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에 시작한 사무실 정리가 이어지고 있다.  일단 읽은 책들을 모두 부모님 댁의 내 방에 가져다 두는 건데, 금요일 오전에 튼튼하고 질긴 에코백 5-6개에 나눠 담아 옮기는 것이다. 박스보다 한번에 더 많이 옮길 수 있고, 은근히 편리한 점이 있어 두 번을 하고 나니 조금씩 끝이 보이고 있다. 물론 그간 사들여 마구 쌓아놓은 것들이 그 빈자리를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한번 정도 더 정리하고 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3월 중에는 마무리하고 4월부터는 새로운 기분으로 다시 사무실 생활을 즐길 것이다.  새로 배치가 끝나면 모니터는 2-3개 정도를 설치하고 컴퓨터도 업무용, 백업용, 고전 PC로 나눠 설치하고 HDMI로 몇 개의 콘솔을 연결해두고 일을 하는 간간히 책과 함께 영화나 게임을 즐길 것이다.  마침 곧 봄이 온다.  비가 많이 내린 후의 봄이라서 오후의 따뜻한 햇살이 특히 반가운 봄이 될 것이다.  좀더 정리되고 계획된 구매정책(?)에 맞춰 2017년의 지금까지는 한 달에 딱 두 번만 거의 $200에 맞춰 책을 주문했다.  영어책도 따로 구매하니 정확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알라딘의 구매는 연 $5000을 넘지 않을 것이다.  세금정산을 위해 따져보니 2016년은 거의 만불 정도가 알라딘을 통해 책으로 바뀌었으니 딱 반으로 줄이자는 것이다.  연간 매출이 두 배가 된다면 이건 한 주에 한번 정도로 바꿀 수도 있겠지만, 그러려면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언젠가는 회사의 명의로 작은 2 bed 2 bath 정도의 아파트나 콘도를 근처에 매입해서 약간의 리모델링을 하고 책과 소프트를 보관할 계획이다.  아주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점점 solid한 장기적인 계획이 되어가고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처럼 건물을 세울 수는 없기에 잠정적으로 내가 내린 절충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밤새 비가 내린 아침은 꽤 쌀살하다.  하지만, 사정없이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키씬이 연주하는 쇼팽을 듣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빗소리가 워낙 커서 한밤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볼륨을 10 정도로 올려야 했다.  보통 밤 10시 이후엔 주변이 조용해서 볼륨을 5 이하로 떨어뜨려야 하는데 말이다.  키씬은 문학수 기자가 처음 소개했는데, 정작 제대로 들은 건 서경식 교수의 덕분이다.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비록 CD로 들었고 작은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소리였지만, 청명하기 그지 없는 건반과 빗소리가 만나니 더 바랄 것이 없더라.


전민희 작가는 아마도 이영도 작가와 함께 초기 한국 판타지 소설의 중흥을 이끈 사람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후 양산된 대본소용 판타지 - 사실상 한국 판타지의 단물을 빼먹고 업계를 거의 날려버렸다고 평가되는 - 와는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완성도와 감성을 보여준다고 감히 평가한다.  


처음에 갑자기 이야기가 끊어지는 것처럼 보여서 단편이나 소품집인줄 알았는데, 아키에이지 연대기의 시리즈로 이어진다고 해서 다음 번 구매스케줄에 넣게 되었다.  이우혁 작가만해도 원래 전문글쟁이가 아닌 탓에, 그리고 퇴마록이 유행하던 시절이 하필 한국을 사로잡았던 '환'의 시절이기도 해서 이런 저런 전개의 무리가 보이는데, 전민희 작가의 경우 르귄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큰 무리 없이 이야기를 풀어간다.  '룬의 아이들'은 윈터러까지 봤고 데모닉은 시리즈에서 절판된 것들이 많아서 언제 구할지 모르겠지만, '전나무와 매'에서는 초기 작품에서 보여준 약간의 유치함(?) 같은 것도 보이지 않고, 여튼 이래 저래 책 한 권을 참 즐겁게 읽었다.  생각해보니 '세월의 돌'은 시리즈를 다 구해놨으니 운동 중에 읽으려고 꺼낸 최인호 작가의 역사소설 몇 개와 이런 저런 잡다한 추리소설을 읽다가 지겨워지면 바꿔 들고 갈 듯. 



이 아저씨는 참 특이하다.  일정한 직업이 없이 이런 저런 글을 쓰고,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TV토론에 나오는 걸로 먹고 산다.  물론 배우자가 의사라서 특별히 부양의 책임은 없는 걸로 보이는데, 덕분인지 버는 돈은 족족 커피나 음반/음향기기를 구매하는 걸로 쓰인다. 기실 다치바나 다카시의 고양이 빌딩은 나 같은 범인이 접근하기 어려운데, 감정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김갑수선생의 July Hall은 조금 더 실현 가깝게 느낀다.  2 bed 2 bath 정도면 보통 800-1000 sq ft 정도의 사이즈가 나오는데, July Hall이 딱 30평대 초반이니 내가 갖고 있는 책과 소프트를 가져다 놓는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난 커피나 음반/음향기기에 대한 욕심은 크게 없기 때문에 무리한 방음설비도 필요하지 않고 그저 실적에 따라 책, 영화, 음반, 게임 정도를 조금씩 사들일 것이니까, 스피커 한쌍에 억대를 주고 사들이는 호사(?)는 누릴 생각도 능력도 없어서, 더욱 실현가능성이 높다.  


말은 작업 인문학이지만, 사실 이 책에서 하는 말은 결국 좀 읽고 사유하고 살자는 소리다.  읽지 않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일주일에 한 권은 읽을 수 밖에 없는 문자중독인데 한 달에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대다수가 되어버린 재미없는 세상에서, 체육활동만 생각하지 말고, 체육활동을 좀더 잘하게 하는 수단이라고까지 말하면서 책도 읽고, 커피도 마시고, 음악도 듣고, 아니 뭔가 좋아하는 걸 좀 깊이 들어가보자는 이야기로 꼬시는 노력은 참 눈물겹다.  물론 논증과정에서 너무 '하는' 이야기가 빈번한 점이나 커피/음반 이야기는 이전의 책에서 많이 봤기 때문에 중복의 지겨움이나 이젠 60대를 향해 달려가는 선생의 '하는'소리가 영 즐겁지만은 않은 건 마이너스.  내가 상당히 보수적인 사람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아름다운 걸 너무 쉽게 이야기함에서 오는 거부감은 어쩔 수가 없다.  사랑을 나누는 건 아름답지만, 포르노가 역겨운 것과 같은 의미.  그래도 나만의 July Hall을 만들고 싶게 하는 그의 이야기는 안 그런 척하지만 사실 무척 따뜻한 사람임이 분명한 그의 책을 계속 사 읽게 한다.


예수가 말하던 복음과 지금의 종교가 말하는 복음은 2000년의 세월 이 주는 세월의 거리 이상, 아마도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종교에 반하는 것도 아니고 지적유희로써, 또는 자신이 믿고 있는 대상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오게 되는데, 건강한 신앙을 위해, 그리고 살아서 움직이는 신앙으로서의 종교, 그리고 발전을 위해 장려되어야 한다.  교조주의에 사로잡히다 못해 이젠 하느님도 아니고 예수도 아닌, 목사님의 말씀이 절대적인 힘을 갖는 대형교회의 폐단이 비단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막힌 종교는 살아있는 생각을 막고 어떤 질문도 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책이 가톨릭 고위사제에 의해 쓰인 건 참 좋은 현상이고, 그만큼 가톨릭이 점점 더 오픈되고 보편된, 진리를 추구하는 성숙함을 추구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책은 몇 달을 끌면서 조금씩 읽었기에 기억나는 내용은 단편적이고 느낌도 이런 저런 조각으로 밖에 떠올려지지 않는다.  인간으로서의 예수, 시대적 인간으로서의 예수, 일체의 신이나 권위를 떨쳐내고 2000년 전 중근동을 살아간 한 구도자의 이야기에서 예수를 풀어냈다.  언젠가 이 책이 좀더 깊이 다가올 날을 기다려 본다.  


카푸치노 한 잔에 카페에 앉은 하루가 여유롭다.  늦잠도 자고, 슬렁슬렁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오전 11시를 10분 정도 넘긴 시간이다.  더 이상 내 business라는 이유만으로 월요일의 부담이 전혀 없었던 일요일을 보내지 못한 지도 몇 년이 됐다.  첫 1-2년 정도는 그런 여유를 즐길 수 있었지만, 늘어난 수입과 함께 그런 시간은 이제 없어졌고, 여느 직장인처럼 나도 일요일 오후가 되면 상당히 blue blue해진다.  그래도 업무가 조금씩 정리되어 일종의 리듬을 탈 수 있는 수준까지 왔으니 감사할 따름.  오늘 expire하는 20%쿠폰, 그리고 membership과 함께 오는 두 개의 20%쿠폰까지 세 권의 책을 marked 가격에서 10% + 다시 20%의 가격으로 살 수 있다.  곧 노트북을 끄고 (배터리가 거의 다 나갔다) 책을 둘러볼 시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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