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정의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역시 리디북스를 통해 알게 되어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은 책이다. 다시 한 번 리디북스 땡큐우~

 

소설에서 정말 얄미울 정도로 정의를 추구하는 실제적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다가키 노리코는 이름에 들어간 한자 규범같은 인물이다. 노리코는 여고 시절 5총사를 이룬 가즈키, 유미코, 리호 그리고 레이카에게 한편으로는 도움을 주어서 은인 같은 존재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원수 같은 인물이다. 그녀에게 동정심 따위는 없다. 오로지 자신을 황홀하게 만드는 정의를 추구할 따름이다. 네 명의 친구들은 노리코가 자신들을 진심으로 도왔다고 생각하지만, 나중에 드러나는 사실은 노리코는 자신만을 위한 정의를 따랐을 뿐이다.

 

전조는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있었다. 수업 시간 도중에 쪽지돌리기를 선생님에게 고발하고, 단순한 경고 정도로 끝낼 학내 흡연문제를 공론화시켜 연루된 선생님의 은퇴와 경찰관의 징계도 불사할 정도로 슈퍼 히어로 같은 존재다. 문제는 그런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희생으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유미코 케이스에서도 두 명의 노숙자들이 동사하지 않았던가. 그런 것들이 타인의 이야기라면 모르겠지만 자신의 경우가 되면 다른 차원의 문제로 비화가 된다는 걸 아키요시 리카코 작가는 예리하게 짚어낸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가즈키에게는 취재 대상에 대한 교묘한 설득 작업의 과정을 알게 된 노리코가 그동안 자신이 쌓아온 커리어를 날릴 법한 폭로를 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한다. 첫 번째 살인 동기가 부여된다. 아 그전에 경비 처리르 위해 영수증을 챙기겠다는 가즈키에게 탈세라며 몰아 붙이는 장면에서는 정말 오만 정이 다 떨어져 버렸다. 네 명의 친구들 모두 노리코가 구사하는 논리에 맞대응하지 못한다는 게 더 큰 문제가 아니었을까. 그러면서도 그녀의 주변을 떠날 수 없다는 게 더 큰 문제였을 지도 모르겠다.

 

다음 주자인 무능력한 남편과의 이혼을 원하는 유미코에게는 자식들의 양육권과 위자료를 주어야 할 지도 모를 아동학대 건을 부각시킨다. 병주고 약주는 식으로 남편으로부터 탈출을 종용하기도 하다가 또 한편으로는 남편에게 숨어사는 곳을 알려주니 친구라고 생각한 유미코로서는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의란 말인가.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영재교육 사업으로 성공한 리호에게는 불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난자를 제공하겠단다. 미치겠다 정말. 리호의 미국인 남편 조이 윌리엄스 씨는 그들이 운영하는 아카데미의 재정을 맡게 된 노리코의 헌신을 높이 평가하고, 나아가서는 가족으로까지 받아 들일 기세다. 이것을 리호가 용납할 수 있을까? 물론 절대 아니다. 마지막으로 삼십대 중반의 성공한 연기자 레이카의 어린 시절 문제를 해결해준 바 있는 노리코가 이번에는 자신의 커리어를 송두리째 날려 버릴 지도 모를 그런 스캔들을 폭로하겠다고 나선다. 이 친구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결국 네 명의 친구들은 의기투합해서 노리코를 살해한다. 모두들 노리코에게 이런저런 도움을 받았으면서도 동시에 그런 이유로 그녀를 증오하는 친구들이다. 노리코의 돌아가신 어머니도 자녀에 대한 콘트롤 매니악이었던가. 통금을 어긴 노리코를 데리러 나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돌아가셨다. 그래서 그녀는 더더욱 정의 구현에 앞장 서는 것일까? 변호사 뺨치게 법조문을 줄줄 외우며 원리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말에 친구들은 거리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원래 친구 사이라면 그 정도는 눈감아 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작가가 후반에 준비한 결말을 대단하다. 어떻게 보면 에드가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절대정의>를 통해 자신에게 한없이 관대한 우리들의 모습을 엿볼 수가 있었다. 크고 작은 잘못들을 수시로 저지르면서 합리화의 과정을 통해 반칙과 위반들을 사소하다고 폄하하는 나의 모습 말이다. 그리고 보니 나는 어제도 무단횡단을 했지 아마. 주변에 이런 친구가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 아마 나라도 노리코의 친구들처럼 소원해지지 않았을까. 그저 만나서 술 한 잔 하면서 그간의 회포를 나눌 수 있는 친구라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그나저나 요즘에는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도통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게 되었구나. 서글픈 시절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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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2-10 14: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읽는 친구’와 ‘책 안 읽는 친구’와 대화하는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죠. 저도 전자의 친구와 대화하는 게 편하고 즐거워요. 후자의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대화 레퍼토리가 뻔해서 다시 만나고픈 매력을 느끼지 못해요. ^^

레삭매냐 2019-02-10 16:08   좋아요 0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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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또 책읽지 않는 친구들과의 만남
역시 그만큼이나 즐거운 시간들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