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박 10일. 도착하던 날만 해도 매우 길게 느껴진 천국에서의 시간이었다. 첫날 진탕 마시고, 다음 날, 호놀룰루에서 가장 유명한 우동집에 가서 해장을 한 후, 바로 폴리네시안 마을로 달렸다. 이번 여행에서 느낀 점인데, 오아후는 상대적으로 작은 섬이라서 어지간한 곳들은 가까우면 10-15마일, 좀 멀다 싶으면 30-35마일이면 갈 수 있고, 고속도로와 일반도로가 겹치면서 비록 속도를 많이 낼 수는 없지만 대략 한 시간에서 반 정도면 어지간한 목적지엔 다 갈 수 있다. 게다가 호놀룰루라는 대도시(?)만 벗어나면 금방 교외가 나오고 비치가 있고, 산이 있어 완전한 시골느낌이 강한 Big Island나 Maui보다는 적응하기에 더 낫다는 생각을 한다. 여기에 일본계를 비롯한 아시안계의 문화가 토속화했기 때문에 음식도 한중일, 하와이 토속음식, 폴리네시안 스타일, 게다가 요즘은 어딜 가도 빠지지 않는 태국, 월남, 인도까지 거의 모든 것을 맛볼 수 있는데, 관광객이 많은 호놀룰루는 진검승부가 가려지는 각종 음식점들의 각축장이라서 그런지 어지간한 곳은 옐프에서 별 3-3.5는 나오고 좀 유명하다 싶으면 4-5가 나오는 곳이 많다. 여러 모로 2015년의 짧은 방문을 통해 얻었던 부정확한 인식을 많이 덜어낸 기회였다. 이 천국에서 돌아와서 반복적인 일상으로 돌아오니 다소 우울하기도 하고, 작년에 쌓인 피로를 어느 정도 날려버린 덕분에 약간의 자극이 되기도 하는 등 조울증세가 오는 것 같다. 유비쿼터스 업무환경구축, 사람들의 인식변화, 그리고 적당한 돈이 모이면, 아니 이들 중 두 가지만 충족이 되면 오아후로 날아가서 일을 하면서 작은 아파트 몇 개를 air bnb로 돌려서 먹고살 궁리를 하고 있다. 이건 하와이를 다녀오면 생기는 고질병인데, 역시 대도시를 낀 오아후를 다녀오니 좀더 구체적이고 강하게 발병하는 것이다.
워낙 오래전에 읽은 책인데, 세간의 평가보다는 좀 낮게 다가온 책이다. 뭔가 가슴을 때리는 문장이나 묘사, 혹인 장소도 없었고, 적어도 나에겐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덕분에 읽는 것이 조금 힘들었다고도 생각하는데, 내용이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잘 다가와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문득 다시 이 책을 잡게 되는 날, 좀더 다른 얼굴로 나에게 다가오는 날을 기다릴 뿐이다. 책이란 그런 것이란 생각을 하니까. 이번의 만남이 즐겁지 못했어도, 다음의 우연한 만남이 즐거울 수 있고, 무엇보다도 이번의 내 느낌이 올바르다거나 맞다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주 못난 책이 아니라면, 혹은 저자가 순수한 영리목적으로 인문학을 팔아먹는 책이 아니라면, 아니 설사 그런 책이라도 어느 순간, 특별히 나에게 필요한 말을 건네주는 일은 책을 조금 읽어본 사람이라면 종종 겪는 일이 아닌가. until next time.
혹자들이 최고의 환타지로 꼽기도 하는 엠버 연대기의 로저 젤라즈니의 중편소설. 내용이 중구난방이라고 느낄 만큼 난해한 면이 없지는 않았는데, 지난 20년의 SF영화들 중 이 소설의 모티브의 일부를 차용한 것이 꽤 되는 듯, 간간히 익숙한 장면들, 기술의 묘사가 보였다. 황금시대의 펄프픽션을 연상시키는 작고 앙증맞은 책사이즈, 기획의도를 생각하면 관심을 아니 가질 수 없는 시리즈다.
좋은 작가를 여럿 소개 받은 책이다. 늦게 바람이 난 마냥, 남들은 어릴 때 다 읽었을 추리소설에 푹 빠져 읽기 시작한 것이 대략 2012년의 창업을 전후한 시간인데, 2013년에 income이 조금 늘어나면서, 마침 알라딘의 US 체계정비에 맞춰 한국에서 직접 주문하면서 꽤 큰 할인혜택에 힘입어 이런 저런 전집을 구하고 (결과적으로 배송비용으로 고스란히 절약한 비용을 써버렸지만) 읽어나간지 어언 6년차.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만나지 못한 작가들이 엄청 많다는 것을 알고 절망하기 보다는 즐거워 하는 중년에서 장년으로 넘어가는 것이 이 책을 읽는 내내의 흥이었다. 당장 돈이 더 생기면 더 많은 책을 갖고 싶다는 생각으로 금년 첫 주문을 마쳤다. 난 아무래도 미쳤다...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 5시간 동안 읽었고 오아후에서 마저 두 권을 다 읽었던 것 같다. 길게 남길 내용은 없으나 뭘 써도 재미있는 것이 나오는 미미여사의 탁월한 재능은 경이와 부러움의 대상이다. 특히 비슷하게 다작인 히가시노 게이고를 읽고나면 언제나 느끼는 약간의 허탈함 같은 것이 없다는 점이 특이하다. 사회파의 향기가 강한 추리소설도, 단편도, 시대극도 미미여사의 책은 모두 가져다 읽고 보관할 가치가 높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고마츠 사쿄의 이 작품은 시간의 영속성, 과거-현재-미래가 모두 한 시공간에 현존하는 것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요즘의 SF작가들이 도무지 피해서 가지 못하는 듯한 time paradox를 별로 고려하지 않은 듯한데 이 덕분에 더욱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모두 그런건 아니지만 요즘 SF를 보면 현실의 과학에 가깝게 접근하여 매우 있을법한 이야기에 주안점을 두는 것 같고 여기서 파생되는 재미도 좋지만, 가끔은 이런 점이 오히려 상상력을 제한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좀더 crazy한, 말도 안되는 이야기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위대한 시대'는 2030년, 엄청난 과학기술의 진보로 한층 더 나아진, 아니 변한 세상을 그려주는데, 일단 장미빛 테크노피아의 모습이긴 하다만, 2030년이라고 해야 고작 12년 정도 남은 2018년에서 보면 이 책에서 구현된 모습의 반 만큼도 실현된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세상이 오면 정말 좋겠네.
두 권의 책이 더 있는데 오늘 더 이상 정리하는 건 어렵다고 생각해서 다음으로 미뤘다. 이번 해의 독서총량도 작년 같을지는 모르겠으나 좀더 좋은 책, 그리고 상대적으로 덜 읽은 책들을 많이 만날 생각이다. 그게 맘대로 될런지는 물론 미지수...
오아후로 이주하는 그날까지 열심히 달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