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투스의 심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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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에 등장한 짧은 북트레일러를 보고 자그마치 30년 전에 발표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브루투스의 심장>을 읽었다. 정말 오래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인데 이제야 읽게 됐다. 역시 책읽기에는 타이밍이 있는 모양이다.

 

중견 산업기계 제조업체인 MM중공업에서 흙수저로 자기 능력 하나만 믿고, 사장의 둘째딸과 결혼해서 기업을 통째로 삼키겠다는 야심에 불타는 남자 스에나가 다쿠야는 니시나 도시키 전무에게 접근하기 위해 아마미야 야스코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문제는 친밀한 관계를 넘어 성적 관계까지 갖다가 그만 덜컥 아이가 생겨 버린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야스코와 관계를 맺은 사람이 자신 뿐만 아니라 MM중공업의 미래의 후계자이자 개발실장 니시나 나오키와 라이벌 하시모토 군도 있다는 점이다. 각각의 이유 때문에 야스코를 제거하기로 결의한 세 남자는 ABC 알리바이로 A가 야스코를 죽이고, 뒤에 대기하고 있던 B와 C가 시체를 릴레이로 운반하는 작전을 세워 야스코를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한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닌가.

 

어린 시절, 부모에게 학대받으며 로봇전문가로 자수성가한 남자 다쿠야는 냉정하기 그지없는 남자다. 오로지 성공을 위해서라면, 자신과 몸을 섞은 여자 혹은 자신의 아이를 가진 지도 모를 야스코를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없애버릴 수 있다. 물론 소설은 세 남자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야스코라고 생각하고 인계 받은 시신이 알고 보니 총 계획의 수립자였던 나오키라는 사실에 다쿠야와 하시모토는 경악한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일이 틀어진 것일까? 초짜 장르 소설작가답지 않게 히가시노 게이고는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법에 정통한 면모를 보여준다.

 

일단, 범인이 누구인지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둔다. 그리고 연쇄살인 프로젝트는 계속된다. 만년필에 장치한 청산가스에 교살된 나오키에 이어 두 번째 희생자 하시모토가 죽는다. 다쿠야도 비슷하게 죽을 뻔한 위기를 모면한다. 도대체 범인은 누구인가? 자신을 죽이려는 계획을 눈치 챈 야스코가 선수를 친 걸까? 사야마 형사는 집요하게 범인의 뒤를 추적한다. 세상에 완전범죄는 없다고 생각하는 형사는 공모자들의 알리바이를 깨기 위해, 살인 동기와 행적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최근에 읽은 그렉 올슨의 소설에서 에스더 반장도 그랬었지. 속된 말로 아다리가 들어맞지 않기 때문에 사건 종결 뒤에도 추적을 멈추지 않는다.

 

다쿠야를 몸종 부리듯 하는 MM중공업의 둘째딸 호시코의 행동도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오로지 출세를 위해 그녀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처럼 보이는 다쿠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수중에 넣게 되면, 그동안의 수모를 갚기 위해 자신의 와이프도 처단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무능해 보이는 임원과 자신에게 적대적인 성향의 안전과장을 내치겠다고 결심하는 장면은 그의 공격적 성향을 잘 드러내준다. 물론 더 놀라운 그의 인격이 결말 부분에서 기다리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사람보다 로봇을 더 사람답게 생각하는 그런 성향이라고나 할까.

 

물론 모든 계획이 주인공 다쿠야의 계획대로 실행되지 않는다. 경찰을 경찰대로, 가장 유력한 공모자로 다쿠야를 지목하고 그의 알리바이를 깨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가운데 의외의 인물이 등장해서 그의 뒷조사에 나선다. 아, 그리고 보니 소설의 처음에 등장한 로봇에게 어이 없이 죽음을 당한 유지의 이야기가 있었지. 장르소설에서 절대 어떤 등장인물도 소홀하게 대접할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비중이 적은 선수라고 하더라도, 작가가 절대 허투루 등장시키는 법이 없으니 말이다.

 

나오키와 임신 2개월된 야스코의 죽음에 대한 의혹을 파헤치는 가운데, ABC 프로젝트에 가담한 또다른 인물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니까 네 번째 인물인 D가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야스코가 임신한 아이는 죽은 나오키와 하시모토 그리고 다쿠야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도 드러난다. 그럼 도대체 그 아이는 누구의 아이란 말인가? 진범은 과연 누구인가와 아이의 아버지는 누구인가라는 두 개의 중첩된 미스터리가 기가 막히게 어우러지면서 소설 <브루투스의 심장>은 종반으로 치닫는다.

 

몰입도가 대단한 책이었다. 다 읽을 때까지 뒷 부분이 궁금해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읽는 재미가 대단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정갈하게 차린 정통 추리물이 선사하는 성찬의 즐거움을 도저히 거부할 수가 없었다고 고백해야 할 것 같다. 독서 슬럼프에 빠졌을 때, 읽으면 정말 단박에 탈출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은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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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18-11-20 1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들기 직전에는 절대 읽으면 안되겠네요. 궁금해서 잠을 못 잘 수도 있을테니 말이죵.ㅋ

레삭매냐 2018-11-20 13:19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 - 잠자기 전에 좀 만
읽고 자려다가 낭패를 봤네요 :>

카스피 2018-11-21 0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흠 레삭매냐님의 리뷰를 보니 이 책은 과거 사회파 추리소설을 연상시키는 것 같아요.

레삭매냐 2018-11-21 08:38   좋아요 0 | URL
게이고 선생이 소설의 오락적 재미
뿐 아니라 그런 사회적 풍토까지
다룬 게 아닐까 싶네요. 물론 전자
가 더 파워풀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