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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리고 몽골 - 20대 전부를 몽골과 맞바꾼
최선미 지음 / 좋은땅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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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얼마나 몽골을 사랑하는지, 이 책을 통해 바라 본 몽골이 참 아릅답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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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칭의는
오직 은혜에 의해(우리의 공로와 혼합하지 않은),
오직 믿음을 통해(우리의 행위와 혼합하지 않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우리의 영광이 아니라) 이루어진다.

성화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우리를 서서히 도덕적으로 그분의 아들의 형상으로 바꾸어 나가시는 것, 이러한 점진적인 변화

칭의와 성화를 혼동할 때 기쁨이 사라진다.

법적인 문제(칭의)가, 그것도 단번에 해결되고 나면 도덕적 진보(성화)가 이루어진다.
그것은 너무나 드려서 우리를 탄식하게 한다. 칭의와 성화는 둘 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며, 둘 다 그리스도의 피로 산 것이다.
그 둘은 분리할 수 없지만 서로 다르다. 둘 다 오직 믿음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 들이시는 것은 우리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 때문이다.
우리의 점진적인 성화-아주 느리지만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장-는 분명히 중요하다.

어느 날 들판을 지나고 있을 때 내 영혼에 이런 소리가 들렸다. ‘네 의는 천국에 있도다.‘ 그리고 내 영혼의 눈에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우편에 계신 것이 보였다. 거기에 나의 의가 있었다. 내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하나님은 나에 대해 의가 없다고 말씀하실 수 없었다. 내 의는 바로 그분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선한 마음이 내 의를 더 낫게 만드는 것이 아니며 내 악한 마음이 내 의를 더 나쁘게 만드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히 13:8)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분이 나의 의이시기 때문이다. 그때 내 발목에서 사슬이 풀려 나갔다. 나는 고통과 족쇄에서 해방되었다. 나를 유혹하던 것들도 도망쳐 버렸다. 그래서 그 순간부터 용서받을 수 없는 죄에 관한]그 무서웠던 성경구절들이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드디어 나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존 번연-

˝당신만이 나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내 안에는 의로움이 없습니다. 나는 죄와 죄책감에 짓눌려 있으며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습니다. 내 양심은 나를 고발하며 비참하게 만듭니다. 나는 멸망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어둠이 나를 온통 에워싸고 있습니다. 당신을 신뢰하오니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1장. 육체적 상태와 침체

우리가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것은, 우리의 몸 상태에 따라 명료하게 생각하는 지성의 능력과 소망을 주는 진리의 아름다움을 보는 영혼의 능력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몸이며 마음이며 영이기 때문에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분리할 수 없습니다. 가장 위대하고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이라도 육체적으로 약할 때는 다른 어느 때보다 영적 침체의 공격을 받기 쉬우며, 성경에는 이를 보여주는 예가 많습니다. - 로이드존스

오직 지적인 회개, 살아 있는 믿음, 실천적인 순종만이 세상을 뒤집을 수 있다 -데이비드 포울리슨



2장. 무력감과 절망감

우리가 어둠 가운데 있을 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붙들 힘이 없을 때라도 하나님이 지혜롭고 강한 손으로 우리를 붙들고 계심을 화신하는 것이다.

부르짖음과 기다림, 부르짖은 후에는 기다려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는 하나님만 아신다.
우리의 밤이 곧 -하나님의 선하신 타이밍 가운데서- 낮으로 바뀌리라 -파울 게르하르트

회의에 빠진 이들에게 주는 네가지 조언
첫째,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이 문제로 고민할 때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둘째, 이제 당신의 믿음을 보지 마십시오. 대신에 그리스도께 관심을 집중하십시오. 믿음은 그리스도에게서 눈을 돌려 당신의 믿음을 분석할 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유지 됩니다. 당신이 그리스도를 바라보도록 돕겠습니다. 누가복음 22-24장을 함께 읽어볼까요?
셋째, 당신의 삶에 나타난 은혜의 증거에 주목해 보세요.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넷째, 당신이 다른 관계들에 대해 확실성을 요구하지 않듯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요구하지 마십시오



3장. 기쁨과 감사가 없을 때

우리가 입술로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이 자비를 베푸시고 우리의 말을 진정한 감사의 감정으로 채워주시도록 소망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달라지신 것이 아니라 당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조지 맥도널드

여러분에게 육체적인 힘이 있는 한, 합당한 소명을 지속적으로 실현하면서 절대로 게으르게 살지 마십시오. 게으름은 지속적인 죄이며, 노동은 의무입니다. 게으름은 여러분을 유혹하고, 마음을 산란하게 만드는 무익한 생각을 당신에게 집어넣으려는 마귀의 본거지입니다. 노동은 다른 사람들과 우리 자신을 유익하게 하며, 따라서 영혼과 몸 모두 노동이 필요합니다. 엿새는 반드시 일해야 하며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어서는 안됩니다(잠 31:13-27). 하나님은 노동을 우리의 의무로 정하셨으며, 그분이 정하신 방법으로 우리에게 복 주실 것입니다. 저는 주로 가정의 일과 소명을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실천하는 사람들이 비참하고 절망적인 우울증이 치료되어 경건하고 즐거운 생활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 리처드 백스터-

당신의 느낌이 침대에 그대로 누워 있는 것이 오늘 해야 할 최선이라고 말한다면, 그런 느낌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말하고 선포하라. 이렇게 선포할 때 복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잘못된 느낌을 물리치고 침대에서 난오는 것은 성령으로 가능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 자신이 되는 것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 후에는 당신의 의지를 발휘하여 일어나라!

기쁨이 없는 이들에게 주는 네가지 조언
첫째, 우리는 기쁨이 의무 가운데 일부라고 말해야 한다.
둘째, 할 수 있다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거나 방을 청소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친구를 방문하거나 일터에 나가십시오. 그러나 당신이 하나님을 기뻐하면서 이런 일을 하는지 그러지 않는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기뻐할 수 없다면, 그분께 그렇게 말씀드리고 죄송하다고 아뢰십시오. 그분은 자비로운 마음으로 당신의 말을 들으시고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셋째, 당신의 의무를 어느 정도 이행할 수 있다면, 그 기쁨을 회복시켜달ㄹ라고 기도하십시오.
넷째, 당신이 일을 할 때 그분이 당신에게 최소한 일할 의지를 주신 것을 잊지 말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마음으로 감사가 느껴지지 않을 때 입술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시간 대부분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분을 찬양하는 데 쓰겠다고 결심하십시오 -리처드 백스터-



4장. 고백하지 않은 죄

죄를 고백하고 포기할 때 오는 믿기 어려울 만큼 놀라운 소망은,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포기할 때 주님이 그 죄를 우리의 면전에 드러내시지 않고 지워 버리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떨쳐 버리기를 꺼리며 비밀스럽게 간직한 죄가 영적 어둠의 원인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죄를 다루면서 두 가지 실수를 할 수 있다. 하나는, 죄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 죄에 압도되는 것이다.

공격받고 있는 이들에게 주는 세 가지 위로
첫째, 사탄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욥 1:12, 2:6)
둘째,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심으로써 사탄의 파괴하는 권세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셨다(골 2:15, 히 2:14)
셋째, 그리스도인들이 억압하고 어둠에 몰아넣고 속이는 사탄의 역사에서 벗어나는 일은 진리의 능력으로 이루어질 때가 많으며, 축귀를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5장. 자기중심적인 생활

사람들이 어둠 속에 있는 원인 가운데 하나는 서서히 침투하는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편협함이다. 그것을 극복할 방법은 현재 관심사보다 훨씬 큰 삶의 비전을 점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의 정성을 굶주린 사람에게 쏟으며, 불쌍한 자의 소원을 충족시켜 주는 (이사야 58장)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복이 있다(행 20:35)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공개적으로 전하지 않으면서도 그다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살아간다. 그들은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이라고 자신을 설득하려 한다. 이런 생각에는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불신자들 가운데도 도덕적으로 개끗한 사람이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을 나누지 않는 데 대해 ㄱ속 불편을 느낄 것이며 느껴야 한다.

그리스도는 세상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분이다. 그분이 이루신 구원은 무한한 가치가 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그 구원이 필요하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무서운 결과가 따른다. 오직 은혜로 우리는 그분을 보았으며, 그분을 믿었으며, 이제 그분을 사랑한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고 우리가 사는 도시나 세계의 미전도종족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의 가치, 사람들의 위태로운 처치, 우리의 기쁨과 너무나 모순된다.

복음을 전할 때 견고해지는 기쁨



6장. 애정 어린 보살핌

뉴턴은 은혜의 샘,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심취해 있었다. 그는 기쁨에 차 있었고, 그의 기쁨은 기쁨이 없는 사람들에게로 넘쳐흘렀다.
- Amazing grace 작사가 존 뉴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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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능한 일을 하면, 하나님은 불가능한 일을 하실 것이다.
- 존 로웰(John Ro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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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그 모든 수고에서 얻은 것은 물과 바람과 같았다.
-오마르 하이얌, 페르시아 시인

시편에서는 지혜가 현실과 기도에 적용된다. 잠언은 삶의 현실에 지혜를 적용하고, 전도서는 현실을 그대로 인정한 채 즐길 수 있도록 지혜를 적용한다. 참된 즐거움은 삶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붙들 때 가능함을 보여 준다.

어떻게 고통을 당하는가는 욥기에, 어떻게 기도하는가는 시편에, 어떻게 행동하는가는 잠언에, 어떻게 즐거워하는가는 전도서에, 어떻게 사랑하는가는 아가서에 담겨있는 것이다.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 1:19-25)

솔로몬은 담대히 현실을 그대로 대면한다.

산 정상에서의 신비적 체험, 하나님을 뵌 체험, 고독의 체험을 했더라도 복잡한 현실의 삶이라는 시험을 치르고 통과해야 한다.

히브리 지혜는 당신이 변화산에서 본 비전을 더러움으로 가득 찬 세상으로 가져가 그 비전대로 살라고 요구한다.

사람은 현실 속에서 안식을 구한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없이는그 어디서도 안식을 찾을 수 없다.

성경은 사람이 언제나 자신의 강한 부분에서 쓰러지는 것을 지적한다.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은 불신에 빠졌다.
온유한 모세는 혈기를 부렸다. 용감한 선지자 엘리야는 여인 앞에서 용기를 잃었으며 가장 지혜롭고 부유하고 화려했던 최고의 왕 솔로몬은 유치하고 감각적인 우상에 빠졌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바르게 해석하면서 참된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 믿음을 두는 것이다. 사람의 제일가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 하는 것임을 기억하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접하는 모든 상황을 변화 시킬 수 있는 분이다.

인간은 무언가 부족한 것들을 채우려고 하지만 부족함은 끝이 없다.

솔로몬은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사상이나 지혜라 할지라도 반드시 더 나은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다. 하나님 안에서 얻는 지혜와 지식은 오직 하나님의 계시로부터 온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계시로부터 얻은 지혜 안에서 이 세상의 짛와 지식은 헛되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세상의 지혜와 지식은 쌓으면 쌓을 수록 번뇌만 많아질 뿐이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는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기 때문이다.

눈물로 주께 구하며 그분을 추구하라. 곧 이어 당신도 눈물을 흘리시는 주님을 보게 되리라.
무서운 꿈과 같이 한 대 하나님을 쉽게 떠났으나 어느 곳에도 만족함이 없어 다시 능하고 강하신 주님 붙드네
-F.W. 마이어스, 영국 시인이자 교육가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맨 처음 인간의 문명이 살인자 가인에 의해 세워졌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문화들이 그릇된 토대 위에서 발전됨으로써 본연의 기능에서 벗어나 인간의 삶을 바르게 돕기보다 부패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성경의 모든 지혜서는, 이성주의에 바탕을 둔 순수 사고가 반드시 비관주의로 귀결됨을 입증한다.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여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하지 말라

하나님은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신다.˝ (계 21:4)

인생들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들에게 시험하시리니 그들이 자기과 짐승과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전 3:8-21)

참된 즐거움은 우리의 행함에 있지 않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 있다.
사람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과의 관계 위에 두고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하고 신나는 마음을 가지며 살아야 한다.
교훈을 귀하게 여기고 끝까지 시도한 자들을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거룩한 성‘과 ‘새 땅‘은 자신의 모든 관계를 하나님께 맡기고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으며 사는 사람들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도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오직 우리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다.
상황에 대해 걱정과 의심이 생기면 용기를 내라. 옳고 그름에 있어 의심이 찾아든다면 멈추라. 영적으로 의심이 오면 기ㅣ도하라. 개인의 삶에 의심이 생기면 더욱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라. 그리고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하나님과 특별한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면서 그분의 지시를 받도록 하라. 그 뒤 그 지시대로 현실의 삶을 살기 시작하라.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영적인 용기를 갖고 자신이 믿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자들에 의해 드러난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인들은 도덕적으로 온전한 삶을 살아내야 한다.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 (전 4:5-6)

그러나 이 모든 시도가 사람들을 억압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패망하는 쪽은 도리어 힘으로 이겼던 자들이 아니던가? 모든 문명사회와 왕국의 가장 큰 실수는 언제나 강한 사람을 요구한 데 있었다. 아무리 강한 쇠사슬로 형성된 사회라도 가장 연약한 고리 하나에 의해 그 사회가 무너지고 말기 때문이다. (경쟁에 의해 누군가 승자가 된다면 반드시 약자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사회는 약자에 의해 무너진다)

우리는 현실 속에서도 내면의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참된 삶을 살아야 한다. 삶의 참된 활력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속에 있으며 오직 그 곳에서 참된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

꾸지람을 전혀 받지 않고 사는 것은 재앙을 겪는 지름길이다.

회개는 충동적인 반응이 아니다. 반면, 후회는 충동적으로 일어난다.




삶의 목적은 축적이 아니다.
최선의 삶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다 소모하는 삶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사람은 주님과의 관계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당신의 믿음을 하나님께 두라.
그리고 가장 가까운 의무부터 감당하면서 결과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말라.

명성은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성품은 아무도 보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사람의 성품이 드러나는 곳은 바로 그 곳이다.
솔로몬은 인생 바닥에 깔려 있는 비극을 마주할 때 비로소 인생이 무엇인지 올바른 견해를 가질 수 있다고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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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실패하지 않는다.

우리가 해야 할 큰 일 중 하나는 기도다. 그러므로 우리가 온 힘을 다해 기도에 매달리지 않고는 결코 기도를 잘할 수 없다. 기도를 위해 가장 좋은 조건을 마련 해 놓지 않고는 결코 기도를 잘할 수 없다. 사단은 잘하는 기도에 의해 많은 고생을 했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간교하고 날카롭고 교묘한 수단을 동원해 기도를 막으려고 한다.

우리는 찾을 수 있는 모든 줄을 동원해서 우리 자신을 기도에 묶어 놓아야 한다. 어느 때나 어디서나 그것이 풀릴 때는 사단이 들어올 문을 열어 놓는 것이다. 아주 작은 일에도 정확하고 신속하며 확고부동하며 조심스러울 때 우리는 악한 자를 대항할 수 있게 된다.


기도는 가난함을 풍부하심으로 채우는 힘이다.

기도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신성한 일
기도는 인간으로 하여금 살아있게 하고 생명을 주게하며, 기뻐하고 기쁨을 주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있는 행위이다. 기도는 살아 있는 영혼이 하나님과 만나는 것이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인간을 만나 주시며 축복하시며,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이나 혹은 인간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인간을 도와주신다. 기도는 인간의 공허를 하나님의 충만함으로 채워 준다. 기도는 인간의 가난함을 하나님의 부요함으로 채워 준다. 기도는 인간의 나약함을 밀어내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채운다. 기도는 인간의 왜소함을 몰아내고 하나님의 위대함으로 대치한다. 기도는 인간의 크고 지속적인 필요를 하나님의 크고 지속적인 풍요로움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계획이다.

기도만큼 인간이 하늘에 가까이 가며, 하나님께 가까이 가며, 하나님을 닮아가며, 예수 그리스도와 동감하고 진실한 동역을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사랑, 박애, 거룩한 진리, 이 모든 것은 인간에게 도움이 되며 유익한 것으로 기도에 의해 생겨나며 완성된다.

기도는 단순한 의무의 문제가 아니라 구원의 문제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친분을 맺은 사람이 기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성령을 받았는데 기도의 영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거듭난 사람이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성령 충만의 삶과 기도의 삶이 연합되고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을까? 기도를 배우지 않은 사람의 마음에 형제애가 있을 수 있을까?

기도는 하나님을 보는 눈을 준다.

섬기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요하다.
섬기는 일은 삶을 요구하며, 가장 귀한 형태의 삶을 필요로 한다. 기도는 모든 것들 가운데서 가장 고상한 지식이요, 가장 심오한 지혜이며, 가장 중요하고 가장 기쁨이 넘치며, 가장 효력 있고, 가장 능력 있는 것이다. 기도는 생명이요, 빛나며 황홀하며 영원한 생명이다. 메마른 형식, 죽어 차가운 습관의 기도를 버리라!

기도는 예배의 중요한 요소다.

기도는 인간이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일이다.

맥셰인의 거룩하고도 능력있는 삶은 ‘작은 예수‘처럼 살다간 인생답게 기도의 생애였다. 어떠한 일도 그에게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빼앗아가지 못하였다. 그는 주 안에 살며 주와 하나가 되고 주로부터 생명을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기도의 태도이며 능력임을 일찍이 깨달은 자였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기도해야 한다. 늦잠을 자거나 먼저 다른 사람을 만나면 나는 11시나 12시가 다 되어서야 은밀한 기도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은 비참한 일이다. 이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이럴 때는 나에게 도움을 바라고 찾앙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없다. 양심은 가책을 느기고, 영혼은 굶주리고, 영의 등불을 밝히는 심지는 청소되지 못한 상태에 처한다. 하나님과 함게 시작하는 것이, 다른 것과 가까이하기 전에 먼저 그분의 얽ㄹ을 뵙는 것이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성령이 없이는 복음이 전파될 수 없다. 성령만이 이 거룩한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 왕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다. 지식으로 그것을 수행할 수 없으며, 교육도 안 되며, 웅변도 안 되며, 진리나 계시된 진리조차도 복음 사역을 수행할 수 없다. 성령의 기름 부음이 없이 그리스도 생애의 놀라운 사실을 말해 보았자 그것은 메마른 것이며 효과도 없다.

성령은 기도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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