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루뭄바를 죽였는가 - 콩고민주공화국 초대 총리 살해와 그 배후
에마뉘엘 제라르.브루스 쿠클릭 지음, 이인숙 옮김 / 삼천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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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역시 올해의 놀라운 발견이라고 해야 하나. 삼천리에서 한국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아프리카 대륙 콩고의 젊은 지도자 파트리스 루뭄바의 죽음에 대한 책을 내리라고 누가 예상했을까. 세계화(globalization)이라는 말로 지구촌이라는 말이 낯설게 되지 않은 오늘날, 우리가 사는 지구별에서는 일어나는 사건들이 서로 연관되지 않은 일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이 책에서 1960년 8월, “자그마한 한국”이 걱정거리였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사건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저자들이 언급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주석 부분을 구글링해 보았지만, 알 수가 없었다. 국가기록원 자료를 찾아보니 정락현 북한군 소위 미그기를 몰고 귀순했고(8월 3일), 같은 달 윤보선 대통령이 취임했다는 것 정도 밖에는 없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 세계 식민지에 자주독립의 바람이 불었다. 콩고가 독립한 1960년에만 아프리카 대륙에서 17개의 나라가 독립했다. 벨기에 레오폴드 왕의 개인 식민지였던 콩고는 80년간의 벨기에의 악랄한 식민통치를 끝내고 독립하게 되었다. 그 중심에는 청년 총리 파트리스 루뭄바가 있었다. 식민 종주국 벨기에는 콩고가 독립할 수 있을 여건을 만들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너무 급하게 독립을 추진하다 보니 갖가지 문제들이 돌출했다.

 

아프리카 대륙 정중앙에 위치한 콩고는 큰 덩치부터 시작해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수많은 부족이 난립해 있었고, 남부 카탕가의 분리주의자들을 비롯해서 분출하는 수많은 정치적 요구를 건국 초기에 해결하기란 난망했다. 정당한 선거를 통해 선출된 루뭄바는 바콩고족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카사부부와 연립형태의 정부를 출범시킨다.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직은 카사부부가 그리고 실질적 권리를 행사하는 총리는 루뭄바가 맡게 되었다. 열렬 민족주의자였던 루뭄바는 독립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식민 종주국 벨기에와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는 노선을 추구했다.

 

문제는 콩고에서 막대한 이권을 지속적으로 행사하려던 벨기에의 군주 보두앵과 충돌이 피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보두앵은 합법적으로 선출된 에스켄스 내각을 뒤흔들면서 콩고에 대한 노골적입 개입을 시도했다. 벨기에 국왕은 카탕가의 지도자 모이스 촘베를 후원하면서 루뭄바가 주장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제 대신 느슨한 연방제 형태의 콩고 국가를 선호했다. 분할해서 통치하라는 전형적인 식민지 시대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80년간 콩고를 폭압적으로 통치해온 제국주의자들은 반성할 줄 몰랐다.

 

일단 벨기에라는 루뭄바의 강력한 적이 형성되었다. 그 다음은 미국이었다. 미국의 목줄을 겨눈 쿠바에서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이 성공하자, 임기 말 아이젠하워 정부는 아프리카 대륙의 중앙부에서도 루뭄바가 이끄는 민족 자결주의가 성공되는 걸 바라지 않았다. 루뭄바가 미국에 요청한 지원 요청을 무시하자, 루뭄바는 당연히 냉전 시대 미국의 라이벌 소련의 접근을 허용하게 되었다. 독립 후, 카탕가와 카사이를 비롯한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진압하기 위해 소련이 지원하는 수송기와 트럭이 레오폴드빌에 도착하게 되었다. 루뭄바를 활용할 줄 몰랐던 공산당 서기장 흐루쇼프는 루뭄바에 대한 추가적 지원은 하지 않았다. 독립 초기 루뭄바의 정체에 대해 의심하고, 판단을 유보하던 미국은 마침내 루뭄바가 세계 평화의 위협이 되는 존재라고 판단하고 제거 작전에 나서게 된다. 여기에는 대통령 아이젠하워가 8월에 내린 판단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루뭄바를 암살하려는 <마법사 프로젝트(Project Wizard)>를 가동시키면서 ‘죽음의 박사’라는 별명을 가진 독극물학자 시드니 고틀리브를 동원하기도 했다.

 

한편, 콩고 사태에 개입된 또 하나의 키플레이어로는 스웨덴 관료 출신 다그 함마르셸드 UN 사무총장이 있었다. 그는 미국 출신 위험한 수석보좌관 앤드루 코디어의 코치를 받고 있었는데, 그의 보좌관은 루뭄바를 “작은 히틀러” 그리고 가나의 대통령 은크루마를 “무솔리니”라고 부르면서 사사건건 대립했다. 콩고 위기 초기, 루뭄바는 블루 헬멧을 쓴 유엔 평화유지군들이 콩고의 치안과 질서를 잡아줄 것을 기대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콩고 민족주의자들에게는 안타까운 말이지만, 그들이 독립 후 국가를 운영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무능하고 게으르다는 서구인들의 시선을 일소시킬 만큼 루뭄바로 대표되는 민족주의자들은 열의만 있었지 실력은 없었다. 그 점이 바로 루뭄바의 실각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비극의 진짜 이유가 아니었을까.

 

대안으로 유엔에 의한 신탁통치도 있었지만, 콩고 사람들의 민족 자결주의 의지는 더 이상의 외세 개입은 원하지 않았으리라. 콩고에서 자국의 종주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나토 동맹을 깨겠다고 나서는 벨기에의 왕정을 지지하는 보수주의자들을 비롯해서, 루뭄바의 정치 성향에 대해 의심을 거두지 않는 미국, 자력갱생의 실력이 없다고 판단한 유엔의 고위 관리들에게 루뭄바는 그야말로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벨기에와 미국 그리고 유엔 서구 삼각동맹은 카사부부를 조종해서 콩고의 합법정부 총리인 루뭄바를 9월 5일 실각시키는데 성공했다. 문제는 여전히 루뭄바가 콩고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떤 방식을 동원해서라도, 루뭄바가 다시 권좌로 돌아오는 것은 막아야만 했다.

 

쿠데타 성공으로 희대의 독재자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 조제프 모부투가 루뭄바가 발탁한 인사라는 점도 역사의 아이러니다. 카사부부-모부투 동맹은 실각해서 가택연금 상태에 놓인 루뭄바를 체포해서 그의 최대 정적 카탕가의 모이스 촘베에게 보내는 차도살인 정책을 취하게 된다. 사실상 콩고를 장악하고 있던 유엔 평화유지군이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면 루뭄바가 카탕가에서 비극적으로 살해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콩고 사태에 개입된 모든 정파들은 루뭄바의 죽음을 원했다. 그렇게 루뭄바는 죽었고, 조국의 독립과 발전을 위해 싸우다 장렬하게 산화한 아프리카 최고의 영웅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또 한 가지, 그가 계속해서 살아 콩고의 지도자로 남았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영예를 얻을 수 있었을까? 아프리카 대륙의 수많은 지도자들이 독립투사로 최고 지도자의 반열에 올랐지만 합법적 정당성을 바탕으로 장기간에 걸친 독재를 하다가 추락하는 경우를 우리는 목격하지 않았던가.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가 적절한 예가 아닐까 싶다.

 


에마뉘엘 제라르와 브루스 쿠클릭 두 저자는 루뭄바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대해 가감 없는 서술을 이어간다. 서방 세계의 어느 누구도 합법적으로 선출된 콩고의 지도자의 운명을 좌우할 권리는 없다. 아울러 유엔을 비롯한 서구 제국들도 빈번하게 콩고 내정 개입에 반대하는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실제로 반대로 행동했다. 앨런 덜레스가 이끄는 미국 CIA는 1950년대 과테말라 아르벤스 정권과 이란의 모사데그 정권을 무너뜨린 성공신화를 밑천 삼아 콩고에서도 비슷한 시도를 했다. 어쩌면 주적 카스트로를 암살하기 위한 하나의 시험장으로 삼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루뭄바 암살 시도가 극악무도한 범죄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루뭄바의 패기와 능력을 제대로 평가했고, 결국 그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표지에 실린 파트리스 루뭄바의 사진을 보면, 사로 잡힌 맹수 같은 이미지로 보인다. 서구 열강들에게 루뭄바의 이미지가 그랬던 건 아닐까.

 

파트리스 루뭄바는 냉전 시대의 희생양이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 나오는 설정대로 콩고 사태에 연루된 모든 이들이 루뭄바의 죽음에 책임이 있었다. 루뭄바는 벨기에가 말하는 과거 식민 지배를 위장한 ‘협력과 연대’를 과감하게 거부했다. 서구 열강의 보호와 감독을 원하지 않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국가운영을 위해 유엔과 미국의 원조를 기대했다. 어쩌면 자력으로 신생국 콩고를 운영할 수 없었다는 점이 루뭄바가 가졌던 절대적 한계였는지도 모르겠다. 각지의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병사들을 동원할 수송 장비도 부족했고, 그들에게 지급할 돈도 없었다. 화폐를 찍어내는 능력까지도 벨기에에 의존해야 하지 않았던가. 내부의 심각한 분열과 끊이지 않는 외세의 개입을 저지할 수 없었던 한 민족주의자의 죽음은 결국 조국 콩고에 조제프 모부투라는 희대의 독재자가 등장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 주고 말았다.

 

<누가 루뭄바를 죽였는가>를 읽기 전에 애덤 호크쉴드가 저술한 <레오폴드왕의 유령>을 읽고 싶었지만 미처 그러지 못했다. 1960년 콩고 사태의 원류가 되었던 콩고 자유국의 식민화 과정에 대한 호크쉴드의 책을 읽어 보면 우리에겐 여전히 머나먼 나라 콩고에 대해 좀 더 이해할 수가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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