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메리칸 별곡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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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화의 강 1 ]



우화의 강.jpg

유쾌한 골프 여행이었다.

쾌적한 날씨가 이어졌고  탁트인 아름다운 골프 코스를  가깝고 뜻맞는 친지들과 웃고 떠들며

한 바퀴 라운딩하고 스파에서 느긋하게 피곤한 몸을 풀고, 그리고 품위있는 레스토랑에서의

향 좋은 포도주와 함께 즐기는 디너, 모든게 상상했던 이상으로 완벽하게 즐거운 여행이었다.

“ 여보, 참 기분 좋은 여행이었죠? “

 “ 응, 근데 집엔 별 일 없겠지?”

“ 별 일은 무슨, 다 큰 애가 집을 보는데. 그치만 수아한테 전화 해 줘야지”

시계를 보니 밤 9 시 20 분.

전화에  연결된 딸 수아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 같이 높고 밝은 목소리.

‘ 엄마 잘 다녀 오셨어요?  ‘

    ‘응, 지금 금방 비행기서 내렸어. 필라 공항이야. 집은 별일 없고? 너두 잘 있었지?’

‘ 그럼요 엄마, 거긴 날씨 좋았어요? 여긴 비가 많이 왔는데’

‘ 아니 날씨 끝내주게 좋았어. 덕분에 골프도 잘 치고—‘

모녀의 수다가 길어질까봐 남편이 슬쩍 인상을 쓴다.

‘ 그래 가서 얘기하기로 하고,  음, 지금 출발하면  열한 시 되기 전에 도착할거다.

집에가서 얘기하자’   

집에 도착했을 땐, 10 시 50 분이 좀 넘어 있었다

집 앞 정원에는 안에서 비쳐나오는 불빛이 환하고 현관문이 반 쯤 열려 있다.

‘ 얘가 우리 오는거 기다리느라고 문 열어 놓은건가?’

‘ 이 밤 중에 왜 문은 열어 놨어?’

남편도 열린 문이 불안한 듯 투덜대며 문 안으로 들어선다.


그런데 이게 왠 일?----   이게 뭐야.

아악!! 수아야 수아야, 수아야, 대답해 봐.

수아는 최후까지 있는 힘을 다해 저항한 듯 거실의  탁자와 꽃병이 넘어지고, 깨지고

등이나 화분들이 던져져 흩어져 있고 수아는 입술을 꼭 깨물고 눈은 크게

열려져 있는채 멈춰 있다.

범인은 매우 잔인하게 여린 처녀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끌고 다닌 듯 여기저기

핏자국이 엉키고 벽에까지도 튀고 머리는 둔기로 내리쳐 골수가 흘러나와

바닥에 피와 함께 고여 있다.

길버트는 방문을 조금 열어둔 채, 컴퓨터 게임에 열중해 있다.

누나는 병원에 입원해 있고 아버지는 아직 그로서리 가게서 일을 하고 있고,

그리고 엄마는—하고 생각이 멎자 조금 머리를 갸웃한다. 아까 누나가 입원한 병원서

출발했다고 하니, 오실 시간이 되고도 남았는데—교통이 막히나 하며 그래도 손가락은

부지런히 표적물을 터뜨린다. 

그 때 차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얼마 후 차고로 통한 옆문이

열린다. 

" 엄마 이제 오세요? "

" 응, 나 올라가서 샤워 좀 할께"

하고 엄마는 문가를 그림자처럼

소리없이 지나가 윗 층으로 올라간다.  길버트는 이제 엄마도 들어오셨으니 좀 더 느긋하게

게임을 즐긴다.

윗 층에서 물소리가 그친 얼마 후, 엄마는 말갛게 씻은 얼굴로 길버트 방문을 열며

" 저녁은 뭘로 했니" 묻는다. 

낮은 목소리와 미소진 엄마의 얼굴, 그런 엄마가 언제나 좋다.

" 응 냉장고에서 먹다 남겼던 피자 꺼내 먹었어요."

"그거 갖고 돼? 라면이라도 하나 끓여 주까? 뜨거운 국물을 먹어야 먹은거 같지 "

" 아니 됐어요, 근데 누나는 어때요? "

‘ 응 누나도 이제 한결 기운을 차리고 있어. 차츰 나아지겠지."

엄마는 잠시 생각하는듯, 망서리는듯 , 그러나 마음을 다잡고 말한다.

‘ 길벗 나 어디 좀 빨리 갔다올께.

 ‘ 왜요? 엄마 밤이 깊었는데요.’하며 시간을 본다

열한 시 이십 분이 넘어 있다.

" 아빠도 곧 오실텐데요."

 " 그러니 빨리 다녀 올께."

‘ 엄마 내가 라이드해 드릴께요. 어딘지만 말하세요. 길버트는 황급히 후드쟈켓을 걸치고 엄마를

따라 나선다. 

그들의 토요타 켐리가 한 불록 떨어진 고모네 집 앞을 지날 때, 고모네 집 앞엔 경찰차가 여러 대 서 있고 경찰들이 막 노란 테프 폴리스라인을 치고 있다.


" 엄마, 고모네 집에 무슨 일이 있나 봐요, 잠간 들어가 봐야겠어요."

‘ 글쎄, 무슨 일일까?  웬만하면 갔다 오는 길에 들러보자.’

그러나 곧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달려온 엠브란스까지 보자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모자는 함께 고모네 드라이브 웨이로 들어간다.

앞을 가로막는 경찰에게 길버트는

이웃 사는 친척이란 소개를 하고 현관으로 들어섰다.

‘ 고모 이게 어쩐 일이얘요?’   길벗은

너무 처참하고 황당하게 눈 앞에서 벌어진 일들에 경악하며 믿기지 않아 할 말을 잊는다.

이럴 때 엄만 침착 일번지다. 거의 넋이 나간 고모부에게 차가운 냉수 한잔을 권한후

고모를 부축하여 카우치에 앉치고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 고모 이럴 때일수록 정신차려야 해요’차리고 경찰에게 보신대로 얘기하세요. 범인을 찾아야지요. 뭐 의심가는 데 있으세요?

고모는 충격과 공포로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며 눈망울을 황망히 굴리

다가 뒤늦게 엄마를 알아보고 목을 끌어 안으며 대성통곡 울음을 터뜨린다.

길버트는 엄마가 지시하는대로 델라웨어 강가로 가서 차를 세웠다.

수풀이 층층 어둡게 우거지고 사방이 적막하다.


" 여기 좀 있어라 엄마 혼자 잠깐 내려갔다올테니,"

" 엄마 어두운데 어디로 가시려구요? 같이 가요."

하며 황급히 따라 나서려는 길버트에게

' 아, 너는 여기 꼼짝 말고 있으래니께.' 엄마는 귀찮다는듯 쌀쌀맞게 대꾸하며 벌써

강물이 흐르는 내리막 길로 접어들고 있다

엄마의 손에는 검은 쓰레기 봉지가 들려 있고 좀 묵직해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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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이 된 엄마 ]

“ 우리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요. “

쌍둥이 중 봄이가 억눌러 왔던 분한 마음을  조그만 소리로  투덜댄다.

“ 맞아요, 아빠가 엄마를 큰 총으로 쏘았어요. “ 다른 쌍둥이 자매 가을이가 역시 주위를 살피며 일르듯이 내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종알댄다. 다섯 살 나이,아직 죽음이 어떤건지 모르는 아이들 눈에 눈물은 안 보이고 오직 놀라움과 공포, 그리고 노골적으로 아빠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가득하다.

“ 엄마는 피를 흘리고 너무 많이 아파 꼼짝도 못하고 병원차로 실려 갔어요.”  

쌍둥이  봄이와 가을이는  내가 주일학교 유치부를 맡아 가르치는 우리 반 여자 이이들이다. 아빠와 엄마가 야채 그로서리 가게를 하느라 항상  바쁘니 얘기할 상대가 없는지 교회에 나오면 일주일 지낸 얘기를 하느라 언제나 수다스럽다.

쌍둥이 자매는 매일 엄마 아빠와  새벽에 일어나 같이 차를 타고 가다, 중간에 한국 할머니 집에 내려주면 그 곳서 할머니 보살핌 아래 밥도 먹고 놀다가, 자다가  하루가 지나면 한참 늦은 저녁에사 엄마가 찾아와 집으로 데리고 가는 식이다.

바쁜 엄마아빠 보다 한국 할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  한국말 중에도 경상도 사투리의  어른스런 말을 하는게 엉뚱하고 귀여워 나는 그 애들과 이야기 하기를 즐긴다.

‘ 선생님, 선생님 있잖아요—하고 말문을 열면 마치 참새처럼 쉬지 않고  재잘대다 , 숨이 차서 좀 쉬노라면 다른 꼬마가 바톤을 이어받아 또 떠들고, 그러면 또 교대로 부연 설명을 반복하고 그러다 보니 그 집 안의 비밀이 모두 홀딱 드러나고 만다. 

그런데 이번 사안은 무척이나 심각하고 참혹하다.

우리 좁은 교포 사회에서 벌써 소식이 쫙 돌은 큰  사건이라 나도 벌써 알고 있는 일이다.

지난 목요일 저녁, 봄이네 집에 봄이아빠 동생,삼촌이 방문하여 술자리가 있었고 삼촌이 자기네 가게와 합쳐서 더 큰 가게를 하자는 의견에서 부부간의 이견이 생겼다는 것이다. 지금 운영하는 가게를 팔아서 몽땅 삼촌네, 매상이 부진한 리커스토어에 투자하고 함께 동업하자는 형제들의 의논에 봄이 엄마는 강경하게 반대했다.

지금 근근히 하고 있는 야채가게는 그야말로 봄이 엄마의 굳어지고 갈라터진 손바닥에서 이루어진 결과물 이다.

먼저 이민 와 살고 있는 언니의 중매로 미국 노총각인 남편이, 그래도 먹고 살만한 재력가라는 감언에 솔깃하여 아메리카의 또 다른 꿈을 안고 미국으로 시집왔던  봄이 엄마.

그런데  남편은 그 때까지 일다운 직업 없이 부모에게 얹혀 사는 건달이었다. 시가에서 이젠 철 좀 나서 어엿한 가장이 되어 보라며,  외지고 헐한  야채가게를 하나 내주어 봄이 엄마는 이것만이 미국 생활에서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이다 생각하며 죽을 힘을 다하여 열심히 일했다. 쌍둥이를 임신하여 남다르게 부른 배를 가누기 힘들어 밑이 빠질 정도가 되어도  쉬지 않고 일한 억척스럽고 부지런하던 그녀.

싱싱하고 질 좋은 야채와 과일을 받아 씻고 털고 가지런히 진렬해 놓으면 유난히도 후렛쉬 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끌려  손님들이 점점 늘고 제법 밑천이 불어나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것이 형제간의 경쟁이나 시새움을 산 것일까. 자금난에 시달리던 동생이, 그 야채가게를 팔아 그 돈으로 함께  장사를 하자는 것이다.절대 동업을  반대하는 형수와 술기운으로 이성을 잃고 길길이 날뛰는 형네의 부부싸움에 노골적인 불쾌감을 보이며 삼촌이 떠나고 난 다음, 

사건이 일어났다.

평소에도 과격한 성격에  동생 앞에 체면을 꾸기고, 주사까지 겹치니 불같이 화가 난 봄이 아빠는 앞 뒤 가릴 새 없이 평소 가게에서 안전을 위한다고  비치해 두었던 엽총을 꺼내와  겨눈 것이다.

봄이 엄마는 너무나 공포스러워 빌고 사죄하며 화장실로 피신했으나 그 곳까지 쫒아가 봄이 엄마 몸에 근접 사격을 하였다는 것이다. 

 공포와 눈믈로 얼룩져 창백하게 굳은 쌍둥이 딸앞에서 그렇게 아빠는 못 보일 꼴을 보이고 만 것이다. " 화장실 벽에 새빨갛게 묻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어요 "

봄이가 진저리를 치며 말한다.


그런데 사건은 어떻게 처리되는 것인가. 지역 신문에는 한 귀퉁이에 간략한 내용으로 조그맣게 당일에만 비쳤고 , 사건이 있은 지  며칠  지난 주일 , 교회 나와서야 수근수근 대충 전해 들은 얘기로, 이미 봄이 엄마는 화장을 해서 장례식도 끝냈 다는 것이다.

자세한 상황을 어린 쌍둥이 딸들을 통해 들으며 ,어쩜 이 가공하고 끔찍스런 사건에 모두 입을 다물고 있는걸까.나는 놀라움과 분노를 참을 수 없어 목사님을 찾았다. 

그는 우유부단하고 난처한 표정으로

“ 죽은 사람은 이미 갔고 산 사람이나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어린 아이들도 있는데 애들 아빠 형량이 길어지면 애들한테 더 큰 불행이 아니겠어요? “

그래서 봄이 할머니가 내미는 감형 탄원서에 서명했다는 것이다.

‘ 이건 아냐, 봄이 엄마 너무 억울하게 갔는데 그 나쁜 놈을 위해서 감형이라니,’

나는 다시 김장로를 찾아 갔다. 그는 장의원을 운영하고 있고 봄이 엄마 장례를 집전한 사람이다.

“ 불쌍하지도 않아요? 어쩌면 서둘러 장례까지 치루고 , 혹시 고향 보모님께 연락이라도 했나요?” 나는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 김선생, 나도 사정은 다 압니다. 그런데 봄이 아빠 그 늙은 노모의 부탁이 너무 절절합디다.

어쩌겠어요? 그리고 그들 가정 안에서 일어난 사건에 증인이 없어요. 봄이아빠의 진술로 봄이엄마가 먼저 총으로 위협했다고 합니다. “

" 저는 봄이와 가을이의 말을 듣고 봄이아빠의 정당방위설이 어처구니 없는 변명이라는 걸 알아요.

이 애들을 증인으로 내세워 봄이엄마의 무죄함과 억울함을 풀어드리고 싶어요."

내 말은 끝내 울음소리로 변하여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 김선생님 진정하세요, 봄이 가을이는 아직 너무 어려 법정 증언의 효력이 없어요. 그리고 아이들


에게 그런 아픈 기억을 들추어내는게 더 잔인한 일이지 않을까요? 나도 다방면으로 생각해 봤으나


이 번 일은 그냥 덮어두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는 알았다. 뉴욕에서 제법 돈을 굴린다는 그 노모, 엄청난 돈을 풀어 탄원서 서명을 돈으로 사 들였다는 것을.

그 일이 있은 후 이듬해 봄, 봄이 아빠는 가볍게 풀려났다.

봄이 엄마가 먼저 총으로 위협하고 그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한 < 정당방위 >로 총기를 사용했다는 검찰 조사와 남겨진 어린 딸 아이들의 양육을 위한 배려, 또 많은 사람들의 탄원서의 내용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그 탄원서의 내용은 대충 이랬다고 한다.


‘ 평소 매우 착실하고 성실한 성재문씨는 아내, 이나래씨가 정신 이상적인 돌발 행위 외 알코홀릭으로  총기로 위협해 와서 아이들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총기를 빼앗고 그 사이 총기의 오발로 뜻 아닌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성재문씨의 무고함과 그에게 남겨진 어린 딸 쌍둥이의 양육을 위하여  피고인 성재문의 정상을 참작해 가벼운 형으로  삼가  재고해 주십시요.’


봄이와 가을이, 쌍둥이 아이들은 이미 뉴욕 사는 할머니가 데려가서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그 애들의 가슴 속에 깊이 새겨져 있는 그 끔찍한 장면을 잊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졸아든다. 나는 맘 속으로 외친다.

‘ 아이들아, 너희들의 엄마는 별이 되어 언제나 너희를 지켜보고 계실거다.지상에서의 비극은 어서 잊어라. 너희들의 기억을 지워 버려라. 반짝이는 엄마의 별만 보거라.그 것만이 너희들 삶의 나침판이 될거다.'

외치는 마음에 연민과 회한, 그리고 비겁자의 쓰라린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흐른다.


그리고 그 후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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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되어 만나리   9


웬지 카니네 집 방문을 극히 꺼리고 회피하려는  명수씨를 설득하고 달래며 집을 출발한 것은 일요일 정오가 좀 지나서였다. GPS에 카니가 불러준 주소지를 입력하며

“ 아, 카니, 미드타운 부촌에 사네요. 하프 밀리언 주택이 즐비한 곳인데 ” 은주씨가 웃으며 말한다.

병목 형상의 도로 탓인지 한참이나  번잡하고 자꾸 밀리게 되는 큰 길을 벗어나느라  시간이 한참 지체되었다.

그리고  겨우 한적한 소로로 접어들자  바야흐로 풍성하게 우거지는 신록에 가려  큼직한 저택이 드문드문 보이는 동네 길로 들어선다.


느릿느릿 번짓수를 점검하며 가다가  야트막한 돌담 위에 번지수만 적힌 주소지에서 지피에스 안내는 끝났다.

그러나  집은 보이지 않고

가느다란 외선으로 된 프라이빗 ( 개인용 )  도로를 따라 드물게 보는 회화나무가 자잘한 잎들을 팔랑이며 줄지어 서 있다.

“ 미국에서 보기 드문 회화나무일세. 이걸 집 안에 심으면 가문이 번창하고 큰 인물이 난다는 길상목으로, 동양에선 귀하게 여기는 나무지.” 여지껒 뚱하던 명수씨가 비로소 한 마디 한다. 심은 지 한 이 십여  년은 됐을까, 후리후리하게 자라고 밑둥이 실하여 귀티의 풍모가 보인다.


차가 파킹랏에 멈추어 서자 카니가 기다리고 있었던 듯, 현관문을 열고 나온다. 청바지에 체크무늬 면셔츠가 신선한 활력을 준다.

“ 찾아 오는데 힘 들지 않으셨나요? 어쨋던 잘 오셨어요. 들어 오세요.”

안으로 들어서는데 40 세 전후로 보이는 한 남자가 웃으며 맞이한다.

은주씨는 무심히 그를 보다 “ 헉 ‘하고 들이킨 숨을 내놓지 못한다. 눈을 크게 뜨고 그 남자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 본다.

명수씨도 막상 그를 보자 가슴에서 억장이 무너지듯, 큰 소리와 함께 다리에 힘이 풀린다. 남자가 얼른 명수씨의 팔을 잡으며 게스트룸으로 인도한다.

“ 제 이름은 왕 김이라고 합니다. 참 많이 뵙고 싶었어요.”그는 침착하게 말하며 손을 내민다.

“ 여보, 어쩜 젊었을 적 당신을 꼭 빼 닮았어요.  당신이 옆에 없었다면 당신이 ‘젊어지는 샘물’을 먹고 나타났다고 생각할 뻔 했어요. “ 은주씨는 숨 죽여 얘기했지만 카니도  왕 김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도 주의 깊게 듣고 있다. 그리고 슬그머니 웃는다.

넓직한 실내의 통유리 넘어로 덩굴잠미가 한창인 화사한 뒷뜰이 통째로 보이고 잘 꾸며진 수영장에는 맑은 물이 푸르게 찰랑이고 있다.

“ 아, 제 손자들도 소개하지요. 사내아이가 둘, “ 하며 카니는 이층을 향해 “ 션, 루키, 어서 내려 오너라. 린다, 너도 와서 인사해야지 “ 아이들은 부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즉시 통통통 뛰어 내려 왔다. 한 놈은 12 살 션이구요, 얘는 10 살 루키예요. 내 예쁜 며느리  린다 “

검은 머리 검은 눈에 당당한 체격의 두 소년, 그리고 금발 푸른 눈의 며느리는 의외로 수줍고 조용해 보였다. 그러나 서툴지 않은 한국어로

“  잘 오셨어요 만나서 반가워요 “ 명수씨에게는 고개를 숙여 인사 하고 은주에게는 다가와   다정하게 허그 한다.

가족 모두가 이들의 방문을 몹시 기대하고 흥미로워 했을 듯한 분위기.


명수씨는 다시 맞은 편 소파에 앉은 왕을 찬찬히 살펴 본다. 여기에 내 DNA 일부가 이렇게 크게 일가를 이루고 존재하다니, 처음은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바였으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싹이 트고 자라나고 가지를 뻗어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아, 나란 놈은 잘 살아 왔다고 자부했음에도 , 이 일가 앞에선  왠지  치졸하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카니 앞에 면목이 없 다.

은주씨도 눈을 반짝이며 왕을 주시한다. 그리고 옆에 앉은 남편을 바라 보고, 공통점이 뭔가, 뭐가 이렇게 같은 분위기가 되는 걸까 열심히 관찰한다.

“ 미스터 김은 무슨 일을 하고 있어요?” 은주씨가 왕에게 묻는다.

“ 네, 저는 쎈메리 하스피탈 ( 성마리아 병원 )에서 흉부외과 닥터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대학에 나가 강의도 하고요. 제 아내도  작은 닥터 오피스를 운영하며 주로 소아, 청소년들의 일차 진료를 맡는 홈닥터를 하고 있지요.’  

부드러운 목소리,   친절하고 공손한 태도, 그러나 그 내면에 무한한 긍지와 당당함이 느껴진다. ‘ 참으로 잘 난 아들이다’

마침 카니가 쟁반에 음료수와 치즈, 스넥을 가져 오고,  왕의 아내 린다도 스프링 쿨 러 음료수와  잔을 가지고 와 테이불에 늘어 놓는다.

“ 디너는 다섯 시쯤  준비 해도 되겠습니까?” 하고 린다가 손님들에게 묻는다.

“ 그럼요, 좋아요” 은주가 대답하자  “ OK “ 린다가 생긋 웃으며 주방 쪽으로 간다. 왕도 슬그머니 자기 아내 린다를 따라 자리를 뜬다.

“ 카니, 어쩜 이렇게 아들을 훌륭하게 키웠어요?  다른 자녀도 있나요?”

“ 아니요, 단 하나의 아들이얘요.”

“ 근데 카니, 아들을 언제 낳아 벌써 손자까지 두었어요?

“ 네, 제가 좀 일찍 십대에 엄마가 되었어요.” 카니는 재빠르게 말하며 슬쩍 명수를 본다.

“ 서양 며느리와 함께 사는게 불편하지 않나요? ‘ 은주는 자신의 시집살이를 연상하며 묻는다.

“ 글쎄요, 아직은 몰라요. 내가 집에 잘 안 붙어있어요.이 집은 다만  일 때문에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니다  쉴겸 해서 돌아오는 제 아지트 같은 곳이지요 “  카니는 흰 이를 드러내 활짝 웃으며 말한다.

“ 그것도 좋은 방법이네요, 그런데 카니 , 세계 곳곳을 살피는게 당신의 직업이었나요? “


그때 왕김과 린다가  다가와서 상냥하게 말한다.

“ 디너가 차려졌어요 , 와서 식사를 하시지요”

큰 창으로 들어오는 밝은 빛으로 인해 밝은 넓직한 식당, 큰 테이불에는 새하얀 린넨 식탁보  위에 꽃과  접시, 포크 나이프 행커치프까지 빈틈없이 말끔하게 차려져 있다.

그리고 차례차례 음식이 나온다.  갓 구워낸 듯 따뜻하고 구수한 빵과 스프 , 셀러드, 메인으로  비프스테이크, 후식인 과일과 디저트,

카니가 자랑스럽게 말한다.

“ 오늘 음식은 아들 왕과 린다가 정성스레 만든  작품이랍니다. 맛있게 드세요 “

다섯 사람은 각자 다른 상념에 젖어 식욕은 별로인데 깔끔하고 심풀하게 준비한 메뉴는 험 잡을 틈 없이 완벽하다.

션과 루키는 일찌감치 자신들의 몫을 해치우고 자리를 뜬다.  

대충 먹고 난 은주씨 상냥하게 말한다.


“ 참 맛 있게 잘 먹었어요, 도대체 이런 하이 콸러리  음식 어디에서 전수 받은 거지요?”

며느리 린다에게 물으며 칭찬을 겸한다.

“ 내 시어머니의 요리솜씨가 무척 좋으세요, 난 따라가기 불가능합니다. “

일동은 다 같이 웃으며

카니, 며느 리 린다에게 눈으로 말한다.

‘ 고마워 린다, 나를 돕느라고 많이 애 써 주어서.’


  

식사가 끝난 후 명수씨 부부는 카니와 함께 뒷 뜰 대크로 나가 한 잔 더 하기로 한다.

뒷뜰 풀장에서 왕과 아들 아이들이 수영을 하고 있다.  덩굴장미가 향기를 뿜으며 활짝 피어 있고 아이들이 그들의 아빠와 평화롭게 공을 주고 받으며 수영을 하는 모습,

너무 신선하고 아름답다, 세 사람은 별 말 없이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와인을 마신다.

세 사람 다 착잡하고 복잡한 심정이다.

와인 병이 비자 카니가 새 와인을 가지려 자리를 뜬 사이,


은주씨가 남편을 흘겨 보며 날카롭게 말한다.

“ 당신 비겁하군요, 왜 솔직하지 못하죠?  난 당신의 비밀이 의심스러웠어요.

난 이미 카니가 어리디 어린 미혼모였다는 걸 말해 주어서 알고 있었 어요. 아들과 함께 기가 막히게 험하게 살아 온 내력도 얘기를 들었어요, 여러 가지가 궁금하고  의심스럽고 그래서 더 관심이 많았 는데 이제 여기 와서 그녀 아들 얼굴의 퍼즐을 넣고 보니 똑 떨어진 그림이 보여지네요.

카니가 굳이 우리를 초대한 이유가 이해되지 않나요?”

“ 당신한테는 정말 부끄럽고 면목 없소, 근데 나도 까마득한 옛날 에피소드, 잊고 있었고 솔직이 믿을 수 없었고 또  현실로 인정하기 괴로왔소. 그러나 막상 와 보니 부정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소. 내가 어떻게 해야 하겠소? “

한없는 무력감을 느끼며 명수씨가 말한다.

“ 난 짐을 싸서 집을 나가면 그만이얘요. 난 홀몸 , 아주 심풀하죠, 카니와 그 아들을 인정하세요. 그리고 새 가정을 만드세요. 외롭고 힘들게 살아 온 모자를 따뜻하게 감싸 주세요.”

별로 술을 즐기지 않는 은주씨로서 와인 몇  잔에 활짝 대범해 진다. 모르겠다. 진심에서 하는 말인지, 책임질 수 있는 말인지, 스스로의  설음으로 목이 메이고 눈물이 왈칵 난다.

카니가 새 와인< Beringer 2010>을 한 병 들고 오며 말한다.

“ 은주씨, 우린 아무 것도 바뀌는게 없어요. 다만 새로 알게 된  사람들의 관계망이 넓어졌다는 사실만 알기를 바래요.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우리 모두 훌륭하지 않나요? “

쾌활한 목소리다. 그리고 이어서 말한다.

“ 저는 아들 왕이 레지던트를 끝내고 생활이 안정된 뒤 ,뜻한 바대로  유엔본부에 들어가 일을 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 경제 사회 위원회>에서 일해 왔어요.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이 있으면 즉시  현지로 가 현황을 조사하고  보고하며 또한 일목요연하게 도와줄 일을 작성하여 각 구제활동 분야에서 일하는 기관들에 도움을 요청하는 거얘요.”

카니는 각 와인잔에 와인을 따른다.

“ 근데 이 번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싶은 욕심에 유니쉐프(unicef )로 자리를 옮겼어요. 그리고 문화나 종교, 또는 정치적 이유로  여성들의 인권이 너무 열악한 아프가니스탄으로 갑니다. 자라나는 여자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와 여성들의 인권 신장과 사회참여의 획기적인 변화를 이룩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일겁니다. 기한은 정해진게 아니고 아마  거기서 오래도록 그들과 함께 살 각오로 떠나는 거얘요..”

“ 아, 거기 너무 위험하지 않나요? 오랜 역사의 종교나 문화적 편견이 너무 크다고 하던데요.”

은주씨의 말이다. 명수씨도 걱정스럽게 카니를 바라 본다.

“충분히 알고 있어요. 다른 국제 사회 봉사단체들과 연대하여 일을 진행해 나갈 겁니다. 그리고  이제 곧 출발할 날짜가 되었어요. 그래서 은주씨의 가게에서도 더 이상 일을 못 하게 됐어요. 죄송하게 됬어요.”

카니는 너무 많은 말을 쏟아낸 것이 벅찬듯 와인을 한 모금 마신다. 그리고 의미심장하게 명수씨 부부를 응시한다.

“ 제가 바라는 것은 오늘 처음 인사한 내 아들 왕이와 그의 가족들 포함하여 모두  함께 원만하고 정다운 인간관계를 형성해 주십사는 것입니다. 저의 의도는 이것이 다 입니다. “

하며 나머지 잔을 비운다.

카니의 긴 이야기가 끝나고 그들은 각기 다른 상념으로 조용히 잔만을 비운다.


이제 카니의 집을 떠나며 은주씨가 닥터 왕에게 말한다.

“ 닥터김, 머지않아 당신을 우리 집에 초대하겠어요. 당신의 가족 모두 꼭 와 주세요”

“ 아, 물론 가겠습니다. 잊지 않고 기다리겠습니다 “

왕은 정말 기쁜듯이 말한다.  

명수씨는 기쁘고 쁘듯한 마음과 서운하고 휑한 마음 , 그 양극의 마음에서 분간이 안 되고

어색한 웃음만 머금는다. 그리나 차마  속으로 말한다.

‘ 카니 난 당신에게 미안하고 부끄럽소, 몰라보도록 훌륭하게 성장한  당신 모자에게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오.’

닥터 왕도 부드러운 눈길로 명수씨를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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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되어 만나리   8


금요일 저녁, 하루 일과가 끝나, 사람들이 모두 퇴근하고 보일러나 콤프레셔, 온갖 프레스 기계들도 잠잠하니, 사방은 무섭도록 조용하다.

은주씨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아직 일을하고 있다.

일주일의 입출금을 정리하고 내일, 토요일 고용인들에게 지급할 주급을 계산한다.

크리너에서 주로  일하는 멕시칸들은 다수 불법체류가 많고 또는 생활상태가 미국에 적응이 덜 되어 아직 은행 계좌도 없는 초기 이민자들이 많다. 그들은 언제나 현금( cash )지급을 원한다. 손에 현금이 만져질 때 비로소 돈벌이의 의미와 보람을 느끼는 것이다.


본래 중국인들의 상권이던 크리너 업중이 1970 년 대 부터 한국인으로 넘어오자 한국인들의 근면성과 깔끔 하고 재빠른 솜씨가 환영을 받아 한 때 한인 세탁소가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1990 년대에서 정점을 찍으며 2000 년 대 들어서 9.11 참사, 이락, 아프카니스탄 전쟁으로 인해 미국 경제가 곤두박질을 치고,

또한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첨단 대기업들이 더 이상 정장 수트 차림보다는 캐주얼 복장을 선호하여 드라이 클리닝 옷이 대폭 줄고, 또 더하여 각 의류제품 회사는 경쟁적으로 물세탁 바지, 다림질이 필요 없는 논 프레스 셔츠들을 인기 상품으로 내세우는 등 등, 하는 이유로 세탁업은 사양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세탁계 내에도 이미 포화상태의 과밀 한 동업종 가게들의 출혈  경쟁이 치열했고,

설상가상   비에남인( 월남인 )들이  게릴라 전법으로  엄청 빠르고 손쉬우며, 무지하게  저렴한 가격으로 세탁업을  밀고 들어홨다.

이런 여러 이유들로 경영난에 허덕이며 고용인을 줄이고 주인이 그 노동을 모두 커버하려니 너무 힘들고, 또 펄크가 해롭다는 공해문제로 정부 규제는 더욱 심해지고, 열악해지는 분위기에서  세탁업은 나날이  내리막을 걷고 있다.

따라서 은주씨도 열 몆 개의 드랍샵을 거느리고 있었으나 차츰 축소하여 지금은 여섯 개 가게와 독립된 건물, 큰 세탁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에서의 기업은 주인 혼자 독식이 근본적으로 안 된다. 종업원의 최저 급료가 법적으로 제한되 있으며 기계가 돌아가게끔 하는 유틸리티,( 전기세, 가스비, 서풀라이 비용, 인권비, ) 등의 비율이 만만치 않고, 그리고 정부에 내는 세금, 그건 총수입의 33% 대의 커다란  지출이다. 그러니 긍극적으로 하나의 비지니스를 열어서 경영한다는 건  여럿이 다같이 먹고 살자는 민주적 기본 이념이다. 은주씨가 이런 모든 규제에도 오늘 날까지 번영을 이루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외형적 수입도 중요하지만 내면적인 은주씨의 근검절약과 규모있는 재테크가   크게 도움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은주씨 개인적으로는 거의 낭비하는 일 없이 남는 금액을 착실히 모으고 십만불 단위로 저축을 하며 가게나 부동산을 매입하여 수익증대를 확대해 나가는 방법으로 기업을 키워 왔다.

오늘의 수입 계산도 썩 만족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은주씨는 지출을 점검하고 그 나머지 자신의 인건비나 투자 금액의 일정 수준이 겨우 채워진 것 에 감사한 마음이다.

그리고 자신의 영토에 깃들어 먹고 사는 여러 가족들, 이제까지 여기를 스쳐가며 아이들을 키워내고 생활 기반을 다져 독립해간 수많은 초기 이민 가족들을 생각하면 나름 보람을 느낀다.


사무적인 일을 끝내  한숨 돌리고 있는데 전화 벨이 울린다.

남편 명수씨 “ 나 오늘 일이 아직 안 끝나 좀 늦겠소, 걱정 말고 먼저 들어가 쉬어 요”

은주씨는 막연한 불안감에 머리를 갸웃한다. 남편 명수씨의

전에 없이 빈번하게 늦는 귀가. 시도 때도 없이 막연하게 흔들리는 눈빛, 그리고 느닷없이 베푸는 과도한 친절,

‘ 아, 뭔가 그에게 일이 생기고 있어. 무얼까.’

“ 아, 참 여보” 은주씨는 다급하게 남편을 부른다.

“ 카니가 당신과 나, 자기 집에 초대했어요. 이번 주말에요. 난 그러마고 했어요, 당신도 주말 비워 두세요.”

전화선 너머 명수씨 후드득 숨을 몰아 쉰다.  그러나 곧 평정한 목소리를 가다듬어

“ 알았소, 집에 들어가 다시 얘기 합시다 ” 하며 전화를 끊는다.


은주씨는 잠시 하루의 피곤을 잊은채 생각에 잠긴다.

카니는 자기가 결혼은 하지 않았고  미혼모로 아들 하나를 키워 왔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사정이 있어 이 곳 일을 그만 두겠다는 말도 했다. ‘ 이제 들어와 자리를 잡고 우리 가게에 필요한 존재가 됐는데 대체 무슨 일일까 ‘ 카니는 매우 미안하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 집에 초대하여 한 번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정말 알 수 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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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되어 만나리  7


오목이 모자가 들어가 살게 된 곳은 미8 군 소속으로 한국에 파견 근무하는  리처드 딕슨 대령 colonel과 멜리사 무어 딕슨 부부 집이었다 그들의 나이는 .사십 살 중반 쯤 되었고 딸과 아들 남매가 있으나 본국에서 대학 재학 중이므로 부부만이 한국에 나와 살고 있다.

미세스 멜리사는 페미니즘에 관한 학문 연구에 골몰하며  사회적인 여성 지위 향상에 관심이 많은 학자였다. 따라서 아직 여성학의 불모지인 한국에 와서 몇 몇 여자대학에 출강하며 여성학의 기초를 다지고 후학을 가르치고, 여성 전문의 학자로 기르려고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비록 메이드로 들어온  오목이에게도 깊은 관심과 이해로 따뜻하게 대해 주고 서양 음식 만드는 것도 차근차근 기초 부터 가르쳐 주었다.

지적이고 당당하게 살아 가는 미세스 멜리사를 보며 오목이도 여자로서의 반듯한 자질과 긍지의 근본을  알아가며 스스로도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추려 생각을 모은다.


“ 그들은 5 년을 복무하고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어요. 인정 많은 그들은 우리 모자도 초청을 해 주었어요.곧 뒤 따라 간 우리 모자에게 기본적으로 살 길을 마련해 주시기도 했지요.

난 그 때, 미국에 온 두 가지 목적을 확실하게 정했어요.

첫 째 , 내 아들 왕이 훌륭하게 기르기

둘 째 ,  아들 왕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한 나 자신  계발

그리고 그 두 가지를 충족시키기 위해 열심히 돈 벌기.

그 때만 해도 신천지 미국에서 일거리는 지천이었어요. 난 서양 음식 만드는데도 어느 정도 자신도 있고 미세스 멜리사가 보증을 서 주어  레스토랑에 일자리를 얻었지요.꽤 돈을 벌었어요, 그래서  내 음식점을 차렸어요. 그러나 경영이 서투른지 얼마 안 가 문을 닫게 되었어요.

그리고 생선 가게를 열었어요. 새벽 일찍 싱싱한 생선을 받아 와서 부위별로 깨끗이 손질하여 진열해 놓고, 원하는 이들은 즉석 튀김이나 스테이크로 구워 주기도 했어요.그 새로운 상술이  완전 대박이었어요. 그 때 꽤 많은 돈을 벌었지요.

그러나 내 목표는 돈이 아니었어요. 내 아들이 성장함에 따라 나도 그에 상응하는  멋진 엄마가 되고 싶었어요, 난 아들이 상급학교로 진급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계속 열심히 공부해 학력 시험을 보고 자격증을 따고 드디어  아들이 대학 가던 해에 나도 근처 주립 대학을 가는, 그런 식으로요. 물론 졸업 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해 냈어요.

남편 없이 아들 하나를 키우는 젊은 여자가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동정이나 연민은 마세요.

그건 그닥 어렵지 않았어요. 아들보다 겨우 열 다섯 살 더 먹은 젊은 엄마가 마음만 먹으면 뭔들 못하겠어요? 내 아들은  동생 같기도 하고  때로 튜더 ( 가정교사 )가  되어 주고 또 친구가 되어 주었어요 .아들과 난 그냥 한  인생 , 그 자체였죠. 이해가 되나요?


카니는 명수씨를 똑바로 바라보며 얘기한다.

“ 천지사방을 모르고 스스로  미혼모의 길로 들어선 것,내 자청한 것, 그게 내 운명인 것  나 충분히 알아요. 그래서 더 치열하게 매달렸지요.

그러나 살아 오며 때때로 가슴 깊이 스며드는 그리움과 외로움, 그건 원과 한을 넘어 내 거룩한 신앙같은  사람, 때로는  당신이 그리움을 넘어  너무 밉고 미워서 뜨거운 분노가 내 심장을 할퀴었어요. 당신을 멀리서 바라 보며

‘죽이고 싶다, 짓밟고 싶다. 때때로 분노와 원한이 훨훨 타 오르는 거였어요 내 인생 전체를 통째로 쇠꼬챙이로 꿰 뚫는 참담한 고통, 그것을 그에게도 똑같이 꿰뚫어 주고  싶었어요.”


잠잠히 듣던 명수씨,  쇠꼬챙이로 심장이 찔린듯 멍먹한 가슴으로 카니를 끌어 안는다

. “ 당신은 누구지요? 난 오목이가 생각나지 않아요. 너무 먼 옛 얘기얘요. 전설 또는 민담을 듣는 것 같구려. 그런데 난 아무 것도 모른 채,태평하게 살아 온 내 삶이 부끄럽소

카니, 이제  내가 당신을 어떻게야 하나요?  왜 이제야 나타난거요  “하며  볼을 부빈다.

눈물로  젖어 든  카니의 얼굴, 그 위에 명수씨의 뜨거운 입술이 온통 휘젓는다. 이윽고  카니의 입술이 겹쳐지자 둘은 것잡을 수 없는 열망과 욕정으로 뜨거운 활화산 되어 함께 깊이깊이 침잠한다.

아무 것도 생각되지 않는다.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젠 원망도 분노도 소멸한다.


지난 밤의 긴장과 피곤, 과로로 아직 잠에서 깨어니지 못한 몽롱한 명수씨,

카니는 두 손으로 그의 볼을 감싸고 뺨과 이마, 입술에 키스 한다.

‘ 너무 귀하고 달콤한 내 사랑 당신 ‘

명수씨도 아직 꿈 속인 양, 미소 지으며 키스한다.

그러나 명수씨는 가슴 터지도록 궁금한 그것을, 카니는 가슴 속부터 치밀어 올라와

목에 걸려있는 그것을  마지노선처럼 꼭 눌러두며 피차 건드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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