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헤이스 두 번 죽다 모중석 스릴러 클럽 34
마커스 세이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기억하시는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제가 "도대체 언제 나올까?"를 외치며 학수 고대하던 마커스 세이키(Marcus Sakey)의 [대니얼 헤이스 두번 죽다 (The Two Deaths of Daniel Hayes)]가 드디어 나왔습니다.  기뿐 마음에 월스트리트 저널에 신문 기사처럼 만들어 넣어 보았습니다.)

 

 

 

 

 

[다니엘 헤이스 두번 죽다]를 읽다.

 

 

Q: 당신이 말하는 거짓말은 소설과 동의어인가?

A: 우리는 잘 씌어진 소설을 보고 '사실'같네라고 말하며, 현실에서의 기막힌 일을 보고 '소설'같네라고 말한다. 실제로 진실과 등가를 이루는 위대한 거짓말을 나는 훌륭한 소설 속에서 자주 보아왔고, 문학은 그 힘으로 우리를 사로 잡는다.

-장정일, 너에게 나를 보낸다. p.287

 

 

 

한 인터뷰에서 당신의 글쓰기 배경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마커스 세이키가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을 듣고 위에 부기해 놓은 글을 떠올렸다. 장정일은 작가가 되면 마음껏 거짓말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세이키 역시 '거짓말'이 그의 글쓰기에 자양분이 되었다.

세이키에게 있어서 특히 대학 졸업후 기업 홍보및 마케팅 분야에서 10년간 일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광고 분야" 만큼 범죄물 쓰기를 준비하는데 좋은 분야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개인적으로 표지 너무 마음에 듭니다. 상징적인 느낌을 굉장히 잘 살렸습니다. 이 사진 속에 쏟아지는 가을 햇살때문에 백양목처럼 하얗게 탈색된 거리에 있는 여성의 그림자에 주목해주시길. 이쪽에 서있도록 부탁한 의도적인 샷입니다.)

 

 

 

 

기억상실증과 결부된 스릴러로 대표되는 로버트 러들럼의 [본 아이덴티티(Bourne Identity-1988)](작품속에 러들럼의 책을 읽는 사람이 나온다)와 그렉 허위츠의 [크라임 라이터(The Crime Writer-2007)]를 작품 안에 새겨넣음으로서 그 작품들에 대해 작가가 고민했음을 대놓고 표현한다. 작품의 중반부에 등장하는 메멘토 포스터도 같은 시선으로 보아도 안전하다.

 

대니얼을 서랍을 잡아 뺐다. 립밤, 콘돔, 동전이 가득쌓인 접시, 그렉 허위츠의 소설 한 권이 들어 있었다.p.111

베넷은 혹시 숨겨놓은 금고가 있는지, 액자에 넣은 영화 [메멘토]의 포스터 뒤쪽도 확인했다. p.144

 

특히 그렉 허위츠 작품은 드루 대너(Drew Danner)라는 범죄소설가가 병원에서 기억을 잃은 채로 깨어나는데, 경찰들이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자로 본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초반부와 유사성을 보인다. 기억상실, 작가라는 주인공의 직업, 여자친구 살해 혐의등이 매우 흡사하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이 보이는 반응이란 아무래도 대동소이해서, 소재의 중첩때문에 초래되는 선배작가들의 자장을 벗어나는 것은 확실히 어려운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마커스 세이키는 기억상실증이 걸린 주인공을 내세워 전혀 다른 차원에서 독보적이고 매력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여자 얼굴의 앞면은 흰 바탕에 빨간 글씨로 제목을 되어 있습니다.)

 

 

 

 

 

(여자의 얼굴의 뒷면을 이용해서 작가 소개 글을 넣은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표지만으로도 소장욕구가 생긴다고 할까요.)

 

 

소위 소재의 진부함(클리쉐)에 대한 문학적 싸움의 흔적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미 많은 작가들이 다루었던 소재에 어떻게 자신만의 색깔을 입혀 차별성을 두느냐가 이 작품의 승패를 가늠하는 열쇠였을 듯 싶다. 어설프게 접근했다가는 심층을 향해 직진하기는 커녕,소재의 표면에서 그저 공회전만하기 쉽기에 더욱 그러하다. '널리 알려진 소재'와 '상투성을 극복하고 변별성을 두려는 작가의 의지'의 길항이 좋은 효과를 냈다. [대니얼 헤이스 두 번 죽다]는 익히 알려진 '기억 상실증'이란 소재를 작가가 치열성의 강도를 고스란히 보여주면서, 매끄럽게 얼개를 잘 짜내어 만들어낸 수작이라 할만하다. 게다가 이 작품은 흥미본위의 단순한 스릴러물이라고 보기에는, 작가가 작품 내에서 세상의 비밀을 반복적으로 누설하면서, 독자를 깊은 성찰의 공간으로 인도하려는 열의있는 목소리가 꽤 크게 들린다. 기억을 잃고, 다시 되찾아가는 주인공의 마음 속에서 부유하고, 소용돌이 치는 복잡한 불협화음을 통해, 단순히 마음 조리며, 스토리라인을 따라가는 것 외에도, 우리는 진실에 가닿으려는 사유의 모험 또한 함께 하게 된다.

 

 

 

확언하건대, 비록 이 작품은 '스릴러'로 분류되어 서점가의 책꽂이에 꽂힌다하더라도 그 이상의 다양성을 열어 젖히는 의미있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전형적인 장르론적 테두리로 가두기에는 덩치가 크고, 다층적 의미망으로 걸러 낼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즉각적인 재미만을 하염없이 쫓아가는 타입의 작품이 아니고 (하지만 아주 재밌다), 독자의 세계관을 변화시켜주거나 인식의 폭과 깊이를 확장시켜 줄만한 화두가 내장되어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말한다.

기억이라는 건 현재 우리가 서 있는 곳에 어떻게 오게 됐는지를 자신에게 설명하는 이야기일 뿐이야. 따라서 기억에는 절대적인 게 없고 모두 주관적이지." (Memories are just stories we tell ourselves to explain how we got where we are. There's no absolute to them. It's all subjective. p.363) 지난 한 주일 내내 내가 배운 게 있다면,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지 선택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는 거였어. 모든 순간에 선택을 한다는 거지. 과거는 이미 지나갔어. 기억은 꿈과 다름 없이 허망하다는 거야. 실질적이고 유일한 건 현재야. 바로 그걸 배웠단 말이야. (Over the last week, if there's anything I've learned, it's that you're only who you choose to be. Every moment. The past is gone. Memories are no more solid than dreams. The only real thing, the only true thing is the present. That's it. p.364)

 

 

 

기억이란 한번 만들면 변형 불가능한 조각상이 아니라, 만질 때마다 손의 힘에 의해 모양이 바뀌는 점토에 가깝다고 한다. 그것도 절대로 굳지 않는 점토라는데, 이는 기억의 가변성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게다가 기억이란 시간의 공격에 속절없이 유실되기도한다. 이런 믿지 못할 기억이, 결국은 사람을 구성하는 것일까? 마커스 세이키는 우리에게 기억이라는 건 현재 우리가 서 있는 곳에 어떻게 오게 됐는지를 자신에게 설명하는 이야기 일뿐이며,과거에 누구였는지나 자신이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의 문제보다는 지금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가 중요하다고 설파하고 있다.

이 작품은 작가의 이런 생각에 견인되는 작품이다. 따라서 책에 빠져 있는 동안, 우리는 잠시나마 마커스 세이키가 펼쳐보이는 "나는 누구인가?", "정체성이란 무엇이고 기억은 자아와 어떤 역할을 하는가?", "기억이란 무엇이며, 현재의 나와는 어떻게 연결되어있는가?" 하는 철학적 물음 속에 발을 들여놓도록 허락 받는다. 이를 테면, 이것이 마커스 세이키의 복음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 작품이 선사하는 매혹은 바로 이 자리에서 나온다.

 

 

 

 

 

 

 

나는 누구일까? 기억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인생을 선택하여 살것인가?

 

 

 

그녀의 삶이 그대로 드러난, 벽에 걸린 사진들도 생각났다. 소피의 과거 모습 중 어느 하나도 그녀에게 닥쳐올 미래를 보여주진 못했다.(p.388)

 

 

 

이건 네가 과거에 누구였는지, 혹은 네가 뭘 기억하고 있는지의 문제가 아니야. 네가 지금 누구인지에 관한 거지. 네가 선택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가 문제인 거라고. (p.391)

 

 

 

우리가 어떤 식으로 원하든 간에 살아갈 수 있다는 거지. 매 순간순간을 말이야. 우리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거야. (p.364)

 

 

 

쭉 이어온 과거가 없는 사랑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알츠하이머병과 다를 게 뭐가 있느냐 말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평생을 살아오며 사랑하고, 집을 사고, 아이들을 키워왔어요. 그랬는데 그들 중 한 명이 덜컥 병이 나고 다른 한쪽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생각해봐요. 그들이 여전히 결혼생활을 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여전히 서로를 사랑할까요? 그들이 함께한 시간이 중요한 의미가 있을까요? 아니면 모든 게 그저....잠시 스쳐 지나가는 일시적인 것일까요? (p.255)

 

 

 

 

 

 

 

 

 

 

 

어찌보면, 이 작품은 소설과 시나리오의 하이브리드가 아닐까,할 정도로, 마커스 세이키는 꿈과 과거 회상 장면에서 고집스럽게 시나리오 스타일로 글을 쓴 점이 주목할 만하다. 작가는 소설적 구조와 시나리오적 구조를 결합시키므로써, 연극적인 효과를 이식하는데 성공했다.

주인공이 각본가라는 점에서 이 부분은 쉽게 이해된다. 시카고를 중심으로 이전의 작품을 썼던 작가가, 본인에게 낯선 LA로 작품의 무대를 옮긴 것도, 헐리우드라는 소재와 이런 구조적인 장치를 염두해 두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LA를 중심으로 책을 쓰게 된 작가는 본의 아니게, 레이먼드 챈들러나 제임스 엘로이, 마이클 코넬리 같은 LA를 배경으로 글을 썼던 기라성 같은 선배 작가들과 경쟁하게 된 셈이다.

소설의 주요 무대를 헐리우드로, 주인공의 부인을 배우로 설정한 이유는 헐리우드하면, 배우, 배우하면 연기가 자연스레 연상되기 때문이다. 배우는 다른 사람 역할을 하기에 용의한 직업이다. 이 소설에서, 자신을 지우고 타인으로의 존재변이에 대한 갈망을 표현한 부분이 꽤 눈에 띤다. 이부분은 '당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작가의 목소리를 일깨운다.

 

 

 

대니얼은 미국의 허리를 가로지르며 오랫동안 차를 모는 동안 다양한 인물들을 머릿속에 그리는 게임을 했다. 도박에 중독된 소방관이 되기도 했고, 미식축구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동성애자 보험 영업사원이 되기도 했으며, 히트곡 [마카레나]에서 나오는 인세로 살아가는 작곡가되기도 했다. 흡사 옷 가게에서 이것저것 옷을 걸쳐보는 일과 흡사했다. 재단이나 박음질이 잘못되어 몸에 맞지 않으면 한쪽으로 던져버리고 다음 것을 선택하면 됐다. 하지만 이제는 선택의 범위에 한계가 있는 각박한 현실로 돌아와야만 했다. 예전의 대니얼은 분명히 어떤 특징이 있는 인물이었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좋은 쪽 나쁜 쪽으로 끊임없이 선택을 했기에 만들어진 결과였다. 그리고 이제는 원하든, 아니든 어느 한 인물의 역할을 군소리 없이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인격을 선택하는 자유가 없어지고, 강요된 결정에 따라 할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 삶이 주어진 셈이었다. (p.188)

 

 

 

다른 뭔가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자신들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 되려고 할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 기회를 받아들일까? 습관적으로 유지되는 결혼생활은 또 얼마나 될 것이며, 속만 끓인 채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p.236)

 

 

 

아주 죽을 맛이었다. 과거에는 왜 완벽할 수 없을까? 완벽할 수 없었는데 완벽해지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단 말인가? (p.260)

 

 

 

하지만,어찌 보면 핵심적인 사건부분을 전적으로 그렇게 표현한 부분에선 고개를 갸웃하는 독자도 있을 수 있겠다.

이 부분은 전통적인 세밀한 묘사와 문장의 맛을 음미하는 것을 선호하는 독자들에게는 독으로 작용할 수 있어, 양날의 검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모든 독자를 만족시키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며, 각본스타일의 나오는 부분은 책 전체로 보아서는 일부분이다.

오히려 처음에 다니엘 헤이스가 물밖으로 나왔을 때는 주인공이 느낀 공포와 불안감을 흉내내서 짧게 쳐낸듯한 문장으로 시작했지만, 다른 부분에선 시적인 산문을 쏟아내서 독자로 하여금 담긴 내용만큼이나 언어가 갖고 있는 풍미를 맛보고자 천천히 읽고 싶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요컨대, 이 작품엔 작가의 여러 스타일이 서로 경쟁하듯 빼곡히 채워져 있다는 말이다.

 

 

 

 

 

 

 

 

스티븐 킹은 "문학적 우수성에 이끌려 소설책을 구입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비행기에 가지고 탈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다. 처음부터 마음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아서 끝까지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그런 소설말이다."라고 말한바 있다. 이 독후감이 전체적으로

작가가 내보이는 철학적 성찰에 주목하고 있어 문학적 우수성만을 지닌 작품처럼 비춰질 수 있겠지만, 재미면에서도 시간의 흐름을 잊을 정도로 빼어나다는 것을 밝히고 싶다.공기가 다르고 냄새가 다른 곳으로 던져진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반전이 몇차례 작품 속에 등장한다. 세상이 갑자기 뒤틀리는 듯한 기분..이 아득한 순간과 기분을 느끼기 위해 독자들은 이런 책을 구입하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은 스티븐 킹이 말하는 비행기에 가지고 탈만한 책의 전형을 보여준다. 판에 박힌 듯한 소재로 범람하는 스릴러들 가운데에서 단연 독특한 자리를 차지 할만한 작품이다. 작가는 소재의 무게에 짓눌리거나 휘둘리지 않고, 확실히 소재를 지배했다는 느낌이다. 캐릭터들의 내면의 궤적을 따라가다보면, 쉽게 감정이입 될 정도로 살아있다. 잘 짜여진 플롯 속에서 살아있는 캐릭터들은 작품의 수준을 높여준다. 육류의 두툼한 부분에 더 잘 익으라고 넣어주는 칼집같은 역할을 한다고 할까. 전체를 관류하고 있는 작품의 명도는 다소 어둡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을 정도로 지나치게 어둡지 않아서 좋았다. 절벽처럼 위태로운 다니엘 헤이스의 상황을 따라가며, 그에게 간섭하고 동일시하고 침잠하며, 나는 과연 현재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를 되묻게 되었다. 혹시 책읽기에 대한 열망이나 욕구가 예전만큼 강렬하지 않다면, 이 책을 주저없이 권해주고 싶다. 사그라들던 책에 대한 열정이, 필경 잉걸불처럼 활짝 피어오르며 타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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