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

 

아침마다 만나는 태권도장 관장. 한 아파트에 살고 반상회에서도 자주 만나는 사이였어요. 그런데 참 인사성이 없었어요. 인사를 먼저하는 법은 절대 없고, 인사를 해도 잘 받지 않았어요. 얼굴은 늘 우거지상이었고. '왜 그럴까,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나?' 속으로 이리저리 궁리를 해봤지만 아무리 궁리를 해도 이유를 알 수 없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결론을 내렸어요: "운동(만) 해 무식해서 그런거다!"

 

운동(만) 한 사람들은 무식하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이 편견이 틀리지 않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했어요. 운동(만) 한 사람들이 무식하다는 편견은 하루 아침에 형성된 것 같지 않아요. 어렸을 때 부터 주위 어른들한테 익숙하게 들었고, 학창 시절 주변 학우들에게서 실제 그런 면모를 확인했어요. 이런 편견은 사회생활을 통해 더 강화됐어요. 운동 좀 한다는 사람들은 대개 말이 거칠고 문제를 논리적으로 풀기보다는 힘을 앞세워 풀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정말 운동하는 사람들은 무식할까요? 무식이 단지 아는 것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지만 '무식 = 머리 나쁨'을 의미한다면 이는 잘못된 상식이라고 해요. 운동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머리가 좋고 사교성도 우수하다고 해요. 미국 대학 입시에서 고교시절 운동 (선수) 한 학생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이렇게 보면 운동 좀 한다는 사람들이 말이 거칠고 힘을 앞세워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것은 꼭 실제로 말이 거칠고 힘을 좋아해서라기 보다는 그것이 문제를 푸는데 유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러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무식한 자의 우둔한 방법이라기 보다 머리좋은 자의 약삭빠른 방법이라고 볼 수도 있는 거지요. 어쩌면 저 태권도장 관장의 무례도 자신의 우월성(?)을 확보하기 위한 약삭빠른 행위였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만일 운동 하는 사람이 겉으로 드러내는 행동도 예의바르고 말투도 공손하며 논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어떨까요?

 

사진은 '영도매화용법묘 춘생도리예림향(詠到梅花樁法妙 春生桃李藝林香)'이라고 읽어요. '매화 꽃 노래하듯 권법 오묘하고, 도리화 핀 봄날처럼 도장 향기롭네'라고 풀이해요. 영춘권(詠春拳)의 '영'과 '춘'을 가지고 이 권법의 특징과 수련생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렸어요. 영춘권은 견자단 주연의 영화 엽문을 통해 잘 알려졌죠. 특이하게 여성이 창안한 권법으로 보폭이 짧고 다이나믹한 손놀림이 특징인 권법이죠. 엽문(葉問, 1893 -1972)을 통해 널리 전파된 무술로 액션 스타 이소룡도 그에게 배웠다고 전하죠.

 

엽문은, 영화에도 나오지만, 본래 자신의 수련을 위해서 영춘권을 익혔을 뿐 제자들을 가르칠 생각은 없었다고 해요. 대륙이 공산화되자 거처를 홍콩으로 옮기고 부득이 생계 수단으로 제자들을 받기 시작했다는군요. 인터넷에서 그에 관한 내용을 찾아보다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그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았다고 해요. 또 가르칠 적에는 '재미(흥미)'를 중시하여 제자들의 재미 수준에 맞춰 개별 지도를 해줬다고 하더군요. 흡사 공자(孔子)의 교수법을 연상시키는 이런 지도 방법은 그가 지도한 것이 학문이 아니라 무예란 점에서 더욱 흥미로워요. 무예 지도하면 으레 '강압'을 연상하는데 그의 지도는 이런 것과 멀게 느껴지기 때문이죠. 영화 '엽문'에서도 보면 그가 제자들을 억지로 가르치기 보다는 자발성에 기초해서 따라오도록 지도하거나 제자들에게 인격의 수양을 강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억지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실제 그러했던 것 같아요.

 

대련(對聯) 중앙에 있는 이는 엽문인데, 짐작컨대, 말년의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 모습이 무척 평온해 보여요. 전혀 무도인같지 않고 오랫동안 수양을 해 온 도인처럼 보여요(이런, 무도인도 도인이긴 하네요). 이 사진 한 장으로도 그가 제자들을 어떻게 지도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영춘권이 널리 퍼지게 된 건 영춘권 자체가 훌륭해서라기 보다 엽문의 훌륭한 인품과 능숙한 지도 방법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낯선 자 두 자만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樁은 木(나무 목)과 舂(찧을 용)의 합자예요. 말뚝이란 뜻이에요. 木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舂은 음을 담당하면서(용→장)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위에서 아래로 찧을 때 잘 박히는 것이 말뚝이란 의미로요. 말뚝 장. 위 대련에서는 '치다'란 뜻으로 사용됐는데, 이는 의 의미를 부연한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칠 용.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定(장정, 확고하게 정함), 法(용법, 치는 방법)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藝는 본래 埶로 표기했어요. 埶은 坴(언덕 륙)과 丮(잡을 극)의 합자예요. 손에 씨앗을 쥐고[丮] 여러 땅에다[坴] 심는다는 의미예요. 이 글자의 일반적 의미인 '재주'는 여기서 연역된 거예요. 씨앗을 심는 행위가 결실을 위한 초보 행위이듯이 재주란 일을 성사시키기 위한 토대란 의미로요. 재주 예. 藝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藝術(예술), 技藝(기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나. 태권도장 관장과 헤어진 지는 벌써 10년이 돼가요. 그 이는 지금도 여전히 그런 모습인지 궁금해요. 만일 그가 엽문같은 좋은 스승한테 배웠어도 그런 모습을 취했을까 생각해 봐요. 무도만큼 스승의 영향을 깊게 받는 분야가 없기에(대부분 일대일 지도니까요) 그의 그런 무례한 태도는 스승의 영향도 크지 않았을까 싶어요. 부디 그가 가르치는 제자들에게는 그가 밟은 전철(?)을 답습시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여담 둘. 대련 해석에 확신이 없어요. 영춘권의 특징과 수련장의 모습을 담았을 것으로 짐작하고 풀이는 했는데 왠지 자신이 없네요. 사진은 처(妻)가 자신의 페이스 북에서 얻었다며 준 것이에요. 글을 쓰는데 아내의 도움이 큽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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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7-12-09 0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동(만) 한 사람이 다 그렇지는 않겠고, 아마도 인사할 줄 모르는 그 관장님 개인 품성이 문제겠지요.^^
오늘도 나를 돌아볼 계기가 된 좋은 글 감사해요~♥

찔레꽃 2017-12-10 12:17   좋아요 0 | URL
그렇겠죠? ^ ^

무심 2017-12-09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 관장님은 무도라기보다는 무술을 배운 듯싶습니다. 저도 전에는 운동만 하는 사람들을 무시햇었는데 요즈음은 달라졌습니다. 예를 들어 ‘강호동‘은 그야말로 운동만 한 사람인데 얼마나 머리가 좋습니까! 그의 개그감각이라든가 언어감각은 웬만한 개그맨을 뛰어넘습니다.
저는 영춘권 같은 여성적인 운동을 높이 쳐줍니다. 여성적인 운동은 우리 몸을 부드럽게 해 주고 그 결과 ‘혈행‘을 원할하게 해 줍니다. 혈행이 원할하면 고혈압이라든가 당뇨 같은 성인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사람의 건강은 절대적으로 혈행에 달려 있습니다. 걷기나 자전거 타기, 수영 같은 ‘우리 몸을 부드럽게 해 주는 운동‘을 저는 ‘혈행 운동‘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따라서 축구나 복싱 같은 격한 운동은 건강에 안 좋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찔레꽃 2017-12-10 12:18   좋아요 0 | URL
‘술‘과 ‘도‘는 글자 한 자 차이인데, 경지는 하늘과 땅 사이인 것 같습니다. 무심 선생님만의 건강법을 갖고 계시군요. 부럽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