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도착한 책들 중 한 권을 뽑아 들었는데, 그게 바로 서민 박사님의 새책, '서민 독서'였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서박사님의 부모님께서는 훗날 당신들의 작명센스가 매우 탁월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미리 내다보였을까? 잘은 모르지만 서박사님이 겪은 독서의 욕부불만이 그를 의대로 보내고 기생충연구자로 만들고 어떤 계기로 독서광이 되어 널리 인정 받는 글쟁이가 될 것을 미리 내다본 작명센스가 아닐 수 없다. 흔하디 흔한 것이 'XXX의 YYY' 같은 책제목이지만, '서민의...'만큼 눈에 확 띄는 건 없다는 것이 경험에 기초한 내 의견이다. 나름 장서보유가 5000권이 넘고 counting을 시작한 2007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220-250권 정도의 책을 읽는 언저리 지식인의 경험이니 아주 조금은 믿어주었으면 좋겠다.
독서의 혜택에 대해서, 독서가 왜 필요한지, 약간의 MSG와 가벼운 방법론을 곁들여 끈질기에 설명하는 이 책을 읽다보면 '나도 얼른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것 같다. 문제는 이미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접할 확률이 초심자들의 그것보다 훨씬 높다는 것인데, 이는 독서와 책이라는 것이 처한 21세기의 현실이니 딱히 이 비율을 역전시킬 방법은 그닥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긴 안목으로 보면 지칠 때도 있고 왠지 구매와 독서가 시들한 때를 주기적으로 겪는데 이 또한 현실의 삶으로 인한 것으로써 '서민 독서'를 읽는 것이 나의 경우엔 독서열정을 다시 불러일으키는데 꽤 도움이 됐다. 당장 11월까지 249권을 읽었으나 12월엔 '서민 독서'를 읽기 전까지 단 한 권만 읽는 슬럼프를 탈출하기 시작한 계기가 되지 않았는가! 책을 읽으면서 내가 잘 모르던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고 그가 요즘 많이 다루는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몇 명의 작가와 몇 권의 새로운 책을 소개 받기도 했으니 책값 15000원, 여기서 구매한 비용으로 약 $15.40, 비싼 물가로 인해 대충 한끼식사비용이 되는 값은 하고도 남은 것 같다. 먹으면 살로 가는 X의 재료인 것이 한끼식사인데 책은 계속 갖고 있을 수 있고 필요에 따라 다른 책으로 가는 매개체가 되어주기 때문에 '서민 독서'를 비롯해서 책을 사들이는 건 어쩌면 이문이 가장 확실한 장사가 아닌가 싶다. '마의 도살장'이 도대체 무슨 책인지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길래 구글놈에게 물어보니 제5도살장을 말하던 그 때 서박사님의 사유는 마침 '마의 산'속 깊숙히 들어갔을 것이라는 해석을 보았다. 로쟈님의 해석이니 아마 무리는 없을 것 같다. '마의 산'에 세 번 오르다가 세 번 다 정상을 보지 못한 내 흑역사가 새삼 다시 떠오른다. 2018년에는 꼭 한번은 완독을 해내리라. 읽으면서 안철수에 대한 - 물론 독서에 연관된 이야기지만 - 평이 아직도 꽤 후한 건 조금 의문이다. 그리고 지금 난 삼겹살이 매우 땡긴다.
중국작가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는 가운데, 꼭 그런 건 아니겠지만, 예전보다 중국작가들의 책, 고전이 아닌, 현대소설이나 에세이를 접할 기회가 훨씬 많아졌다. 대략 10년전만 해도 중국의 책이라면 고전소설이나 경전, 아니면 무협지를 읽는 것이 고작이었다는 한 2012년부터 위화나 모옌, 장샤오위안, 수퉁, 다이 시지에 같은 작가들을 책을 읽게 되었다. 소설의 경우도 조금은 그렇지만, 읽으면서 느끼는 차이는 다른 활자문명의, 그리고 문화와 관습의 차이에서 오는 서술의 차이가 가장 컸다고 보는데, 요즘의 국문이나 영문에서는 쓰이는 않는 표현과 서술이 종종 눈에 들어온다. 아주 훈훈하고 담백한 옛시절의 문자향기를 맡는 느낌인데 장샤오위안선생의 책을 읽을 때 받은 그런 느낌을 이번에도 받을 수 있었다.
여행과 책을 묶은 이야기지만, 좋은 곳에 가서 그럴 듯한 분위기에서 읽는 책이나, 여행을 통한 독서사색류의 책은 아니고 책을 읽으면서 어떤 여행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얻고 상상력을 키운 후 그 특정지역에 가서 경험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로 보면 좋겠다. 즉, 내가 읽은 5-6권의 여행+독서테마의 책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 대만사람이고, 꽤 성공한 듯한 저자의 여행에서 다소 공감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마음속에 잘 박혀준 책이다.
짧게 이미 썼지만 내가 '대담집'을 별로 좋아하는 않는다는 것, 그리고 왜 그런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 준 책이다. 다뤄진 주제도 좋고 대담을 나눈 사람들도 좋지만, 그냥 이렇게 나온 책은 그리 잘 다가와주지 않고 종종 정리가 잘 안된 느낌을 준다. 현재 한국 SF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의 갑론을박을 떠나서 좋은 작가나 책을 소개 받는 건 플러스가 되지만, 솔직히 나에겐 그냥 그랬더 책.
책을 읽는 속도가 느려진 덕분에 크게 밀리지 않고 정리를 했다. '서민 독서'는 어제 저녁부터 조금씩 읽다가 자기 전 한 시간 동안 더 읽고, 오늘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모두 읽었는데, 예전에 본 바에 따르면 이렇게 열정적으로 읽히는 책은 열정적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니, 서박사님은 이 책을 매우 열정적으로 쓰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아~~ 삼겹살...어디서 먹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