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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누구에게 보여주거나 또다른 특정 목적이 있는 독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권수에 집착하게 되는 때가 종종 있다.  원래 이런 버릇은 없었는데, 2007년 부터인가 연간 읽는 책의 권수를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생긴 것 같다.  좋은 점이라면 물론 지금까지의 독서현황을 특히 이 서재에 남기는 행위와 함께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씩은 읽은 책의 권수가 해당 권수에 도달한 날짜에 마킹되어 꽉 찬 달력을 보면서 웃다가 반대의 경우로 텅 빈 달력을 보면 조급해지기도 하거나 내용이나 질보다는 권수에 집착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등의 단점도 많다.  

 

누구나 일상은 바쁘고 정신없이 지나간다.  돌이켜 보면 학생 때에는 그나마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었던 것 같지만, 이는 심한 추정과 기억의 파편을 종합한 "그땐 그랬지"수준의 회고일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학생 때에는 오후 5-6시가 지나도 공부를 하러 가는 일상에 대해 생각할 때면, 미래에 직장을 잡고 일하는, 그러다가 종이 치면 퇴근하여 머리 스위치를 꺼버리는 단순반복을 그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즉 갖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지나가버린 시간 또는 다가올 미래의 긍정성만 바라보는 인간적인 결함이 있기 때문에 어쩌면 나의 사는 모습은 늘 비슷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결국 남는 것은 지금의 나, 매사 지나가버리는 지금이라는 순간순간의 나 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점점 시간에 쫒기는 하루를 보내는 것을 보면서, 그렇게 여유가 나지 않는 시간을 보면서 자칫하면 나의 독서가 또다시 암흑기에 돌입할 수도 있다는 약간의 위기의식을 느낀다.  그렇게 버릇처럼 책을 사들이면서 읽지는 않는 상태가 되는 것은 모든 독서광이나 장서가들이 조심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어제 그런 의미에서 마음을 잡고 몇 권의 소설과 역사강의를 읽어 내려갔다.  마중물을 부은 것이리라. 

 

지난 번에 찾아보니 "R"시리즈는 일종의 reboot으로써 새로 나온 시리즈 같다.  그러니까 이번에 다 읽은 15권은 오리지널인 셈이다. 

 

한국의 판타지 소설이나 무협은 소위 대본소 소설과 한국적인 정착시도 사이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일례로 많은 사람들이 이영도의 '드레곤 라쟈'에는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전민희 작가 외에는 다소 폄하하는 것을 보는데, 내 개인적으로는 이들 사이에서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세계관이나 구성은 초기 D&D에서 많이 빌려왔고, (이는 나중에 D&D에서 copyright를 주장하고 도용방지공문을 보내게 했다는 이야기를 어디에선가 읽은 것 같다) 이름을 비롯한 서양적인 용어는 기실 서구적이기보다는 한국적이기까지 할 만큼 얕은 언어학적 지식과 상상의 결합물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차원적인 부분이나 신계의 복잡한 구성 등은 동양적 사고에 기반에 창작으로 보이는데, 흠이라면 확고하게 다듬어지지 않아 적어도 이 시기의 '가즈 나이트'는 PC통신 수준을 크게 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재미있게 읽었고, 그 희소성이나 가치를 볼 때 노골적인 대본소 소설을 지향한, 이름도 생각나지 않은 작품들이 아니라면 앞으로도 계속 볼 생각이다. 

 

'정도전'이 큰 화두다.  드라마의 시작을 전후로 하여 이런 저런 밑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많은 작가나 학자들이 섭외가 되었던 것 같고 여기에 착안하여 기획된 많은 책이 드라마와 거의 동시에 나오게 된 것 같다.  개인적으로 즐겨 읽는 김탁환의 책은 아직 구하지 못했고, 일전에 주문한 이덕일의 강의록을 어제 읽었다. 

 

분명히 기억하지만 내가 어릴 적 정도전은 고려를 무너뜨린 '나쁜 꾀'를 낸 사람, 그리고 이성계에 붙어 '좋은' 군왕감이던 왕자 이방원을 몰아내기 위해 측실의 아들을 왕으로 추도한 '모리배'로 그려졌었다.  내가 지금도 갖고 있는 역사개론서 또는 그 시절의 책에서 그리는 정도전의 최후 또한 간신이 모략을 성사시킨 후 기분 좋게 술이나 마시고 놀다가 갑자기 기습당하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반만 맞는 것 같다. 

 

저자가 말하는 정도전은 사대부의 통치에 의한 이상국가를 꿈꾼, 아마도 우리 역사에서 흔하지 않는 소위 큰 판을 볼 줄 아는 책사였다.  대체로 우두머리에 의해 주도되는 우리 역사에서 책사의 위치는 딱 그 정도까지였다고 하는데, 일견 틀린 말 같지는 않다.  특히 조선시대 이후 현세까지도 우리에는 과연 '왕'을 움직여서 경세지략을 현실화하는 '책사', 그러니까 '킹메이커'말고, 자신의 사상이 확고한 '왕사'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는데, 이렇게 정도전이 부각되는 시대상은 결국 '정도전' 같은 책사를 원하는 세태의 반영이라는 것인데, 저자의 말에 따르면 '영웅을 원하는'시대는 '불행한'시대이니 적어도 작금의 대한민국의 '불행'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아직 정도전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여 그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겠다.  게다가 이제까지 충신으로 배운 최영장군이나 정몽주에 대한 이야기 또한 정도전을 재평가하면서 잘해야 시대에 뒤쳐진 자들, 심하면 수구세력으로 다시 이야기되는 것 또한 심히 혼란스럽다.  아무래도 요즘에 나오는 책들 이상 과거의 책들, 그리고 평설이나 통사 형태의 책에서 다룬 정도전 또한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  어쨌든 요즘의 화두와도 같은 '정도전'에 대한 한 갈래의 이야기로 보고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이덕일의 사관은 잘못 보면 국수주의적일 수도 있고 혹자가 폄하하듯이 만선사관의 계승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고토회복이나 한국 민족주의관점에서의 역사회복과 단순한 만선사관과는 큰 차이가 있는데, 이런 부분은 이덕일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애써서 외면하는 것 같다), 이덕일은 적어도 기득권에 붙어 학자로서의 양심을 포기한 파충류의 뇌를 가진 그들에 비해 순수하고 그들보다 더욱 정확한 사료적 관찰과 해석에 입각한 것이기에 그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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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4-03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즐겁게 읽으시기를 바라요.
즐겁지 않으면 책읽기가 아니니까요.
오늘도 즐겁게 읽고 누리며
생각을 글로 조곤조곤 풀어내시리라 믿습니다.

transient-guest 2014-04-03 08:59   좋아요 0 | URL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것이 참 어렵네요. 자주 쓰다가 지우는 일이 많습니다.ㅎ

몬스터 2014-04-04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는 이제 조금 독서란 이래서 재밌는 거구나 하고 있지만 여전히 습관이 안되서 오래 집중하기가 힘들어요. 멍청하게도 , 중고등대학교때 교과서만 주구장창 외워댔구요 그리고 정말 멍청하게도 소설을 읽는게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기도 했었어요. 차면 넘친다고 , 늦었지만 많이 읽어보려구요. 어떻게 읽는지 , 쓰는지 잘 모르지만 , 언젠간 저만의 방향이 생기겠죠.

transient-guest 2014-04-04 01:59   좋아요 0 | URL
천천히 조금씩 하지만 꾸준히 이어가시면 어느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책 한 권을 거뜬히 읽게 됩니다. 그저 관심이 가는 책을 사 모으고 읽어나가세요. 나이가 들어서 접하게 되는 소설세계에는 그만큼 또 다른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good luck!!

몬스터 2014-04-04 0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아이패드로 전자책을 주로 읽을 수 밖에 없어서 (?) 선택폭이 거의 단거리 달리기 수준이예요. :-) 가끔 한국에서 책 소포 받으면 며칠 꼬박 밤새워가며 읽어요. 활자에서 이렇게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게 요즘 좀 신기해요.

transient-guest 2014-04-04 07:42   좋아요 0 | URL
예전에 미국에 처음 왔을때만 해도 한국책을 구하기가 참 힘들었던 때가 있는데, 그때가 생각나네요. 그렇게 계속 읽어가시면서 좋은 얘기 올려주세요.ㅎ
 

이러다가는 큰일나겠다는 위기의식을 느끼는 요즘이다.  일이 바쁜 탓도 분명히 있지만,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도 독서에 쓰는 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든 탓에 이번 달에는 7년만에 처음으로 한 달에 열 권 이상을 읽지 않는 한 달이 될 것 같다.  물론 억지로 마구 밀어붙이면 열 권 정도는 간신히나마 채울 수도 있겠지만,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누구에게 보여주거나 내 스스로 지적 허영을 유지하기 위한 것도 아닌데 무리하게 권수를 늘리는 독서는 분명 쓰잘데기 없는 짓일게다.

 

매일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닌 내 정신만큼이나 이번 달의 나는 새로운 모습니다.  책읽기도 이와 같아서 최근에 다 읽은 두 권 외에도 이것저것 시간이 날때 건드렸다 내려놓기를 반복하고 있다.  마음만은 그렇지 않은데, 역시 한 권을 진득하게 붙잡고 읽기에 나의 시간은 이제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없다.

 

그야말로 정신없이 시작해서 정신없이 끝나는 무위에 가까운 고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전문학에 들어가는 작품치고는 상당히 쉬운 내용과 기술 덕분에 나는 이 책을 꽤 오래전에 접한 기억이 있다.  아마도 "대장 부리바"라는 제목이었던 것 같다. 

 

카자크, 또는 코삭으로 번역되는 이 특이한 집단은 러시아를 조국으로 받들면서 정규군대의 편제와는 다른 기병대를 이루고 크고 작은 전쟁에서 활약했다.  현대의 삶으로 보면 도저히 적응할 수 없을 듯한 nomadic culture의 이들은 잠잠하게 지내다가도 갑자기 들고 일어나서 주변 국가들을 약탈하는 등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고 러시아가 침공당한 나폴레옹 전쟁 때에는 퇴각하는 프랑스 군대를 끝까지 괴롭히기도 했다. 

 

도시의 학교에서 돌아온 두 아들을 단련시키기 위해 일으킨 소규모 국지전에서 결국 두 아들을 다 잃고, 함께 무장소요를 일으킨 동료들도 거의 다 잃고 종국에는 자기 자신의 생명까지도 잃게 되는 불바의 삶은 그야말로 시작에서 끝까지 목적을 갖지 못한 도시빈민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추상적인 그의 러시아와 정교에 대한 충성을 보면, 이 역시 현대의 우경화된 도시빈민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노동자라고 해서, 소외계층이라고 해서 모두 진보를 지향할 것이라는 환상은 나에게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시기의 우크라이나, 러시아, 그리고 지식인이 생각한 러시아를 떠올려 볼 수 있었다.  서방세계의 제스추어를 끝으로 거의 기정사실로 끝나가는 러시아의 크리미아 병합을 보면서 이 문제가 단순히 강대국에 의한 약소국의 침탈로만 생각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푸틴의 행각은 히틀러의 그것과 꼭 빼어닮았는데, 그제나 지금이나 전쟁을 치룰 준비가가 되어있지 않은 서방세계의 대응은 결국 당시 주데텐을 내어준 서방세계와 다를 바가 없는데, 역사에서 무엇인가를 배워 유추한다면, 푸틴의 이번 한 수는 큰 블러핑에 다름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다.  블러핑을 간파했다면 당연히 콜이 들어가야 하는 것인데, 콜을 부르기에는 서방세계의 패가 신통치 않은 것이 문제라면 문제이겠지만...

 

'장정일의 공부'를 빼고서 꼭 열 번 째 출간된 장정일의 독서일기가 되는 이 책은 그러나 초기 7권의 날카로움이 많이 무뎌진 느낌이다.  두꺼워진 책 만큼이나 커진 font는 세월을 반영하는 것이겠지만, 무엇인가 조금 더 정치적이고 외교적이라고 느껴지는 장정일의 평은 조금 그 맛이 다르다. 

 

그래도 이 정도되는 독서의 대가가 이렇게 주기적으로 책을 읽은 것을 소화해서 보여주니 고마울 다름.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번이나 보이는 같은 문장이나 같은 논조, 또는 숫제 글자까지 똑같은 문단이 여러 번 나오는 것을 보면서 초기의 독서일기가 그야말로 그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의 독서일기는 팔기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나이를 더 먹었음에도 여전히 그의 필체는 날카롭지만, 이렇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씩 재탕된 문장은 화가 난다.  최소한 편집이나 탈고과정에서는 잡아냈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특히 그냥 나눠주는 책이 아닌 돈을 받고 파는 책이라면 말이다.  좋으면서도 아쉽다는 생각...

 

읽을 책은 읽는 속도에 반비례로 계속 늘어나기만 한다.  한국책도 미국책도 흥미가 가는 책은 형편이 닿는다면 무조건 사들이고 있기 때문에 건강한 정신과 신체를 유지하여 은퇴한다면 할 일이 없이 지겹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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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4-03-28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렸을 때 <불리바>를 읽었을 땐 폴란드가 16세기에 그렇게 강대국이었다는 사실이 눈에 안 들어왔어요.나중에 어른이 되어 읽으니 그때서야 눈에 들어오더군요.마초 냄새 물씬 나는 분위기도 좋았어요.일종의 마초 애국주의...

transient-guest 2014-03-28 21:54   좋아요 0 | URL
저도 폴란드는 내내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끼인 약소국으로만 알았는데 말이죠. 지금도 사실 근현대사 정도에 들어온 역사를 빼면 폴란드에 대해 아는게 별로 없는 것 같네요. 엄청나가 마초적이고 거의 무협지 수준이죠, 스토리를 보면.ㅎㅎ
 

UFC로 많이 알려진 종합격투기 또는 MMA라고 불리우는 현대의 fighting sports는 1993년이 그 원년이 된다.  그 전부터 일본에서는 슈토나 판크라스 같이 기존의 프로레슬링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활로를 찾던 젊은 선수들이 시작한 단체를 통해, 그리고 의외로 현대 격투무술이 발달한 브라질의 발레투도 (anything goes)의 루타 리브레 파이터 (free style fighter정도로 번역이 될 듯 하다)들의 활동이 있었왔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프로레슬러들이 주축이 된 탓인지 기존의 프로레슬링에서 승부를 미리 정하고 합을 맞추는 부분만이 배제된, 그러나 concept상 너무도 프로레슬링적인 형태의 룰을 도입했던 점의 한계나 브라질의 경우처럼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지역적인 한계를 볼 때 역시 현대 종합격투기의 시작은 1993년 첫 UFC대회라고 하겠다. 

 

단 이때의 UFC와 지금의 UFC와는 오너쉽부터 룰이나 규모까지 큰 차이가 있는데, 초반 약 40회까지의 UFC대회는 이종격투기에서 종합격투기로 발전하는 단계였고, 그 이후에는 종합격투기가 완전히 정립된 후의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종과 종합의 차이는 역시 스포츠관의 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종의 경우 다른 격투기가 같은 룰에서 싸우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종합에서는 base는 다를 지라도 어느 정도 다방면에서 수련을 거친 선수들이 같은 룰에서 싸우는 것을 전제로 한다.  예를 들어 유도 vs 복싱의 구도에서 이종의 경우 유도가는 무조건 잡아 꽂을 시도를 하고 복서는 주먹으로 때릴 생각만 하는 것이 종합으로 와서는 각 파이터가 펀치와 킥, 유술과 레슬링을 모두 사용하되 각자의 특기에 따른 한 방을 노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태권도만이 세계최고라고 세뇌되어왔던 나에게 1993년의 UFC시합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이때 시작된 붐을 타고 한 동안 케이블에서 판크라스 대회나 다른 NHB (말 그대로 무규칙 격투기를 표방하는, 하지만 사실은 복싱 글러브를 끼우고 마구 치고 받는) 대회를 방영해 주었고, 이는 우물안 개구리 같던 나의 무술인식에도 큰 변화를 주었다.  

 

그런데, 이 페이퍼를 쓴 것을 어줍잖은 무술사를 강의하기 위한 것이 아니니까, 여기 까지만 이야기 하자.  사실 UFC 같은 것에 흥미를 갖는 사람들은 전체 인구수에서 보면 아직도 적은 편이라고 본다.  그러니 기능성 운동으로써 종합격투기는 매우 훌륭하다는 말로 일단락 짓자.  왜냐하면 최근에 다 읽은 한 선수의 책과 함께 그간 보았던 격투가들의 책을 소개할 생각에 이 페이퍼를 쓴 것이니까.

 

Randy Couture.  종합격투기 커리어를 시작하기에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30대 중반 이후 데뷔한 이래 40대 중반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보인 레슬링 base의 UFC의 전 헤비급/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이종에서 종합으로 넘어오는 시기 UFC의 흥행에 큰 몫을 담당하기도 했다.

 

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책을 읽는다는 생각은 아주 조금, 하지만 그저 격투가들이 이야기하는 그 세계의 뒷얘기를 듣고 싶어 읽었던 책이다. 

 

격투가로 성공하기까지, 그리고 성공한 후에도 여자문제가 끊이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임신시킨 여친과 결혼하면서부터 엇나갔던 삶이 운동선수로써 그리고 코치로써 어느 정도 잡혔다 싶을때마다 여자문제가 걸림돌이 되었는데, UFC챔프 시절에도 드나들던 카지노의 VIP담당 매니져 때문에 그때까지 함께 한 두 번째인가 세 번째의 wife같은 여자와도 헤어지고 자기가 꾸린 team - 역시 여자문제로 두 번째인가 세 번째로 꾸렸던 - 과도 결별한 것, 무엇보다 이 마지막 여자와도 결국 헤어진 것을 보면 역시 이런 부분에 있어 단순한 방종을 넘어 깊은 심리적인 이슈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그의 인생전반의 스토리는 꽤 흥미롭고 특히 초창기 이종에서 종합으로 넘어오는 시기의 이야기들이 재미있다.

 

 역시 비슷한 시기 UFC를 이끌었던 한 축인 인물의 자서전격인 책이다.  앞서의 Randy Couture과는 달리 매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나름 터프한 남가주의 도시인 Santa Ana에서 십대 갱에도 가입했던 화려한 전력 덕분에 Huntington Beach Bad Boy라는 닉으로도 알려져 있는 Tito Ortiz는 한 동안 porn star인 제이미 제이미슨의 남친으로 더욱 유명세를 떨쳤던 적이 있다.  지금은 헤어지고 다른 여자와 사귀는 것으로 안다.

 

팬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리는 선수이고, 약한 상대에게는 bully같이 굴지만 강한 상대와의 시합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는 시합도 많이 있었지만 쇼맨쉽이 좋고 특히 캐릭터를 만들어 포장하는 실력이 좋아서 그런지 역시 4-50회에서 100회 초반까지의 UFC대회의 한 축을 담당했었다.  레슬링 실력이 일품이었던 종합격투가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허리부상 등을 이유로 UFC를 탈퇴하고 Bellator FC라는 단체로 옮겼지만 시합은 뛰지 않은 것으로 안다.

 

이 역시 UFC를 현재의 위치에 올려놓은 당대 최고의 웰터급 챔피언이다.  NCAA (전미대학교 스포츠 연맹)의 top league 레슬링 선수 출신인 Matt Hughes역시 매우 불우하고 말썽으로 가득찬 젊은 시절을 보냈다. 

 

아이오와인가 아이다호인가 하는 중서부의 깡촌의 한 도시에서 옥수수 농사를 짓는 집에 태어난 그는 가난과 부모의 잦은 싸움, 그리고 폭력에 시달린 어린 한때를 보냈는데, 그 역시 선수생활을 시작하기 전에는 이런 저런 안 좋은 일이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선수생활을 시작하면서 보다 좋아진 경제사정과 안정적인 삶을 꾸리게 된 그는 젊은 시절의 때를 벗고 지금은 UFC의 중역으로써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시골사람 특유의 gun loving성향, 그리고 시도때도 없이 나오는 교회 - 늦깍이 신자가 되었지만 자신의 폭력성향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된 듯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냥을 다니면서 먹지도 않을 동물을 죽이고 기념촬영을 하면서 모두 신의 선물이라고 하는 건 매우 넌센스다.  물론 책은 역시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이 또한 중반기 UFC의 중흥을 이끌었던, 지금은 은퇴해서 이런 저런 기념행사를 다니면서 협회의 뒷살림을 돕는 Check Liddell의 자서전이다.  이 사람은 앞서의 셋에 비해 비교적 평탄한 시기를 보냈고, 어릴 때부터 단련한 권법 가라테와 고등학교/대학교 시절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경력을 바탕으로 종합격투기에 뛰어들어 화끈한 펀치로 많은 명승부를 낸 legend급의 전 챔프다. 

 

생긴거나 머리 스타일을 보면 무지하게 막 되어먹은 사람일 것 같지만 의외로 매우 젠틀하고 프로적인 면모를 강하게 보여주는 사람인데, 다만 여성편력은 보통이 넘는 것 같다.  술도 무지하게 좋아하기 때문에 프로선수치고는 배가 꽤 나온 편이다.  무술에서 종합격투기로 넘어가는 시절 자신의 구상이나 관점이 잘 나와있는 책이다. 

 

 

 

P4P 최고의 파이터들 중 하나로 꼽히는 GSP가 복귀 후 가장 최근에 낸 책이다.  이미 그 전에 한번 자서전을 출간한 적이 있는데, 이 책은 그 후 8개월 정도 결장을 하면서 자신을 돌아본 시간을 가지면서 나온 것 같다. 

 

이 사람의 젊은 시절은 매우 평범했는데, 오히려 hyper active한 부분과 다른 사람과는 다른 특이한 관점 때문에 어릴 때부터 왕따 비슷한 것을 많이 당한 것으로 나온다.  그러다가 접한 극진 가라테를 열성으로 수련하면서 왕따를 극복했고, UFC를 접한 후 무작정 MMA선수가 되기 위해 뉴욕으로 가서 입문 후 다시 캐나다에서 좋은 스승과 멘토를 만나 오늘의 자리에 이르게 된 과정을 다소 철학적인 고찰과 함께 그리고 있다.  말많던 죠니 헨드릭스 전을 끝으로 잠정 은퇴에 들어간 지금은 푹 쉬면서 하고 싶은 일을 즐기는 것 같다. 

 

그 밖에도 이런 계통의 책을 더 읽은게 있는데, 다음 기회에 소개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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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4-03-20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까운 일본만 해도 젊은 운동선수나 연예인들 자서전이 꽤 수요가 있는 편인데 우리나라는 전혀...아무도 안 읽는 고위층의 자서전이나 회고록이 많죠.

transient-guest 2014-03-21 00:24   좋아요 0 | URL
고위층의 자서전은 정치출사표나 변명 혹은 그 이하수준이죠, 적어도 한국에서는. 미국의 경우 고위층의 책들도 잘 쓴게 많아요. 자신이 직접 쓰는 경우도 많고 문장도 훌륭합니다. 수준이 높아요. 운동선수 자서전 또한 여기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에요. 정치적인 포석이 아닌...그래서 재미있는 얘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토머스 만이라는 독일의 작가가 있다.  '마의 산'으로 가장 유명하지만, 내가 접한 그의 첫 작품은 '부덴브로크크 가의 사람들'이다.  기억하기로는 3대에 걸쳐 쇠락해가는 한 가문의 이야기를 그린 것인데, 처음에는 세밀하고 자세한 묘사의 문체가 지겹다가 어느 순간부터 작품 속에 깊게 빠져들 수 있었던 것 같다.  토머스 만을 처음 시작하기에 그리 나쁘지 않은 책이다.

 

한 가문의 부와 명예가 이어지는 불운과 그릇된 판단의 조합의 결과, 절정기에는 그들만 못하다고 여겨지던 다른 경쟁가문으로 고스란히 옮겨지는 것을 보면서 문득 부라는 것은 결국 유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자기계발서에서 줄창 떠드는 말은 '부'라는 것은 '무한'하기 때문에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노력을 하면, 기타 등등을 하면 가질 수 있다는 말을 한다.  마음가짐을 긍정적으로 갖고 진취적으로 살기 위한 어떤 동기부여는 될 수 있겠지만, 정말로 세사의 '부'라는 것이 무한적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수도권의 아파트 단지 개발을 예로 들자.  한 도시에서 고급 프리미엄이 붙는 지역은 어느 정도 공식화가 되어 있는데, 신규단지로써, 좋은 아파트가 들어서는 곳이다.  5-10년을 두고 이들이 들어서는 재개발지역으로 한 도시의 부와 사람이 이동을 한다면 너무 심한 일반화가 될까?  이들이 빠져나간 예전의 hot spot은 이제 외견상 낮아진 시세 덕분에 보다 더 적은 돈으로 입주가 가능해짐에 따라 상대적으로 덜 부유한 이들, 또는 새로운 지역으로 옮길 수 없는 사람들로 일종의 물갈이를 하게 된다.  이 법칙에 따라 그리고 이를 이용하여 늘상 재개발 열풍이니 하면서 짓고 부수는 것을 되풀이 하는 것은 마치 어린 아이의 블록쌓기를 보는 것 같다.  이를 확대하면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또는 한 대륙에서 다른 대륙으로 사람과 물산이 옮겨가는 모습을 그릴 수 있는데, 워낙 규모가 크고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기에 그 양상이 쉽게 드러나지는 않을 뿐, 도시에서의 '부'의 이동과 별로 달라보이지 않는다.

 

2012년 이 책을 구입하고 약 일 년 간 천천히 읽다가 만 자리는 대략 3분의 2 정도.  2013년에는 거의 펼쳐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렇게 이 책은 처음의 마음가짐과는 달리 책꽂이에 얌전히 모셔져 있었다. 

 

엊그제인가, 뭔가 프로젝트 삼아 읽어볼 책을 찾다가 다시 빼들은 이 책은 그렇게 하나의 도전이 되어 버렸다.  조이스의 '율리시즈'와 함께 많은 이들을 설레게 하지만, 엄청난 페이지 수와 어려운 내용 때문에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의 정신을 잡아 먹는 '마의 산'은 토머스 만의 역작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평판에 충실하게 첫 문장부터가 읽는 이를 확 사로잡는 마력이 있다.  조이스 만큼 난해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마의 산'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지금도 궁금해 하고 있는데, 책을 다 읽는다 해도 과연 그 수수께끼가 풀릴지는 의문이다. 

 

단순히 글을 잘 쓰는 것 이상, 나는 자기의 양심과 의기가 살아있는 작가를 좋아한다.  그것도 순간의 충동에 흔들리는 문사의 감상 따위가 아닌, 깊은 진심에서 우러난 꼿꼿함이 보이는, 악과 부조리에 대해 매서운 글발로 저항하는 작가 말이다.  토머스 만은 그런 작가이기 때문에 더욱 좋아하는데, '발자크 평전'의 쯔바이크의 비극적인 최후만큼이나 토머스 만의 아들인 클라우스 만의 최후는 비극적이지만, 모든 것을 던져 악에 저항하는 사람의 자세로써 손색이 없다. 

 

장정일은 그의 독서일기에서 책은 가급적 한 호흡으로 읽을 것을 이야기 하면서 그렇게 열정적으로 읽히지 않는 책은 열정적으로 쓰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문학을 포함해서 픽션을 읽으면서 잠언과도 같은 작가의 표현이나 말에 밑줄치는 행위를 비판했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짜집기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책을 만들기 위해 얼개를 잡고 한 주제씩 채워나간 책은 장정일의 말처럼 한 호흡에 쓰여진 책이 아니기에 한번에 읽히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문학사에 길이 남은 고전의 경우라면 어떻게 쓰였는지에 따라서가 아닌 읽는 이의 수준에 따라, 상황에 따라, 그 이상 수 많은 이유에 따라서 다르게 읽혀진다.  '마의 산'은 창작을 넘어 시대와 사람을 관통하는 수 많은 명문장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자제하려고 해도, 읽는 중간 중간에 자와 펜을 찾게 된다.  그리고 밑줄 친 문장을 한번씩 그렇게 음미해 보는 것이다. 

 

사람마다 그 경험과 교육수준, 직업 등 다양한 요소에 따라 다양한 책읽는 방법이나 목적을 보인다 할 때,  그의 도서목록과 나의 도서목록에 별로 겹치는 것이 없는 것처럼, 어쩌면 장정일 - 유명한 작가라는 계급장을 내려놓고나면 - 이 책을 읽고 평하는 방식이 어떤 참고를 넘어 꼭 나의 모델이 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내가 너무도 좋아하던 선배가 하숙하던 방에 당시 대학원생이던 그의 책을 펴보다가 배운 뒤, 한번도 놓아본 적이 없는, 이제는 온전히 나의 것이 된 밑줄 긋는 독서습관에 대한 변명아닌 변명을 장정일의 글을 접한 후부터는 꼭 한번 정도는 이렇게 쓰고 싶었다.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고 그 문장을 곰씹을 때마다 나는 그 선배를 생각한다.  그가 내게 해주던 애정어린 충고도, 그를 지키지 못했던 지난 시간도, 치기어린 마음에 그의 복수를 꿈꾸었지만, 아직은 요원하기만 한 그 앙값음도 모두 그렇게 가슴 속 깊이 담고서 말이다.  君子報讐十年不晩 (군자보수십년불만)이라는 말로 자신을 달래보기는 하지만, 가끔 이렇게 나는 스스로에게 부끄러움과 함께 아직 내가 원하던 위치에 오르지 못했음을 탓하곤 한다.

 

'마의 산'과 함께 유명한 '파우스트 박사'와 '요셉과 그의 형제들' 또한 읽어야 하는 작품이다.  독일어를 영어로 번역한 본은 언어적인 부분 때문이 아니라도 쉽지는 않을 것 같아서 영문과 한국어 두 가지를 모두 구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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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4-02-28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마스 만은 아직 접해보지 못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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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주말 보내시구요~ ^^

transient-guest 2014-03-01 05:13   좋아요 0 | URL
저도 우연하게 읽었는데 의외로 '마의 산' 같은건 인용되는 책이 많기에 토마스 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뭐랄까 색다른 재미와 어려움(?)이 있습니다.ㅎㅎ 서재에 일단은 답글을 드렸습니다만, 결정에 따르겠습니다.ㅎ

2014-03-03 16: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04 0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04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05 0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4-03-05 10:22   좋아요 0 | URL
알려주신 이메일 주소로 발송했습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

transient-guest 2014-03-06 02:14   좋아요 0 | URL
너무 감사합니다. 잘 사용할게요.

아이리시스 2014-03-04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처럼 두가지언어가 안되는 사람은 일단 누군가에게 토마스만이 원서로 읽한다는 자체가 신기한것 같아요. 토마스 만은 우리말로 되어있어도 안 읽히는데.. 이책은 1차적으로 언어적 어려움이 아니지만, 어떤 책이든 영문판을 tran님이 쭉쭉 읽으실거란 사실 자체가 신기해요. +_+ 우왓... 저는 다 못읽어봤어요ㅠ.ㅠ 단편집만 읽었어요, 여기있는책들도 조만간.. 서른다섯이 되기전에...( '')

transient-guest 2014-03-05 01:51   좋아요 0 | URL
지금 '마의 산'을 조금씩 다시 읽고 있어요. 확실히 처음보다는 더 눈에 잘 들어오는 것 같구요, 또 중간에 막히면 그 의미를 이해할 때까지 곰씹어 보게 됩니다. 말이 길고 장황하다거나 등장인물의 다음 행동을 설명하려고 가끔 부연설명이 긴데, 여러 번 읽게 되네요. 천천히 읽다보면 한 권씩 어쩌면 평소에 많이 접하지 않는, 덜 익숙한 책도 보시게 될거에요.ㅎ 저도 영문은 한글같이 쭉쭉은 아니구요..그냥 익숙한거죠..

노이에자이트 2014-03-09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마스 만의 장편 중에 <펠릭스 크롤의 고백>이 있는데 꽤 재밌어요.한 번 읽어보세요.저도 <브텐부로그 일가>가 <마의 산>보다 재밌었어요.아무래도 가문의 흥망사 이야기는 읽는 재미를 주는 듯해요.

transient-guest 2014-03-10 12:10   좋아요 0 | URL
토마스 만의 작품은 하나씩 읽어갈 예정이니까 추천해주신 책도 일단 보관함에 넣으려고 찾아봤는데 안 나오네요. 어쩌면 헌책방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어요.ㅎ '마의 산'은 확실히 더 어렵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쇠찌르레기 2022-10-01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짜집기 X
짜깁기 O
 

부자로 태어나지 않은 이상 누구나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한다.  정확하게는 돈을 벌기 위해서인데, 돈을 번다는 것은 결국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함이니 삶 = 일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아주 드문 경우, 취미 = 일 = 삶이 되는 경우를 볼 수 있지만, 이는 말 그대로 매우 적은 숫자의 사람들에게 국한된 것이고, 이들 중에도 실은 취미 = 일 = 삶이라는 형태가 가공되거나 과다하게 포장되어 팔리는 걸 보면 실제로는 이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는 삶이라는 어렵다. 

 

물론 취미 = 일 = 삶까지는 아니라도 최소한 일 = 삶이 차지하는 빈도를 줄이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이 역시 자주 볼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오로지 인간에게만 통용되는 사치나 욕심이라는 것, 물욕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범위에서 예상할 수 있는 욕심, 예컨데 교육열이나 문화욕구 같은 것을 포함한 모든 것들을 내려놓으면 어느 한도내에서는 생활을 영위하는데 드는데 필요한 재화의 양이 낮아지고, 이에 따라 조금 더 많은 시간을 일이 아닌 다른 것을 하면서 보낼 수는 있다.  다소 보헤미안적이기는 하지만, 인간극장 같은 프로에서 어쩌다 소개되는 사람들의 사연을 보면 결국 도시라는 구조에 붙어 사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도시의 삶이 요구하는 막대한 비용을 벌어들여야 하는 필요를 벗어난 삶을 찾아낸 이들이 있기는 하다.  여기서 포기할 것은 안정적인 직장, 도시의 분주하지만 화려할 수도 있는 cliche, 문명의 이기, 그리고 아이나 교육인 경우도 포함된다.  

 

기실 인터넷과 케이블 또는 위성방송이 일상화되고 노력여하에 따라서는 산골이나 어촌의 한적한 마을에 칩거하는 삶이라 해도 세상 돌아가는 것 정도는 알 수 있고, 벽촌의 삶에서 문제가 되기도 하는 전기공급 같은 것도 태양열 발전기 설치를 통해 많은 해결을 볼 수 있는데, 사실 전기만 제대로 들어와도 냉난방부터 물사용까지 거의 모든 문명의 이기를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원한다면 칩거하지만, 최소한 세상만사를 virtual하게나며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일 또한 자기 재주껏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갖춘 상태라면 디자인이나 프로그래밍 계통의 일은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법무, 세무나 번역 같은 일도 가능은 하다.  시급직이고 계약에 임시직이니만큼 4대보험도 없고 돈도 짜겠지만, 높은 개인생산성, 그러니까 봉급을 위해 지출되어야 하는 일종의 생산단가가 낮으니만큼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서울에서 거주하면서 월 500만원을 받아도 사실 거주비용과 교통비, 생활비, 그리고 도시에 살기 때문에 발생하는 각종 비용을 생각하면 많으면서도 부족할 수도 있지만, 수도권을 벗어난 삶이라면 그 반을 벌어도 훨씬 풍족할 수 있을게다.

 

일에 쓰는 시간이나 부담이 적다면 그 남는 시간은 취미생활이나 배움에 쓰일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운동을 못하는 어린아이였던 나는, 정작 나이가 들어버린 지금에는 운동과 몸을 쓰는 것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지난 5년 간의 꾸준한 단련으로 근력이 조금 세졌으니까, 다른 무술을 배우거나, 남보다 조금은 더 재주가 있다고 생각되는 외국어를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생활이라면 책을 원없이 읽을 수 있겠지 싶다.  집 한 구석, 마당 한 구석에 책을 읽기 좋은 공간을 마련할 것이다.  거기에 벚꽃나무라도 몇 그루 심는다면 봄에는 꽤나 운치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의 삶을 벗어날 수가 없다.  말은 쉽지만 삶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꾼다는 것은 큰 모험이고, 그 모험이 장기적으로 성공할 지에 대한 자신도 없거니와, 기본적인 준비를 위한 비용 또한 마련된 것이 없다.  사실 넓디 넓은 미국에서 물산이 풍부하고 사람이 많이 몰려있는 동부나 서부를 벗어나더라도 조금만 머리를 굴리면 내가 하는 일은 큰 무리없이 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그러면 무엇이 당면한 문제일까?  우선 이주하고자 하는 주의 면허를 따야한다.  내가 속한 주는 워낙 많은 사람이 모여들기 때문에 시험도 어렵고 면허도 다른 지역과 통해있지 않기에 나 역시 다른 주의 혜택을 받을 수가 없다.  그런데, 시험을 본 것도, 공부를 한 것도 모두 까마득한 옛 일이라서 이에 대한 어려움 있다.  그 어떤 것보다도 큰 걸림돌이다.  공부도 다 때가 있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괜한 것이 아니라고 새삼 느낀다.  

 

시험이 되면 다른 것은 나 아닌 다른 주변의 사람들을 설득하는 문제가 된다.  우선 시험이 된다면 그때의 업무량과 준비상태를 보고 판단할 일이다.

 

카잔차키스가 영국을 돌아본 시기는 1940년을 전후한, 독일이 일으킨 영토침공이 대륙을 넘어 확전되던 때였다.  거기에 1차대전 이후 점점 그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이 눈으로 보이고 몸으로 느껴지던 시절의 영국이었다.  거기에 사회의 양극화, 그러니까 귀족과 신사로 대변되는 상류계층과 그 하부구조를 받치고 있던 노동자 계급의 대립과 차이가 뚜렷하던 그 시절 그가 영국에서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눈으로 내가 들여다본 것은 제국에 대한 그리스인로서의 부러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양면성 - 키프로스의 독립을 둘러싼 - 그리스에서는 볼 수 없는 활력과 힘, 자기최면이나 요망에 불과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리스가 같지 못한 영국 사회의 다이나미즘.  그 시절 터키의 지배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문화적으로 또 역사적으로 오래된, 하지만, 고대 제국과 영광의 잔재만 남아있던 그리스를 보면서 느꼈을 비애.  모레아와 지중해, 중국과 일본, 스페인과 러시아까지 돌아본 그의 여행편력이 부럽기 그지 없다.  그러면서도 단순한 즐거움에 그치지 않고 이를 하나의 작품으로 녹여낸 그의 필력 또한 그 부러움의 대상이다.  기행문임에도 불구하고 한 통의 사진도 들어있지 않았다는 점이 그 힘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그가 묻는다.  영국은 제국의 경영자로써 그 품위와 공정성을 영국 자신의 이익이 걸린 일에도 적용할 수 있는가?  지금 우리가 21세기의 제국을 꿈꾸는 모든 나라들에게 묻고 싶은 말일지도 모른다. 

 

최근에 나온 그의 빌-산-버린 책 3이 2주 정도면 내 손에 들어온다.  그간 장정일이 쓴 독서일기 일곱 권, 거기에 빌-산-버 두 권에 공부까지 모두 열 권의 독서일기를 읽었다.  비교적 요즘의 책에서는 약간 덜하지만, 정말이지 그가 읽은 책과 내가 읽은 책이 만나는 지점이 없다는 사실은 황당을 넘어 허탈하다.  주체할 수도 없이 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라지만, 그와 나의 독서궤적이 이렇게 엇나갈 수 있을까?  

 

이런 경향은 초기의 독서일기에서는 더욱 심하다.  그러니까 90년대의 책만 해도 내가 읽기는 커녕 들어보지도 못했고, 어쩌다 아주 우연히 운 좋은 날 헌책방에서 마침 떠올리지 못한다면 만날 수도 없을 책들이 가득하다.  이런 점에서 장정일의 독서일기는 훗날 자기계발의 광풍과 함께 몰아닥친 독서경영서적과는 확연히 차별된다.  일례로, 내가 가진 독서경영서적이나 작가등단을 위한 독서후기서적을 몇 권 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학서적, 계발서적, 에세이류가 등장하고 내 눈에는 꽤나 비슷한 단상을 제공하면서 비슷한 시기에 어쩌면 이다지도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비슷한 책을 썼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데 비해서 장정일의 독서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한 사람의 침잠을 보여준다.  특히 다른 그런 류의 책들과는 달리 장정일의 독서일기에는 좋은 책과 나쁜 책 모두 후기를 적어놓았기에 더욱 빼어남과 솔직함을 느낀다.  

 

일찌기 공무원이 되어 8-5시까지 일을 하고는 발을 씻고 저녁을 먹은 후 자기 전까지 책을 읽는 삶을 생각했다는 장정일은 작가로서의 유명세 만큼이나 정말 많은 책을 읽은 사람이다.  요즘의 신진작가들이 입에 붙은 말이 책을 별로 읽지 않았어도 글을 쓰는데 지장이 없다는 것인데, 그들의 신선함과 대중성을 좋아하면서도 그만큼 느껴지는 가벼움과 얕음은 그 자체로 그들의 깊이를 보여준다.  요컨데,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좋은 글을 쓰려면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나도, 어쩔 수 없는 고시대의 유물같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이다.

 

여행과 독서가 지속적으로 가능한 삶.  마음이 편안하고 몸을 단정히 할 수 있는 삶에 드는 비용은 얼마나 될까?  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일과 공부를 병행해야할 이유가 된다.  다음의 삶을 준비하는 자세로써 말이다. 

 

고작 책 두 권에 참 많은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 문득 조금은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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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2-24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이책도 책이면서
삶책도 책이기에,
종이책을 많이 넘기지 않았어도
온갖 삶을 부대끼면서 한 해 두 해 이은 나날은
기나긴 '여행'이 되면서 '책읽기'였구나 하고 느끼기도 해요.

transient-guest 님 또한
종이책뿐 아니라 삶책을 늘 아름답게 누리면서
하루하루 씩씩하게 걸어가시리라 생각해요~

transient-guest 2014-02-25 04:57   좋아요 0 | URL
아마도 지금의 생활과는 다른 삶을 꿈꾸는 것이 여행과 책에 대한 바램으로 나타나는 것인가 봅니다. 자기 자리보다는 다른 곳을 보는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싶네요.

감은빛 2014-02-25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상하게 장정일에게 거부감이 들어 읽어본 적이 없네요.

여기 알라딘에는 비슷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계실 듯해요.
어디 시골에 박혀서 평생 책만 읽고 싶다는 생각을 갖거나,
이 글의 제목처럼 여행과 독서를 간절히 원하는 분들이요.

현재의 삶의 틀을 바꾼다는 것은 큰 모험이죠.
언젠가는 꿈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transient-guest 2014-02-26 02:04   좋아요 0 | URL
장정일의 거침없는 평과 말투가 때로는 너무 offending한 면이 있어요. 그게 부러울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더라구요. 제대로 된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는 못했어요.

알라딘 마을이라도 만들어서 분양하면 어떨까요?ㅎ 평생 책 읽고 책 이야기 하면서 사는 마을...-_-:

무엇인가를 포기하는 것을 습득하고 실천하는 순간 꿈이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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