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스타일의 남자를 좋아하세요?"

 

"남자는 그저 처자식 안굶기고 밤일만 잘하면…."

 

윤봉길 의사의 부인 배용순(裵用順) 여사의 묘소 안내판을 보면서 불경스럽게(?) 영화 "수상한 그녀"의 대사 한 대목이 떠올랐어요. 노년의 오말순(나문희 분)은 청춘을 돌려주는 사진관에서 젊은 오두리(심은경 분)로 변한 뒤 뜻하지 않은 여러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 중의 하나가 젊은 PD 한승우(이진욱 분)와의 연애죠. 한승우는 젊은 외모에 비해 성숙한 말과 행동을 하는 오두리에게서 모성애를 느끼죠. 그러던 어느 날  오두리에게 본격적으로 구애하기 위해 위 물음을 던졌다가 너무도 뜻밖의 대답을 듣고 순간 공황 상태에 빠지죠. 그러다 이내 폭소를 터뜨리죠. 걸쭉한 농담으로 받아들인 거죠. 그러나 오두리의 대답은 농담이 아닌 그녀의 삶에서 체득한 진실한 대답이었어요.

 

배용순, 16살에 1살 어린 신랑 윤봉길에게 시집 와(1922년) 7년간 같이 살면서 2남 1녀를 두었고 10년 뒤인 26살에 남편을 잃었으며(1932년) 시부모와 많은 시동생을 거느린 맏며느리로 살다 82세로(1988년) 생을 마감한 여인. 이 여인에게 남자/남편이란 어떤 존재일까를 생각할 때, 저 오두리의 대답이 가장 적확한 답이 아닐까 싶더군요.

 

그래서 그랬을까요? 배용순 여사는 자신을 의사(義士)의 아내로 여기는 주변의 시선에 부담을 느꼈어요.

 

"덕산면 우리 집에는 봄과 가을이면 소풍 온 학생들이 마당 가득히 들어서서 '윤 봉길 의사'를 기렸다. 나는 학생들이 들이닥칠 때마다 어디론가 숨어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내가 내 남편의 '장엄한 죽음'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며, 자랑으로 여길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남편의 동상이 효창 공원에 세워질 때에도 그 자리에 나가기를 꺼려했고 그 밖에도 남편과 관계된 자리에는 되도록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한 불행한 아낙네의 삶에 씌어지는 가당찮은 비단옷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털어놓고 하는 말, 뿌리깊은 나무: 1978, 191쪽)

 

조국을 위해 산화한 한 의사의 아내가 한 말이라기엔 너무도 초라해 보이는 말이에요. 그러나 이건 가감없는 진솔한 고백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녀가 원한 것은 저 오두리가 말한 그런 남편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지 지사의 아내라는 화려한 호칭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그녀에게 지사의 아내라는 화려한 호칭은 남편잃은 자신에게 가해진 또 하나의 고초였던 셈이죠.

 

그러나 저는 그녀의 이런 고백이 되려 의사의 아내답다는 생각이 들어요. 거짓으로 남의 기대에 부응하기 보다는 진솔하게 자기 마음을 표현했기 때문이죠. 경우가 약간 다를 수 있지만 한 친일파의 후손이 내뱉은 다음 궤변과 비교해 보면 그 진솔함은 더 빛을 발하죠: "우리 할아버지가 친일파라면 일제 강점기 중산층은 다 친일파다(이인호 KBS 이사장)."

 

배용순 여사는 돌아가서도 남편과 같이 있지 못해요. 배용순 여사의 묘소는 예산의 충의사에 있고, 윤봉길 의사의 묘소는 서울 효창공원에 있거든요. 한 평생을 한되이 보낸 여인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싶어요. 명예라는 이름으로.

 

 

배 여사의 한자 이름을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는 衣(옷 의)와 非(아닐 비)의 합자예요. 특별히 길게 늘어진 옷을 가리켜요. 衣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非는 음을 담당해요(비→배). 옷치렁치렁할 배. 서성거리다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늘어진 옷처럼 걸음이 늦춰져 있다란 의미로요. 서성거릴 배. 裵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裵回(배회, 서성거림. 徘徊와 통용) 정도를 들 수 있겠네요.

 

은 卜(점 복)과 中(가운데 중)의 합자예요. 점을 쳐 합당한[中] 결과를 얻었기에 시행에 옮긴다는 의미예요. 쓸 용. 用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用度(용도), 使用(사용)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頁(머리 혈)과  川(내 천)의 합자예요. 머리를 숙여 공손한 태도를 취한다란 의미예요. 頁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川은 음을 담당해요(천→순). 순할 순. 順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順從(순종), 順序(순서)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裵 옷치렁치렁할(서성거릴) 배   用 쓸 용   順 순할 순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使(   )   (   )回   (   )序

 

3. 배용순 여사의 구술(口述) 생애를 찾아 읽고 느낌을 말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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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mm8319 2017-02-06 10: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국어선생을 했습니다만 순수한 우리말만 고집해서는 우리 문화의 상당부분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배용순‘여사의 성함만으로도 한문 한자를 헤아려보게 함에 감탄합니다. 게다가, 배용순 여사 생전의 말씀들까지 소개해 줌으로써 무엇이 옳은 삶인지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찔레꽃 2017-02-05 10:38   좋아요 2 | URL
이렇게까지 깊은 관심을... 좋은 댓글은 항상 힘이 된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무심이병욱 2017-02-06 10: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주 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