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는 추석 황금 연휴가 얼마 안남았네요. 혹 추석 연휴에 해외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지요? 어쩌면 해외 여행을 계획하신 분 중에 사진의 장소를 가실 계획이 있으실지도 모르겠네요.

 

 사진은 중국 복건성에 있는 무이산(武夷山) 천유봉(天游峰) 표지석이에요. 천유봉시무이제일승지 위어육곡계북 위애용취 능운마소 구곡계산전세진수안저(天游峰是武夷第一勝地 位於六曲溪北 危崖聳翠 凌雲摩霄 九曲溪山全勢盡收眼底)라고 읽어요. 이렇게 풀이해요: "천유봉은 무이산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이다. 무이구곡(武夷九曲)중 육곡(六曲)의 시내 북쪽에 위치한다. 비취 빛을 띈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 위에 서면 구름을 뚫고 하늘을 만질듯 하다. 무이구곡의 전 시내와 산의 형세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천유봉이 있는 무이산, 중에서도 무이구곡은 옛 선비들이면 한 번 쯤 가보고 싶어했던 장소예요. 그들이 흠모했던 성리학자 주희(朱熹, 1130-1200)가 이곳에 무이정사를 짓고 학문을 탐구했거든요. 그래서 그럴까요? 무이산은 이런 평가까지 받고 있어요: "동주는 공자를 낳았고, 남송은 주희를 낳았다. 중국의 고문화는 태산과 무이산에서 나왔다(東周出孔子 南宋有朱熹 中國古文化 泰山與武夷)."

 

 무이구곡은 주희가 이름붙인 경승지예요. 일곡은 승진동(升眞洞), 이곡은 옥녀봉(玉女峰) , 삼곡은 선조대(仙釣臺), 사곡은 금계동(金鷄洞), 오곡은 무이정사(武夷精舍), 육곡은 선장봉(仙掌峰), 칠곡은 석당사(石唐寺), 팔곡은 고루암(鼓樓巖), 구곡은 신촌시(新村市)예요. 주희는 무이산 계곡 중 9.5Km에 달하는 구간에 이 구곡을 설정하고 이곳을 노래한 '무이구곡가'를 지었어요. 이 무이구곡가는 단순 서경시로 보기도 하지만, 도에 들어서는 단계를 풍경을 빌어 표현한 것으로 보기도 하지요.

 

一曲溪邊上釣船   일곡계변상조선   일곡 시냇가 낚싯배에 오르니

幔亭峰影蘸晴川   만정봉영잠청천   만정봉 그림자 맑은 내에 비치네.

虹橋一斷無消息   홍교일단무소식   홍교 한 번 끊긴 뒤 무소식

萬壑千巖鎖翠煙   만학천암쇄취연   만학천봉 안개속에 잠겼네.    <일곡(一曲)>

 

九曲將窮眼豁然   구곡장궁안활연   구곡 경치 끝날 쯤 눈 훤히 열리니

桑麻雨露見平川   상마우로견평천   평천의 우로젖은 상마가 보여라.

漁郞更覓桃源路   어랑갱멱도원로   어부여, 무엇하러 도원경 찾으오

除是人間別有天   제시인간별유천   이곳이 바로 별천지인데.       <구곡(九曲)>

 

일곡과 구곡의 내용을 읽어 봤는데 확실히 입도차제(入道次第)로 해석할 여지가 많아 보여요. 특히 일곡 시의 3, 4구는 유학의 도가 끊긴 상황을, 구곡 시는 유도 체득 이후의 경지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을 듯 해요. 어떤 해석이 더 적절할까요? 주희는 시 짓기를 매우 꺼려했다고 해요. 성정을 도야하는데 별반 도움이 안된다고 여겨서요. 그런 그가 이런 중의적 해석이 가능한 시를 지은 것을 보면 비록 시 짓기를 꺼렸지만 시재는 풍부했던 듯 해요.

 

무이구곡가의 영향으로 과거엔 'ㅇㅇ구곡'이란 명칭과 'ㅇㅇ구곡가'란 아류 작품이 많이 지어졌어요. 대표적인 것이 송시열이 명명한 '화양구곡(華陽九曲)'과 이이가 지은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지요.

 

인터넷을 찾아보니, 무이산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 자연 유산과 문화 유산이 함께 지정된 곳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한창 성수기인 5월에는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1주일에 7~8천을 헤아린다고 해요. 대나무를 베어 만든 뗏목을 타고 무이구곡을 관람하는 관광객의 행렬이 장관을 이룬다는군요. 그런데 관광 코스는 구곡에서 일곡으로 진행된다고 해요. 이게 순류라는군요. 일곡에서 구곡으로 진행하는 것은 역류라고 해요. 주희는 역류하며 무이산의 경치를 감상했던 것이지요. 시대의 조류를 거스른 학문을 했던 - 성리학은 주희 생전에 불온한 학문으로 지목됐어요 - 그답게 경치 감상도 역류를 택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는 㫃(깃발 언)과 汓(떠갈 수)의 합자예요. 깃발이 펄럭인다란 뜻이에요. 㫃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汓는 음을 담당하면서(수→유)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물체가 물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떠가듯 깃발이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린다는 의미로요. '놀다'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깃발이 펄럭이듯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여기저기 나돌아 다닌다란 뜻으로요. 놀 유. 游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游覽(유람), 游戱(유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위태롭다는 의미예요. 불구덩이에 빠진 사람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보기도 하고, 언덕 위에 위태롭게 서있는 사람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보기도 해요. 위태로울 위. 危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危險(위험), 危機(위기)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耳(귀 이)와 從(좇을 종)의 합자예요. 귀머거리란 뜻이에요. 耳로 뜻을 표현했어요. 從은 음을 담당하면서(종→용)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소리를 잘 못듣기 때문에 타인의 얼굴과 몸짓을 따라 상대의 의사를 파악하는 이가 귀머거리란 의미로요. '솟다'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귀머거리는 잘 못듣기 때문에 늘 귀를 쫑긋 세운다는 의미로요. 솟을 용. 聳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聳起(용기, 우뚝 일어남), 聳耳(용이, 귀를 쫑긋거림)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羽(깃 우)와 卒(하인 졸)의 합자예요. 암녹청색의 새[물총새]란 뜻이에요. 羽로 뜻을 표현했어요. 卒은 음을 담당하면서(졸→취)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하인(노비)들에겐 그들의 신분을 구분짓기 위해 특별한 색의 옷을 입혔는데 이처럼 물총새의 깃털 빛깔도 다른 새의 깃털 빛깔에 비해 특별하다란 의미로요. 물총새 취. 비취색 취. 翠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翡翠(비취), 翠陰(취음, 녹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冫(얼음 빙)과 夌(언덕 릉)의 합자예요. 얼음의 돌출 부분이란 뜻이에요. 冫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夌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얼음이 언덕처럼 돌출됐다란 의미로요. 얼음 릉. 범하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돌출된 얼음처럼 상대를 넘어선다는 의미로요. 범할 릉. 凌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凌駕(능가), 凌蔑(능멸)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手(손 수)와 麻(삼 마)의 합자예요. 양 손으로 비빈다는 뜻이에요. 手로 뜻을 표현했어요. 麻는 음을 담당해요. 비빌 마. 摩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摩擦(마찰) 撫摩(무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攵(칠 복)과 糾(얽을 규) 약자의 합자예요. 죄수를 쫓아가 붙잡는다는 뜻이에요. '거두다'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거둘 수. 收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收穫(수확), 收入(수입)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广(집 엄)과 氐(근본 저)의 합자예요. 한 곳에 정착하다란 의미예요. 广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氐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氐은 본래 땅 밑으로 곧게 뻗은 뿌리를 그린 거예요. 그처럼 한 곳에 뿌리를 박고 머무른다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해주고 있어요. 그칠 저. '밑'이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밑 저. 底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底邊(저변), 底層(저층)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나. 무이산의 무이는 신선 이름이에요. 무이구곡가 일곡에 등장하는 홍교[무지개 다리]는 그가 다른 신선들을 초대하기 위해 놓은 다리예요. 이처럼 무이산은 본래 도교와 관련깊은 곳인데 주희가 거처한 이후론 유교의 영향권에 들게 됐어요. 주희의 영향력이 어떠했던가를 알수있지요.

 

여담 둘. 인터넷을 찾아보니 무이정사 앞에는 주희의 동상이 있더군요. 마치 도산서원에 퇴계의 동상을 세워놓은 것과 다를바 없는 격인데, 왠지 품격이 떨어져 보이더군요. 무이정사나 도산서원에선 그저 텅 빈 공간을 거닐며 주희와 이황의 정신 세계를 그려보는 것이 제 맛일듯 싶어요. 동상이나 시설물은 되려 이곳 관광의 맛을 떨어트리지 않을까 싶어요. 주희의 동상은 철거하는게 낫지 않을까 싶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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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이병욱 2017-10-10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찔레꽃님의 글에는 늘 정성과 박식함이 담겨있습니다!

찔레꽃 2017-10-13 11:32   좋아요 0 | URL
이렇게 상찬의 말씀을.... 감사합니다!

무심이병욱 2017-10-18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원래 저는 한글전용론을 지지하는 입장이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는 한자문화권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운명임을 깨달은 겁니다. 한자를 배척하는 순간부터 우리 문화의 손실을 감수해야 하거든요. 그렇다면 국한문혼용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찔레꽃 2017-10-19 08:50   좋아요 0 | URL
한글전용을 하되 한자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최선인 것 같은데 이는 이상인 것 같습니다. 한글전용이 대세를 이루며 한자 문맹을 만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 않나 싶어요. 국한문혼용이 중용적인 대안인데, 현실에서 지지를 받기란 너무 힘든 대안이지 않은가 싶습니다. 그저 안타깝게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어문 현실인 것 같아요.

김병문 2017-11-09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개인적으로 고전 한문과 일본어,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지만 디지털 시대에 국한문 혼용은 되려 시대에 역행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일본어 중국어로 스마트폰, 컴퓨터 자판 치는게 얼마나 비효율적이던지... 저는 차라리 교육은 수학 과학을 더 강화하고 한문은 미국에서 라틴어와 고대영어를 AP라하여 인문계열학과 진학할 학생 혹은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집중 이수시키듯이 미국의 방식으로 나가는게 낫다고 봅니다. 엔지니어,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비롯한 소위 STEM을 전공 할 학생들은 라틴어 혹은 한문을 갖고 씨름하기보다는 수학, 과학, 공학을 더 배우는게 낫다고 생각하구요. 다만 인문계열 진학할 학생들은 지금보다 한문 교육을 강화해야한다고 보고 있어서 인문계열 전공할 고교생들에 한해 한문을 필수 AP로 지정하는게 어떨까 싶습니다. 지금 정부 교육정책도 이쪽으로 잡고 있지만 한문은 찬밥신세다보니...

찔레꽃 2018-02-08 12:33   좋아요 0 | URL
폭넓은 생각을 갖고 계시군요. 한자와 한문은, 아시겠지만, 혼용되어 쓰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차이가 있지요. 지금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인문이나 자연 계열과 상관없이, 한자 교육이 아닌가 싶어요. 일상어나 학문 용어에 사용되는 어휘의 상당수가 한자어이기 때문이지요. 한글 전용이냐, 국한문혼용이냐는 그 다움 문제인듯 싶어요. 이치상으로는 국한문 혼용이 맞지 않나 싶어요. 배운 한자를 일상에서 경험해야 잊지 않고 활용이 되는데 그럴라면 국한문 혼용이 바람직한 표기 방법이죠. 하지만 이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컴퓨터 입력이 대세인 상황에서 국한문 병기는 번거로운 일이기 때문이죠. 한글전용 표기는 어쩔수없는(?) 대세인 듯 싶어요. 한문 교육은 님께서 언급하신대로 추진하는게 좋은 방향인 듯 해요. 인문학에서 고전에 대한 소양을 빼면 남는게 없으니까요. 우리의 경우 그 고전은 한문 고전이 대다수를 차지하니 인문계열 학생들이 한문 소양을 갖춰야 할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듯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