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8을 이사날짜로 잡았다. 주중에 빌딩에서 요구하는 이런 저런 보험을 들고, 조건에 맞춰 moving company를 섭외하고, 그 와중에 차에 문제가 생겼는데 고치는 값이 너무 많이 나와서 그냥 dealer에 가져가서 trade-in을 하면서 새로이 차를 구해야 하는 상황까지, 거기에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여럿 닥치고, 그 와중에 꾸준한 상담에도 불구하고 slow한 business라는 늘 함께 하는 걱정거리까지 온갖 것들이 한꺼번에 나를 짓누르고 있다. 지나가고 나면 다 묻어버릴 고생이고 어떤 건 살아가는 이상 어쩔 수 없이 겪는 일이지만, 그렇게 두들겨 맞고 나니 금요일인 오늘이 되자 아무것도 하기 싫은 지경에 이르렀다. 그 와중에도 운동은 꾸준했지만, 스트레스와 긴장으로 거의 하루걸러 하루마다 술을 마셨으니 뱃살이 늘어나지 않았으면 다행일 것이다.  아무튼, 결론은 금요일의 땡땡이가 됐는데 햇살이 좋은 봄날, 그간의 비 때문인지 찬 바람탓에 결국 방콕하면서 메일이나 전화로 오는 상담을 받으면서 책을 읽는 것이 고작이다.


아케치 고고로. 긴다이치 코스케, 가미즈 쿄스케와 함께 일본의 3대 명탐정의 한 명인 그가 등장하는 란포의 소설을 16권으로 완간하겠다고 하는데, 현재까지 나온 3번째 책이다. 워낙 오래된 이야기고 등장하는 악당들이 설명충인건 대략 70-80년까지도 이어져왔었던 전통이라서 가볍게 무시하고 이야기와 구성 그 자체를 즐기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지를 절단한 희생자의 시체를 석고상으로 만들어서 여러 곳에 팔아버리는 엽기적인 연쇄살인마와 경찰의 대결. 패색이 짙어가는 와중에 갑자기 외유 후 귀국한 아케치 고고로가 달려들면서 금방 해결되는데, 정체는 그다지 갑작스럽지 않은, 오컴의 면도날 법칙을 적용했다면 금방 찾을 수 있었던 어떤 사람인데, 이번에는 나도 트릭을 금방 잡아낼 수 있었다. 란포의 이야기는 추리보다도 서리얼하고 기괴함에 포인트를 잡고 읽으면 더욱 즐겁다.



가벼운 책과 신변잡기의 에세이. 일본작가들의 이런 책을 보면 늘 일본의 책을 주로 다룬다는 점에 부럽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면서, 어떤 면으로는 일본인들의 사고가 섬에 갇혀 깊지만 편협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요즘은 우리 책의 비중이 높아진 에세이도 많이 나오지만 아직까지 유수의 한국 문인들이 쓴 독서에세이에서는 외서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 또한 타인지향성의 표출로 볼 수 도 있고, 다른 면에서는 서구지향을 통한 빠른 산업화와 근대화를 이룬 바탕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일본은 오랜 세월동안 외부의 문물을 받아서 자기화를 잘 한, 꽤 열린 사고를 가진 면이 강했고 우리는 500년 동안 유교철학만 받들던 나라였던 것을 보면 지금 양국의 성향은 각기 과거의 반대급부라는 생각도 든다.  모으기에는 하드커버가 멋있지만 들고 다니면서 읽기에는 이런 예쁘고 아담한 문고판이 적절하다. 















'네트'를 열고 '강하'하여 시간여행이 가능한 2060년대. 2차대전 중의 런던의 한복판에서 종횡무진하는 역사학자들의 모험이 시작된 '블랙아웃'과, 옥스퍼드 시간여행 3부작의 완결은 슬프고 아름다웠다.  편차가 증가함에 따라 어그러지는 듯한 역사의 주름속에서 각각 처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서로를 돕고, 위치한 시간대의 사람들을 도와가면서 다시 '네트'가 열리기를 기다리는 미래의 학자들. 그리고 극적으로 구출되면서 하나씩 밝혀지는 사실들을 보면서 우리가 사는 일직선의 삶은 결국 거대한 원처럼 과거, 현재, 미래가 얽힌 바퀴가 닿는 찰나의 직선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미 일어났던 그대로 다시 역사가 미래가 되어갈 것임을 학자들이 자각하게 되는 건 이야기가 끝날 무렵이니, 연속적이고 늘 계속 존재하는 시간속에서 그들이 다시 같은 모험을 떠날 때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고 일어난 일은 계속 일어나게 되는 것.  던진 떡밥을 잘 회수했다는 생각과 함께 누군가의 희생으로 전쟁의 승리에 필수조건인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났고, 또 이 과정에서 과거에 갇힌 그들이 구해지는 과정의 반복이 안정적으로 이어질 수 있었음이다.  단순한 SF소설을 넘는 드라마성이 대단하고 상징하는 것, 혹은 읽는 사람에게 많은 생각을 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또한 대단한 시리즈가 아닌가 싶다.


예전에는 일하는 날 땡땡이를 치는 하루의 시간이 무척 빨리 지나간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이를 먹은 탓인지, 오너라서 그런 건지 이렇게 땡땡이를 치는 날엔 일하는 날보다 훨씬 더딘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아침에 나가서 우편물도 확인하고 이런 저런 전화도 몇 건 처리하고 서점에 들려 커피도 마시고 책도 사왔으며 라면을 끓여 먹고 나서도 고작 오전 11시라는 사실이 새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일하기 싫은 날'의 하루.  배가 가라앉으면 나가서 뛰고 들어와서 대충 오후 1-2시가 될테니까, 무척 길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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