 대변되는 서구 문물을 추구하는 지식인 계급의 위선 역시 마찬가지다. 혁명 이전의 호시절을 떠올리며 상류 계층의 커넥션과 자산을 배경으로 오로지 쾌락만을 추구하는 그들의 모습도 야쿠비얀 빌딩에 살면서 따뜻한 음식과 시샤 그리고 섹스를 탐닉하는 소시민들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자고로 욕망이란 어느 지점에서 모두 만나기 마련이 아닌가. 그런 세기말적 에피쿠로스적인 쾌락지향주의가 가리키는 종착점은 언제나 허무가 아니었던가.

 

다수의 캐릭터들이 교차로 등장하면서 혼란스럽던 초반의 전개는 캐릭터들에 대한 적응이 끝나면서 흥미를 더해가기 시작한다. 중반을 지나자 걷잡을 수 없는 독서의 쾌락 레이스가 시작된다. 아니 그래서 타하는 과연 순교자의 길을 걷게 되는 걸까? 부사이나는 자키 베를 배신하고 말라크가 원하는 계약서를 수중에 넣을까? 아들을 잃고 상심한 압두는 하팀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자연스레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분주해진다.

 

생전 처음 만나는 이집트 소설가의 이야기는 21세기 한국의 풍경과 매우 비슷해 보였다. 그래서 더더욱 구미가 동했는지도 모르겠다. 비극마저도 아우르는 소설의 재미와 리얼리티는 과연 압도적이었다. 서가에서 알라 알아스와니의 <시카고>를 찾지 못한다면 아마도 나는 다음 주에 그 책을 주문할 것 같다. 부디 내가 이전에 산 책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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