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1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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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플에서 폴스태프님의 <사바나의 개미 언덕>에 대한 리뷰를 읽고 나서 바로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치누아 아체베의 데뷔작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를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읽어 보니 과연 아프리카 문학을 대표한다는 작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누아 아체베는 나이지리아 이보 족 출신으로, 방송국 PD 경력을 필두로 해서 시인, 소설가 그리고 대학 영문과 교수에 이르는 다채로운 편력을 쌓았다. 그가 28세에 발표한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에서 백인들이 출몰하지 않던 조상들의 시대를 살았던 우무오피아 마을 출신 씨름 챔피언 오콩코를 주인공으로 삼아 시대를 관통하는 서사가 펼쳐진다.

 

이십대 아체베가 저술한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는 아프리카 니제르 강 하류의 인민들이 감당해야 했던 19세기말 제국주의 시대 비극의 명백한 재구성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풍습과 전통에 따라 그들만의 삶을 영유해왔다. 대표선수로 등장한 오콩코는 우무오피아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씨름꾼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베짱이 스탈일의 삶을 산 아버지 우노카와는 달리 근면과 성실로 일군의 부를 이루어냈다. 그는 최고의 전사이자 농사꾼으로, 전장에서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부족을 위해 싸웠고 일상으로 돌아오서는 남자들의 작물인 얌농사에 전념했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특성대로 오콩코는 자기 자식들을 비롯해서 누구도 게으름을 피우는 것을 용서하지 못했다. 자신의 장남 은워예의 유약한 성격이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쟁까지 불사할 정도의 위력을 과시해서 이웃 부족 출신 소년 이케메푸나를 포로로 잡아 자신의 집에서 3년 동안이나 데리고 있었다.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던 소년을 마을 회의 결과 처형해야 하는 비극을 겪기도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어서 좀 아쉬웠다.

 

아버지 우노카로부터 아무런 재산을 물려받지 못한 오콩코는 특유의 담대함을 바탕으로 이웃에게 빌린 얌을 밑천 삼아 재산을 일구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언젠가 부족의 족장이 되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일상을 전개해왔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일구고 모으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지만, 정상에서 나락으로 추락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마을 어르신의 장례식에서 실수로 오콩코가 쏜 총에 맞아 부족 소년이 죽으면서 오콩코는 재산을 압류당하고 우무오피아에서 7년 동안 추방당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부족의 리더가 되겠다는 오콩코의 꿈은 사라져 버렸지만, 와신상담해서 우무오피아로 돌아가겠다는 그의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아프리카 대륙이 드디어 제국주의 식민지 쟁탈의 먹잇감이 된 것이다. 처음에는 종교로 시작해서, 정부와 교육으로 백인들은 아프리카 사람들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거의 하나의 방식이 된 것처럼 말이다. 그들 고유의 전통을 미개한 것으로 치부하고, 종교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백인들의 내습에 오콩코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백인들을 죽인 아바메 부족이 몰살당했다는 소문은 끔찍했다. 우무오피아 역시 다를 바가 없었다. 우선 오콩코의 아들 은워예가 개종하고 이름마저 이삭으로 바꿔 버렸다. 전사의 후예라는 자부심으로 가득한 아버지 오콩코의 마음이 어땠을까.

 

한편 백인들의 종교를 받아들인 우무오피아 사람들도 다른 이들과 평화로운 공존을 유지했으면 좋았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광신이 문제였다. 종교 지도자 브라운 신부는 그나마 우무오피아 마을 사람들을 자극하지 않는 방식을 취했지만, 그가 병들고 귀환하고 제임스 스미스라는 신부가 오면서부터 상황은 극적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무당의 아들 에노치는 광신도로 변신해서 마을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비단뱀을 죽이는 만행을 저지른다. 이에 격분한 오콩코를 비롯한 마을 대표 6명이 백인 치안판사를 찾아갔다가 얼떨결에 수갑이 채워지고, 교회를 파괴한 죄로 조가비 200자루에 해당하는 벌금을 물게 된다. 더 이상 백인들과 그들에게 부역하는 다른 마을 출신 전령들에 분노한 오콩코는 복수에 나선다. 예상한 대로 결론은 비극으로 끝난다.

 

과연 아체베 5부작의 시작이라 불릴 만큼 대단한 작품이었다. 폭력적인 방식으로 침탈하는 서구의 제국주의에 맞선 오콩코의 투쟁은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윗돌을 치는 격이었다. 오콩코가 대변하는 아프리카 부족들은 서구 제국주의의 힘을 알지 못했다. 자신들이 가진 어떤 방식의 무력으로도 그들을 이길 수가 없다는 사실을 그들이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칼과 도끼 같은 강경한 태도로 백인들을 대해도 그들은 더 폭력적인 방식으로 제압되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무오피아 마을의 대다수 사람들처럼 유화적인 태도로 백인들을 대했어도 백인들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소설의 말미에 등장하는 치안판사의 에피소드는 백인 제국주의자들의 아프리카 민중에 대한 시선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니제르 강 하류의 흑인들에게 벌어지는 매일이 그에게는 흥미로운 주제였고, 재미있는 읽을거리일 뿐이었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는 존엄과 생사가 달린 문제들이 이방인들에게는 그저 단순한 즐거움이었다니 입맛이 다 씁쓸하다.

 

내가 처음 만난 아체베의 작품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었다. 다만 왠지 이제 막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려는 찰나에 끝나 아쉬운 생각이 든다. 아체베의 다른 책들도 속히 구해서 읽어봐야겠다. 다음에 읽으려고 고른 책은 <사바나의 개미 언덕>으로 아체베 5부작의 마지막 권이라고 하던데, 흠 순서대로 읽어야 하나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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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19-01-16 1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런 극찬이라니. 당장 읽어봐야겠어요... 읽고 나신 다음에 다시 얘기해 주세요. 순서대로 읽어야 하는지요.

레삭매냐 2019-01-16 17:54   좋아요 0 | URL
아체베 아주 매력적이었습니다 -

순서대로 읽어야 하는 걸까요?
저도 아리까리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