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왜 우리 형제를 이간질했는가(汝何爲離間我兄第)!"

 

"만일 선태자께서 일찍 제 말을 들으셨다면 오늘 이같은 화를 당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先太子 早從徵言 必無今日之禍)."

 

"…"

 

현무문의 정변 후 권력을 장악한 당태종 이세민이 자신의 형 이건성의 부하 위징을 불러 나눈 대화예요. 위징은 이건성에게 이세민을 진즉에 제거하라고 권고했지만, 미적거리다 되레 이세민의 역습을 받아 죽게됐죠.

 

당태종은 위징과의 대화에서 형제간 이간질 운운하며 위징을 죽이려 했지만, 사실 위징의 말은 틀린데가 없는 말이었어요. 무엇보다 당태종 자신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죠. 하여 냉정한 사실을 거림낌없이 말한 위징에게 매력(?)을 느껴 그를 죽이지 않고 수하로 거두죠.

 

권력은 형제간에도 나누기 힘든 속성이 있는 것 같아요. 한동안 신문에 오르내렸던 롯데가의 권력장악 모습도 한 방증이 될 듯 싶어요. 이런 - 형제간에도 양보하지 않는 - 권력의 속성에서 보면 권력 주변부 인물은 권력자에게 '울타리' 보다는 '혹'에 가까운 존재인듯 싶어요. 언제 자신의 위치를 넘볼지 모를 존재이니까요. 당태종의 경우, 현무문의 정변 후 화근을 없애기 위해 조카 10명을 모두 죽였죠.

 

조선의 태종 이방원 역시 당태종처럼 형제를 살육하고 권력을 장악했던 인물이죠. 태종의 형 정종은 아우 이방원에게 얼른 왕위를 넘기고 고향으로 돌아갔죠. 권력의 무상함 보다는 권력의 서슬퍼럼에 질려서요. 이런 그였으니 자식들에게 '혹'이란 존재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절절히 알려줬을 거예요.

 

사진은 '선정묘(宣靖廟)'라고 읽어요. 정종의 4째 아들 '선성군(宣城君) 양정공(良靖公, 시호) 이무생(李茂生)의 사당'이란 뜻이에요.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있어요. 본래 경기도 파주에 있었는데 이 곳으로 옮겨 왔다고 해요. 이무생은 한 때 불가에 입문한 적도 있는데, 아버지의 가르침 때문이었다고 해요. 인터넷을 찾아보니, 세종 시절 - 세종과 이무생은 사촌간 - 글 공부를 게을리해 귀양을 간 적이 있다고 나오더군요. 글 공부를 게을리 한 것은 머리가 둔하거나 세력을 믿고 그랬다기 보다는, 공부의 의미를 느끼지 못해 그런 것 아닌가 싶어요. 권력의 중심부에서 멀어지기 위해 불가에도 입문했던 처지니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도를 가르치는 유교 경전 공부가 그에게 무슨 의미가 있었겠어요? 공부를 게을리한, 아니 일부러 멀리한 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죠. 이무생은 자잘한 벼슬을 하며 권력과 거리를 두고 별 탈없이 지내다 68세에 돌아갔어요. 아버지가 일러준 '혹'의 처신법을 충실히 이행한 삶이었다고 할 수 있죠.

 

이무생은 한 세상 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능력이 있었다면 세상을 원망했을 것이고, 능력이 없었다면 자족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세상을 원망하든 자족하든 늘 살얼음판을 밟는 기분은 떨치지 못했을 것 같아요. 권력 주변부의 삶, 얼핏보면 행복할 것 같은데, 실상은 그다지 행복한 삶이 아닌 듯 싶어요. 경우는 약간 다르지만, 최순실의 경우도 한 방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자를 좀 자세히 알아 볼까요?

 

은 宀(집 면)과 亘(걸칠 긍)의 합자예요. 상하좌우 공간이 넓은 큰 집이란 뜻이에요. '베풀다'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공간이 넓은 큰 집처럼 널리 (은혜를) 베푼다는 의미로요. 베풀 선. 宣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宣揚(선양), 宣戰(선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立(설 립)과 靑(푸를 청)의 합자예요. 안정되어 있다란 의미예요. 立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靑은 음을 담당하면서(청→정)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푸른 색은 변함없는 하늘의 빛깔인데, 이같이 변함없는 것이 바로 안정된 것이란 의미로요. 편안할 정. 靖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靖難(정난, 국가의 위난을 평정함), 閑靖(한정)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广(집 엄)과 朝(조정 조)의 합자예요. 조정은 엄숙한 의식을 진행하는 곳이죠. 그렇듯 엄숙한 자세로 돌아가신 선조께 예를 올리는 곳이란 의미예요. 사당 묘. 廟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宗廟(종묘), 文廟(문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宣 베풀 선   靖 편안할 정   廟 사당 묘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閑(   )   宗(   )   (   )揚

 

3. 권력 주변부 경험이 있으면 말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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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 2017-05-29 0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침 권력의 냉혹한 속성을 잘 보여주는 책을 읽는 중이었습니다. 책의 이름은 ‘절반의 중국사‘. 책의 분량이 많고 가격도 높은 편인데 한 번 읽어 볼 만합니다. 다 읽고 난 뒤 제 블로그에 독후감을 올릴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기회에 한 가지 조언을 하고 싶습니다. 블로그의 ‘길에서 주운 한자‘라는 표현보다는 ‘길에서 만난 한자‘라는 게 어떨까요? 줍는다는 행위보다 만난다는 행위가 더 어감도 좋고 의미가 있어 보이거든요.
찔레꽃님의 영역을 건드리는 실수가 아닐까 조심스럽습니다만.

찔레꽃 2017-05-29 08:54   좋아요 0 | URL
무심님의 독후감이 벌써 기다려집니다. 블로그 제명까지 신경을 써 주시니... 감사드려요. ^ ^ 깊이 고민해보겠습니다. ^ ^ 농사는 잘 되시는지요?

무심이병욱 2017-05-29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도 예전 같지 않아 농사의 양을 많이 줄였습니다. 가뭄이 길어지면서 작물은 물론, 잡초들도 제대로 크지 못하는 희한한 풍경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찔레꽃 2017-05-29 15:54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큰 피해가 없어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