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환의 심판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6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거짓말에 대한 킬러 오프닝으로 시작하는 [탄환의 심판], 전편인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에도 찾아보면 거짓말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이봐, 내가 하는 일의 절반은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니면 누가 더 거짓말을 잘 하는지 알아내는 거라고. (링컨차 p.126)

"나한테 거짓말한다는 게 문제야. 모친이나 세실한테야 아무 상관없다. 원한다면 목사와 경찰한테라도 거짓말을하라고. 하지만 내가 물어볼때는 절대로 거짓말하지 마. 나는 자네가 사실을 말했다는 것을 전제로 움직일 테니까.(링컨차 p.149))

 

 

 

 

 

 

 

(어떻게 보자면, 진실과 거짓도 양면의 동전처럼 함께 공존한다. 비록 그것이 불안정한 동거이긴 하지만. 진실과 거짓은 깊은 상호관계가 있다. 거짓말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잘 확립된 참말의 체계가 먼저 있어야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인용할 필요도 없이, 거짓과 진실은 서로 살을 맞대고 있는 실존의 양상이다.)

 

 

[탄환의 심판]을 읽다.

 

작가들은 첫문장에 상당한 공을 들인다. 첫문장 몇 줄만 읽고 별 감흥을 못느껴, 책을 던져버릴 성급한 독자들이 세상에는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첫만남에 좋은 인상을 보이려고 정성스럽게 화장을 하는 여인처럼, 작가들이 서두에 들이는 노력은 각별하다. 나는 오랫동안, 스티븐 킹이 [톰고든을 사랑한 소녀]에서 썼던 [세상이란 놈은 이빨이 있어서 그놈이 원할때면 언제라도 너를 물어뜯을 수 있다]라는 문장을 소설 서두에 대한 빼어난 예로 꼽아 왔었다. 이말이 인생에 대해 지극히 공감가는 문장이기도 했지만, 앞으로 전개되는 서사의 분위기와 내용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완벽한 문장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여기 또하나의 서두부분의 모범적인 예가 될만 한 소설이 있다. 소위 킬러 오프닝(killer opening)이라고 부르는 것의 완벽한 예...

 

마이클 코넬리의 [탄환의 심판]은 이렇게 시작한다.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경찰도 거짓말을 하고, 변호사도 거짓말을 하고, 증인도 거짓말을 하고, 피해자도 거짓말을 한다. 재판은 거짓말 경연장이다. 법정 안의 모든 사람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판사도 알고, 심지어 배심원도 안다. 그들은 법원 건물 안에 들어설 때 부터 앞으로 거짓말을 듣게 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들이 정해진 자리에 앉은 것은 거짓말을 듣겠다는 동의와 같다.]

 

이렇게 말하며 이 책의 주인공인 미키할러 변호사는 '모두 거짓말을 하는 곳에서 진실이 되는 것'이 자신이 하는 일이라고 밝힌다.

누군가는 소설의 서두를 베토벤 교향곡 5번의 첫 4개의 음표에 비유했는데, 새삼 그말이 적절하게 느껴진다. 모든 것이 그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마이클 코넬리가 첫문장으로 선택한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는 메시지는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혈류처럼 관통하고 있다.

이 구절은,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의 첫소절만큼 인상적이라서, 세월이 지나도 빛바래지 않을만큼 강력하다. 즉각적으로 독자는 전체 이야기의 톤을 알아차릴 수 있고, 다양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게 된다.

단순한 그 한 문장 안에서, 나는 악의에 찬 거짓말부터 우리가 매일매일하는 자기 기만까지 삶의 모든 영역에 만연한 거짓말을 본다. 그안에 두뇌발달과 더불어 거짓말을 하도록 진화한 존재인 인간들이 있는 것이다. 그 인간들 사이에 과장, 꾸밈, 유언비어, 속임수, 위선, 허위, 날조, 기만, 사기, 배반, 궤변, 허풍, 사칭, 위증..등 본질은 같지만 각기 다르게 부르는 거짓들이 빼곡하게 차 있다. 그 안에 반유대주의에 휘둘린 드레퓌스 재판이 있고, 나치에 의해 철저히 이용당한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사건 재판이 있고, 유전무죄의 상징이 된 OJ 심슨 판결이 있고, 돈과 권력의 시녀 역할을 하는 현재의 검찰이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서두를 읽으면서,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에서 미키 할러가 이야기했던, "법이란, 사람과 생명과 돈을 닥치는대로 삼켜버리는 거대한 괴물이고, 법은 진실과 아무 상관없이 타협과 개량과 조작만이 있을 뿐(p.35)이라는 냉소적인 말을 떠올렸다.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서두를 여는 이 짧지만, 강렬한 문장과 함께 우리는 [탄환의 심판]이르는 문지방을 건넌다.

 

 

 

두남자의 만남 -동전의 양면

 

 

이번 작품 [탄환의 심판]이 화제가 되었던 것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던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의 속편 격이라는 점도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마이클 코넬리의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두 주인공의 만남이라 하겠다.

미키 할러 변호사와 해리 보슈 형사의 조우. 코넬리의 팬이라면 한번쯤 꿈꿔 보았을 그런 장면일텐데, 이 작품에서 드디어 둘은 같은 페이지에 등장하게 된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팬들은, 포아로와 미스 마플이 함께 등장한다면, 모든 것을 제쳐두고 그 작품을 읽어보고 싶을 것이며,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라면, 가가 교이치로 형사와 유가와 마나부가 같은 작품에서 만나는 장면을 마다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다만, 두 주인공이 함께 등장한다면, 조금은 이야기가 산만해 질 수도 있겠다는 걱정을 하며, 책을 읽었나갔는데, 결과는 쓸데 없는 걱정이었다.

코넬리는 두 주인공에 50: 50의 균등한 힘을 배분하지 않았다. 이 작품은 엄연히 할러의 책이고, 보슈는 할러를 떠받치는 캐릭터이다. 읽어본 독자들은 공감하겠지만, 보슈가 보조역할이긴 하지만 그 존재감은 상당하다. 물론 코넬리가 성공한 전작에 대한 부담과 같은 패턴의 반복으로 인한 상투화에 대한 걱정으로 보슈를 등장시켰다고, 비판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 이야기를 굳이 하지 않더라도, 사람은 비슷한 강도에는 타성화되고 무감각해지는 경향이 있다. 근육을 더욱 강화시키기 위해선 점차적으로 무게를 올려 부하가 더 걸리게 만드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 코넬리는 그저 더 무거운 추로 보슈를 이용한 것일까? 대답은 단연코 아니다,이다. 코넬리는 속편 작품에 좀 더 강한 양념을 써서 책을 팔아보자는 심산으로 보슈를 집어넣은 것이 아니다.

마이클 코넬리는 이 두남자가 등장하는 부분을 독자들만큼이나 고대했고, 즐거워했던 모양이다. '둘이 함께 있는 페이지를 쓸때가 가장 좋았다'고 말할 정도로 작가가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이니, 이 대목에서 책의 호흡이 어떠한지 눈여겨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두 남자는 왜 만났는가?

 

 

코넬리가 이 둘을 대면하게 한 이유는 우선 해리 보슈가 미키 할러의 이복형이라는 설정이 예전 작품 (블랙아이스(1993))부터 있어왔기 때문이다. (해리 보슈와 미키 할러의 나이차이는, 해리 보슈가 1950년생이고, 미키할러의 아버지가 세상을 뜬것이 1971년에서 72년 사이라고 할때, 이때 미키 할러의 나이가 다섯살에서 여섯살이 정도였으니, 둘의 나이 차이는 최소한 15살차이 이상이다.) 작가는 변호사였던 '아버지'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두사람의 관계를 이어주면서 부성(fatherhood)의 의미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도 일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둘의 만남이 의미심장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미키 할러와 해리 보슈가 정의(正義)라는 방정식의 다른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미키 할러는 '변호사'쪽, 해리 보슈는 '경찰'쪽, 즉 똑같은 사법시스템을 다르게 바라보고 경험하는 사람들인 셈이다. 할러와 보슈가 각각 로스엔젤레스의 반대편을 바라보며 할리우드에 살고 있는 것 ('여기서는 선셋 대로가 보이고, 우리집에서는 유니버설이 보이는 군'(탄환의 심판, p.535))도 같은 맥락이고, 후반부에서 '산의 양편'에 대한 비유 역시 ('그와 내가 산의 양편을 하나식 차지하고 그냥 이대로 살아갈 것 같은 느낌'(탄환의 심판,p.545), '우리 집에서도 비슷한 전망을 볼 수 있소, 반대편이라는게 다를 뿐(탄환의 심판,p.533)) 이러한 바탕에서 연유한다. 똑같은 장소에 대한 다른 두개의 풍경을 보고 있는 두 남자.

전통적으로 경찰과 변호사는 서로를 배척하는 집단이다. 한쪽은 범인을 감옥에 집어 넣으려고하고, 한쪽은 빼내려고 하니, 그들의 반목은 1+1=2만큼이나 자명한 결과이다. 경찰과 변호사는 마치 몽구스와 코브라처럼 천적관계인 셈이다. 이러한 상호간의 증오는 '경찰인 당신이 변호사한테 피를 주겠다고 자신해서 나서다니. 경찰들이 그 사실을 알았다면, 다시 한 패거리로 끼워주지 않았을 거요.'(탄환의 심판, p.543) 라는 대목에서도 잘 드러난다. 코넬리는 그러한 변호사에 대한 반감과 증오가 검사들에게도 만연해 있음을 다음과 같이 인상적으로 표현한다.

 

"검사들 중에는 변호사를 그가 변호하는 범죄자와 겨우 한 끗밖에 차이나지 않는 인간으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많은 교육을 받고 경험을 쌓은 전문가가 아니라 준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이다. 사법 체계라는 톱니바퀴 속에 반드시 필요하지 않는 존재로. 대부분의 경찰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똑같이 법을 공부한 사람들이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은 신경에 거슬렸다.(탄환의 심판, 277)"

 

 

실제로 코넬리는 이러한 경찰과 변호사 사이에 존재하는 뿌리깊은 반목의 분위기를 책에 담고자 많은 시간을 경찰들, 변호사들과 함께 보냈다. 그리고 때로는 양쪽과 동시에 함께 있었는데 양쪽의 살벌한 분위기때문에 정말 신경이 곤두서는 시간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런 깊은 감정의 골때문일까, 이 두 주인공의 첫만남은 신경전으로 인해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우리는 그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와 상호작용에 타들어가는 도화선을 바라보듯 마음을 조리며 바라보게 된다.

 

 

 (미키할러와 보슈는 동전의 양면같은 존재다. )

 

 

 

결국 이 책에서 작가는 소설 밖의 독자를 향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할러와 보슈는 동전의 양면같은 존재라는 것.("우린 동전의 양면이에요. 난 그저 내 일을 하고 있을 뿐이오.(탄환의 심판, p.210)" 그것은 결국 변호사와 경찰은 동전의 양면처럼 각기 다른 방향을 바라며 엄연히 존재하는 집단이라는 말이다. 유죄이긴 하지만, 극단적으로 악(惡)한 인간은 아닌 대다수의 사람들을 변호하여 그들의 죄를 중화시키고 희석시키는 미키 할러. 그리고 도덕관념이 소거된 인물들을 감옥으로 보내 단죄하고, 악을 뿌리뽑는 임무를 가진 해리 보슈. 그들은 각각 거대한 법의 시스템 아래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코넬리에 따르면, 이번 책에 해리보슈를 등장시킨 또 다른 이유는, 보슈를 미키 할러의 눈을 통해서만 보이게 하고 싶었다고 한다. 독자는 오로지 미키할러의 관점을 매개로만 보슈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기존의 13권의 책에(이 책의 출간기준) 등장한 해리 보슈는 3인칭 혹은 1인칭 시점으로 그려졌기에, 독자는 그의 내면을 읽어낼 수 있었다. 우리는 그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엇이 그를 아프게 하는지, 어떤 것이 그를 치유하는지 알았다. 하지만, 이번 [탄환의 심판]에 이르러 처음으로 독자는 해리 보슈의 생각을 알지못하게 된 셈이다. 그의 누그러뜨린 내면을 일절 볼수 없기에 보슈는 더욱 단단한 외관의 남자로 보인다. 작가는 이 신선한 느낌을 독자가 받기를 원했고, 그 시도는 상당히 성공적인 듯 싶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해리 보슈가 달라진것은 아닐터인데, 다른 작품보다 유독 더 고독해 보였다. 밤 하늘에 홀로 떠 있는 달처럼 그는 쓸쓸한 느낌으로 다가왔다고 할까. 시점의 선택방법으로 독자에게 이런 새로운 맛을 선사하는 작가에게 감탄하게 된다. 그 맛은 착시처럼 신기하고 유쾌하다. 마치 크기가 변하지 않는 달이, 머리 위에 있을 때 보다 지평선 근처에 있을 때 더 커보이는 착시현상처럼 말이다.

 

 

 

 (동전의 양면, 혹은 산의 양편.)

 

 

접점 : 프랭크 모건

 

 

이 작품에서 매우 인상적인 부분은 미키 할러와 해리 보슈가 세번째로 만나는 장면이었는데, 이 장면에서 둘 사이에 접점이 있음을 확인한다. 그 접점이란 바로 재즈 색소폰 연주자 '프랭크 모건(Frank Morgan)'이다. 미키 할러는 프랭크 모건의 음악을 듣고 있는 해리 보슈에게 모건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고, 자신의 아버지가 프랭크 모건의 변호사였다는 사실을 알려주는데, 해리 보슈는 그말에 깜짝 놀란다.

이 장면은 표식을 가진 자들끼리 서로 알아보는 부분이고, 궁극적으로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존재임을 깨닫는 부분이다. 타자(他者) 안에서 나를 발견하는 장면이자, 내안에서 타자를 발견하는 장면..이 장면이 묘하게 마음에 들어 나는 졸업식 사진을 찍기전에 여학생이 거울을 잇달아 들여다 보듯, 이 장면을 수차례 들춰보았음을 고백한다.

마이클 코넬리는 자신과 해리 보슈는 매우 다른 성향을 갖고 있지만, 재즈(Jazz)팬인 점만큼은 똑같다고 말하며, 자신이 듣는 곡이 곧바로 보슈의 음악선곡 리스트에 들어간다고 밝히고 있다. 코넬리는 글을 쓸 때 재즈를 즐겨 듣는데, 그 이유는 가사를 지닌 음악처럼 방해를 하지 않고, 재즈가 갖는 즉흥성이라는 본질이 자신에게 영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코넬리는 이 작품을 쓸 당시, 프랭크 모건을 집중적으로 들었고, 따라서 작품 내에서 보슈 역시 프랭크 모건을 듣는다. 코넬리는 자신의 주인공인 보슈가 프랭크 모건의 역경을 딛고 일어선 삶과 포개지길 바랬던 것이다. 마이클 코넬리는 [탄환의 심판] 바로 전에 썼던 Overlook(2007)에도 해리보슈가 어둠 속에서 전화가 울리길 기다리며, 프랭크 모건의 2004년 앨범인 [City Nights]를 듣는 장면을 첫페이지에 넣을 정도로 그에 대한 애정을 보여왔다.

코넬리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음악의 뒷편에 있는 이야기로 부터 영감을 얻는다. 프랭크 모건은 소리를 내기 위해 힘겹게 싸워야했다. 그는 중독과 싸웠으며 몇년간을 감옥에서 보내야했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변화를 주기 위해 살아남았다. 프랭크 모건과 함께 보스턴에 있는 버클리 대학에서 그와 공동 강연을 했던 것은 가장 충족감을 주었던 일 중 하나였다. 그는 색소폰을 연주했고, 우리는 학생들에게 음악과 글쓰기의 창조적인 상호작용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와 함께 한 며칠은 매우 만족감을 준 대단한 시간이었다. 그는 좋은 이야기꾼이었다. 안타깝게도 모건은 2007년 12월에 타계했다. [탄환의 심판]은 그에게 헌정된 책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책이 프랭크 모건에게 헌정된 작품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코넬리는 프랭크 모건처럼, 미키 할러도 중독에서 회복하려고 발버둥치는 경험을 갖고 있는 것으로 상정했다. 미키 할러와 연인이 될 뻔했던, 재활원 집단 치료 회복 기간에 만난 '레이니 로스'도 같은 맥락에서 책에 등장한다. 그렇게 본다면, 코넬리가 왜 1편인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에서 운전사로 나왔던 '얼'대신, 옥시코돈 (진통제) 중독자였던 '패트릭 핸슨'을 운전사로 기용했는가하는 의문도 풀리게 된다. 미키 할러는, 중독자였던 그에게 유달리 연민의 감정을 보이는데, 그것은 할러 자신도 약물 중독이라는 긴 터널을 헤쳐나왔기에 그에게 동지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우리 둘 중 한명이 유혹을 느낄 때 다른 한명이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거야.(탄환의 심판, p.285)) 그는 패트릭을 돕는것이 자신을 돕는 것이라 믿으며, 계약금대신 지불한 패트릭의 서핑보드를 되찾아주기도 하는데, 여기서 서핑보드가 상징하는 것은 '역경'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넘게 해주는 도구를 우의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약이 줄수 있는 포근한 세계로 가고 싶은 유혹의 파도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에 다름아니다. 할러가 패트릭을 돕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이자, 약자에 대한 따스한 베풂을 통한 '속죄'의 다른 이름이다. 전작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에서 자신을 스스로 '교활한 천사'라고 불렀던 할러는 이제 달라지려하고 있다.

 

 

 

양심의 위기 그리고 변화

 

1편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에 나왔던 미키 할러는 변호사와 범죄자 사이를 나누는 유치장 철망 어느쪽에 서 있는지 모호함을 느끼는,(링컨차 1권 p.24) 조금 더 속물에 가까운 어두운 느낌의 변호사였다. (하지만, 부패와 발효가 같으면서도 다르듯이, 미키 할러는 그저 돈만 밝히고, 형량거래를 하는 타락한 변호사는 아니었다. ) 그런데, 2편인 본작 [탄환의 심판]에서 미키할러는 그때와는 조금 색깔이 다르다.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그를 변하게 만들었다. 그는 소위 '양심의 위기'에 봉착한다. 그가 믿는 법제도와 현실 사이의 아찔한 낙차에 울렁증을 겪는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준열한 의식을 갖게되면서, 그는 흔들린다. 물론 그 도정에는 약물중독으로 인해 전처와 사랑하는 딸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이유도 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많은 변호사들을 알고 있지만, 그들중 누구도 밤잠을 설치거나, 자신들의 영혼을 팔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것은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지금 그것이 현실이기에 나는 소설을 썼다."라고.

하므로 이 작품에서 딸 헤일리의 입을 통해 나온 "아빠는 항상 나쁜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것 같다"(탄환의 심판, p.199)라는 말은, 결국은 할러 자신이 회의감에 휩싸여 자신에게 던진 뼈아픈 질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러한 쓰디쓴 자각 속에서 미키 할로가 지향하는 세계는 다음과 같은 말에 녹아들어가 있다.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사람은 아빠 같은 변호사한테 도움을 받아서 사실을 설명하고 자신을 변호할 수 있어. 법이 아주 복잡해서 증거니 뭐니 하는 것들과 관련된 규칙을 전부 알지 못하는 사람이 혼자 변호를 하기가 힘들거든. 그래서 아빠가 그 사람들을 도와주는 거야. 그렇다고 아빠가 그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에 동의하는 건 아니야. 혹시 그 사람들이 범인이라면 말이지. 아빠가 하는 일도 제도의 일부야. 그리고 아주 중요해."

 

 

그러나 미키 할러는, 검사와 변호사가 하는일이 이제는 불균형스럽게 돼버렸음을 알기에 그의 말은 공허하게 공중분해 되어버림을 깨닫는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깊게 패인 손금처럼 명백한 사실이다. 회의감이 든 할러는 후반부에 "보슈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다면 자신이 변호사가 아니라 경찰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보슈에게 변호사를 그만두겠다는 결심을 알린다. 이 부분은 그의 딸 헤일리가 언급한 "아빠도 엄마처럼 나쁜 사람들을 감옥에 넣으면 안돼요?(p.199)"라는 말과 더불어 앞으로 미키 할러의 행보를 유추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 변모의 징후를 담고 있는 장면이랄까. 할러가 자신도 어쩌면 경찰(혹은 검사)이 될 수 있지 않겠냐는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 것은, 자신이 투신해온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실망의 반작용임과 동시에 새로운 방향성을 통한 '구원'의 모색을 의미한다. 실제로 이 시리즈의 다음 작품인 'Reversal(2010)'에서 미키 할러는 변호사 역할에 염증을 느끼고, 검사로 직업을 전환한다. 마이클 코넬리는 영민하게도 검사로의 극적인 존재변이를 위해 이 작품에 씨앗을 이처럼 미리 심어 놓았던 것이다. 할러는 동전을 뒤집듯이, 이제 방향을 바꿔 법의 다른 편에 서서 사물을 바라보게 될것이다.

 

 

 

 

 

 (THE BRASS VERDICT..제목은 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탄환(구리 금속외피)에 의해 길거리에서 집행되는 정의에 대한 경찰 속어다.)

 

 

 

작품을 읽은 독자들은 공감하겠지만, 작품의 얼개도 뛰어날 뿐만아니라, 세부적인 면에서 주도면밀하게 준비한 작품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코넬리는 비록 법률가 출신은 아니지만, 많은 법조계 지인들의 도움으로 원체험에 밀착해 있는 사실성을 획득해냈다. 법정에서 오가는 설전이라든가, 배심원 선택의 피말리는 신경전, 재판중 이루어지는 배심원의 표정관찰, 재판에서 승리하기 위해 행해지는 세심한 전술들을 현실감 넘치게 보여준다. 조율잘된 악기처럼 문장 하나 하나에서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온다. 독자는 현장에 있는 듯한 생생한 임장감을 느끼게 된다. 미키 할리의 말에 법정에 있는 배심원들이 사로잡혀 그와 함께 리듬을 타고 있을 때, 독자인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는 많은 코넬리의 소설처럼, 이 작품의 플롯은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큰 뼈대는 코넬리가 아는 변호사에게 실제로 일었났던 일이라고 한다.코넬리는 이 작품이 창조적 천재의 산물이라기 보다는 충실한 보도에 가깝다며 겸양을 보이지만, 그가 가공해낸 이야기를 감탄하며 읽고 있자면, 그가 법조인 출신이 아니라는 사실이 망각되고 무화된다. 그럼에도 코넬리는, 이야기의 속도감을 법정 바깥쪽에 두려고 노력한 듯 보인다. 그리고 실제 법정 배경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가능한한 적게 배치하려했다고 털어놓는다.

작가 스스로가 그것이 안전하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자신은 변호사가 아니기 때문이고, 그의 책들이 의심할 여지 없지 실제 법조계의 일을 했던 법률가들에 의해 쓰인 법정 스릴러와 비교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코넬리는 자신의 장기인 형사 크라임 스릴러와 법정 드라마를 오버랩 시켰다. 그래서 오히려 '하드보일드 경찰 소설의 힘을 갖춘 법정 스릴러'라는 독특한 색채의 소설이 탄생해서 아찔한 매력을 뽐내게 된것이다. 미키 할러가 주인공인 이 시리즈는 현재까지 두편 (Reversal(2010), The Fifth Witness(2011))이 더 나와있어 번역을 기다리는 국내 독자들을 설레게하고 있다.

 

본작은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와 친연성이 물론 높지만, 둘의 근연관계를 몰라도 충분한 재미를 보장한다. 작가가 새로운 인물을 많이 등장시킨데다가, 기존 인물에 대해서는 친절한 설명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재미'라는 초대형 트럭을 몰고 '지루함'을 납작하게 뭉개 버리는 책.

그런 작품을 찾는 사람에게 선뜻 추천할 수 있는 책이 있다면, 바로 본작 [탄환의 심판]이 아닐까. 아마도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하며 반론을 펼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독자'라는 '냉정한 배심원'들도 만장일치로 이 말에 손을 들어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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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힘 1 밀리언셀러 클럽 124
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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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돈 윈슬로(Don Winslow)는 Neal Carey 시리즈 5권, Boone Daniel 시리즈 2권, 7권의 스탠드얼론..현재까지 모두 14권의 책을 발표한 베테랑 작가다. 그의 걸작 [개의 힘(The Power of the dog) (2005)]이 마침내 국내 출간되었다. 이 작품을 일독한 후, 나는 바로 이 작가를 내 마음 속에 <즐겨찾기☆>했음을 고백한다.)

 

 

개의 힘을 읽다.

 

이른바 코지 미스터리(cozy mystery)라는 것이 있다. '아늑한'이라는 뜻을 가진 코지(cozy)에서도 느껴지듯, 폭력과 섹스의 요소를 도려낸 편안한 추리물을 가리킨다. 잔인한 장면이나 선정적인 묘사가 없기에 안심하고 읽을 수 있는 잔잔한 분위기의 미스터리 물이다. 상대적으로 일상의 작은 규모의 이야기들을 다룬다. 보통 독자들은 '소소한 재미를 준다'라는 판에 박힌 표현을 사용해서 코지 미스터리나 일상계 미스터리에 대해 평가하곤 한다. 코지 미스터리 물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나에겐 그 표현이 마치 소개팅에서 소개해 줄 친구의 외모가 별루일 때, 사람들이 정해진 답변 메뉴얼처럼 '그 친구,아주 마음씨가 착하다'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게 들린다. (개인적인 취향일뿐 코지 미스터리를 나쁘게 말하려는 것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서두가 길어졌는데, 여기 코지 미스터리와 대척점에 놓인 작품이 있다. 코지 미스터리물로부터 반대 방향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주 한참을 달려가야 이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 작품에 도착했을 때쯤엔 코지 미스터리는 멀리 떨어져 있어 아주 작은 점처럼 보일 것이다.

 

잔인한 폭력 장면이 장마철의 비처럼 빈번하고, 선정적 묘사는 잊을만 하면 페이지에 등장한다. 책을 펼치는 순간 상상할 수 없었던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작품. 왠지 목덜미가 검게 탄 남자들의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 냄새가 출렁이고, 피빛으로 얼룩진 분위기의 책이랄까. 어떤 장면은 모자이크 처리하거나, 뿌옇게 블러(blur)처리 하고 싶을 정도로 무자비하다. 노파심에서 이야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책이 폭력성과 선정성에 위탁해 독자의 흥미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류의 저급한 책은 결코 아니다. 이 책에서 묘사된 자극적인 폭력성은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목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멕시코의 현실에 드리워진 비극적 음영에 대한 작가의 적나라한 포착이다. 현실은 오히려 작품에 나타난 수준 이상으로 참혹하다.

 

이 작품을 다 읽고 나서, 개인적으로 관심이 생겨 멕시코 마약전쟁에 대한 역사와 배경에 대한 여러 관련 기사를 읽어보았다. 2006년 펠리페 칼테론 멕시코 대통령에 의해 시작된 마약과의 전쟁에 대한 이모저모들, 이렇게 까지 된 원인과 배경, 마약 카르텔들, 마약조직과 결탁한 부패한 경찰들, 그리고 잔인하게 희생된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 대해 읽으면서, 나는 돌연 암울해 질 수 밖에 없었다. 그 암울함의 원인은 인간 실존을 위협하는 거대한 악에 압도되어 버린 것도 있었지만, 그 보다도 이 전쟁은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는 전망의 부재가 나를 더욱 답답하게 했다. 돈 윈슬로는 30년간의 마약전쟁을 묘사함에 있어 과장과 미화를 억제하고, 사실적인 정확성을 최우선으로 삼은 듯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5년의 시간을 보낸다. 이 기간 동안 마약전쟁에 관한 많은 책을 읽고, 여러 사람들과 인터뷰했으며, 작품을 고치고 또 고쳐써야했다. 작가 스스로도 애초에 쓰지 말았어야 했다,라고 말할 정도로 애를 먹은 작품이었다. 이 책을 탈고했을 때, 돈 윈슬로는 우울증에 빠졌음을 고백했는데, 나는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세균을 죽이기 위해 소독약을 뿌리는 것을 "끊임없이 계속되는 승산없는 싸움"(2권 p273)이라 말한 것은 작가의 허탈한 심정을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그 승산없는 싸움에 대한 절망이 작가를 우울하게 했고, 그 마음이 오롯이 나의 내면에도 전이(轉移)되었다. 애초에 이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은, 작가가 저렴한 가격으로 주말을 보내기 위해 종종가던 멕시코의 작은 마을에서 19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마약 카르텔에게 보복 살해당한 기사때문이었다. 돈 윈슬로우는 그 기사를 읽고,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가?"라는 의문점이 들었고, 바로 거기에서 모든 이야기가 발화(發話)하게 된 것이다. 작가는 이 기사에 대한 충격을 고스란히 '마약 전쟁에서 열아홉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장면(1권p.12)'이 나오는 이 작품의 프롤로그에 등장시킨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 굳이 라틴 아메리카 현대사나 멕시코의 마약전쟁, 마약의 역사, 해방신학 같은 배경지식을 공부할 필요는 없다. 이 책만으로도 충분히 설명되어 있고, 서사의 흐름과 이야기의 재미를 즐길수 있다. 헤어젤이나 화장품을 사용하기 위해 굳이 퀴리부인이 될 필요는 없는 이치와 같다. (화학성분을 분석하며 화학합성물인 화장품을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고, 성경 구절과 밀턴의 [실낙원],헨리2세에 나오는 말들을 인용하면서 중량감을 더했지만 (이것은 마치 영화에서 노장 배우를 써서 작품의 중량감을 주려는 것과 비슷한 수법이라고 폄하할 수만은 없다. 가령, 세번에 걸쳐 인용문이 나오는 [실낙원]의 내용이, 악마가 타락한 천사들을 그러모아 낙원을 파괴하는 줄거리를 이룬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가는 악마의 관점으로 본 서사시 [실낙원]의 분위기를 이책에 심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대중적 화법을 구사하는 '재미'를 중시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재밌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최소한 스무번쯤 들었을 때, 나는 이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먼저 읽은 사람들이 합창이라도 하듯 한목소리로 이 작품을 격찬했기에, 읽기 전부터 내심 기대감이 껑충 높아졌다. 그래서인지 작품에 대해 실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높은 기대감이란 높은 수수료처럼 원금(감동)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 나가면서 그 불안감은 단박에 부스러져버렸다. 책을 덮었을 때는 '재밌다'는 그말이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사실'로 인준받을 수 있을것이라 확신했고, 나 또한 돈 윈슬로 교의 충직한 전도사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 책은 장식을 배제한 문체와 과감한 장면생략으로 인해 빠른 속도감을 획득했다. 시종일관 브레이크도 없이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자전거를 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단박에 읽어 버렸다. 작가가 5년간 고생하면서 쓴 책을 바나나 까먹듯 이렇게 낼름 읽어버리는 것이 미안하게 느껴질 정도의 속도였다. 차리는 것은 한참이어도, 먹는 것은 잠깐,이라는 표현은 비단 음식에만 통용되는 말이 아닌듯 싶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은 사랑하는 존재와 함께 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시간에 대한 상대적인 심리반응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이 책의 미덕중 하나는 -많은 독자들의 한결같은 의견인데- 책을 읽는 동안 시간의 흐름이 빨라진다는 것이다. 하므로 장거리 여행을 하는 독자에게 (사랑하는 존재와 함께 갈 수 없다면 차선책으로) 이 책을 1순위로 권하고 싶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의 물리적인 속도감을 뒤엎는 책. 읽으면 읽을 수록 지상을 향해 급속도로 떨어지는 무거운 물체처럼 가속도가 붙는 책..이런 수식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읽어 보면 안다.

 

'기억은 마음 내키는 곳에 드러눕는 개와 같다',는 말이 있다. 기억의 불완전성에 대한 적절한 비유다. 하지만 이 작품에 묘사된 몇몇 장면은 너무 인상적이어서 내 머릿속에 단단하게 각인 된 듯 싶다. 가령, 인어공주 클럽의 거대한 아쿠아리움이 깨지면서 유리파편과 퍼덕거리는 물고기들 사이에 이루어진 총격 장면이나, 달빛 아래의 동물원에서의 공방전은 굉장히 신선했다. 특히 사방천지에 동물이 뛰어다니는 가운데, 날아다니는 총알과 화염 장면은, 케냐에서 사파리 동물 가이드를 했던 작가의 독특한 이력이 떠올라 미소짓게 만들었다. 그러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역시 노라의 국경 통과 장면이 될 듯 싶다. 손에 땀을 쥐는 스릴감의 백미였고, 맘에 들어서 여러차례 읽기까지 했다. 필경 몇년이 지난 후에 이 작품 [개의 힘]을 떠올리면 내 기억은 몇백 킬로 떨어진 집을 찾아오는 영특한 개처럼 이 장면들에 당도할 것이다. '묵시록적인 대서사시'라는 칭찬에 가려,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몇차례의 반전 부분'도 확실히 이 작품의 매력적인 요소임을 덧붙인다.

 

 

(구약성경의 히브리어 원서를 보면, '개의 힘'을 '야드(Yad) 캘랩(keleb)'으로 표기해 놓았다. '캘랩(Keleb)'은 히브리어로 '개'를 나타내고, '야드(Yad)'는 '손'을 가리키는 말인 동시에 '힘(force)'이라는 뜻도 있다. 우리말 카톨릭 성서에는 개에게 있어서 '손'이란 결국 '발'이므로 '개의 발'로 번역되어 있다. 그래서 조금은 일차원적이지만, 손을 이용해 개의 그림자를 만들어 보았다. 어둠을 상징하는 그림자. 그리고 찍어 놓고 보니 약간 무서운 얼굴로 보여, '개의 힘'이 품고 있는 '내재된 악'이라는 측면이 부각된 듯 싶다.)

 

이 작품 [개의 힘]을 간단히 한 줄로 요약하면 다섯명의 캐릭터의 눈으로 바라본 30년간의 멕시코 마약 전쟁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 다섯명은 전 베트남전 출신의 마약 수사관 아트, 마약조직의 보스 아단, 보스의 애인인 매춘부 노라, 아일랜드 계 히트맨(킬러) 칼란, 영혼보다는 목숨을 구하기를 중시하는 해방 신학 신부 후안이 바로 그들이다.

개인적으로 처음엔 반항적이고, 독립적이면서, 결점이 있는 아트 켈러에 감정이입을 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아마도 이러한 감정이입 밑에는 거대한 불의에 대항하는 그의 정의감에 대해 느끼는 나의 열등의식과 보상심리가 착종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작은 불의에도 침묵하는 경우가 많은 소시민에 불과하지만, 정의에 대한 신념과 올곧음이 있는 작품 속의 주인공에게 나를 동일시 함으로써 대리 만족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약을 단속하는 아트의 존재가 장기적으로는 마약 카르텔의 돈을 벌게 해주는(공급부족으로 가격이 상승되고, 판매보호금으로인해) '마약 전쟁의 전우'라는 대목 (2권 p.147)에선 그 아이러니에 그에 대한 측은지심마저 느껴지기도 했다.

 

반은 미국인이고, 반은 멕시코인인 아트의 인종적 배경은 켈리포니아(미국)-멕시코의 국경지대로 한 본 작품의 배경과도 맞아떨어지기에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설정이었다.(그는 '국경의 왕'이란 별명으로 불리게 된다), 전직 베트남전 베테랑 출신으로 상정한 점은, 베트남 전이 미국이 패전한 전쟁이었다는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아트는 작품 초반부에 멕시코의 마약전쟁이 "싸울 가치가 있는 전쟁이며, 진정으로 이길 수 있는 전쟁(1권 p.26)이라고 믿지만, 에필로그 부분에 이르러서는 아단의 몰락후 신출내기가 그 자리를 물려받고, 더 많은 마약이 미국에 공급되는 것(2권 p.565)을 보고 차오르는 열패감을 느낀다. 그런데 초반에 무신론자였던 그가 마지막에선 속죄하며 신에 대한 희망을 품는 점은 주목해야 할 점이다. 그것은 적극적인 신성으로의 회귀라기 보다는, 더이상 기댈 것이 없는 자가 마지막으로 가질 수 있는 체념과 피로감이 스며 있는 듯 하여 어쩐지 서글픈 느낌을 준다. 로버트 그린이 쓴 [전쟁의 기술]에 따르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모든 것이 의지하고 모든 힘과 움직임의 중심이 되는 곳', 소위 '무게 중심'을 공격해 그것을 무력화하거나 파괴하는 것이 최상의 전략이라고 한다. 그 무게중심은, 적의 지도자일 수도 있고, 도시일 수도 있고, 국민들의 정치적 지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마약과의 전쟁에선 그 구조 전체를 붕괴시킬 무게중심을 공략하는것 자체가 불가능 한 것이다. 필패(必敗)하는 싸움. 칼테론 대통령의 마약 전쟁이 멕시코 사람들에게 실패한 전쟁(la guerra fallida)라고 비난받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5천 2백만명에 달하는 멕시코의 극빈층은 결국 먹고 살기 위해 마약사업에 뛰어 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멕시코의 심각한 경제문제라는 무게 중심이 해결되지 않는 한 이 전쟁은 질 수밖에 없다. 마약 보스가 죽어도 다른 누군가가 그자리를 차지하고, 마약수요가 있는 이상 공급 역시 계속된다. '양키들이 양귀비 밭을 불태우더도 오히려 그것이 흙을 재생시키는 결과(1권 p.67)'를 만들어주듯이 말이다.

흑백논리를 기반으로한, 단순한 캐릭터들은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지만 (흑과 백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이제 바둑 두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일런지도 모른다.), 아직도 두께감없는 전형적인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는 소설들이 간혹 보인다.

 

 

하지만 돈 윈슬로우의 주인공들은, 통상적인 선과 악의 경계가 지워진 인물들이다. 다섯명의 주인공 모두 전형성에서 탈피했다. 아트는 목적을 위해서 악의 세력과의 결탁과 비열한 방식도 마다않으며, 노라는 신성(神性)의 세계에 관심있는 매춘부이며, 아단은 악의 축을이루는 마약 보스지만, 병마와 싸우는 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보인다. 그리고 칼란은 킬러이긴 하지만, 체스의 장기말인 자신에 회의감을 느끼는 섬세한 감성의 인물이고, 후안 신부는 로마 교황청의 지시에 휘둘리지 않고 독자적인 해방신학관을 갖고 있다. 모두가 일반적인 틀에서 조금씩 비켜 서 있는 인물들이다. 빤한 임무를 지닌채 존재하는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기에, 독자의 소설 읽는 재미를 높여준다. 쉽게 예상 할 수 없게 하는 주인공들은 독자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유발할 수 밖에 없다. 이 개성있는 인물들이 처음에는 크로스 워드 퍼즐 (낱말 맞추기 퀴즈)처럼 어딘가 조금씩 연결되어 있다가, 서사가 진행되면서 복잡하게 유기적으로 관련을 맺고 얽히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요 등장인물간의 위화감 없는 자연스런 연결을 통해, 작가의 역량을 확인하는 것도 이 작품 읽기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 이 작품의 소재는 '마약'에 관한 것이라, 마리화나를 손에 들고 있는 여인이 그려져 있는 이 LP 커버와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노라는 작품의 후반부에 금발머리를 빨간색으로 염색한다.)

 

책 제목과 뿌리깊은 악의 보편성

저의 생명을 칼에서, 저의 목숨을 개들의 발에서 구하소서. (카톨릭 성서)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KJV)

나를 칼날에서 건져주시고, 하나 밖에 없는 이 소중한 생명을 개와 같은 저 원수들의 세력에서 구해주소서. (NIV)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힘에서 구하소서.([개의 힘]- 김경숙 역)

-시편 22장 20절

 

한번 들으면 잊기 힘든 독특한 책 제목은, 보다시피 성경에서 가져왔다. '개들의 발', '개의 세력', '개와 같은 저 원수들의 세력','개의 힘'으로 번역된 이 말들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책을 일독한 후, 시편 22장 20절에서 가져온 이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 성경을 꺼내 22장 전체를 읽어보았다. 일반적으로 시편에서 말하는 '개의 힘'이란 신앙적 모독과 신체적 고통을 주는 원수나 대적을 표상한다. 시편 22장에는 원수를 칼, 개, 사자, 들소등으로 나타냈는데, 나는 단순한 이것들의 상징성보다는 시편 22장에 전체적으로 드러난 화자(話者)의 극심한 고통 묘사에 주목했다. 22장의 첫부분은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인데, 이는 돈 윈슬로우의 이 작품 [개의 힘]을 감싸고 도는 전체의 분위기와도 상당히 비슷하다. 마약전쟁에 휩싸인 멕시코가 겪고 있는 고통은 이미 비등점을 넘어섰고, 구원을 위한 승산없는 싸움에서 지쳐가고 있는데, 더욱 더 절망스러운것은 구원의 존재는 아득히 멀어보인다는 비참한 현실이 묘하게 이 시편의 내용과 같은 맥락으로 포개진다. 윈슬로우는 작품 내에서 후안 신부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신에 대한 고뇌와 고민을 보여주기도 하고 ('신은 힘안에서 자신을 드러낸다(2권 p.59))', "신의 부재 속에서는 단지 자연만 있고, 자연은 잔인한 법칙을 지니고 있다고 했을 것이다...신이 없다면, 필요한 것은 살아남기 밖에 없었다.(2권p.126)"같은 아단의 진술을 통해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신과의 수직관계와 사람들 간의 수평관계의 얽힘을 다룬 종교적 색채가 강한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제목에서도 비춰지듯, 종교적 자장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작품은 아니다. 이 작품의 배경인 멕시코는 국교가 카톨릭인것을 감안할 때, 실존 인물인 헤수스 포사다스 오캄포 전 추기경을 모델로한 후안 신부의 존재는 필수 불가결해 보인다.(치아파스와 해방 신학에 대한 언급부분은 사무엘 루이즈(Samuel Luiz) 주교를 떠올리게 해서, 후안 신부는 오캄보 추기경과 루이즈 주교의 복합적 캐릭터라는 이야기도 있다)

성(聖)을 상징하는 그의 존재와 성경에서 유래한 책 제목은, 이 작품에 적지 않게 수직적 깊이와 높이를 부여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스도 수난에 대해 예언적으로 노래하고 있는 22장은 신약성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시편 중 하나인데, 돈 윈슬로우는 '개의 힘'을 단순한 기독교적 의미보다는 좀더 근원적인 의미의 "악"을 형상화하려 한 듯 보인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들어있는 '악(惡)'이다.

 

아단은 정말 좋은 녀석이었다.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그속에 무엇이 잠재되어 있었든....

어쩌면 그건 우리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는지도 모른다고, 세월이 흐른 뒤 아트는 가끔 생각했다.

확실히 아트의 내면에도 잠재되어 있었다. 개의 힘.(1권 p55)

그것이 '개의 힘'이건, '더 파워 오브 더도그(the power of the dog)'로 불리우건, 아니면 '엘 포데르 델 페로 (El poder del perro)'로 불리우건 돈 윈슬로우의 세계인식에선 인간에게 내면화 되어 있는 악의 힘을 상징한다. 여기서의 핵심은 '악'은 외부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폴 리쾨르의 말처럼, 아담신화에서 뱀은 악마가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일부이다. 뱀은 우리 내부의 탐욕을 심리적으로 투사시킨 것일 뿐이다. 그리고 이브 역시 꼭 여자를 가리킨다기 보다는 유혹에 대한 인간의 연약함을 가르킨다. 이 책의 처음과 마지막을 수미쌍관식으로 차지하고 있는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힘에서 구하소서."라는 시편구절에서 '개의 힘'은 결국 에덴 동산의 '뱀'에 다름아니며, 내가 빚어내는 내안의 혼돈이며, 우리 인간들 사이의 혼돈인 것이다. 니체에 따르면, 악이란 나약함으로부터 오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란 유혹에 굴복하기 쉽고, 언제나 금지명령과 욕망이 마음속에서 부딪히는 존재이기에 '악'이란 인간에게 있어서 숙명과 같은 것일지 모른다. 아트가 티오와 지옥산 파트너십을 맺은 것도 (물론 '두 해악중에서 덜한 쪽을 택하라'.라는 자기 합리화를 하긴 했지만), 칼란이 암살의 임무를 거절할 수 없었던 것도, 노라가 매춘의 세계에 빠져든 것도 모두 자신에게 더 냉혹하지 못하고 나약했기 때문이었다. 칸트는 [뿌리깊은 악에 대하여]에서 '사람은 원래 선하도록 되어 있지만 악에 치우쳐있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원래는 어떻게 되도록 되어 있음"과 "치우쳐 있음"의 역설 속에서 갈등하는 존재가 바로 우리들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들어있는 악'에서 '개의 힘'에 휘둘려 '저지르는 악'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는 모럴 헤저드 (moral hazard)적인 인물들이 너무나 많이 등장한다. 이 책은 죄의식이 거세된 군상들이 벌이는 살인, 탐욕, 배신, 배덕, 간음, 음모, 고문등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악으로 점철되어 있다. 윈슬로우는 케르베르스로(지옥을 지키는 개. 머리가 셋에 꼬리는 뱀 모양-이 책에서 케르베르스는 작전이름.) '개의 힘'의 이미지를 변주시키며 이렇게 말한다."케르베로스는 파수꾼이 아니라 안내자였다. 헐떡이고, 이를 드러내고, 혀를 늘어뜨린 채 당신을 악의 세계로 초대하려고 안달을 내고 있는 안내자. 그리고 당신은 결코 저항할 수 없다.(1권 p.343)" 이 책에 등장하는 두 악인의 입에서 나오는 악의 본성과 속성에 대한 이야기도 눈여겨 볼만하다.

 

바로 이 순간, 아단은 악의 본성을 깨달았다. 악은 추진력이 있어서 일단 시작되면 멈출 수가 없었다. 물리학의 법칙이다. 잠들어 있는 몸은 계속 잠들어 있으려고 하고, 움직이고 있는 몸은 계속 움직이려고 했다. 뭔가가 그 움직임을 멈추게 하지 않으면. ..(2권 p.124)

 

충분한 힘으로 거대한 악을 활동하게 한 사람이라도 일단 악이 활동을 시작하고 나면 그 움직임을 멈출 힘이 없다는 사실을 티오는 알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악과 결탁하기를 멀리하는 일이며 지속하다 멈추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2권 p.125)

두 악인이 이야기한, 멈출 수 없는 악의 추진력에 감히 저항하는 인물들이 바로 칼란과 노라이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라는 '악과의 결탁'을 멀리하고 멈추려는 캐릭터들이다. 아이리쉬어로 '전투(battle)'의 의미를 갖는 킬러 칼란(Callan)과 노라와의 애정라인 연결은 이름부터에서 작가의 의도가 다분히 느껴진다.(노라도 역시 '명예'라는 의미를 지닌 아이리쉬 이름이다.) 가혹한 폭력조직 아래에서 영혼이 무두질 되고, 잠식되어 가고 있던 칼란은 어느 순간 그가 하는 일에 회의를 느끼고 목수로서(예수처럼!) 새로운 삶을 살아 보려고하는 아일랜드 계 킬러이다. 17세에 에디 프리엘에게 방아쇠를 당긴 이후, 그는 인생에서 중요한 무엇인가가 사라졌고, 비 온뒤의 급류에 휘말려 사라지는 나뭇잎들처럼 악을 향해 스스로는 제어할 수 없는 속도로 빠져 들어간 존재였다.

고급 콜걸인 노라는 아름다운 육체의 매력을 발산하는 강력한 유혹자 타입의 여성이다. 다섯명의 주요인물 중 유일한 미국인인데 (특히 멕시코와 맞닿아 있는 캘리포니아 출신!),-너무 단순한 독해일 수도 있는데- 작품내에서 그녀가 미국에 대한 알레고리로 사용되었다는 추측을 하게 된다. 노라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속(俗)과 성(聖)을 동시에 품고 있는 이중적 존재이다. 고급 매춘부인 그녀는 후안 신부와 정신적인 교감을 하며 그를 돕는 것을 좋아했었다.후안 신부의 죽음 이후, 마약 보스 아단에 대한 증오심을 키우며 그에게 복수하고 싶어한다.아단의 조력자이자, 궁극적으로는 파멸시키려하는 존재. 미국은 마약전쟁에서 멕시코를 돕는 듯 보이지만, 이 전쟁의 한 원인을 제공하는 이율 배반적 존재이기도 하다. 노라가 후반부에 마약으로 고문받는 장면은, 세계 최대 마약 소비국 중 하나로 고통받는 미국의 현실을 반영한 듯 보인다. 이런 전후 사정을 통해, 그녀가 이 소설에서 떠맡은 역할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여담인데, 돈 윈슬로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 주인공은 대부분 남성이지만, 예외적으로 신경써서 만들어낸 여성 캐릭터로 노라를 꼽았다. 여담 하나 더. 2권 p.522에서 노라가 구입한 중고책이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인 이유가, 이 책이 작가인 돈 윈슬로가 최고로 뽑는 책이기도 하지만, [안나 카레리나]의 주제가 '영혼과 육체의 문제'인 점때문일 듯 싶다. )

 

 

칼란과 노라. 이 두사람의 로맨스가 뜬금없어 불쾌함을 드러내는 독자도 있을 법한데, 이 부분이 다소 상투적인 설정이라 작가 역시도 분명 고민을 거듭했을 것이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적인 '악'과 '죄'의 들끓음이 있다면, '벌'과 (악의 대리인들은 대부분 삶의 멘홀을 닫게 만드는 방식으로 '징벌'을 가했다.) '정화'와 '구원'이 있어야 했다. (물론 후반부에 두사람은 그간 살아온 삶의 궤적을 서로에게 고백하며 '속죄'한다. 말할 것도 없이 속죄란 구원 이전의 단계다.) 서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진 두 사람의 사랑은 그리하여 의미심장하다. 돈 윈슬로는 두사람의 관계를 통해 독자들에게 구원의 희망을 보이고자 했던 것이다.

 

 

 

 

 

(1000페이지에 육박하기에 분권으로 나왔는데, 이런 재미와 속도감이라면, 더 두껍더라도 상관없을 것 같다.

고속도로를 야수같은 힘으로 질주하는 듯한 작품! )

 

이 책은 단순히 마약전쟁에 관한 책이 아니다. 마약전쟁을 매개로 한 근원적 악에 대한 성찰을 다룬 작품이다. 이 책을 쓰기 전에 작가는 악(the evil)과 악의 본질 (the nature of the evil)에 해답을 얻기 위해 관련된 책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했다고 한다. 결국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지 못했고, 결국은 답변을 얻기 위해 직접 악의 본질에 바투 다가선 이 작품을 저술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작품의 여러장면은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팩션(faction)적인 성격도 강하다. 멕시코 대지진이나, 여러 마약조직의 암살사건과 정치인 암살 사건, 선거부정, 실존인물들의 이름등이 작품에 역사적 사실성을 부여해주었다.이러한 사실성의 획득이 본작과 같은 서사시를 쓸때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말할 것도 없다. 서투른 거짓말로는 이렇게 긴 작품을 쓸 수 없는 것이다. 사실성은 모든 소설의 귀염둥이 같은 존재가 아닌가. 돈 윈슬로우는 멕시코의 현대사속에서 역사적 진실이 말해주지 않은 부분은 작가적 상상력에 의거에서 그 틈을 메워냈고, 그 시도는 꽤나 성공적이다. 마약전쟁에 관해 진정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는 후반부(2권 p.476)에 이르러서 아트의 회한에 찬 목소리를 빌려 등장한다. 아직 읽지 않은 독자를 위해서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겠지만, 작가는 근본적으로 미국이 갖고 있는 현재의 마약정책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다. 새로운 시스템 조차도 완전한 해결책이 될 수 없기에 아트의 목소리는 어두운데, 그 이유 역시 궁극적으로 '개의 힘'이라는 근원적 악의 개념에 귀착되어 씁쓸하다. 아트는 결국 전투에선 이겼지만, 전쟁에선 진 것이 아닐까.

그러나 아트가 꽃에 물을 준 후 꽃잎 위에서 빛나는 물방울을 보며, 무엇인가를 찾아내려는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는 작가의 희망을 엿볼수 있다.

인간이 인간에게 기대하는 것. 은빛으로 빛나는 눈물 방울과 같은 것 말이다.

숱한 결점들 사이로 빛나는 것이 보이는가. 그것 하나면, 한 인간을 사랑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겠는가.

작가는 희망을 나지막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돈 윈슬로의 [개의 힘]은 오랫만에 읽어보는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작품'이었고, 소재의 차별성으로 인해 강렬하게 내 마음속에 새겨지게 되었다. 이 작품 덕분에 작가가 던진 화두인 '내재화된 악의 속성'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해 보게 된 것은 이 책이 선사한 '압도적 재미'와는 별개의 소득이었다.

돈 윈슬로는 작품을 쓸때마다 조금씩 스타일에 변화를 주어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그의 모든 작품을 통람하여 그 변화를 확인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이 시점에서 국내 번역작이 제한되어 있어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분명 괴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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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2-05-10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글 진짜 잘 쓰시는군요. 알라딘은 글 잘쓰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요. 저 같은 사람은 어디 명함도 못 내밀겠어요.

마음속에 즐겨차지 할정도면 작품이 좋군요. 전 개인적으로 마약 이야기는 싫어서 이 책 신간으로 눈여도 봐도 좀체 맘이 안 움직여지더라구요. 예전에 <레퀴엠>이라는 영화 보고는 마약을 다룬 영화나 소설은 꺼려지더라구요. 미드도 즐겨보는데 에피소드에 마약 이야기는 나오면 잘 안 봐요. 멕시코는 마약이 권력이던데,,,참 씁쓸하지요. 아 어디에선가 읽었는데, 마약으로 돈을 벌어 마을을 먹여 살리고 정비하더라구요. 사제들도 마약 판 돈의 일부를 나눠 갖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아이러니죠.

에세르 2012-05-11 22:45   좋아요 0 | URL
오오 기억의집님,저도 어디 명함내밀기 힘듭니다. 글 잘쓰시는 분들 너무 많습니다. 기억의 집님도 글 잘쓰셔서,말을 걸었는데(댓글을 달았는데) 너무 겸손하시네요~^^

멕시코에 마약 실정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마약 종사업자가 너무 많아서 마약을 뿌리뽑으면 국가 경제가 휘청거릴 정도라네요. 그래서 이기기 힘든 전쟁이라는 표현을 썼구요.ㅠ
마약에 대한 거부감 자체를 갖고 계신모습에서 기억의 집님의 고운 심성을 알 수 있을것 같네요.

마녀고양이 2012-05-14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에세르님....
기억의집님 말씀대로 진짜 글 잘 쓰시는군요2!!!

사실 저는 코지 미스터리 좋아하거든요. 아하하. 말랑말랑하고 따스하고, 항상 먹을 것을 끼고도는 그 분위기에서 벗어나질 못 하는거죠. 그리고 아래의 온다 리쿠 페이퍼도 반가왔는데, 최근에 너무 시간이 없어서 정독을 못 했답니다. 나중에 정독해보려구요. 저는 온다 리쿠의 광팬이거든요. <개의 힘>이란 제목은 정말 강렬하네요, 그만큼 에세르님의 리뷰도 강렬하게 다가오구요.... 악의 힘, 그건 사실 제 고민 중의 하나죠,, 이렇게 말씀드리니 조금 우습긴 하네요...

나중에 다시 놀러오겠습니다. 총총.

에세르 2012-05-14 22:23   좋아요 0 | URL
아아.. 마녀고양이님 안녕하세요!!~^^
알라딘 서평 고수님들이 이렇게 좋은 말씀해주시니,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코지 미스터리 좋아하신다면, 와카타케 나나미 좋아하실것 같아요. 마녀고양이님 퍼스나콘이 어쩐지 [네코지마 하우스의 소동]에 나오는 고양이 같아요.ㅋㅋ
온다리쿠 광팬이시군요..이래서 함부로 뭘 쓰기가 겁납니다.'어떤 작가를 아주 잘 아시는분 들'앞에선 움츠러듭니다.ㅎㅎ

아무튼 반갑고, 좋은 말씀 감사드려요~. 저도 자주 놀러가겠습니다.^^

댈러웨이 2012-05-16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세르님... 아아... 무서운 분이셨어요... 현기증 일게 하시는 분이셨어요...
(전 글 아직 읽지도 않았는데 말이에요... 말줄임표를 남발하게 하시는 분...)

하루에 하나씩 프린트해서 정독할께요.
아직 올리신 글이 많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에요.

어우, 댓글 달기도 민망해서 그냥 저는 도망이요. =3=3=3

에세르 2012-05-17 15:06   좋아요 0 | URL
오오..댈러웨이님, 저야말로..ㅠㅠ 이 댓글 앞에서 한동안 주저앉아
말을 잃고 있답니다.ㅠ

하루에 하나씩 프린트..!!ㅠ 어찌 이리도 창조적인 칭찬을 하십니까?
(댓글 학원에 다니시나요?ㅋ 진정 제가 벤치마킹해야할 듯 싶어요..)

자주 놀러가겠습니다.^^

아이리시스 2012-05-25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학원 저도 다녀서 배워와서 다시 와서 에세르님 페이퍼에 달겠습니다^^

에세르 2012-06-02 08:14   좋아요 0 | URL
ㅎㅎㅎ 아이리시스님, 그 댓글 학원 어딥니까. 저도 다녀야겠어요~^^
아이리시스님,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불연속 세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0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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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리쿠의 작품은 응당 맥주와 함께 찍어야했겠지만,-그녀가 맥주광인것은 잘 알려진 사실-나는 커피한잔 하면서 읽기에 적당한 책이라 여겼고, 그래서 이렇게 찰칵~ㅋㅋ)

 

 

단편읽기를 너무 좋아해서, [달의 뒷면(2000)]이 먼저 출간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후속작인 [불연속 세계(2008)]를 먼저 읽었다. 하지만 이것이 달디단 초콜릿을 먹은 후, 신맛이 나는 귤을 먹는 것과 같은 순서상의 치명적이고 우둔한 실수는 아니다. 오히려 장점이 있다. 이 연작 단편집을 먼저 읽으면 젊은날의 다몬부터 중년의 다몬까지 모두 만날 수 있고 , 덩달아 장편에선 상대적으로 미미하게 다루어지는 주변인물들의 면모도(가령 다몬의 아내 '잔') 사건의 전개와 함께 엿볼수 있다.

그리고 장편 [달의 뒷면]과 연작단편 [불연속 세계], 두권을 모두 읽고 난 다음에 최종적으로 내가 내린 결론은 [불연속 세계]는 그 자체로 완결된 작품이기에 꼭 [달의 뒷면]을 우선적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 단편집을 읽으면, 십중팔구는 장편에서 등장하는 다몬이 궁금해서 [달의 뒷면]을 읽지않고는 견딜수가 없겠지만.

온다리쿠는 자신의 단편에 장편의 번외편을 많이 쓰는 걸로 잘 알려져 있는데,나역시도 단편 [수정의 밤,비취의 아침]에서 미즈노 리세 시리즈의 번외편에 매료되어, 장편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황혼녘 백합의 뼈]를 서둘러 찾아 읽어던 기억이 있다.

순서상에는 마지막에 박혀 있지만 [새벽의 가스파르]가 작품집 [불연속 세계]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가림없이 드러내주는 단편이라는 말을 우선해야겠다. 흔들리는 야간 열차 안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밤을 세워 벌어지는 괴담 베틀이 이 단편의 주된 소재인데,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분위기가 말하자면, '괴담 대결'같은 양상을 띄고 있음은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어렵지 않게 파악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한편이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가 술렁거리는 으스스한 괴담들이다. 괴담이 오고가는 한밤중의 기차 안. 사람은 이율배반적이게도 그 자리를 피하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함께해서 이야기를 엿듣고 싶은 이중적인 마음을 갖게된다. 작가는 작중 인물의 입을 통해 "세분화된 세계에서 세대와 집단 간의 가치 차이가 현저해진 지금 공유할 수있는 것은 공포감뿐 일지도 모른다"고 넌지시 작품의 의도를 밝히면서 이런 우리의 마음을 설명해준다.(p.238) 공포감이란 생명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감정으로 하등동물이나 고등동물 모두에게 공통으로 발달된 감정이라 하니 이말이 십분 이해가 된다. 우리 유전자엔 공포감이 생명 유지측면에서 내장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온다리쿠의 이 작품집을 단순하게 '괴담 모음집'이라는 레테르를 붙이는 것이 온당한가,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역시 손사레를 치며 '아니'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온다리쿠가 이 책의 어딘가에 스스로 이야기했듯 이 책은 "아닌게 아니라 장르를 나누기가 불가능한 책"(p.188)이다. 독자는 이 책을 어느 장르에 수납해야 할지 망설이게 될 것이다. 호러적인 측면도 있고, 추리 소설적인 요소도 있고, SF적인 면도 있으면서 순수 문학적인 색채를 띄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스타일은 온다리쿠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굳혀졌기에 기존의 팬이라면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을 것이다. 기실 이런 전통적인 장르 규칙의 뒤집기야 말로 온다리쿠의 장점이자 매력이기 때문이다.이런 일관성 없음과 장르의 혼합에 냉담한 독자도 물론 있겠지만, 나는 이런 작가에게 매력을 느낀다. 작가는 이 작품집의 [사구 피크닉]에서 자신의 작풍을 대변하듯 이렇게 말한다. "거꾸로 뒤집힌 건 어떤 의미에서 패덕적이라든지 불손하다든지 그렇잖아? 그런 부분에도 끌리는 게 아닐까.(p.193)"

 

 

 

나무 지킴이 사내

 

다몬의 방송작가 선배가 나무지킴이 사내이야기를 한후 다몬이 실제로 나무지킴이 사내를 보면서 일어나는 이야기. 나무 지킴이 사내가 등장하면, 도쿄가 불바다가 된다는 미신을 작품 중간에 온다 리쿠는 어린아이의 입을 빌려 슬쩍 흘리는데, 작품의 끝부분을 살펴보면, '도쿄 대공습 후 불바다'의 이미지는 거품경제 후 국가 재정파탄을 겪는 일본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작가는 영리하게도 이 나무지킴이 사내의 이야기를 방송 작가 선배의 꿈 이야기와 교차시키면서 SF작가 JG 발라드를 언급한다. 이것은 특유의 발라드(Ballardian)적 분위기를 차용하여 독자가 차가운 현대사회의 디스토피아적 세계와 기술만능의 살풍경한 이미지 속으로 은연중에 내달리게 만든 것이다. 이 역시 끝부분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겠다.

작가는 이 이야기 속에서 '나무 지킴이 사내(고모리오토코)'라는 다양한 의미망을 가진 단어를 가지고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뻗어 나가기도 했는데 그점이 꽤 인상적이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읽지 않은 독자를 위해 미리니름이 두려워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문학의 언어라는 것이 말놀이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없음을 다시한번 상기하게 되었고, 개인적으론 일본어 원문을 이해하고 읽었다면 그 미세한 결을 느끼게 되어 작가가 풀어놓은 언어유희를 조금 더 즐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악마를 동정하는 노래

 

이 이야기는 "들으면 죽고 싶어지는 음악이란 게 있잖아?"라는 매력적인 도입부로 시작하는 소설이다. 얼핏 소개글을 읽고, 나는 일본의 공포 만화가 이토준지가 그렸던 비슷한 테마(살인을 일으키게 만드는 음악에 관한 내용이다)의 [중고레코드]라는 작품을 떠올렸는데, 읽어보니 내용은 사뭇 달랐다. MD에 녹음된 '세이렌'이라는 가수가 부른 '산 소리'라는 곡을 듣고 사람들이 죽는다는 소재에 호러와 추리적 요소를 덧입힌 이야기였다. 간명하게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온다 리쿠라는 렌즈를 통해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산소리]라는 작품'이라고 할까. [산소리]에 대해 온다리쿠가 가졌던 생각을 확대 재생산한 것이 본작이라 할 수 있는데, 장편[달의 뒷면]중 문학작품 끝말 잇기 게임을 하는 장면에선 [산소리(야마노 오토)]가 슬며시 등장( p.251)하기도 하는 것을 보아, 오래 전부터 벼르던 이야기임을 추측할 수 있다. 다음 발췌문을 읽어보면 추측은 '확신'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산소리]. 가와바타 야스나리지?"

"응 자세한 내용은 잊어버렸지만 거기서 산 소리는 죽음의 상징이었던 것 같아."

"나한테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괴기 작가란 이미지인데 말이야. 에로도 농후하고." (불연속 세계, p.95)

 

 

 

예컨대 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대한 이미지에도 반발심을 느낀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하면 [설국]. 아니면 [이즈의 무희]. 여러 차례 영화화된 이미지. 주연을 맡은 아이돌 가수가 미소를 짓는 상큼한 포스터. 그것들은 그래봤자 그의 세계의 거죽에 불과하다. 나에게 그는 그로테스크하고 끈적 끈적하며 괴기 취향의 작가다. (달의 뒷면,p.232)

 

 

 

 

예를 든것 처럼 장편 [달의 뒷면]에도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대한 온다 리쿠만의 해석이 등장한다. 데칼코마니까지는 아니더라도 각각 떨어진 두 글을 함께 괄호안에 묶어 읽어도 자연스러울 정도로 비슷한 논조의 이야기다.

보통사람들과 프레임을 달리보는 것. 그래서 평온한 풍경 이면에 숨은 암흑에 가까운 기이한 것을 들춰서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이 온다리쿠의 짖궂은 성향이라 말해도 틀림은 없다. 그녀의 다른 단편 [바다에 있는 것은 인어가 아니다]에서 '나카하라 주야'의 시(詩)를 비틀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 것을 기억하는 독자는 이것이 온다리쿠의 장기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다몬과 로버트가 검은 고양이을 쫓아 어떤 장소로 인도되는 장면은, 그 장면이 매우 짧았지만 [달의 뒷면]에서 다몬과 아이코가 고양이 '하쿠우'를 뒤쫓는 장면과 겹쳐졌기에 꽤나 인상적이었다. 이집트인들은 고양이를 달과 관련시켜 생각했으며 (달!), 검은 고양이는 그 빛깔을 전제로 암흑과 죽음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산에 둘러싸인 저택으로 유도하는 동물이 검은 고양이인 것은 극히 자연스럽다. (어째서 많은 장르소설에서 주인공을 이끄는 영험한 동물이 너구리나 다람쥐가 아니라, 고양이인지 납득할 수 있는 대목이다.)

 

 (MD에 녹음된 '세이렌'이라는 가수가 부른 '산 소리'라는 음악이 죽음을 불러일으키는 단편-악마를 동정하는 노래.)

 

 

 

 

환영시네마

 

이성복 시인이 말했던 '구원이 온다면 망각과 함께 오리라'라는 구절이 떠오르는 단편. '네버모어'라는 인디밴드의 베이시스트인 다모쓰의 트라우마와 에드거 앨런포의 [까마귀]라는 시(詩)의 상징성을 포갰다. 포가 직접 밝혔듯이 까마귀는 죽은자를 애도하고, 영원히 기억하는 것을 상징하는데 이 단편 모티프와도 맞아떨어진다. 사랑하는 여자를 잃은 남자의 시 [까마귀].

개인적으로는 단편 전체중에서 가장 소름끼쳤던 작품이었다. 영화 촬영하는 장면을 보면 주변 사람이 죽는다는 다모쓰의 고백 부분부터 이 소설의 공포감은 증폭된다. 재구성을 통해 왜곡을 즐겨하는 기억의 속성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뇌에 대한 성찰을 온다리쿠 특유의 화법으로 풀어낸 빼어난 작품이다. 이 단편에 등장하는 '서브리미널 효과'라는 말은 온다리쿠의 팬이라면 그녀의 [금지된 낙원]에도 나왔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의 '무의식'을 거대한 바다 속으로 보고, 바다 위에 나와 있는 빙산을 '의식'으로 보는 전형적인 비유에서 바다표면을 리미널(경계)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의식은 대부분 경계 아래(sub)인 무의식에 의해 좌우된다는 이야기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새빨간 강아지"에 대한 다모쓰의 기억이지만, 그것의 진실은? 과거사의 모든 사건이 잠들어 있는 다모쓰의 깊은 무의식의 심연을 들여다 보는 일은 선뜩하다.

 

 

 

 

사구 피크닉

 

나는 개인적으로 읽던 책을 멈추고, 이 단편에 묘사된 우에다 쇼지(Ueda Shoji)의 돗토리 사구 사진이 궁금해서 그가 찍은 Mode in Dunes같은 사진집을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사진과 이야기를 병치시켜가면서 읽어보니 온다리쿠가 그의 사진 이야기를 도입부에 한 이유는, 이 이야기의 소재를 펼쳐나가기 전에 독자에게 내보인 착시와 교묘한 트릭의 설정에 대한 힌트였다. 추리소설의 소실 트릭, 시선의 밀실, 트윈픽스, 여체의 신비..등등 짧은 단편임에도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런데도 결코 방만한 느낌이 들지않는다. 시계태엽처럼 유기적이다. 이 단편에 본인 스스로 쓴 말을 온다리쿠에게 되묻고 싶을 정도다. "엄청난 상상력이다. 대체 어디서 그런 발상이 생겨나는지 머릿속을 한번 들여다보고 싶다.(p.54)"

 

 

 

 

 

새벽의 가스파르

 

주인공 이름 다몬(多聞)에 대한 설명이 단편집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장편 [달의 뒷면]에는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다"라는 표현으로 알려주고 있다. 생각해보면, 신인 음악인을 발굴하는 음반회사 프로듀서로서도 꽤나 어울리는 이름이다. 제목 짓기의 달인으로 알려진 (특이한 그녀 소설들의 제목을 떠올려보라) 온다리쿠가 주인공 이름을 허투루 작명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온다리쿠가 주인공의 이름에서 demon(악마)를 떠올리게 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있다고 느꼈다. demon..영어 발음으로는 '디몬', 일본식 영어 발음으로 '데몬'쯤 될텐데, 보다시피 '다몬'은 발음상 사촌형제 정도로 닮아있다. [달의 뒷면]에서 다몬에 대한 묘사만 보아도 그런 심증은 굳어진다. "마치 계시 같은 목소리. 이 남자를 만날 때마다 동자의 얼굴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어쩌면 세상의 중심은 이 남자인지도 모른다. 이 남자가 여기에 있었던 게 사건의 중심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 남자를 이곳에 있게 하기 위해 준비된 조역인지도 모른다.(p.314)" 마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같은 신비한 존재.(데미안 역시 데몬(demon)에서 나온 말이다)

이 단편의 제목에 들어있는 '가스파르(garspard)'라는 말도 프랑스어로 '작은 악마'를 뜻하는데 이것도 영적인 세계에 한쪽 발을 담그고 있는 듯한 주인공 '다몬'의 분위기를 잘 전달해주는 타이틀이다. 서두에서도 밝혔듯이 다몬의 친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열차 안에서의 괴담 베틀을 소재로 삼고 있다. 물론 서사의 중심은 다몬의 이야기인데, 예상치 못한 결말이 정통으로 독자의 복부를 가격한다.

여담인데, 이 단편엔 온다리쿠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맥주가 또 다시 등장하여 기존 팬들에게 작은 즐거움을 안겨주니 주목해서 읽으시길. (맥주가 등장하지 않은 소설을 찾아보기 힘들정도 온다 리쿠는 맥주광.)

 

 

 

 

 

 

 

 

총평

모든 사람은 달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싫은 어두운 면을 갖고 있는것이다.

(Everyone is a moon, and has a dark side which he never shows to anybody.)

(장편 [달의 뒷면]을 읽기도 해서였을까) 나는 영화 문스트럭(Moonstruck)에 나온 이 말이 생각났다. 온다리쿠는 보통사람들이 볼 수 없는 이면을 펼쳐 보여주는 작가라고 생각해왔는데, 이 연작 단편집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연작집 제목인 '불연속 세계'라는 말은, 연속되어질 거라고 예상되는 이 세계와 내일의 세계 사이에 뜻밖에 벌어져 있는 공백이다. 독자는 다몬이라는 주인공을 따라 여행하며 그 공백 안에 고여 있는 어둡고 습한 뒷면을 목도하게 된다.

 

각 단편마다 온다 리쿠만이 포착해낸 독특한 이야기들이 매력을 뿜어낸다. 그 독특함의 지층에는 때로는 눈을 돌리고 싶을 정도로 기괴한 영상이 자리잡고 있기도 하지만, 기괴함이라는 말이 간직한 '보통이 아님'과 '괴상함'에 대한 함의가 커지면 커질수록 묘하게도 우리는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정신을 차렸을 땐, 다몬이 등장하는 다른 작품 [달의 뒷면]을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공산이 크다. (경험자의 이야기다)

이 단편집의 작품들은 2000년 [흑과 다의 환상]을 쓰면서 부터 굳어진 전통적인 온다리쿠의 열린 결말에서 한걸음 물러나 있는 듯하다. 하므로 이 책은 비교적 끝마무리가 명확하기 때문에,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않는 점이 싫어서 그녀의 소설에 불만인 독자에게 조차 매력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단편 내에 자기 작품의 열린 결말에 대한 세간의 품평에 대해 털어놓는 저자의 볼멘 목소리 들을 수 있는데 재미삼아 한번 찾아보시길.("다몬 이야기는 늘 그렇다니까. 종잡을 수가 없고, 종잡으려고 하면 벌써 끝났어." "결말이 없다는 말 많이 들어. 딱히 결말이 있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닌데(p.43).")

이게 온다 리쿠의 매력이기에 나는 크게 신경쓰지 않지만. 홍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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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2-05-10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시네요. 저도 읽었지만 그냥 재미로만 읽고 말았는데,,, 전 온다의 작품 중에서 코끼리의 귀울음을 젤 좋아해요. 전 사실 온다 같은 세계관을 믿지는 않아요. 재미로 받아 들이고 단지 그녀의 허무맹랑한 상상력을 좋아합니다.

사진 참 잘 찍으시네요^^

에세르 2012-05-11 22:47   좋아요 0 | URL
거듭되는 과찬 너무 감사드립니다.(- -) (_ _)

'기억의 집님이 말씀하신 "허무맹랑한 상상력"이란 표현이 아주 적절해서 메모장에 적어두고 싶네요~^^
코끼리의 귀울음..저도 아끼는 단편집입니다.
 
달의 뒷면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9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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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와 물의 이미지가 책에 넘쳐난다. 물의 도시를 배경으로 끊임없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장면이 많다. 비오는 날 읽으면 기막히게 어울리는 책.)

 

 

 

온다리쿠의 [달이 뒷면]을 읽다

그러나 지금 그의 손안에 이 세계의 진실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일상이라는 한가로운 벽의 갈라진 틈새 밑에 그런 것이 존재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달의 뒷면](p.235)

당연히 연속돼 있어야 할 세상과 당연히 연속돼 있어야 할 시간이 끊겨 있을 때의 그 공백과 틈이 두려운 건지도 모른다. 그곳은 정말로 찢겨 있는 걸까? 그 건너엔 무엇이 있을까? [틈 (p.160)]

온다리쿠는 찢겨진 틈새에 고여있는 풍경에 천착해 온 작가이기에 위의 인용이 이 글의 편리한 출발점이 되어주었다. 그녀를 수식하는 말이 세상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숨겨진 이면을 다른 각도로 보여주길 좋아하는 작가'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이다.

이 작품 [달의 뒷면]은 아예 제목부터 대놓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두운 진실을 보여주기로 작정한 듯 보인다. 물의 도시 야나쿠라를 배경으로 일어난 의문의 연쇄실종 사건을 소재로 한 이 이야기는 작가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단순한 호러/판타지/SF물 보다는 중층적으로 읽히는 작품이다. 일단 이 작품은 표면적으론 고전적인 신체강탈을 소재로 한 호러작품으로 읽힌다. 자신의 이해를 뛰어넘는 생명체가 세계를 조용히 침식하고 있는 배경이 세계와 접점인 물가이기에 더욱 무섭다. 적어도 우리는 물이 없다면 생명을 유지 할 수 없는 존재라서 물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작가는 "인간은 물 없이는 살 수 없어. 어디로 가든 마찬가지네. 도망치기엔 이미 늦었어.(p.172)라고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하지만, 작가의 특기인 '숨겨진 이면 드러내기'에 대해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이 표면적인 호러소설 뒤에 '달의 뒷면'처럼 작가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다. 작가가 이 작품의 소재에 힌트를 얻은 잭 피니의 [바디 스내쳐]가 단순히 호러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사회속에서 개성 상실의 알레고리로 읽히듯이.

 

 

 

    (이 책을 읽고 나면,물 웅덩이가 살짝 무서워지기도 한다.ㅋㅋ:;;;;)

하나됨과 다양성 사이의 갈등 (리처드 도킨즈의 '밈')

우리는 은연중에 다른 사람들을 흉내내어 하나되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 학생들 사이에 전염병이 번지듯 대유행하는 놀이나 음악, 패션등은 바로 그 좋은 예이다. 나 스스로도 누군가를 모방하고 있다는 자각도 없이 어떤 멜로디를 흥얼거리거나, 남들이 다 산다는 브랜드의 옷을 사입거나 한다. (이 책에서 실종되었다가 돌아온 사람들은 모두 "다들 유괴되었다(도둑 맞았다)는 자각도 없다"(p.164)는 점을 상기하게 된다.) 일찍이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라는 영국의 진화 생물학자는 그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그 이유를 '밈(meme)'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설명했었다. 밈은 그리스어 '모방되어진 어떤것'을 의미하며, 투박하게 말하자면, 지금은 '문화의 자기 복제 요소로서 모방을 통해 전달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도킨스는 밈이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수직 전달되는 것과 바이러스가 수평 전달되는 것과 비슷한 유사성이 있다고 보았다. 인간이 모방을 통해 언어를 배우기에 자신의 부모와 비슷하게 말을 하게 되는 것, 종교가 대대로 이어지는 것도 모두 이 '밈'의 특징 때문이다. 온다리쿠는 그 '밈' 개념에 부분적으로 의존하여, [달의 뒷면]이라는 작품 속에서 심도있게 재조명했다.

작가는 타인에게 동화되는 것, 하나 되는 것에 대한 갈망을 책의 이곳 저곳에 힌트처럼 흘려놓았다. 가령 "말이 다르다는 것은 그 인간이 이분자라는 것을 보여준다.자기 몸을 지키고 공동체에 친화되려면 그 공동체의 말을 배우는게 수단으로서 유효하다.(p.81)나, "다들 서로 생각하는 걸 완벽하게 알고 있다면 언어도 문자도 발달하지 않았을 지 모른다 (p.136)" 같은 말들은 모두 작가의 생각이 양각되어 있는 구절이다.

그러나 '밈' 역시 생물학적 진화와 유사한 방식으로 -변이, 돌연변이, 경쟁, 되물림을 통해 진화한다고 하는데, 여기서 작가는 '다양성'과 '하나됨'과의 갈등을 끄집어 낸다. 온다리쿠의 세계상에 있어 세계는 <다양성과 하나됨 사이의 갈등>으로 파악되고 있음에 틀림없다.

"적어도 우리는 '그것'을 피해 도망쳐 오긴 했을 걸세. '그것'은 '하나'이기때문이야. '그것'에 붙들리면 우리는 누구나 동일한 '하나'의 '그것'이 되고 말아. 우리는 무의식중에 타자와 동화하기를 기피하고 두려워해왔네. 다양성이 바로 우리가 생물로서 취하는 전략이기 때문이지....우리는 각자 누구도 의지하지 않고 각각의 가능성을 시험해봐야 하는게 분명해. 그게 생물로서 올바른 전략이야." (p.215)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늘 '그것'에게 붙들리고 싶은 유혹과 싸우고 있네. '하나'가 되고 싶은 유혹이지. 종교도 가족도 사회도 '하나'가 되고 싶다는 유혹이 낳은 형식이 아닐까 싶을 때가 있거든. 저마다 자기 전략을 탐색하려면 다대한 스트레스가 따르지만 '하나'가 되면 편하거니와 아무 생각 않아도 되니까. 그러나 거기에 생물로서의 딜레마가 있네. '하나'가 돼버리면 다양성이 생기지 않아...우리는 '하나'가 되고 싶어하는 중인지도 몰라. 아니면 무의식중에 인간이란 생물의 전략이 도저히 수습 불가능한 상태에 이른 걸 깨닫고 다시 한번 '하나'로 되돌아가려고 하는지도 몰라." (p.216-p.217)

위 인용은 작품 전체를 통틀어 작가의 진의가 가장 잘 드러나 있어 눈여겨 볼 만한 대목이다. [나는 전설이다] 같은 좀비가 나오는 작품을 볼때마다 나는 의식이 있는 소수자로 남느니 차라리 좀비가 되어 그들 무리에 섞이는 게 마음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했는데, 그래서인지 윗글에 언급된 "하나가 되면 편하거니와 아무 생각 않아도 되니까"라는 말에 유달리 공명했었다. 실제로 이 작품엔 최후의 4명만이 사람들이 증발된 마을에 남는 데,이 말은 후반부에 펼쳐질 사건을 암시하기도 해서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또한 이 작품에서 '도둑 맞은자들'에 대한 구분 방법이 한순간 무의식 상태가 되었을 때, 두사람이 (같은 의식의 지배하에 있기에) 거울에 비친 사람들을 보는 것처럼 동작이나 속도가 똑같다라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진짜인간과 가짜인간의 구분 방법이 눈자위가 흰색없이 검은색뿐인 경우는 복제인간이라는 상투적인 방법이 아니다. 혹은 영화 '더 씽(The thing) 프리퀄'에서처럼 입안의 금속 물질(가령 금니)을 복제 할수 없는 경우는 외계 생명체로 판별하는 것 같은 방식도 아니다. 이것과 비교해 보면 작가가 말하려는 바가 더욱 두드러진다. 똑같은 동작과 속도는, "하나되는 것, 타자에게 동화되는 것, 모방 대한 이미지라는 것을 독자는 쉽게 추론할 수 있다. '우리는 늘 '하나'가 된다는 것, 누군가에게 엎드려 복종한다는 것에 강한 동경을 품고 있으니까'(p.258)라고 말하며 동화의 순간에 유혹을 느끼며 기다리는 다케오에 대한 묘사는 다름 아닌 평범한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작가는 이런 묘사를 통해 묵시적이고 포괄적인 비판을 가하려 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을 획일화에 대한 경고나 몰개성에 대한 작가의 걱정과 비판으로 읽느냐 마느냐는 순전히 독자의 몫이다.

겉으론 '호러와 SF'의 기조를 띠고 있지만 온다리쿠는 그 뒷켠에 <하나 되려는 것과 다양성의 갈등>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숨겨 놓았다. 그 주제를 이루는 근간에 리처드 도킨스가 쓴 [이기적 유전자]의 '밈'개념이 큰 줄기를 차지하고 있다고 확언할 순 없지만, 작가는 독자에게 도킨스의 생각에 이끌렸음에 대한 힌트를 슬쩍 남겨 놓는다. "한동안 유행한 '이기적 유전자'같은 거야?" " 뭐 그렇지." "어째 기분 나쁘군. 나도 모르는 새에 가마에 태워진 거 같아.""우리 자신이 유전자의 탈것이잖아."(p.254)

 

 

오셀로 게임의 상징성

또 하나. 이 작품에서 오셀로 게임 장면(p.31)은 작품 내에서 짧게 등장했지만, 중요한 의미가 돋을새김되어 있는 부분이다. 오셀로 게임이란, 상대방의 말을 포위하면 상대방말을 뒤집을 수 있는 규칙을 갖고 있는 보드게임이다. 가령 상대방 흑색 말에 포위되면 보드 위에 늘어선 백색 말들이 뒤집혀 갑자기 흑색 말들로 바뀌어 버린다. 순식간에 '도둑맞은' 느낌이 드는 게임. 다몬은 오셀로 게임을 하면서 게임말이 내는 목소리를 듣는다고 이야기하는데, 그 이야기의 대목중 "저 녀석을 우리편으로 끌어 들이고 싶은데, 저위치에선 다보이겠지?"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읽은 독자들은 알겠지만- 순식간에 상대방으로 존재변이 되어지는 오셀로 게임의 속성과 겹쳐지면서 후반부에 펼쳐질 사건에 대한 암시로 읽힌다. "선생님, 아이코도 이 게임에 참가합니까?(p.86)""이 게임은 보아하니 어제 오늘 시작된게 아닌 모양이다.그 기원은 다몬이 교이치로를 알기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다. 이렇게 큰 게임이었다니 반칙 아닙니까.(p.98)" "그게 이 게임의 답입니까?(p.107)" 이와 같은 술회에서 '게임'은 표피적으로는 다른 게임이지만, 주제와 호응하는 큰 맥락상 오셀로 게임의 이미지로 종착되어진다.

 

 

 

작품의 주제와 호응하는 책커버에 관하여

옛날부터 사람들은 모든 생명체가 물에서 태어나며, 생명을 지속시켜주는 물질이기에 물을 '탄생과 소생'의 상징으로 보았다. 내가 따뜻한 물로 채워진 욕조 속에서 안락하고 편안한 느낌을 받는 것도 어쩌면 내가 물로부터 온 존재이기때문일런지 모른다. 물 속에 잠겨서 나는 비,강, 바다, 수액, 젖, 체액, 피등으로 자연순환되는 물에 대해 잠시 생각한다. 종교적인 세례의식은 죽음과 매장, 생명과 재생을 의미하고, 물에 잠겼다가 물 밖으로 나올때 새로운 인간으로 소생한다고 한다. 세례와는 다른 맥락이지만, 여기 물이 다른 존재로 재생되어지는 배경으로 쓰인 한권의 소설이 있다. 온다 리쿠의 [달의 뒷면]. 이 작품은 일본의 수상도시 '야나가와'를 모델로한 가상의 도시'야나쿠라'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기이하고 오싹한 이야기인데, 배경으로 상정된 물이 중요한 상징성을 띠고 있다. 물이 삶과 죽음의 매개자라는 인식은 고래(古來)로 부터 있어왔었다. 땅을 비옥하게하는 인자이기도 했지만, 홍수와 같은 파괴의 힘을 갖고 있기에 양면성을 지닌 존재. 이 작품에서 물은 단순히 이러한 양면성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개인적으로 평소 깊이를 알수 없는 물에 대해 막연한 공포와 신비함을 느낀적이 많은데,그 심연에 대한 공포는 인간 누구에게나 내재된 감정일지도 모른다. 온다리쿠는 그런 인간의 감정을 재빠르게 간파하여 자신의 상상력의 볼륨을 최대치로 올려 우리가 알지 못했던 뒷면을 뒤집어 보여준다.이 책 어디에서인가 작가 스스로가 이야기한 "인간의 상상력만큼 무서운 건 없으니까(p.93)"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비채에서 만든 책 장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역시 물의 색이라 부를 수 있는 푸른 빛을 사용했다. 청색계통은 진한 코발트빛 부터 연한 사파이어색까지 다양한데, 비교적 밝은 색조의 사용은 전반적으로 책의 분위기를 산뜻하게 만들었다. 책의 내용은 조금 어둡고 스산한 느낌이라, 뜻밖의 이런 밝은 색채의 대담한 사용은 무척 참신하고, 현명한 선택이라 생각된다. 한가지 재밌는 것은 책커버에 펼쳐져 있는 그림은 분명 물의 도시 '야나쿠라'를 형상화한 것일텐데, 물길에 파란색을 칠하지 않고, 백색으로 남겨놓은 반면 하늘 쪽에 파란색이 칠해져있다. 하늘 쪽에 파란색을 입힌 것은,어쩌면 비를 표상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이 작품 내내 하늘에서 하염없이 비가 내린다, 비는 '생명과 물'을 표징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그런데, 생각의 지느러미를 좀더 움직여보니, 그것보다는 편집부쪽에서 의도적으로 고정관념을 살짝 뒤집은 것이 아닐까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게 되었다. 물길을 일부러 파란색을 넣지 않아서 좀더 무기질적인 느낌이 강하고, 어찌보면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가 모르는 달의 뒷켠에 있는 마을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오셀로 게임에서 늘어선 말을 살짝 뒤집듯이 기존 생각을 뒤집어 색다른 효과를 내준 편집부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기존생각을 뒤집어, 안보이던 이면을 보여주는 것이 이 책 [달의 뒷면]의 큰 테마이기도 하기에 더욱더 인상적이다.

 

한가지 더 말하자면, 책 커버에서 눈에 띄는 것은 마을 곳곳에 보이는 사이프러스 나무들이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자니,[활활 타오르는 불꽃 같은 형태의 나무가 오래된 목조가옥을 에워싼 모습은 흡사 검은 불길이 집을 휩싼 채 하늘을 저주하는 것처럼 보인다.(p.24)],[사이프러스는 생명을 나타내는 동시에 죽음을 상징한다고 해요...여기 야나쿠라에 딱 맞지 않아요? 삶과 죽음이 늘 등을 맞대고 거기에 있어요.(p.353)]같은 묘사나, 후반부에 다몬이 검은 사이프러스로 둘러싼 민가를 찾아가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리스인들이 사이프러스를 지옥에 바쳤다는데서 이 나무는 '죽음과 장례'를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고, 지금도 카톨릭에서는 교황이 죽으면 사이프러스 나무로 만든 관에 시신을 넣어 매장한다고 한다. '죽음과 재생'... 이라는 작품의 주제 속에서 나름 중요한 메타포를 담고 있는 이 나무를 놓지지 않고 책 커버에 표현해낸 디자인팀은 상찬받아 마땅하다.

 

끝으로 북커버 위에 펼쳐진 야나쿠라 마을 그림중 색채를 부여받은 네집은 (겹친 부분제외하면 네집만 색채가 있고 나머지는 흑백이다),단순한 생각이지만, 다몬, 교이치로, 아이코, 다카야스를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 텅빈 거리에 남겨진 4명. 그러나 책 커버의 마을엔 사람이나 어떤 동물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황량하다. 하늘은 텅비어있다. 그점이 무척 의미심장하다. 생중사(生中死).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느낌이랄까. 종합적으로 볼때, 소재에 부합하여 굉장히 신경 쓴 책장정이다.

 

 

 

 (원래대로라면, 사진처럼, 물길에 파란색이 들어가야했겠지만, '비채'는 오히려 하늘 공간에 파란색을 칠해서 그 고정관념을 전복시켰다. 그결과 다른 시각을 펼쳐보이며 색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이 책을 덮고 나서, 나는 책에 등장하는 비둘기 모양의 피리를 밤에 불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보오 또는 오오하고 낮고 단속적인 소리가 달빛 아래에서 울리겠지. 비둘기 모양의 피리는 그 묘사가 잔잔하게 스며드는 감성에 맞닿아 있어 직접적인 충격은 좀 둔화된 듯 싶지만, 가만히 곱씹어 볼 수록 꽤나 소름끼친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째서 섬뜩한지는 아직 이 책을 읽지않은 독자의 기쁨을 뺏어갈 수 없기에 말할순 없지만, 서정적인 감성과 차오르는 공포의 혼거는 온다리쿠의 매력이자 특징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특정 장소가 가지고 있는 힘'이란 것에 상당한 매력을 느껴서, 접근 가능한 장소에 이야기 입히기가 수월하다는 온다리쿠. 예의 이 작품에서도 모세혈관처럼 수로가 펼쳐진 야나가와의 특성을 십분 활용하여, 견고한 상징성으로 무장된 수작(秀作)을 만들어냈다. 읽는내내 온다 리쿠가 발견한 우주의 비밀에 놀라움을 금치못했음을 고백한다. 굳이 나눈다면, 만화계의 작품이겠지만 (작가 내부에서 분명히 자신의 작품을 만화계/소설계로 나눈다고 한다), 허황되고 비현실적이라는 느낌보다는, 작가가 펼쳐보이는 축축한 정서와 소름끼치는 상상력에 침윤되다보면, 오히려 손으로 까끌하게 만져질 듯한 사실성이 느껴진다. 이젠 온다리쿠의 팬들은 온다리쿠의 장편 중에서 가장 주목할 작품중 하나로 망설임없이 이 작품을 꼽아야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다. 이책을 만족스럽게 읽은 독자들의 관심이 주인공 다몬이 등장하는 다른 작품 [불연속 세계]에 (작가의 고민이 다양한 방향으로 전이되었음을 알수 있는 단편집이다) 쏠릴 것이라는 것은 바보라도 어렵지 않게 추측 할 수 있다. 이 작품 [달의 뒷면]과 [불연속 세계]가 얼마만큼의 친연성을 맺고 있는지 살펴보는 방식의 독법도 꽤나 흥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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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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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스포일러 유무: 이 책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채 읽고 싶다면, 이 글을 읽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이 독후감은 거의 스포일링을 하지 않도록 조심을 거듭하여 쓴 글입니다. 아무래도 이 작품은 2종류의 서평을 써야할 것 같습니다. 스포일러를 포함한 서평과 그렇지 않은 서평. 이것은 스포일러를 포함하지 않고, 이 책의 작법(이것은 널리 알려진 것)과 전반적인 분위기만을 다뤘으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책커버에 벚꽃이 나오는 책들.. 가노 도모코의 [손안의 작은새], 혼다 다카요시의 [체인 포이즌], 기타모리 고의[ 꽃 아래 봄에 죽기를] (이건 신간) 등이 떠오르지만, 역시 가장 기억남는 것은 우타노 쇼고의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다. (제목부터가..ㅋㅋ)

[어떤 사람이 도끼를 잃었는데 옆집의 아들이 훔쳐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옆집 아들의 걸음걸이를 보아도 꼭 도끼를 훔쳐간 것 같이 보였고, 얼굴색을 보아도 도끼를 훔쳐간 것 같았으며 말하는 태도와 동작 등 모든 것이 도끼를 훔쳐간 사람의 행동같았다. 그 뒤 얼마되지 않아서 골짜기를 거닐다가 잃어버렸던 도끼를 찾았다.그 다음 날 그 옆집 아들을 보니 동작이나 태도가 도끼를 훔쳐갈 만한 아이로는 보이지 않았다.]-열자(列子) 설부(說符)편

 

주변에 벚꽃이 지는 장면들을 보면서, 제목에 이끌려 우타노 쇼고의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를 재독하게 되었다. 다시 읽으면서 떠오른 것은 뜻밖에도 (위에 인용한) 열자(列子)에 나오는 '잃어버린 도끼'에 대한 대목이었다. 도둑으로 보이냐, 그렇지 않냐는 것은 모두 보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다는 간명한 진실을 일깨워주는 이야기. 이 책을 일독한 독자들은 공감하겠지만, 책을 다시 읽게 되면 처음 읽을 때의 색깔과는 완전히 다른 색깔로 내용과 인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타노 쇼고는 선입견을 심어주는 데 성공하여, 한 방향만으로 독자의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마술의 트릭이 공개된 후엔 고정관념이 벗겨지면서 다른 각도로 인물과 사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마치 옆집 아들이 도끼를 훔쳐갈만한 아이가 아니라 순진한 아이로 보이듯이.

 

내가 글을 구체적이지 않고, 다소 변죽을 울리는 식으로 밖에 쓸 수 없는 이유는 작가의 트릭을 공개할 수 없음에 기인한다. 다른 여타 작품과는 달리 트릭의 해답이 전체적인 주제와도 긴밀하게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공개되면 모든 재미가 모래성처럼 무너지게 된다.

작품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을 발설하여, 읽지 않은 독자의 흥을 앗아갈수 있다는 두려움과 그럼에도 이 책이 가진 매력을 중요한 부분을 누설하지 않고 말하고 싶다는 욕구 사이의 위태로운 외줄타기를 나는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안심하시라. 이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을 때, 그어놓은 어떤 선이상은 넘어가지 않기로 다짐했으니.

 

 

레드 헤링 (Red Herring). 붉은 색을 띠는 훈제 청어를 가리키는 말이다. 독특한 비린내를 풍기기때문에 사냥개의 후각을 교란시키기 위해 탈출한 죄수들이 자기 몸에 레드헤링을 비볐다고 한다. 지금은 " 진짜 사실로 부터 사람의 주의를 다른데로 돌려 혼란시키는 것"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된다. 특히 추리소설이나, 스릴러 소설에 대한 영미권 리뷰를 읽다보면 이 "레드 헤링"이란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이러한 장르소설에는 작가가 독자를 교묘하게 속이기 위해, 거짓강조나 묘사적인 속임수를 통해 진짜 범인인 것 처럼 보이게 만드는 인물이 꼭 등장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레드 헤링으로 사용된)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작품 중간에 갑자기 살해당해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몇년 전 이 책을 읽고 나고 나는 레드 헤링(훈제 청어) 냄새에 이끌려 여우 사냥에 실패한 한 마리의 사냥개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물론 '레드 헤링'이란 말은 좀 더 구체적이고 작은 범위에서 사용되는 표현이긴 하지만, 나는 이 책 전체에서 사용된 큰 트릭이 결국은 레드 헤링의 냄새를 풍긴다고 느꼈다. 우타노 쇼고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정보부분을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처리해서 독자의 집중력을 다른 방향으로 내몰아간다.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는 영미권에서 소위 '신빙성 없는 이야기꾼(unreliable narrator)'이라 부르는 소설 진행방식의 한 갈래인 "독자를 속이는 이야기꾼"의 전범(典範)일 듯 싶다. 우리에겐 '독자를 속이는 이야기꾼'보다는 '서술 트릭'이라는 용어로 더 익숙하다. 이 기법을 처음 맛보는 독자는 둔중한 충격으로 멍해지며, 다시 책의 첫장으로 되돌아가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다. (내가 그랬다.) [살육에 이르는 병]을 통해, 서술트릭의 아이콘이 된 작가 '아비코 다케마루'는 서술 트릭에 대해 "세계가 붕괴하는 듯한 착각을 가져다 주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붕괴"까지는 아니더라도, "낭패감에 가까운 허탈감"을 느낀 것만은 분명했다.

 

뭔가 어떤 목표물을 향해 한 방향으로 죽도록 내달렸는데, 거기에 전혀 다른 결과물이 놓여 있었을 때의 충격. 작가는 그 충격을 주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준비했던 것이다. 정신을 바짝 차려도, 웬만해선 눈치채기 힘들다. 이런 면이 공정하지 않다고 여겨서 '서술 트릭'에 대해 상당한 불쾌감을 갖고 있는 독자들도 꽤 있다. 실제로 '신빙성 없는 이야기꾼'의 대표작으로 알려져있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은 비평가들과 독자로부터 공정/비공정의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개인적으로는 작품이 소설적 재미를 갖고 있는한 '서술 트릭'에 대해 특별한 편견은 없다.

 

이 책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 하네]는 '서술 트릭'하나가 책 전체의 하중을 떠받치고 있는 얄팍한 소설이 아니다. 서술 트릭이라는 구조를 지우고, 내용만으로도 강력한 응집력을 가진 작품이이기에 세월이 지나도 독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다. 이 작품이 품고 있는 서술트릭이라는 틀 자체가 너무 큰 인상을 주고 있기에 그 거대한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다. 이야기는 주인공 나루세가 사기조직의 뒤를 캐는 현시점과 야쿠자 조직원이자 탐정이었던 과거 시점의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두 이야기 모두 일본사회의 병폐와 맞물려 사회성도 있고 흥미롭게 전개되어 매우 빠르게 읽힌다. 개인적으론 '야쿠자 탐정시절의 나루세'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느꼈는데, 단편에도 강점을 보이는 작가의 필력이 여기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여담인데, 작가의 다른 작품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에서 '탐정이라는 직업은 굳이 분류하자면 견실한 직장인이 아니라 야쿠자 카테고리에 들어가니까.(p.21)'라는 말과 이 소제목이 겹쳐져서 웃음이 났다. 다만 '야쿠자 탐정'부분은 책의 전체 흐름으로 보아서 조금 이질적이라 매우 독립적인 하나의 다른 작품 같은 느낌이다. 회상으로 처리했지만, 액자소설같이 느껴진다. 아마도 두가지 사건의 트릭을 한꺼번에 보여주고 싶은 작가의 욕심에서 비롯된 듯 싶다. 작가의 [시체를 사는 남자]에선 소설의 내부 개연성을 증진시키기 위해 본격적으로 액자소설 방식을 도입하기도 하고, [밀실 살인게임]은 여러 트릭의 진실을 열거법으로 나열하는 구조를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이야기 전개에 있어 작가 스스로도 서술트릭이라는 부자연스러운 구조로 부터 자유롭지 못해서 몇몇 부분에선 개연성보다는 무리수를 둔 부분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내가 그어놓은 선을 넘는 것이기에 구체적으로 밝힐수는 없지만, 무리수란 서술 트릭 자체가 갖는 필연적인 숙명일 듯 싶다. 하지만 그러한 무리수를 너그러히 보아준다면, 추하고 어두운 부분을 감추고 심미화하려 하지 않고, 그악스런 생존경쟁이 일상화된 사회의 암부를 있는 그대로 까발리는 방식으로 이 작품은 보답할 것이다. 사회의 이슈를 내보이고 조명하려는 작풍을 사회파 미스터리로 규정할때, 이 작품은 그것에 부합되어 일부분은 사회파 추리소설로 읽힐 수 있을 듯 싶지만, 배경자체를 정중하게 다룬것이 아니고, 사회 문제를 전면화했다기 보다는 곁가지 소재로 다룬 경향이 있어 정통 사회파 미스터리라 부르기엔 다소 어려울 듯 싶다. (첨예하게 파고들었다는 느낌보다는 전반적으로 약간은 가벼운 분위기가 책 전반에 지배적이라 그런 생각이 든다.)

 

 

 

꽃이 떨어진 벚나무는 세상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하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건,기껏해야 나뭇잎이 파란 5월까지야. 하지만 그 뒤에도 벚나무는 살아 있어. 지금도 짙은 녹색의 나뭇잎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지. 그리고 이제 얼마 후엔 단풍이 들지.빨간 것도 있고 노란 것도 있어. 단풍나무나 은행나무처럼 선명하진 않고, 약간 은은한 빛을 띠고 있지 그래서 눈에 띄지 않아, 다들 그냥 지나치는지도 모르지.하지만 꽃구경하던 때를 생각해봐.전국에 벚나무가 얼마나 많아. 그걸 바라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탄했어. 그러면서 꽃이 지면 다들 무시하지.색이 칙칙하다느니 어쩌니 하는 건 그래도 좀 나은 편이야. 대부분은 단풍이 드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어.좀 심한거 아닌가? (p.506~507)

 

 

이 인용구에 작가의 목소리가 오롯이 담겨있다. 제목이 주는 상징성도 이 글을 읽으면 이해가 된다.(읽지 않은 독자는 알기 힘들기에 스포일러는 아니다.) 벚꽃은 아주 짧은 기간 피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삶의 덧없음을 상징하거나, (일본의 경우) 전장에서 벚꽃처럼 스러지는 사무라이 정신을 표상하는데, 이 책에서 벚꽃은 또다른 의미를 획득하고 있다. "인생은 짧지 않은가.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은 것을 해버리지 않으면 반드시 나중에 후회한다.(p.42)"라는 어찌보면 진부하지만, 강한 울림이 있는 이 말의 우회적 표현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우타노 쇼고는 주인공들을 내몬 상황의 부조리성을 전복적 사유와 계산된 작풍을 이용하여 자신의 만들어 낼수 있는 최대치의 작품을 구현해낸 듯 보인다. 이 작품 이후, 우타노 쇼고의 뛰어난 작품들이 앞다투어 국내상륙을 했지만, 이 작품이 준 충격을 희석시킬 정도의 작품은 아직 없었기에 작가의 대표작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벚꽃 지는 계절에 인생이란 아무리 오래 산다해도 결국은 찰나와 같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책을 덮는다.'그대'가 그립지 않도록 가열차게 살아가는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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