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평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4
후안 룰포 지음, 정창 옮김 / 민음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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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후안 룰포의 <뻬드로 빠라모>를 읽고 나서 독서모임을 가졌다. 수많은 이야기들을 하며 내가 내린 결론은 결국 독자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읽고 보게 된다는 것이었다. 특히나 <뻬드로 빠라모> 같이 타임라인이 얽히고설킨 경우에는 더더욱이나. 나도 그렇게 책을 읽고 내 맘대로 리뷰를 썼다.

 

단 한 개의 장편소설과 또 하나의 소설집만을 세상에 내놓은 메히코 작가 후안 룰포는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문학계의 별이 되었다. 독서모임에서 어떤 동지가 말했듯이, 조국의 산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올 수 없는 문장들에서 더더욱 그랬다고 했다. 그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이다. <불타는 평원>은 <뻬드로 빠라모>에 비해 진입장벽이 수월하다. 장편소설 <뻬드로 빠마로>가 사람 미치고 팔짝 뛰게 만드는 주술적 리얼리즘으로 무장하고 있다면, <불타는 평원>은 쉬르리얼리스틱하다고나 할까? 슈퍼현실적이라는 표현이 더 알맞을 것 같다.

 

딸 셋 가지 아버지가 막내딸은 창녀가 된 두 언니들과 다른 길을 걷게 하기 위해 막내딸에게 암송아지를 선물한다. 하지만 천재지변 중의 하나인 홍수가 나서 암송아지가 떠내려 가버린다.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메히코 민중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순간이 아니던가. 자신이 원하지 않는 며느리와 결혼한 아들을 인정하지 않는 매정한 아버지의 모습은 또 어떤가. 아이들의 할아버지를 찾아가 자신의 손자들을 굶기지 말라는 부탁을 외면하는 냉정한 노인의 모습 그리고 미국으로 일자리를 구해 월경을 시도해 보지만, 웻백(wetback) 신세로 총을 맞고 돌아온 남자를 기다리는 소식은 아내가 자신을 버리고 달아났다는 엄혹한 사실이다.

 

복수에 대한 이야기도 의미심장하다. 우연하게 살인을 저지르고, 수십 년간 자신을 잡으러 올 지도 모르는 외지인을 피해 다녔지만 결국 피해자의 아들에게 처형당하는 장면은 또 어떤가. 메히코의 역사를 관통하는 혁명의 부산물인 토지개혁에 있어서도, 불모의 야노그란데를 불하받은 농민들의 항의는 관료들에 의해 가볍게 제지되어 버린다. 아니 땅을 달라 해서 주었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이냐? 아니 땅을 주더라도 농작물을 심을 수 있는 땅이 필요한 거지 아무 것도 자라지 않는 불모지를 주다니. 메히코식 탁상행정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혁명에 배신당한 이들이 다시금 불의에 대항하는 혁명의 대의에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걸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아닐 것이다.

 

문학을 통해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의식세계, 사회문화를 엿보는 것은 황홀경과도 같은 체험이었다. 물론 반세기도 전에 나온 책의 전부를 내가 소화해낼 수는 없었으리라. 그래서 나는 내가 보고 느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내가 이해할 수 있을까? 변명 같지만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어쩔 수 없더라도 현실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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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4-24 2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용이 난해해도 독자가 마음대로 해석할 수 있는 문학작품이라면 저는 기꺼이 그책을 읽을 것입니다. 쉬르리얼리즘 풍의 작품 좋아합니다. ^^

레삭매냐 2018-04-26 10:10   좋아요 0 | URL
단 두 권의 소설로 라틴 아메리카의 별이
작가라는 명성이 괜스레 온 게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대단한 작가였습니다.

실비 제르맹의 <마그누스>에도 언급이 되었던
것 같은데, 예전에 달궁에서 <마그누스> 읽고
나서 한 번 읽어 봐야지 싶었는데 결국 만나게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