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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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 서가파먹기 프로젝트 #003>

 

이 책의 본고장 미국에서는 성경만큼이나 인기가 있다는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드디어 읽었다. 사실 4년 전에 열린책들에서 새로 나온 책을 사두고서도 명성과 두께 때문에 읽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새해 나의 프로젝트인 서가파먹기의 세 번째 책으로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책을 읽다 보니 생각보다 진입장벽이 어렵지 않더라. 명성과 조금 두툼한 두께 때문에 지레 먹은 겁이 문제였다.

 

<앵무새 죽이기>를 읽으면서 왜 이 책이 미국 학교에서 거의 교재처럼 사용되는지 알 수가 있었다. 소설의 시공간적 배경은 여전히 인종차별이 항시적이던 1933~35년 앨라배마 메이콤이다. 소설의 화자는 깜찍한 8세 소녀 진 루이즈(스카웃) 핀치다. 왜 작가 하퍼 리는 어린 소녀를 화자로 삼았을까? 아이의 시선으로 본 세상은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 투성이다. 스카웃의 어머니는 소녀가 2살 때 돌아가셨다. 그러니까 한부모 가정 출신이다. 변호사와 주의원 일로 바쁜 아버지 애티커스를 대신해서 가사를 돌보는 건 흑인 캘퍼니아 아줌마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작가는 소녀의 시선으로 본 세상을 하나씩 열거하면서 독자를 뜨거워지는 여름날의 메이콤으로 인도한다. 그런 점에서 <앵무새 죽이기>는 성장소설의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

 

진 루이즈와 이웃집 계절친구 딜 해리스 그리고 오빠 젬(제러미)은 삼총사다. 그들은 어린 에피쿠로스 추종자들로 하루하루를 재미난 일거리를 찾는 데 소비한다. 이웃에서 칩거하는 은둔자 아서 “부” 래들리 아저씨의 소문을 꼬마들로 하여금 그를 집밖으로 유인하는 동력이다. 무서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호기심을 이기는 못하는 삼총사들은 계속해서 소동을 벌인다. 나이 먹은 아빠 애티커스는 변호사고, 미혼의 삼촌 잭은 의사다. 애티커스는 독학으로 변호사 자격증을 딴 사람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변호사라는 직종은 지금처럼 그런 돈 많이 버는 그런 직업이 아니었나 보다. 나중에 소설의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 톰 로빈슨의 변호처럼 원하지 않는 일도 해야 했으니 말이다.

 

<앵무새 죽이기> 1부는 핀치 집안 주변의 이러저러한 일들에 대한 소개다. 1930년 미국 남부의 평화로운 정경이 그대로 전달된다. 대공황이 가시지 않은 시절, 모두가 힘든 나날들이었지만 시골 마을 특유의 정이 있다고 해야 할까. 이웃 모디 아줌마네 집에 불이 났을 때, 마을 사람들은 마치 자기 집에 불이라도 난듯이 달려와 도움의 손길을 아끼지 않았다. 2월의 광견병 사건 때는 애티커스가 좋지 않은 시력에도 불구하고 숨겨둔 명사수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듀보스 할머니가 아버지를 모욕하자 격분한 미스터 젬이 그녀의 꽃밭을 엉망으로 만들자, 아버지는 젬에게 듀보스 할머니에게 사과하고 한 달 동안 할머니에게 책을 읽어 드리게 한다. 갈등과 편견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애티커스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스스로 배우게 하고 있었다.

 

소설의 진짜 위기는 백인여성 메이엘라 유얼을 강간한 혐의로 고소된 톰 로빈슨의 변호를 애티커스가 맡으면서 시작된다. 마을 사람들은 공정한 재판을 기다리는 대신 린치를 가하기 위해 톰이 갇혀 있는 메이콤 감옥으로 몰려든다. 그를 지키기 위해 감옥 앞에서 신문을 읽으며 기다리던 애티커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이 때 그녀의 딸 스카웃이 나서서 특유의 기지로 위기를 넘긴다. 스카웃은 과연 당시 상황이 얼마나 험악했는지 알고도, 사랑하는 아빠를 위해 분연히 분노와 증오로 가득한 그들을 상대할 수 있었을까? 그레고리 펙이 주연을 맡은 1962년 동명 영화에서는 8살 소녀 스카웃의 시선으로 톰을 지키고 있는 아버지를 따라가는 카메라 워크가 돋보였다. 아이의 시선으로 아버지를 위협하는 패거리를 헤치고 당당하게 나서는.

 

무대는 이제 법정으로 향한다. 소설의 핍진성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8세 소녀가 이 모든 과정을 묘사한다는 설정이다. 적어도 이 부분만큼은 다른 시선으로 처리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어린 소녀가 법정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전달한다는 건 무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아무리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독학으로 글을 깨우쳤다고 하지만, 12명의 배심원이 등장하고 법률적인 전문용어들이 등장하는 재판정의 모습을 어린 소녀의 시각으로 전달하는 건 무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변호사 애티커스는 법정에서 종횡무진 활약을 펼친다. 무능한 유얼 집안의 가장 밥과 피해자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메이엘라의 법정 증언을 무력화하는 뛰어난 변론으로 톰 로빈슨의 무죄를 입증할 거라는 기대를 부풀린다. 사실 앨라배마에서 성폭행을 저지른 흑인에게는 무죄 아니면 교수형이라는 선택지 밖에 없었다. 과연 핀치 씨는 전원 백인 남성으로 구성된 배심원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진실이 언제나 승리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어린 스카웃과 달리 동생보다 좀 더 조숙한 젬은 불합리한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조용한 남자로 성장해 간다. 위기상황은 모두 가시지 않았다. 얼마 뒤, 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상급 교도소로 이송된 톰 로빈슨이 탈옥을 시도하던 중에 17발이나 되는 탄환을 맞고 사살되었다는 비보가 전해진다. 기고만장한 밥 유얼은 다음 차례는 애티커스가 될 거라고 공언해 마지 않는다. 물론 모두가 밥 유얼의 주장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당시 미국 남부의 분위기가 그랬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할로윈 즈음해서 또 하나의 결정적 사건이 화끈한 엔딩에서 기다리고 있다.

 

하퍼 리의 유일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앵무새 죽이기>는 정말 다양하면서도 논쟁적인 주제들을 품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완벽하지 않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불완전한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하는 것인가? 핀치 씨처럼 자신이 원하지 않지만 해야 하는 일들을 묵묵하게 수행해야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톰 로빈슨처럼 아무런 죄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억울하게 죽음을 맞아야 하는 이들도 있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감옥에 갇힌 ‘깜둥이’를 린치하겠다고 나서는 월터 같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젬과 스카웃처럼 양심적인 이들에게 배심원 자격을 부여했다면 불일치로 톰 로빈슨이 풀려났을 거라는 핀치 씨의 예리한 지적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세상에 완벽한 제도가 어디 있겠는가. 결국 제도를 운영하는 인간들이 문제란 말인가.

 

인간은 모두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머리로는 인정하면서도, 실제 삶에는 적용하지 못하는 이들이 백 년 전에는 엄연하게 존재했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시간은 그렇게 우리를 속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만큼의 시간이 지났으니 우리의 양심도 시대에 맞게 개선되었을 거라고. 바로 그 점을 나는 회의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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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1-11 18: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전국 독서 모임 중에 이 책을 안 읽은 독서모임은 없을 거예요.. ㅎㅎㅎ

레삭매냐 2019-01-11 18:19   좋아요 0 | URL
아마 달궁에서는 너무 알려져셔
안한 것 같습니다만.

전 인제사 읽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