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노후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
박형서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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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PIN 시리즈 2박형서 작가의 <당신의 노후>를 읽었다적은 분량이어서 그런지 정말 빨리 그리고 스릴러를 읽는 듯한 느낌에 완전 몰입해서 읽게 되었다동시에 기시감도 들었는데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그리고 구병모 작가의 <파과>가 연상됐다그렇지 <당신의 노후>에도 킬러가 등장하지다만 의뢰자가 복수나 원한을 품은 개인이 아닌 준국가기관이라는 점이 다를 뿐그것도 국민의 노후를 책임진다는 대원칙 아래 출범한 국민연금공단이라는 사실에 소름이 끼쳤다.

 

주인공 70세의 장길도 씨는 최근 국민연금공단에서 퇴직한 쌩쌩한 초보 은퇴자다문제의 시작은 그의 9살 연상의 폐렴을 앓는 아내 한수련 씨가 요양원 생활을 위해 장길도 씨가 대대로 물려 받아온 집을 팔고자 했을 때지난 수십 년 동안 국민연금에 가입해 왔다는 사실로부터 시작된다아불싸다른 건 몰라도 초고령 시대에 국민연금은 가입하면 안되는 그런 것이었다국민연금공단에서는 장길도 씨를 비롯한 외곽조직 TF을 가동해서국민들의 소중한 연금을 축내는 버러지” 같은 노인들을 교묘하고 무척이나 효율적인 방법으로 제거해 왔다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사실 국민연금의 비밀 외곽조직은 조직의 설립과 존재 이유 자체에 대한 부정이었다국민들의 노후를 책임진다는 이유로 수십 년 동안 세금처럼 연금을 걷어간 뒤막상 노인이 되어 연금에 의탁하게 되었을 때 과다수령을 이유로 해서 수혜자들을 제거한다는 게 말이 되나그리고 장길도의 아내 한수련을 제거하기 위해 동원된 양파인형술사 그리고 곱등이 등도 역시나 연금공단으로부터 월급을 받는 처지이고훗날 제거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그들은 애써 부정하고 싶었던 것일까. 70세 노인이지만젊은이 못지 않은 체력을 자랑하는 장길도는 아내 한수련이 먹고 싶어하던 사과 두 알'을 구하기 위해 한겨울 40KM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서 구해온 추억에 근거해서 지난 40년 세월이 조금도 길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자각하게 된다그렇지 사랑이란 원래 그런 거였지누구에게 사랑이 대가를 갈구하던가절대 그렇지 않다.

 

이런 절절한 사랑의 이야기와 연금공단으로 대표되는 국가가 불필요해진 잉여자원노인들을 무자비하게 제거하는 과정을 교차해서 노련하게전개하는 박형서 작가의 실력에서 은근 내공이 느껴졌다사실 그의 작품은 <당신의 노후>가 처음이라 다른 소설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구사했는지 당최 알 도리가 없지만 한 편으로도 뭐랄까 작가의 스타일이 잡힌다고나 할까.

 

작가가 <당신의 노후>에서도 지적했듯이 사과 두 알의 상징은 무엇이라도 가능했던이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젊은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다젊은 시절에 죽음을 상상했을까인간이라면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죽음이라는 숙명이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진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다만우리의 주인공 장길도가 파란만장한 싸움 끝에 연금이사를 마주하게 되었을 때 부탁했던 것처럼 품위 있는 죽음을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사랑하는 사람과 조금이라도 함께 하고 싶은 그런 심정이야말로 모두가 누리고 싶은 마지막 소원이 아니었을까도저히 이길 수 없는 게임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이대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는 않은가라며 자신의 운명을 내거는 싸나이 장길도의 모습에서는 무력한 우리의 비애감이 느껴지기도 했다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걷는 이의 외롭고 고독한 모습이라고나 할까.

 

이른 휴가를 다녀오느라 지난 며칠 동안 책을 한 번도 펴지 못해 일종의 죄책감을 느끼던 차에 읽기 시작한 <당신의 노후>로 내가 마음대로 정한 슬럼프에서 탈출하는 계기가 된 듯 싶다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읽다 말고 접은 책들이 있는데이번 여름에는 그런 책들을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이렇게 자유롭게 책을 읽을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싶은 마음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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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7 1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7 14:4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