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 실종자
레알 고부 지음, 양혜진 옮김, 프란츠 카프카 원작 / 이숲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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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부터 별러 오던 카프카의 <아메리카> 그래픽노블을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잠시 쉬면서 읽을 만한 정도의 적당한 분량이었다. 아무래도 만화다 보니 쉽게 읽을 수가 있었다.


라스 폰 트리에는 미국에 가보지 않고서도 <도그빌>이라는 미국 문화를 비판하는 걸작을 만들었는데, 1920년대의 프란프 카프카 역시 비슷한 케이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이야기가 아니다 보니, 왜곡도 있고 오류도 보이는 것 같다. 그래픽노블 <아메리카>의 주인공 카를 로스만은 16세의 보헤미아 출신 독일 소년이다. 고향에서 하녀의 유혹으로 스캔들이 발생하자 어머니는 미국으로 떠나 자수성가한 외삼촌 에드워드 제이컵에게 도움을 청하라며 아들을 먼 이국으로 보낸다.

 

배에서 내리다 짐을 잊은 카를은 대서양 횡단선의 화부로부터 자신이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다는 말에 선장을 찾아가 항의한다. 그 자리에서 우연히 성공한 자신의 외삼촌 에드워드 제이컵 상원의원을 만나 초년운이 대박 터진다. 기업가 삼촌은 당장 카를에게 필요한 영어를 가르치고, 사교계 데뷔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한다. 호사다마라고, 삼촌을 찾은 지인 폴런더 씨의 별장 초청을 아무 생각 없이 승낙했다가 원리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삼촌에게 퇴출명령을 받는다. 폴런더 씨의 별장에서는 그의 딸 클라라의 유혹을 받는 난처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아무런 학위도 기술도 없는 청년 카를은 이제 미지의 신대륙에서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 고단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떠돌이 생활 중에 만난 자칭 아일랜드인 들라마르슈와 로빈슨은 카를 삶에서 두고두고 말썽거리를 만드는 요인들로 작동하게 된다. 우연히 찾은 옥시덴탈 호텔의 주방장이자 동향인 그레테 미첼바흐 여사의 도움으로 호텔 엘리베이터 보이로 일하게 되면서 카를은 자리를 잡나 싶었지만, 적절하게 맞춰 등장한 로빈슨 덕분에 호텔에서 해고된다. 경찰에 쫓기기도 한 카를은 하는 수 없이 들라마르슈가 모시는 오페라 가수 브루넬다의 하인이 되는 수모도 겪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들라마르슈와 로빈슨은 브루넬다의 귀중품과 돈을 훔쳐 달아나고 가구나 세간 따위를 팔며 근근히 지내던 카를은 브루넬다를 ‘25상사’라는 곳에 데려다 주고 새출발에 나선다. 오클라호마 자연 대극장에서 아무나 고용한다는 말을 듣고는, 까다로운 심사 끝에 서부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고 떠난다.

 

자신을 독일인이라고 소개하지만 이름에서 보듯 유대인 청년 카를 로스만의 신대륙 정착기는 고난으로 점철되어 있다. 처음에 뉴욕의 유력한 기업가이자 정치가 삼촌 에드워드 제이컵을 만나면서 탄탄대로를 걷는가 싶었지만, 그의 전력이 말해주듯 가족들과 인연을 끊은 이유가 있었다. 그는 철저한 원리원칙주의자로 자신의 뜻에 반하는 행위는 절대 용서하지 않는 그런 냉혈한이었다. 조카를 그렇게 내칠 것이었으면, 처음부터 폴런더 씨의 초대를 반대한다고 했어야 했는데 나중에 가서야 그런 내용을 타인을 통해 전달하는 방식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카를은 청년답게 그런 수모를 견디면서도 훗날 다시 삼촌에게 의탁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감으로 부랑아 친구 들라마르슈와 로빈슨이 삼촌의 회사 제이컵 주식회사를 욕할 때,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는다. 상황으로 미루어 보건대, 제이컵 주식회사는 일용직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악덕기업으로 보인다. 카를의 삶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는 두 친구와의 관계도 그렇다. 카를은 그들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진작에 그들과 연을 끊었어야 하지 않을까. 카를의 선의가 결국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걸 보면서,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신대륙에 이주해서 성공한 대다수의 이민자들처럼, 카를 역시 고된 호텔의 엘리베이터 보이 생활을 하면서도 착실하게 돈을 모으고 상업통신문 공부를 하는 등 미래를 위한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다만 그를 둘러싼 주위환경이 적대적이라는 것이 문제다.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뉴욕 엘리스 섬의 자유의 여신상이 횃불이 아니라 검을 들고 있다는 장면이 너무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아무래도 외국에서 온 이주민에 대한 생래적 공포의 반영이라고 할까? 카를을 ‘검둥이(Negro)’라고 거리낌 없이 부르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이민자들의 나라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지난 세기에 이미 고정화된 편견과 인종차별의 역사가 얼마나 뿌리 깊은 지 다시 한 번 알 수가 있었다.

 

소설 <아메리카>는 원래 <실종자>라는 제목으로 1911년에서 1914년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카프카 사후인 1927년에 발표되었다. <소송>, <성>과 함께 카프카 소설 삼부작 중의 한 편이다. 카프카는 수많은 많은 단편들을 썼지만, 정작 소설은 이렇게 세 편 뿐이라고 한다. 소설의 주인공 카를 로스만은 신대륙에 도전하는 당찬 청년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후반에 브루넬라의 하인으로 전락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얼마든지 들라마르슈와 로빈슨의 감시에서 벗어나 도망칠 수 있었는데 그 자리에 안주했는지 모르겠다. 카프카는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렇게 이중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결말이 미완성이라 과연 카를 로스만의 운명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해 궁금할 따름이다. 캐나다 출신 만화작가 레알 고부가 2013년에 그래픽노블로 제작한 것이 바로 이 책 <아메리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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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0-12 14: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보스턴 디비전 승리에 춤추시겠네요~^^

레삭매냐 2018-10-12 14:50   좋아요 1 | URL
영원한 숙적 양키즈를 ALDS에서 꺾어서
좋긴 한데, 영 불펜이 미덥지 않네요.

DP의 선발 투구력과 킴브럴이 아무래도
ALCS에서 대형 사고를 치지 않을까 염려
가 됩니다...

카알벨루치 2018-10-12 14:51   좋아요 1 | URL
킴브럴이 멘탈강화되서 나올지도 모르죠~ㅋㅋ보스턴 넘 쎕니다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